금주는 평창 정선에 걸쳐 있는 백암산으로 향하기로 되어있다. 지난주 참석인원이 저조해서인지, 오늘은 오지버스가 거의 만차다. 15명. 근래 최고 인원이다. 가방정리하랴 간식 돌리랴 모두 분주하다. 오늘은 오랜만에 다올님의 짝궁인 원더님이 노란색 아우터 입고 나왔다. 반갑다. 가장 먼거리에서 오는 소백님과 수담님을 태우자, 오지버스는 문닫고 출발한다. 아부라백작님이 AI 에게 물어본 오늘의 산행일정에 대한 브리핑을 다시한번 읽는다. 너무 완벽하다. 그래서 조금 기시감이 있다.
나는 맨 뒤에서 몸 구기고 눕는다. 어제 한숨도 못 잤다. 앞에서 대간거사님과 신가이버대장님이 코스를 변경하는 이야기를 하는 듯 하다. 상관없다. 어디를 가든 평창.인제 지역이다. 위험할 것은 없을 테고, 힘들어 보았자 그저 오지산행에 힘듦일 것이다.
자고 깨니, 오늘 산행지는 백암산 위에 있는 가마봉으로 정해져 있다. 고도가 100미터 더 높다. 하지만 들머리 구간은 전혀 거칠어 보이지 않는다. 들머리에 도착하자, 버스 내려 우르르 숲으로 들어간다.
보드라운 숲길을 편히 오른다. 아직 연녹색의 이파리들이 여리 여리 흔들린다. 바닥에는 봄 꽃들이 지천이다. 햇살도 강하지 않고, 아주 약한 바람도 있어서인지, 땀이 나려다 금세 마른다. 등산하기 딱! 좋은 날이다. 얼마지나지도 않았는데, 벌써 선두는 휴식을 하고 있다. 오랜만에 나온 원더님을 위한 대간거사님의 배려라고 하신다. 오지가 많이 변했다. 예전에는 등산잘하는 순으로 배려가 되었는데, 이제는 거꾸로다. 아무튼 나는 등산 못하는 축에 들어 있으니.
부드러운 오르막길을 계속 오르니, 불안한 마음도 있다. 너무 편하게 오르면, 언제나 그 보상을 해야한다는 것이 오지의 철칙이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을 즐기면 그만이다. 특이하게 오늘은 등산 시작부터 새소리를 들었는데, 새소리가 산행 내내 이어진다. 새 한마리가 우리를 따라 다니며 지저귀는지 아니면 다른 새인지는 알 수는 없으나, 새의 지저귐은 비슷한 톤이다. 내가 생각하는 가장 이상적인 아침은 새소를 들으며 잠이 깨고, 새소리를 들으며 아침을 보내는 것이다. 오늘이 그런 이상적인 아침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능선길에 올랐다. 조망이 탁 트인다. 굽이 굽이 다 산이다. 하늘은 습기로 뿌옇지만, 오히려 그림을 보는 듯 한 착각을 일으킨다.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다. 산에 있으면 그냥 좋다.
가마봉은 꽤 멀리 있다. 문득 오늘은 못 닿을 것 같다는 생각이들고, 한편으로는 들머리가 힘들지 않았으니, 저기를 힘들게 오를 것 같다는 생각이든다. 산쟁이 하늘재님이 저기를 꼭 가고자 함인지는 몰라도, 오늘 가마봉을 간다면, 앞으로 매주 오지에 나오겠다고 약속을 한다. 걸렸다. 무조건 간다. 벌써 자연님의 투털거림이 보인다.
얼레지가 피어난 봄꽃 핀 구간을 지난다. 고도가 높아져서인지, 아니면 시간이 오후에 들어서서인지, 햇살이 조금 강해진다. 얼굴가리는 팀원들이 많아진다. 이제 나이가 들어가니, 슬슬 피부관리를 하는 모양이다. 이왕이면 예쁘게 늙어야지. 백퍼 공감한다.
드디어 가마봉이 지척에 보인다. 2시간 전만 해도 아득해 보이던 봉우리가 눈 앞에 우뚝 솟아 있으니, 가슴이 뛴다. 그리고 심장도 뛴다. 꽤 급한 오름이다. 잔가지 풀뿌리 잡고 오른다. 아침부터 콕 콕 쑤시는 왼쪽무릎이 계속 신경쓰인다. 봄이면 사라지는 아픔이었는데, 이제는 그냥 내몸에 달라 붙었나 보다. 빨리 익숙해 져야 할텐데.
가마봉 정상에 이르러 멀리서 보던 툭 튀어나온 바위쪽으로 간다. 조망이 압권이다. 여기가 평창.인제 산들의 중앙에 위치한 듯 사방으로 펼쳐진 산봉우리들이 보인다. 최고의 명당이다. 여기서 하룻밤 보내는 것도 좋겠다.
자연님은 항상 힘들다고 하지만, 오늘은 정말 무난한 산행인듯 하다. 좋은 날씨에 새소리들으며 편히 오르고, 지천에 있는 봄꽃들도 많이 보았다. 이제 안전하게 내려가기만 하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