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아침 – 영신봉,촛대봉,연화봉,제석봉,천왕봉
1. 천왕봉에서 동쪽 조망, 멀리는 웅석봉(?)
아무리 큰 산이라도 손바닥으로 가려버릴 수 있듯이 엄청난 빛과 신비로 가득 찬 이 세상도 치졸하고 속된 삶 때문
에 우리 사이에서 가려져버릴 수 있다. 그러니 눈앞의 손을 치우듯 자기 시야에서 그런 삶을 치워버리는 사람은
내면세계의 엄청난 빛을 목격할 수 있는 것이다.
―― 브라츨라프의 랍비 나흐만(피터 메티슨 지음, 이한중 옮김, 『神의 山으로 떠난 여행』(갈라파고스, 2010)에서)
▶ 산행일시 : 2026년 6월 14일(일), 무박산행
▶ 산행코스 : 거림,세석대피소,영신봉,세석대피소,촛대봉,연화봉,장터목대피소,제석봉,천왕봉,법계사,
로타리대피소,중산리, 중산 두류생태 탐방로,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
▶ 산행거리 : 이정표 거리 20.6km(중산 두류생태 탐방로 왕복 3.2km 포함)
▶ 산행시간 : 10시간(03 : 20 ~ 13 : 20)
▶ 교 통 편 : 다음매일산악회(16명) 버스 이용
▶ 구간별 시간
23 : 40 - 양재역 1번 출구 전방 200m 스타벅스 앞, 버스 출발
03 : 10 – 거림(巨林), 주차장, 산행준비, 산행시작(03 : 20)
04 : 18 - 천팔교
04 : 25 - 북해도교
05 : 03 – 1400고지 거림 쉼터
05 : 24 - ┳자 의신마을 갈림길, 의신마을 8.6km, 청학동 9.5km, 세석대피소 0.5km
05 : 34 - 세석대피소
05 : 45 – 영신봉(靈神峰, 1,652m)
05 : 55 – 세석대피소, 휴식( ~ 06 : 05)
06 : 28 - 촛대봉(1,703.1m)
07 : 22 - 연하봉(煙霞峰, 1,723.4m)
07 : 36 – 장터목대피소, 휴식( ~ 07 : 51)
08 : 18 - 제석봉(帝釋峰, 1,808.0m)
08 : 36 - 통천문
08 : 52 - 천왕봉(天王峰, 1,915.4m), 휴식( ~ 09 : 10)
09 : 36 – 개선문(1,700m)
10 : 14 - 법계사(法界寺), 로타리대피소, 휴식( ~ 11 : 21)
11 : 23 - ┣자 칼바위삼거리, 장터목대피소 4.0km, 중산리 1.3km
11 : 54 - 중산리 탐방안내소, 중산 두류생태 탐방로
12 : 40 – 너른바위, 온길 되돌아감
13 : 20 –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소, 산행종료, 버스 출발(15 : 46)
17 : 10 – 덕유산휴게소( ~ 17 : 20)
19 : 40 - 양재역
2. 지리산 지도
▶ 영신봉(靈神峰, 1,652m)
지리산의 아침이 보고 싶었다. 지리주릉에 가장 근접하고 가장 빨리 오를 수 있는 들머리는 성삼재이니, 거기서
반야봉을 오르려고 했는데 모객저조로 취소되었다. 토요무박 지리산은 거림에서 세석대피소를 오르는 소위 ‘지리산
의 연하선경’이라는 산행코스가 유일하였다. 미산대장님은 거림에서 세석대피소까지 6km 정도인데, 빠른 분은 2시
간 30분 정도 걸리고, 보통은 3시간 걸린다고 한다. 아울러 장터목대피소 통과가 11시를 넘을 경우에는 천왕봉을
오르지 마시고 장터목대피소에서 오른쪽 법천계곡 쪽으로 하산하실 것을 당부하였다.
지리산의 일출이 아닌 아침을 보려면 거림에서 지리주릉을 오르는 것도 무방하다. 등로가 완만할뿐더러 볼 것 없을
캄캄한 밤중에 울창한 숲속 길을 걸으니 일거양득이기도 하다. 거림에 예상한 04시보다 훨씬 빠른 03시 10분에
도착하였다. 미산대장님은 캄캄한 숲속 길을 따로따로 가면 무서울 것이니 함께 뭉쳐서 가자고 한다. 그러나
그 말씀은 나에게는 수분에 불과하다. 대로 따라 10분 걸려 0.4km 오르면 먹자동네 지나고 거림탐방센터가 나온다.
거림탐방센터 계수대를 통과하면 소로의 산길이 시작되고, 아울러 혼자 가는 산행이 되고 만다. 울퉁불퉁한 돌길이
자주 출몰한다. 산죽 숲에서는 외길이지만 너덜이 나오면 헤드램프 불빛이 닿는 데는 다 길로 보여 머뭇거리곤
한다. 등로가 헷갈릴만한 너덜에는 야광 등로표시등이 안내한다. 왼쪽 계류는 밤중인데도 우렁차게 소리 지르며
흐른다. 장폭일 그 포말이 궁금하여 헤드램프를 비추어보지만 숲에 가려 캄캄하다.
우리 일행 맨 선두의 불빛은 끊어질 듯 하다 다시 나타나곤 한다. 신기루다. 도저히 따라잡을 수 없는 불빛이다.
아무쪼록 내 걸음으로 조신하게 간다. 천팔교는 1,008m 고지일 것. 계류는 여전히 우렁차다. 그 씩씩한 물소리에
내 발걸음이 힘 받는다. 야금야금 고도를 높인다. 북해도교(北海道橋)를 건넌다. 거림골에서 유독 바람이 세고,
겨울철에는 일본의 북해도(홋가이도)처럼 혹독하게 춥다고 하여, 그 이름을 붙였다고 한다.
북해도교를 건너면 산행분위기가 일변한다. 계류 물소리는 끊기고,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진다. 비로소 산을 오르는
기분이 난다. 숨이 가빠지고 앙가슴에는 땀이 흥건히 밴다. 오르다 발걸음 멈추고 스틱에 기대어 숨을 고르기 여러
번이다. 주위는 여전히 어둡다. 산굽이 돌고 돈다. 1400고지 거림 쉼터이다. 우리 일행 선두 젊은이들이 쉬고 있다.
내처 갈까 하다가 아무래도 반칙일 것 같아 나도 배낭 벗어놓고 쉰다. 우리나라 학생들이 미국에 유학 가서 기숙사
에서 밤새워 공부하려다 사감에 걸려 주위를 받았다는 얘기가 떠올랐다. 다른 학생들은 모두 자는데 혼자서 밤늦도
록 공부하는 건 반칙이라고 했다.
나무숲 사이로 조망이 살짝 트이는데 아쉽게도 흐릿하다. 지리주릉에 올라도 저럴까 싶어 다리에 힘이 빠진다. 헤드
램프를 거둔다. 날은 발걸음마다 훤해진다. 완만한 등로다. 세석교를 건너고 계류는 오른쪽에서 지줄댄다. ┳자
의신마을 갈림길. 세석대피소 0.5km. 나는 ‘대피소’라는 이름이 못마땅하다. ‘산장’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이 있음에
도 굳이 대피소를 고집하는 이유를 모르겠다. 산꾼에게 ‘산장’은 얼마나 정겹고, 추억과 낭만적인이 분위기가 풍기
는 이름인가!
일본 산악계의 선구자이자 등산가인 오오시마 료오끼치((大島亮吉, 1899~1927)의 『山-硏究와 隨想』에 나오는
글이다. 마치 세석산장이나 장터목산장을 말하는 것 같지 아니한가.
“거기는 산허리의 경사가 부드러운 곳. 맑고 깨끗한 개울가. 뒤로 날카로운 산마루가 솟고 앞으로 멀리 넓은 들이
내다보인다. 그리고 저녁에는 나뭇가지를 낙조가 장밋빛으로 물들인다. 이 산장은 단순한 등산용 산장이 아니다.
우리가 여름이건 겨울이건 찾아가서 마음을 풀어놓고 즐길 수 있을 만큼 이것저것 마련된 소박한 휫테여야 한다.”
“산장에서 바라보는 구름은 아름답고 공기가 싱그러운 여름 저녁. 거기서 우리가 꾸는 꿈은 언제나 즐거우리라.”
이윽고 세석대피소이다. 대피소 마당 여러 탁자에는 등산객들이 꽉 찼다. 라면 냄새가 진동한다. 대피소에서 숙박한
등산객들이 너도나도 라면 끓여 이른 아침을 먹는 중이다. 나는 곧바로 영신봉을 향한다. 여기까지 와서 영신봉을
알현하지 않는 건 비례일 것 같아서다. 세석대피소에서 영신봉까지는 0.6km이다. 배낭을 벗어놓고 갈 것을 영신봉
지리주릉에 오르면 굳이 세석대피소를 들르지 않고도 등로는 능선 마루금으로 이어질 줄로 잘못 알았다.
돌길 완만하게 오른다. 도중에 너른 헬기장이 나온다. 비로소 지리산의 아침을 본다. 북으로 남으로 조망이 트인다.
북으로는 멀리 남덕유산이, 남으로는 하동 금오산이 분명하다. 곧 영신봉이다. 영신봉은 지리산의 수많은 고봉 중
가장 영험한 기운이 깃든 곳이라고 한다. 영신봉 남쪽 아래에는 신라 시대 절터인 영신사지와 영신대, 창불대가 있
다. 또한 영신봉은 지리산 주릉 백두대간에서 분기하는 낙남정맥의 출발점이기도 한다.
지리주릉은 눈개승마(눈개升麻, Aruncus dioicus (Walter) Fernald)가 한창이다. 봄철 눈을 뚫고 자라난다고
하는 여러해살이풀이다. 어린잎이 인삼(삼) 잎을 닮았다고 하여 ‘삼나물’이라고도 한다. 세석대피소로 되돌아간다.
내리막이니 금방이다. 나도 세석대피소 마당 탁자 한구석 차지하여 배낭 벗어놓고 요기한다. 오늘은 무박산행이라
먹을거리를 풍성하게 싸왔다. 삶은 달걀, 바나나, 사과, 방울토마토, 오이, 크림빵, 우유빵, 인절미, 한끼 쌀눈 바삭,
두유 등.
3. (영신봉 가는 도중 헬기장에서 바라본) 멀리 가운데 왼쪽은 남덕유산
4. 멀리 왼쪽은 황석산 연릉
5. 멀리 가운데는 하동 금오산
6. 눈개승마
7. 영신봉 가는 도중 헬기장에서 북쪽 조망
9. 멀리 가운데는 삼봉산과 법화산(오른쪽)
10. 앞은 지리산 남부능선 시루봉
11. 지리산 남부능선
12. 촛대봉에서 조망, 오른쪽 바위 뒤는 외삼신봉
▶ 촛대봉(1,703.1m), 연하봉(煙霞峰, 1,723.4m), 제석봉(帝釋峰, 1,808.0m)
세석대피소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 3.4km이다. 촛대봉과 연하봉을 넘는다. 봉봉을 오르고 내릴 때는 숲길이라,
봉봉 정상에서 시도록 조망한 눈을 잠시 쉬는 때이다. 세석대피소에서 20분 남짓 완만하게 오르면 암봉인 촛대봉이
다. 사방 조망이 훤히 트이는 일대 경점이다. 소원했던 지리산의 아침을 본다. 이미 떴을 해는 구름에 가렸다. 북으
로 삼봉산과 법화산, 그 사이는 오도재렷다. 장릉인 남부능선은 돌팔매질로 닿을 듯하고 그 너머 남해의 금산은
고도다.
연하봉 가는 도중 개활지는 걸음마다 경점이다. 걸음걸음 아껴 걷는다. 기실 지리십경 중의 하나인 ‘연하선경(煙霞
仙景)’은 연하봉 가는 길에서 좌우로 멀리 바라보이는 선경일 듯한 경치에서 비롯하지 않을까 한다. 숲속에 들어
기화이초를 본다. 우리나라 특산식물인 세잎종덩굴(Clematis koreana Kom.)이다. 산림청이 지정한 희귀식물
약관심종(LC)이다. 건들면 종소리가 울릴 듯하다.
연하봉에서 장터목대피소까지는 0.8km로 줄곧 숲속 길 내리막이다. 장터목대피소도 많은 등산객들이 북적이는
장터이다. 나도 한쪽에 자리 잡고 아침밥 먹는다. 장터목대피소는 식수대가 취사장 건물 입구에 있다. 지리산은
곳곳에 샘이 있고, 대피소마다 식수대가 있으니 식수 500ml 한 병이면 못 갈 데가 없을 듯하다. 장터목대피소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 1.7km가 지리산 산행의 하이라이트이다.
아침 08시가 넘자 해는 이미 중천에 솟았고, 옅은 연무가 끼기 시작하더니 원경이 흐릿하다. 제석봉 오르는 길과
그 전망대에서 조망하는 산 첩첩 경치가 촛대봉에서의 그것보다 당최 못하다. 점필재 김종직(佔畢齋 金宗直,
1431~1492)이 이 제석봉에서 조망할 때는 참으로 선경이었다. 다음은 제석봉 전망대에 걸린 그의 시 「중봉에서
바다에 뜬 여러 섬을 바라보다(中峰望海中諸島)」이다.
앞 섬은 가로놓이고 뒤 섬은 서 있는데
아득히 하늘과 바다가 서로 연접하였네.
멀리 보이는 구름 같은 돛단배 새보다 빠른 듯
예로부터 전하는 말에 뗏목 탄 신선이라 하네.
신선이 사는 대여신과 원교산은 또 어느 곳인가?
큰 자라 움직이지 않으니 단잠이 들었나 보다.
신조(神鳥)에게 편지 보내 옛 친구에게 문안하니
지금 나 또한 방장산 정상에 올라와 있다네.
前島庚庚後立立
蒼茫天水相接連
似有雲帆疾於鳥
古來說得乘槎仙
岱輿員嶠更何處
巨鼇不動應酣眠
寄書紫鳳問舊侶
我今亦在方丈巓
13. 멀리 가운데는 남해 금산
14. 촛대봉에서 조망 남동쪽 조망
15. 앞 왼쪽은 지리산 남부능선 시루봉
16. 멀리 왼쪽은 남해 금산
17. 멀리는 하동 금오산
20. 앞 왼쪽은 지리산 남부능선 시루봉
22. 멀리는 삼봉산과 법화산
▶ 천왕봉(天王峰, 1,915.4m)
제석봉을 넘고부터 여러 등산객들과 마주친다. 그들은 가벼운 차림이다. 반바지이거나 쫄바지에 러닝셔츠 차림이고
가벼운 트레일 러닝 배낭에 등산화는 운동화나 다름없다. 그러고서 대화종주 중이라고 한다. 나는 듯 간다. 철계단
을 오르는 통천문은 등산객들이 몰려 지체한다. 통천문에서 천왕봉 오르는 길 0.4km는 무척 가파르다. 데크계단이
나 핸드레일 붙잡고도 한참을 기어오르는 돌길이다. 그러고서 천왕봉이다.
천왕봉은 정상 표지석과 인증사진을 찍으려는 등산객들이 길게 줄 서 있다. 나는 정상 표지석 사진 찍기를 포기한
다. 천왕봉은 햇볕을 가릴 데가 없는 암봉이지만 대기가 서늘하여 따스한 느낌이다. 잠시 주변 풍광 살피며 휴식한
다. 점필재 김종직의 『유두류록(1472 作)』 안내판도 들여다본다.
“새벽녘에 해가 동녘에서 솟아오르려 하자 노을이 영롱하게 빛났다. 일행 모두 내가 매우 지쳐서 다시는 천왕봉에
오를지 못하리라 여겼다. 그러나 나는 ‘여러 날 동안 날씨가 흐리다가 갑자기 맑게 개니 하늘이 나에게 베풀어주는
것이 많구나. 지금 천왕봉이 지척에 있는데 힘써 오르지 않는다면 평생 답답한 마음을 끝내 말끔히 씻어버릴 수 없
을 것이다’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드디어 새벽밥을 재촉해 먹고 아랫도리를 걷어붙이고서 지름길로 석문을 통과
하여 위로 올라갔다. 성모묘에 들어가 다시 술을 부어 놓고 사례하기를 ‘오늘 천지가 말게 개고 산천이 확 트인 것은
진실로 신명의 은택입니다. 참으로 매우 기쁘고 감사합니다’라고 하였다. 기러기나 고니라 할지라도 우리보다 높이
날 수는 없으리라. 때마침 날씨가 막 개어 사방에 구름 한 점 없었다. 다만 하늘이 푸르고 아득하여 끝을 알 수 없었다.”
점필재 김종직은 지리산을 1471년(성종 2년) 여름에 4박 5일 일정으로 함양관아에서 하봉, 중봉, 천왕봉, 향적사(장
터목), 천왕봉(재등정), 제석봉, 영신봉, 백무동으로 진행하였다. 한편, 묵호옹 유몽인(黙好翁 柳夢寅, 1559~1625)
은 53세 때인 1611년 (광해 3년) 봄에 9박 10일 일정으로 인월에서 독바위, 하봉, 중봉, 천왕봉, 향적암(장터목),
세석, 의신마을, 상계사로 진행하였다. 그가 이때 쓴 「유두류산록(遊頭流山錄)」에서 천왕봉을 올라 사방 조망한
장면은 사뭇 감동적이다. 그때는 지금과는 달리 대기가 맑아(?) 아주 먼 곳까지 조망할 수 있었던 것이 부럽다. 길지
만 그가 천왕봉에서 오른 대목을 옮긴다.
“이날은 비가 그치고 날이 활짝 개었다. 흐릿하게 떠돌던 구름 기운이 사방에서 걷히니 광활하고 망망한 세상을 눈
닿는 곳이면 어디든 바라보는 데 거침이 없었다. 마치 하늘이 명주 장막을 만들어 이 봉우리를 위해 둘러친 듯하였
다. 시야를 가로막는 한 덩어리의 언덕조차 없었다. 단지 이리저리 얽히고 푸른 것은 산이요, 굽이굽이 감도는 흰 것
은 물임을 알 수 있을 뿐 어느 곳, 어느 강, 어느 산이지는 분간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시험 삼아 이 산의 승려가
가리키는 지점을 이름을 대 보았다.”
“동쪽을 바라보니, 대구의 팔공산, 현풍의 비슬산, 의령의 도굴산, 밀양의 운문산, 산음의 황산, 덕산의 양당수, 안동
의 낙동강이다. 서쪽을 바라보니, 무등산은 광주에 있고, 월출산은 영암에 있고, 내장산은 정읍에 있고, 운주산은
태안에 있고, 미륵산은 익산에 있고, 추월산은 담양에 있고, 변산은 부안에 있고, 금성산과 용구산은 나주에 있다.
그리고 남쪽으로 소요산을 바라보니 곤양임을 알겠고, 백운산을 바라보니 광양임을 알겠고, 초계산과 돌산산을
바라보니 순천임을 알겠고, 사천의 와룡산을 바라보니 정유재란 때 명나라 동(董) 장군이 패한 것이 생각나고, 남해
의 노량을 바라보니 이순신이 나라 위해 죽은 것이 슬프다. 북쪽으로 안음의 덕유산, 전주의 모악산이 단지 하나의
작은 개미집처럼 보였다. 그 가운데서도 큰 아이처럼 조금 더 솟아나 있는 것이 성주의 가야산이다. 삼면이 큰 바다
로 둘러싸인 곳에서는 점점이 박힌 섬들이 큰 파도 사이로 보이다가 사라지곤 했다. 그중 대마도의 여러 섬들은
너무도 아득하여 하나의 탄환처럼 보였다.”
“아! 덧없는 인생이 가련하구나! 항아리 속에서 태어났다 죽는 저 수많은 초파리 떼는 다 긁어모아 본들 한 움큼도
채 되지 않거늘 그럼에도 저들은 시시콜콜 자기를 내세우며 옳으니 그르니 기쁘니 슬프니 하면서 살아간다. 이것이
어찌 크게 웃을 만한 일이 아니겠는가! 내가 오늘 본 것으로 생각해 보자면 이 천지 또한 한 개의 손가락일 뿐이다.”
23. 멀리는 황석산과 거망산(?)
24. 세잎종덩굴, 산림청 지정 희귀식물이다
25. 멀리 가운데는 반야봉, 그 왼쪽 뒤는 노고단
26. 멀리 오른쪽은 삼봉산과 법화산
27. 멀리는 하동 금오산
32. 장터목대피소에서 남쪽 조망
연무는 점점 심하여 원경은 더욱 흐려지고 하릴없어 하산한다. 천왕봉에서 중산리까지 5.4km. 지리산에서 이보다
더 힘든 내리막이 또 있을까 싶다. 천왕봉을 오르는 가장 짧은 코스이기는 하지만 내리기에는 퍽이나 힘들다. 더러
데크계단이 있지만 대부분 돌길이다. 그래도 로타리대피소까지 2.1km는 곳곳에 조망처가 있어 지겨움을 달래주지
만, 거기서 칼바위까지 2.0km 내리막은 다시는 여기를 오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하게 한다.
법계사로 내리기 직전에 일시에 조망이 트이는 너른 암반에서 잠시 머무른다. ‘일출봉 문창대 이야기’라는 안내판이
있어 이곳이 고운 최치원이 은거했다는 문창대(최치원의 시호인 문창후(文昌候)에서 이름을 따왔다)가 아닐까 의심
했지만, 이곳에서 정면으로 가깝게 바라보이는 세존봉(1,374m)의 암반지대를 말한다고 한다. 거기는 지금은 비지
정 탐방로이다.
법계사 일주문에 배낭 벗어놓고 일주문을 들른다.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해발 1,450m에 위치한 절이
다. 본전은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그 위 극락전 마당가 바위 위에 세운 고려 초기의
작품이라는 삼층석탑은 보물 제473호이다. 적멸보궁의 주련을 얻어온다. 화엄대예문(華嚴大禮文)의 게송이라고 한다.
萬代輪王三界主
雙林示滅幾千秋
眞身舍利今猶在
普使群生禮不休
만대의 법왕이시며 삼계의 주인이신 부처님이시여
사라쌍수 아래에서 열반을 보이신 지 몇 천 년이 흘렀는가
부처님의 진신사리는 지금도 여전히 이곳에 계시니
널리 모든 중생이 예배를 쉬지 않게 하옵소서
법계사 바로 아래에 있는 로타리대피소도 등산객들로 만원이다. 로타리대피소 약간 벗어난 한적한 공터에서 휴식한
다. 제석봉 문창대를 오르고 싶은 욕심이 없지 않았으나 게을러졌다. 그쪽 등로는 흐릿하다. 아서라 하고 잘난 등로
따라 내린다. 칼바위 가는 돌길 내리막 2km. 3년 6개월 전의 악연이 되풀이 된다. 그때 엉덩이가 피멍이 들도록 넘
어졌었다. 오늘은 그때를 상기하여 걸음걸음 조심했건만 마주친 묘령의 여인이 수인사하기에 그에 답례하려고 고개
를 들다가 나무뿌리에 걸려 된통 넘어지고 말았다.
카메라가 다치지 않게 하려고 안고 넘어지는 바람에 왼쪽 무릎에 피가 나도록 다쳤다. 절뚝거리며 내린다. 그래서
칼바위, 중산리 가는 길이 아득히 멀다. 내리막 돌길이 지겹기만 하다. ┣자 장터목대피소 가는 갈림길 지나고 그 앞
칼바위 지나면 가파른 내리막은 납작 수그러들지만 돌길은 당분간 여전하다. 왼쪽 무릎이 불편하여 비지땀 쏟아 중
산리 탐방안내소이다. 지금시각 11시 54분. 산행마감시간은 16시이다. 우리 버스가 출발할 지리산국립공원 산청분
소 앞은 불과 0.2km이다.
미산대장님이 산청분소 앞 거북이식당에서 식사하면 샤워를 할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고, 샤워 대신 알탕을 계류 어느 곳에서 못하랴 싶었다. 더구나 중산리 탐방안내소 길 건너에 ‘중산 두류생태탐방
로’로 안내하고 있다. 3년 6개월 전에도 갔었다. 왕복 3.2km이다. 거기나 슬슬 갔다 오기로 한다. 대부분 숲속 데크
로드다. 중산쉼터, 두류쉼터, 이야기쉼터, 전망쉼터, 두류교, 너덜지대, 용소계곡, 갓등고개, 활량소폭포, 실소, 자라
바위, 구시소폭포, 너른바위 등이 명소다.
그중 너른바위 아래 소는 피서객들이 다이빙하며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계류는 구시소폭포만 들를 수 있고, 다른
데는 데크로드에서 깊은 절벽 아래라 접근하기 어렵다. 일탕할만한 데는 아무데도 없다. 계류는 그늘 없이 땡볕이
내리쬐고 데크로드에서 훤히 내려다보인다. 산청분소 화장실에서 세수할 뿐이다. ‘중산 두류생태탐방로’를 왕복했
어도 2시간 30분이나 남았다. 이 시간을 죽이기가 천왕봉 돌길 오르내리기보다 더 힘들다.
34. 제석봉에서 남동쪽 조망
35. 제석봉에서 바라본 지리주릉, 멀리 가운데는 노고단, 그 앞 오른쪽은 반야봉
36. 제석봉에서 바라본 천왕봉
37. 천왕봉
38. 천왕봉에서 바라본 중봉과 하봉(뒤)
39. 천왕봉에서 동쪽 조망
40. 멀리 가운데는 웅석봉(?)
41. 법계사 가는 길에서 남쪽 조망
43. 두류생태탐방로 구시소폭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