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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수재 권상하

한수재선생문집 서문

작성자향산 김문진|작성시간26.06.15|조회수27 목록 댓글 0

 

                                                    한수재선생문집 서문

                                                                                                                                    윤봉구尹鳳九

 

천하의 의리는 이기(理氣) 심성(心性)보다 큰 것이 없고 유자의 학문 또한 이기 심성보다 절실한 것이 없다. 이에 대해서는 예로부터 성현들이 자세히 말하였으나 다만 인물과 성인과 범인의 구분에 있어서는 동이(同異) 득실(得失)의 차이가 없지 않았으니, 학자가 이 점에 대해 실로 그 종류를 따져 그 실상을 밝히지 못한다면 성인을 배우기 위해 삼가 생각하고 분명히 가려 내는 공부가 어찌 제대로 되겠는가. 우리 한수재 선생은 화양(華陽) 송 선생에게 배워서 계담(溪潭 사계 김장생(金長生)과 석담 이이(李珥))을 거쳐 낙민(洛閩 낙양(洛陽)의 정호(程顥)ㆍ정이(程頤), 민중(閩中)의 주희(朱熹))을 거슬러 올라가 수사(洙泗)의 연원을 이은 분으로서 그 설은 한결같이 여러 성현의 유훈(遺訓)을 준수하여 과거 성인의 뒤를 잇고 후학을 열어 주는 업적을 세웠다는 것을 이 문집(文集)을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니, 아, 참으로 도를 실어 놓은 글이라고 이를 만하다.
대체로 말하자면, 이(理)는 본디 순수 완전하여 애당초 서로 같지 않은 것이 없으나 그것을 시행하고 운용하는 것은 완전히 기(氣)에 달려 있는데, 기는 일정하지 않기 때문에 이(理)가 기를 따라서 물에 부여되는 것이 다르고 체(體) 또한 천만 가지로 달라 절대로 같지 않은 것이다. 성(性)은 인간과 물이 자연적으로 얻은 이(理)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우리 인간의 인의예지의 성과 소ㆍ말ㆍ솔개ㆍ물고기의 밭을 갈고 길을 달리고 하늘을 날고 물위에 뛰는 성은 그 각각의 부류에 따라 나누어진다. 공자는 천지의 모든 성 가운데 인간의 것이 존귀하다고 말하고 맹자는 개ㆍ소ㆍ인간 세 성이 각기 다르다는 것을 말하였는데, 주자는 공자의 그 말에 따라 그 소이연(所以然)을 밝혀 말하기를 “사람이 태어나면 바르고 통명한 것을 얻기 때문에 그 성이 가장 존귀한 것이다.” 하고, 또 맹자의 세 성이 다르다는 것을 해석하기를 “인의예지를 부여받은 것은 어찌 물(금수(禽獸)와 초목(草木)을 말함)이 지닐 수 있는 것이겠는가?” 하였으니, 이는 인간과 물의 성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심(心)은 성을 담은 그릇으로서 총괄하여 말하면 성(性)과 정(情)을 포괄하고 하나로 가리키면 기(氣)이다. 주자는 심이란 기의 정신이라고 말하였는데, 이는 그 형체가 허령불매(虛靈不昧)하여 조용한 상태에서는 오상(五常)의 덕을 구비하고 그것이 밖으로 드러나면 사단 칠정(四端七情)의 작용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른바 정신이란 것도 기(氣)로서 그 부여받은 것이 어떠한가에 따라 제각기 구별이 있으니, 공자가 말한 “법도를 벗어나지 않는다.”는 마음과 “인(仁)을 떠나지 않는다.”는 마음과 “하루 또는 한 달 동안 우연히 인(仁)의 도에 이른다.”는 마음에 이미 태어나면서부터 도를 알고 배운 다음에 도를 알고 쓰라린 공을 들인 다음에 도를 아는 등급이 있다. 정자(程子)는 기가 맑으면 재주가 맑고 기가 흐리면 재주가 흐리다는 말을 하였는데, 주자가 재주를 심이라고 하면서 말하기를 “정자가 재주를 말한 것은 무엇보다 정밀하다.” 하고, 또 말하기를, “사람이 배우는 이유는 자신의 마음이 성인의 마음과 같지 않기 때문이니, 만일 다른 것이 없다면 무슨 배운다는 것을 할 것이 있겠는가.” 하였으며, 율곡 선생의 경우는 곧바로 말하기를 “허령도 또한 우열이 있다.” 하였으니, 이는 성인과 범인의 마음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옛날 성현들께서 논조를 세워 후세 사람을 가르친 것이 이와 같이 분명하고 절실함에도 불구하고 근년 이후로 여러 말들이 각기 갈라져 하나로 합치되지 않았다. 이에 선생께서는 막힌 근원을 트고 흐름을 깨끗이 씻어 내어 분석하고 밝혔으니, 이른바 “각기 그 기의 이치를 가리키며 또한 그 기에 섞여 있지 않다.”는 것은 인간과 동물의 성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말한 것이고, 또 “기질이란 심(心)을 가리킨 말이다.”는 것은 성인과 범인의 심은 각기 다르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그리하여 관건을 열어 천 년 이후의 시점에서 말없는 가운데 도의 묘체가 서로 맞아들어간 것은 참으로 부절(符節)처럼 차질이 없는 것이다.
근본이 일단 바르기 때문에 경전을 논하거나 예를 말할 때 어떤 경우이건 명쾌하였고 친지들간의 문답상에 나타나는 것도 다 근본 의의를 천명하고 사도(斯道)를 돕는 것들이었다. 이는 송 선생께서 주자의 ‘가을달이 차가운 물에 비친다[秋月寒水]’는 시 구절을 써 주어 심법(心法)을 전수하는 은미한 뜻을 붙인 이유이며 초산(楚山)에서의 수수(授受)도 신신 당부하는 정도였으니, 이 어찌 도가 있는 곳이며 또 도가 내 몸에 있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다만 한스러운 것은 선생의 풍부한 학업으로 초야에서 일생을 마쳐 스스로 북창의 맑은 바람 아래 희황(羲皇) 시대 사람에게 견주었다는 점이며, 게다가 또 ‘몸이 나가지 않은 처지에 말을 해서야 되겠느냐.’는 훈계를 받아, 비록 임금을 사랑하고 시대를 걱정하는 생각은 지성에서 우러나오긴 하였으나 끝내 한마디도 언급한 일이 없었으니, 어쩌면 선생께서 세상을 잊어버리자고 생각한 것은 아니었던가. 참으로 이 세상의 불행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선생께서 4년 동안 산림 속에 한가로이 지내면서 오로지 도를 강명(講明)하고 그것을 언어와 문자에 기탁하여 후학에게 전해 줬으니, 이 또한 세도와 사문의 한 가지 큰 다행인 것이다.
선생께서 돌아가신 뒤에 선생의 손자 권정성(權定性)이 유문(遺文)을 거두어 모아 문인 한원진(韓元震)ㆍ윤봉구(尹鳳九)에게 함께 교정하게 하고 그것을 상자 속에 보관해 온 지 30여 년이 되었다. 영남백(嶺南伯) 황인검(黃仁儉)군은 선생의 외증손인데 이제 재산을 희사하여 인부들을 모아 놓고 권정성의 아들 권진응(權震應)과 함께 판각에 올릴 것을 논의한 뒤에 권진응이 윤봉구에게 그 서문을 써 달라고 부탁하였다. 소자 불녕(不佞)이 어찌 책의 첫머리에 올리는 글을 감당하겠는가마는, 다만 오늘날 동문의 여러 벗들은 이미 다 세상을 떠나고 소자만 남아 있을 뿐이므로 감히 무능하고 고루하다는 이유로 사양치 못했다.
아, 선생의 도는 강수(江水)와 한수(漢水)로 씻어 내고 가을 햇볕으로 말린 것처럼 깨끗하고 맑아 그 무엇도 그보다 초과할 수 없는 것으로서 소자가 능히 헤아리고 엿볼 일이 아니다. 하지만 선생의 기상의 돈후하고 드높고 근엄하고 장대함과 규모의 방정하고 간결함과 심법의 정대하고 엄밀한 점은 진정 도에 나아간 극치라고 이를 만하며, 그 범위가 깊고 넓으며 풍부하여 자연히 법도에 맞는 문장에 있어서도 또한 모두 학식과 기예인 나머지가 밖으로 나타난 것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이기(理氣) 심성(心性)에 관한 말씀이 가장 선생의 옛 성현의 도를 잇고 후학의 길을 여는 공에 관계되기 때문에 그 사항을 이와 같이 특별히 쓴 것이다. 아, 앞으로 몇 천백 년을 내려가는 동안 어느 누가 능히 선생이 곧 만대 심학(心學)의 연원이라는 것을 알아서 선생의 이 글에 느낌이 있을 자가 나올지 알 수 없다.

숭정(崇禎) 갑신년 이후 두 번째 신사년(1761, 영조37) 늦가을에 문인 파평(坡平) 윤봉구(尹鳳九)는 삼가 서문을 쓴다.

 

 

[주1] 초산(楚山)에서의 수수(授受) : 초산은 전라북도 정읍(井邑)의 옛 이름이다. 우암 송시열이 숙종 15년(1689) 5월에 정읍에서 한수재 앞으로 쓴 글에서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는 성인의 가르침이 있는데 여든 살이 되도록 끝내 듣지 못하고 죽게 되어 부끄럽고 한스럽다는 말과 함께 주자가 돌아가실 때 문인들에게 ‘직(直)’이란 한 글자를 준 것으로 보면 이는 성인의 전수하는 심법이니, 그대에게 말해 준다고 하였다. 《宋子大全 卷69 奉訣致道》

 

[주2] 이 어찌 …… 아니겠는가 : 한수재가 도를 지녔기 때문에 우암 송시열 선생이 심법을 전수하였다는 것이다. 도가 있는 곳이라는 말은 《한창려문집(韓昌黎文集)》 권12 사설(師說)의 “귀하다거나 천하다거나 나이가 많거나 적거나 할 것 없이 도가 있는 곳이 스승이 있는 곳이다.”에서 나왔고, 도가 내 몸에 있다는 것은 《논어(論語)》 자한(子罕)의 “문왕께서는 이미 돌아가셨지만 그 도는 내 몸에 있지 않는가.”에서 나왔다.

 

 

                                                          寒水齋先生文集序[尹鳳九]

 

天下之義理。莫大於理氣心性。儒者之學。亦莫切於理氣心性。從古聖賢。言之詳矣。而惟人物聖凡之分。不能無同異得失之別。學者於此。苟不能究其類而明其實。其於學聖人思辨之工何哉。我寒水齋先生。學於華陽宋先生。由溪潭 而溯洛閩。以承洙泗之淵源。其說一遵諸聖賢遺訓。克闡繼開之業。觀於是集可知已。嗚呼。眞可謂載道之文也歟。蓋理本渾然。初無不同。而敷施運用。全在於氣。氣不齊也。理之隨氣而賦於物之異。體亦萬殊而絶不同。性指人物所得之理而稱者也。吾人仁義禮智之性。與牛馬鳶魚耕馳飛躍之性。以類而群分焉。孔子言天地之性。人爲貴。孟子言犬牛人三性之各異。朱子因孔子之言。明其所以然而曰。人之生。得其正且通者。故其性爲最貴。又釋孟子三性之別曰。仁義禮智之稟。豈物之所得以全哉。此言人物之性不同也。心盛性之器也。統言則該性情。單指則氣也。朱子謂心。氣之精爽。是其體段。虛靈不昧。靜而具五常之德。發之爲四七之用。 

然所謂精爽亦氣也。因其所稟。各自有別。孔子之言不踰矩之心。不違仁之心。日月至焉之心。已有生知學知困知之等。程子有氣 淸才淸氣濁才濁之說。朱子以才爲心。而謂程子之言才尤密。又曰人之所以爲學。以吾之心。不若聖人之心。苟無異也。尙何學之爲哉。至於栗谷先生則直曰虛靈亦有優劣。此言聖凡之心不同也。古聖賢立言詔後。若是明切。而自近年來。衆言派分。莫之歸一。先生疏源滌流。卞析開發。其曰各指其氣之理。 而亦不雜乎其氣者。人物性不同之謂也。其曰氣質指心而言者。聖凡心各異之謂也。其抽鍵啓鑰。黙契道妙於千載之後者。眞如符節之不爽矣。本源旣正。故論經說禮。隨處朗然。見於知舊答問者。亦皆闡明本義。羽翼斯道。宋先生所以書朱夫子秋月寒水之句。以寓傳心之微意。而楚山授受。又不啻丁寧者。豈非以道之所存。文在乎玆也耶。 所可恨者。以先生富有之業。終身丘壑。自擬於北窓淸風。又受身不出言出之戒。雖愛君憂時之念。發於至誠。而終無一言槩及。豈先生果於忘世。實斯世之不幸也。然先生之四十年林下閒居。專於講道。以寄言語文字。傳示後學。是亦世道斯文之一大幸也。 先生易簀。先生之孫定性。裒收遺文。使門人韓元震,尹鳳九相與校讐。藏之巾笥三十餘年。今嶺南伯黃君仁儉先生外曾孫也。捐財鳩工。與定性子震應相議剞劂。震應曰序於鳳九。小子不佞。何以當弁卷之托。第今同門諸友。已皆淪謝。獨小子在耳。不敢以拙陋辭。嗚乎。江漢秋陽。皜皜乎不可尙已。非小子所能蠡管。而先生氣像之敦崇儼偉。模之方直簡整。心法之正大嚴密。固可謂造道之極致。至於文章之涵泓贍博。自然中矩者。亦莫非餘事之著見。而惟此理氣心性之論。最關於先生繼開之功。特書之如此。噫。從今以往。幾千百載。孰有能知先生萬世心學。此其淵源。而有感於斯文者耶。 崇禎甲申後三辛巳秋末。 門人坡平尹鳳九敬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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