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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강어 - 전 3장 강어. 지어지선(止於至善)에 대한 풀이

작성자향산 김문진|작성시간26.06.14|조회수27 목록 댓글 0

 

 

                                                전 3장 강어. 지어지선(止於至善)에 대한 풀이

 

대저 자기에게 있어 마땅히 밝혀야 할 덕(德)과 백성에게 있어 마땅히 새롭게 해야 할 덕은 진실로 이미 하늘로부터 받은 것이라 외부로부터 가져올 필요가 없다. 그러나 밝혀서 새롭게 하는 것이 진실로 지선(至善)에 그치지 못한다면 어떻게 능히 천리(天理)의 당연한 극치를 다하여 터럭만큼도 인욕(人欲)의 사사로움이 없을 수 있겠는가. 이런 까닭에 모든 사물에는 저마다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 있지 않음이 없다. 그러므로 이 장에서 다섯 번 《시경》을 인용하여 지어지선의 뜻을 풀이한 것이다.

그중 “나라의 기내(畿內) 천리여! 백성들이 그쳐서 사는 곳이로다.〔邦畿千里 惟民所止〕” 한 것은 백성들이 기내에 그쳐서 사는 것으로써 사물은 저마다 그칠 곳이 있음을 밝혔고, “꾀꼴꾀꼴 우는 꾀꼬리여! 울창한 숲속에 그치도다.〔緡蠻黃鳥 止于丘隅〕” 한 것은 새가 그칠 곳을 안다는 것으로써 사람이 마땅히 그칠 곳을 알아야 함을 비유하였다. 그리고 인용한 〈문왕(文王)〉 시에서는 성인(聖人)의 그침은 지선(至善)이 아님이 없음을 말하였고, 또 인(仁), 경(敬), 효(孝), 자(慈), 신(信) 다섯 가지 조목을 열거하여 문왕이 그칠 곳을 얻은 실제를 밝혀 보임으로써 학자로 하여금 모두 이를 본보기로 삼을 수 있도록 하였다. 대저 이 다섯 가지 그침은 바로 천리와 인륜의 극치로서 그만둘 수 없이 자연히 생겨나는 사람의 마음에서 발현하는 것이라 이 그침에서 지나쳐서도 안 되고 못 미쳐서도 안 되니, 비록 문왕과 같은 성인일지라도 지선에 그치는 것은 그저 이와 같을 따름이고 애초에 본분 밖에 터럭만큼도 가감(加減)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일반 사람들은 사욕에 마음이 가려져 그 그칠 곳을 잃고 오직 성인만이 어느 때고 명덕(明德)이 밝지 않음이 없어서 그 그치는 것이 지선이 아님이 없다. 만약 이 다섯 가지에 있어서 참으로 그 본연의 법칙을 알아서 집희경지(緝熙敬止)의 공부를 하고, 또 능히 이를 미루어 넒혀서 남김없이 극진하게 하면 일상생활 중 모든 사물에서 일정한 법칙이 있음을 알아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인용한 〈기욱(淇澳)〉 시는 명명덕의 그칠 곳을 얻음을 말함으로써 그칠 곳을 찾는 방도와 그칠 곳에 그침을 얻은 징험이 어떤 것인지를 밝혔다.

대저 학문은 치지(致知)하는 것이므로 강습과 토론이 이미 정밀할지라도 반드시 더욱 정밀하도록 노력해야 하니, 이는 지(知)의 측면에서 지어지선(止於至善)을 구하는 것이다. 자수(自修)는 역행(力行)하는 것이므로 성찰과 극치(克治)가 이미 정밀할지라도 더욱 정밀하도록 노력해야 하니, 이는 행(行)의 측면에서 지어지선을 구하는 것이다. 마음에 지키는 바가 엄밀(嚴密)하고 기르는 바가 강의(剛毅)한 것은 지선(至善)이 마음속에 있는 것이요, 선저(宣著)하여 두려워할 만하고 광휘(光輝)로워 본받을 만한 것은 지선이 밖으로 드러난 것이다. 그리고 성덕(盛德)과 지선을 백성들이 잊지 못한다는 대목에 이르러서는 또 지어지선의 실효를 말함으로써 아래 글의 단서를 일으켰다.

그리고 인용한 〈열문(烈文)〉 시는 옛날의 신민(新民)의 그칠 곳을 얻음을 말함으로써 윗글의 이른바 성덕과 지선의 실제 효험을 밝혔다. 선왕(先王)이 이미 능히 자기의 덕을 밝혀서 백성에게 파급하였으며, 그 백성을 새롭게 하는 것이 지선에 그쳐서 한 사람도 제 살 곳을 얻지 못하는 이가 없도록 하였다. 그러므로 선왕이 이미 세상을 떠난 뒤에도 그 유풍(遺風)과 여택(餘澤)이 백성들의 마음에 푹 젖어들어, 그들로 하여금 현친낙리(賢親樂利)하여 윗사람은 편안하고 아랫사람은 순종하면서 선왕의 성대한 덕업을 우러러 숭상하고 선왕의 보살펴 주신 은택을 그리워 사모하는 마음을 오랜 세월이 지나도록 잊지 않게 할 수 있는 것이니, 여기서 신민의 지어지선의 극효(極效)를 볼 수 있다.

왕 통판의 강어

전 3장은 지어지선의 뜻을 풀이하였으니, 지선의 이치는 민이(民彝)와 물칙(物則)에 흩어져 있고 성인의 마음에서 회통(會通)됨을 말한 것이다.

인용한 〈현조(玄鳥)〉 시에 “나라의 기내(畿內) 천리여! 백성들이 그쳐서 사는 곳이로다.” 하였으니, 여기서 만물은 모두 저마다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면만(緡蠻)〉 시에서는 “꾀꼴꾀꼴 우는 꾀꼬리여! 울창한 숲속에 그치도다.” 하였는데, 공자가 이 시를 설명하면서 탄식하기를, “꾀꼬리도 외려 그쳐야 할 곳을 아는데 사람으로서 그칠 곳을 아는 새만 못해서 되겠는가.” 하였으니, 여기서 사람은 마땅히 그쳐야 할 곳을 알아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왕을 살펴보면 그야말로 지선에 그쳤던 분이니,《시경》에서 “덕이 깊고 원대하신 문왕이시여! 아, 계속하고 빛나서 공경하여 그칠 곳에 그치셨다.〔穆穆文王 於緝熙敬止〕” 하였다. 임금의 인(仁), 신하의 경(敬), 아버지의 자(慈), 아들의 효(孝), 국인(國人)과의 신(信)은 모두 마땅히 그쳐야 할 바의 지선인데 문왕은 임금이 되어서는 인에 그치고 신하가 되어서는 경에 그쳐서 군신(君臣)의 지선에 편안하였고, 아들이 되어서는 효에 그치고 아버지가 되어서는 자에 그쳐서 부자(父子)의 지선에 편안하였으며, 국인과 사귐에는 신에 그쳐서 국인과 사귐에서의 지선에 편안하였다. 문왕의 공경하여 그칠 곳에 그침이 이와 같으니, 학자가 여기서 그 깊은 뜻을 궁구하고 또 유추(類推)하여 그 나머지 이치까지 알면 천하의 사물에 있어서 모두 그 그쳐야 할 곳을 알아서 지선에 그칠 수 있을 것이다.

명명덕의 지어지선에 대해 말하면, 〈기욱(淇澳)〉 시에서 “저 기수(淇水) 물가를 보니, 푸른 대가 무성하도다. 문채롭던 군자여! 그 사람됨이 골각(骨角)을 자르고 다듬어 놓은 듯하시며 옥석(玉石)을 쪼개고 갈아 놓은 듯하셨지. 엄밀하고 굳세며 빛나고 점잖으셨으니, 문채롭던 군자여! 끝내 잊을 수가 없다.〔瞻彼淇澳 菉竹猗猗 有斐君子 如切如磋 如琢如磨 瑟兮僩兮 赫兮喧兮 有斐君子 終不可諠兮〕” 하였으니, 지선의 이치는 지(知)와 행(行)을 함께 수행하는 것임을 말하였다. 절(切)과 차(磋)에서 군자가 학문함에 있어 강습과 토론이 이미 정밀해졌더라도 더욱 정밀히 관찰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덕(德)의 기미로써 지선을 알고자 하는 것이다. 탁(琢)과 마(磨)에서 군자가 수신(修身)함에 있어 성찰과 극치(克治)가 이미 정밀해졌더라도 더욱 정밀히 실천하고자 노력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이는 덕의 실제로써 지선을 체득고자 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지(知)와 행(行)이 아울러 닦여져서 그칠 곳에 그치고자 하는 것에 실제의 공부가 있게 된다. 지선의 이치는 몸과 마음의 공부가 서로 보완하는 것이다. 슬(瑟)과 한(僩)에서 군자의 순율(恂慄)함은 애써 위엄을 부리지 않아도 절로 엄밀(嚴密)하며 애써 조존(操存)하지 않아도 절로 의연〔武毅〕하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마음에 경(敬)이 있으면 바로 덕(德)이 갖추어진 것이다. 혁(赫)과 훤(喧)에서 군자의 위의(威儀)는 독실할수록 더욱 빛나고 수렴할수록 더욱 드러난다는 것을 알 수 있으니, 밖에서 용모로 나타나면 바로 덕이 갖추어진 것이다. 이렇게 되면 내면과 외면이 함께 성대해져서 그칠 곳에 그침을 얻는 것에 실제의 효험이 있게 된다. 이른바 ‘문채롭던 군자여! 끝내 잊을 수가 없다’는 것에서는, 군자가 학문과 수신(修身)의 공부를 통해 순율과 위의(威儀)의 경지로 나아가서, 경덕(敬德)이 안에서 성대하여 마음속에 보존한 바가 오로지 지선뿐이고 덕용(德容)이 밖에서 성대하여 밖으로 나타나는 바가 오로지 지선뿐이면, 그 덕이 진실로 백성들의 마음과 뜻에 굳게 맺히고 깊이 새겨져서 백성들이 흠모하고 좋아하는 생각을 잊고자 하더라도 절로 잊을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한 것이다. 백성들이 잊을 수 없는 데에까지 그 덕이 이른다면 명명덕이 지선에 그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신민의 지어지선에 대해 말하면, 〈열문(烈文)〉 시에서 “아아! 전왕을 잊을 수 없다.〔於戲 前王不忘〕” 하였으니, 어떻게 하여서 백성들에게 이러한 존경을 받을 수 있었던가. 역시 신민의 유택(遺澤)이 사람들 마음속에 깊이 스며들었기 때문이다. 도리를 깨우쳐 줌으로써 선왕의 어진 덕이 후세에까지 미칠 수 있게 하고, 선치(善治)를 남겨줌으로써 선왕의 친하던 바가 후세에까지 미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까닭에 당세의 군자들만 그 어진 덕과 친하던 바의 은택을 입었던 것이 아니라 후세의 군자들도 모두 그 도를 본받고 그 일을 이어받았으니, 군자에게 끼쳐 준 것이 원대하다 하겠다. 법을 세움으로써 선왕 때의 즐거움을 만들고 정전(井田)을 구획함으로써 선왕 때의 이익을 거두었다. 이런 까닭에 당세의 소인(小人 일반 서민)들만 그 즐거움과 이익의 은택을 입었던 것이 아니라 후세의 소인들도 모두 태평을 누리고 생업을 지닐 수 있으니, 소인에게 끼쳐 준 것이 후덕하다 하겠다. 이러한 까닭에 전왕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백성들이 더욱 깊이 애모(愛慕)하였던 것이니, 군자들이 비록 잊고자 할지라도 그 끼쳐 준 친하던 바와 어진 덕의 은택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소인들이 비록 잊고자 할지라도 그 끼쳐 준 즐거움과 이로움의 은택을 어찌 잊을 수 있으리오. 군자들이 선왕이 친하던 이들을 친하게 여기고 선왕의 어진 덕을 어질게 여기는 것에서 전왕이 군자를 새롭게 한 것이 지선에 그쳤음을 알 수 있으며, 소인들이 전왕이 즐겁게 해 주었던 일을 즐겁게 여기고 이롭게 해 주었던 일을 이롭게 여기는 것에서 전왕이 소인을 새롭게 한 것이 지선에 그쳤음을 알 수 있다. 그분이 세상을 떠났는데도 백성들이 잊지 못하는 데까지 덕이 이르렀다면 신민에 지선이 그친 것이 아니라 할 수 있겠는가.

학자가 진실로 공부를 〈기욱(淇澳)〉에서 시작하여 그 덕을 성현의 덕처럼 되도록 하고 〈열문(烈文)〉에서 참작하여 그 일을 제왕의 일처럼 되도록 하되 문왕을 스승으로 삼아 그 덕과 일의 전체를 회통(會通)한다면 사람이 마땅히 알아야 할 바와 사물이 마땅히 그쳐야 할 바에 있어 그 극치를 나 자신에서 회통할 수 있을 터이니, 지어지선의 학문에 더할 나위가 있겠는가.

 

 

[주1] 마음에 …… 것이다 : 《대학장구》원문에 인용된 〈기욱(淇澳)〉 시의 구절을 《집주(集註)》에 의거하여 풀이한 것이다. 엄밀(嚴密)은 ‘슬(瑟)’ 자의 뜻을, 강의(剛毅)는 ‘한(僩)’ 자의 뜻을 풀이한 말이며, 선저(宣著)는 환히 드러난다는 뜻으로 ‘혁(赫)’ 자의 뜻을, 광휘는 ‘훤(喧)’ 자의 뜻을 풀이한 말이다.

 

[주2] 현친낙리(賢親樂利) : 《대학장구》전(傳) 3장(章)에서 “군자는 전왕의 어진 덕을 어질게 여기고 전왕이 친했던 이들을 친히 여기며, 소인은 전왕이 즐겁게 해 주었던 일을 즐겁게 여기고 전왕이 이롭게 해 주었던 일을 이롭게 여긴다.〔君子賢其賢而親其親 小人樂其樂而利其利〕” 한 것을 축약한 것이다.

 

 

 

 

                                                             傳三章講語。釋止至善。

 

夫德之在己而當明與夫在民而當新者。固已得之於天而無待於外矣。然其所以明而新之者。苟不能止於至善。則其何能盡天理當然之極。無一毫人欲之私哉。是以庶物庶事之間。莫不各有當止之所。故於此章五 引詩。以釋止至善之義。其曰邦畿千里。惟民所止者。以民之止於邦畿。而明物之各有所止也。其曰緡蠻黃鳥。止于丘隅者。以鳥之能知所止。而喩人之當知所止也。其引文王之詩者。蓋言聖人之止。無非至善。而又歷陳仁敬孝慈信之目。以明得所止之實。使學者皆得以取法焉。夫五者之止。是乃天理人倫之極致。發於人心之不容已者。過之不可。不及亦不可。雖以文王之聖。其所以止於至善者。亦不過如斯而已。初非於本分之外。有一毫加損於其間也。但衆人則蔽於私欲而失其所止。惟聖人爲能無時不明。而所止者無非至善矣。苟於此五者。誠知其本然之則。而加緝煕敬止之功。又能推而廣之。以盡其餘。則日用事物之間。皆有以知其一定之則。而得其當止之所矣。其引淇澳之詩者。蓋言明明德者之得所止。以發明所以求之之方與夫得之之驗焉。夫爲學所以致知。故其所以講習討論者已精而必求其精。此就知上求止於至善也。自脩所以力行。故其所省察克治者已密而益求其密。此就行上求止於至善也。所守者嚴密。所養者剛毅。則是至善之存乎中者也。宣著而可儀。輝光而可象。則是至善之著乎外者也。至於盛德至善。民不能忘。則又言止至善之實效。以起下文之端也。其引烈文之詩者。蓋古新民者之得所止。以明上文所謂盛德至善之實驗焉。蓋先王旣能明己之德以及於民。而其所以新之者止於至善。使無一物不得其所。故旣沒世而其遺風餘澤。洽于民心。能使親賢樂利。上安下順。仰其德業之盛。思其覆育之恩。愈久而不能忘。則可以見新民止於至善之極效矣。

附王通判講語

傳之三章。釋止至善。蓋謂至善之理。散之民彝物則。而會通於聖人之心者也。玄鳥之詩云邦畿千里惟民所止。此可見物莫不各有所當止矣。緡蠻之詩云 緡蠻黃鳥止于丘隅。孔子說詩而嘆曰。黃鳥尙能知所止。可以人而不如鳥之知止乎。此可見人當知所止矣。觀之文王。正是止至善者。詩云穆穆文王於緝煕敬止。蓋君之仁臣之敬父之慈子之孝與國人之信。皆至善所當止者。文王則爲君止仁。爲臣止敬。而安於君臣之至善焉。爲子止孝。爲父止慈。而安於父子之至善焉。與國人止信。而安於交國人之至善焉。文王之敬止如此。學者卽此以究其蘊。而又推類以盡其餘。則於天下之事。皆知其所止而得止於至善矣。以明明德之止至善言之。淇澳之詩曰。瞻彼淇澳。菉竹猗猗。有斐君子。如切如磋。如琢如磨。瑟兮僩兮。赫兮喧兮。有斐君子。終不可諠兮。蓋言至善之理。知行竝進也。於切磋。見君子之問學焉。講習討論已精而益求其精察。此德之幾以求知至善也。於琢磨。見君子之自脩焉。省察克治已密而益求其密踐。此德之實以求體至善也。斯則知行兼脩。所以求止者有實功矣。至善之理。身心互發者也。於瑟僩。見君子之恂慄焉。不待矜持而自嚴密。不待操存而自武毅。敬在於心。是德之聚也。於赫喧。見君子之威儀焉。愈篤實則愈光輝。愈收斂則愈宣著。容見於外。是德之符也。斯則表裏俱盛。所以得止者有實驗矣。所謂有斐君子。終不可諠兮者。蓋言君子由學問自脩之功。造恂慄威儀之地。敬德盛於內。而所存一至善焉。德容盛於外。而所發一至善焉。則是德也。誠足以固結乎民心。聯孚乎衆志。民之欣慕而愛樂者。雖欲忘之而自不能忘也。德至於民不能忘。謂非明明德之止至善哉。以新民之止至善言之。烈文之詩云於戲前王不忘。何以得此於民哉。亦以其新民之遺澤。入人深耳。以開道通先王之賢也。以垂治通先王之親也。由是不獨當世之君子被其親賢之澤。後世之君子。莫不憲章其道。繼述其業。所以垂君子者遠矣。以立法制先王之樂也。以畫井收先王之利也。由是不獨當世之小人被其樂利之澤。後世之小人。莫不享其太平。守其常業。所以遺小人者厚矣。此所以前王沒世之後。而斯民益愛慕之深。君子雖欲忘之。而親賢之遺澤。何可忘耶。小人雖欲忘之。而樂利之遺澤。何可忘耶。卽君子之親賢。見前王所以新君子者止至善矣。卽小人之樂利。見前王所以新小人者止至善矣。德至於沒世而民猶不能忘。謂非新民之止至善哉。學者誠能始之淇澳。以聖賢其德。參之烈文。以帝王其業而師文王。以會德業之全。則於人之當知。物之當止。皆會其極於我矣。止至之學。尙復有餘蘊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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