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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정 변계량

초간본의 서문[舊序]

작성자향산 김문진|작성시간26.06.12|조회수31 목록 댓글 0

 

                                                             초간본의 서문[舊序]

                                                                                                                                            권제(權踶)

 

옛날에 시(詩)를 수집하는 관원을 두어 백성의 풍속을 살펴보았는데, 대체로 시는 마음에서 발로된 것으로 말 중에 가장 정교한 것이어서 사람을 깊이 감동시키기 때문이다. 왕화(王化)의 고하(高下)와 세도(世道)의 승강(昇降)도 여기에서 드러나니, 시의 용도가 어찌 적다고 할 수 있겠는가. 춘정 변 선생은 타고난 자질이 명민(明敏)하고 학문이 정박(精博)하여 약관(弱冠) 이전에 포은(圃隱), 도은(陶隱)과 나의 선친(先親)인 양촌(陽村) 문충공(文忠公)을 스승으로 섬겼는데 제공(諸公)들에게 매우 칭찬을 받았으므로 화려한 명성이 날로 퍼져 갔다. 이로 말미암아 여유롭게 임금의 곁에서 항상 글 짓는 일을 맡았으므로 일시의 외교 문서가 대부분 그의 손에서 나왔는데 그 문장이 단아하고 고상하였다. 특히 시를 잘 지어 깨끗하면서도 지나치지 않고 담박하면서도 천근하지 않았으니, 제공(諸公)들의 경지에 올라갔고 고인의 작품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고 할 만하다.

우리 태종 전하(太宗殿下)께서 선생을 재보(宰輔)로 발탁하여 그의 건의와 계획을 받아들였는데 매우 많은 도움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선생을 특별히 우대하여 경연(經筵)에서 가까이 모시게 하였으니, 이는 주상 전하께서 비록 생이지지(生而知之)의 성인(聖人)으로 고문(顧問)이 필요 없었지만 겸손하신 학문이신지라 실로 선생에게 깊이 의지한 것이다. 선생이 일찍이 새 곡조를 지어 양궁(兩宮)의 효성을 노래하고 한 시대의 치적(治績)을 형용하였는데 이를 악보(樂譜)에 올려 후세에 남겼으니, 이는 또 어찌 바람이나 달을 읊조리는 시인 묵객(詩人墨客)들이 따라갈 수 있는 것이겠는가. 선생의 문장 사업도 매우 위대하다고 하겠다.

우리 전하께서 정무를 보시고 난 여가에 스승을 추모하던 중 그의 유고(遺稿)가 인멸된 것을 애석히 여겨 이를 집현전(集賢殿)에 보내어 교정하게 한 다음 경상도에 명하여 간행하게 하여 널리 전파시켰으니, 유도(儒道)를 숭상하고 학문을 좋아하고 선을 좋아하는 덕이 뭇 왕들보다 훨씬 뛰어나셨다. 시를 수집하여 백성의 풍속을 살펴보는 것이야 말할 것조차 있겠는가. 신 권제(權踶)가 외람되이 주상의 명을 받고 감히 글을 못한다는 이유로 사양하지 못하여 서문을 썼다.

- 원문 빠짐 -성균대사성 세자좌빈객(成均大司成世子左賓客) 신 권제(權踶)는 하교를 받들어 서(序)한다.

 

                                                                         舊序[權踶]

 

古者有采詩之官。以觀民風。盖詩者。心之發而言之精。故其感人也深。而王化之汚隆。世道之升降。亦著焉。吁。詩道之用。何可小哉。春亭卞先生天資明敏。學問精博。年未弱冠。師事圃隱,陶隱及我先人陽村文忠公。大爲諸公稱賞。華聞日播。由是優遊侍從。恒任文翰。一時辭命。多出其手。而文辭典雅高妙。尤長於詩。淸而不苦。淡而不淺。可謂升諸公之室堂。而無讓於古人之作者矣。我太宗殿下擢置宰輔。言聽計從。而裨益弘多。今我主上殿下尤加眷待。昵侍 經幄。雖生知之聖。無待於顧問。遜志之學。實深於倚重。而先生嘗作新調。歌詠兩宮之慈孝。形容一代之治功。被諸律呂。垂之無窮。又豈騷人墨客吟風詠月者之可及也。先生文章事業。亦可謂卓卓矣。我 殿下萬機之暇。追念師臣。惜其遺藁湮沒。下集賢殿讎校。命慶尙道鋟榟。以廣其傳。其所以崇儒重道好學樂善之德。高出百王之萬萬也。奚采詩觀風之足言也。嗚呼至哉。臣踶濫承上命。不敢以不文辭。爰書以爲序云爾。 均大司成世子左賓客臣權踶。奉敎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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