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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천 남구만

세승 서(世乘序)

작성자향산 김문진|작성시간26.06.09|조회수20 목록 댓글 0

 

                                                                세승 서(世乘序)

 

청양(靑陽)의 사군(使君) 남반 유안(南磐幼安)은 바로 나의 10대조인 충경공(忠景公)의 11대 종손이다. 하루는 그가 손수 기록한 가승(家乘)을 나에게 보여 주었는데, 충간공(忠簡公) 이상은 선조가 나와 똑같았고 의령군(宜寧君) 이하는 유안(幼安)과 계파가 나뉘었다. 우리 시조로부터 시작하여 그 선대부(先大夫 조고친 )에 이르기까지 채택함에 근거가 있고 기재함에 빠뜨림이 없어서 가풍(家風)을 기술하고 세덕(世德)을 열거하였으니, 어찌 부화함과 과시를 일삼은 반악(潘岳)의 글과 육기(陸機)의 부(賦)에 비교할 수 있겠는가.

나는 어려서부터 문견이 적었고 늙을수록 더욱 혼미하고 우둔해져서 선대의 모든 유문(遺文)과 고사(故事)에 대해 실로 모르는 것이 많았는데, 지금 유안이 편집한 책을 보고서 비로소 그동안 알지 못했던 것을 알게 되었으니, 어찌 매우 다행스럽지 않겠는가. 아, 유안은 백세토록 체천(遞遷)하지 않은 불천위(不遷位)를 모시고 있어 집안사람들이 공경히 섬기는 종손(宗孫)이 되었으니, 이 사업에서 선조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손이 될 수 있었다. 나는 이점에 대해 남모르게 감동하는 마음이 있었다.

우리 선조인 충경공과 충간공은 조선 초기에 국운이 흥왕(興旺)하여 지극히 성할 때를 당해서 조손이 연달아 정승이 되어 공적이 기상(旂常)에 기록되고 사적이 역사책에 찬란하게 빛나 우뚝이 천지에 남아 있으니, 진실로 신도비에 새겨 드러낼 필요가 없다. 그러나 후손들의 추모하는 뜻을 가지고 말한다면, 유택(幽宅)에 묘표를 세워서 단지 몇 글자를 새긴 조각돌만으로서는 너무 지나치게 검소해서 크게 걸맞지 못한 것이 아니겠는가. 또 우리 후손들이 선조의 남은 음덕(蔭德)을 입고 벼슬을 이어 대대로 고관을 지내어서 지금까지 끊이지 않고 있는데, 마침내 국전(國典)의 장례 법령에 있어 행할 수 있는 것을 행하지 못한 지가 이제 수백 년이 되었으니, 모든 우리 후손들이 어찌 마음에 서운함이 없지 않겠는가.

유안이 먼 선조를 추모하는 효성이 돈독하여 이미 이 가승을 지었으니, 바라건대 또 그 뜻을 미루어 우리 집안사람들을 힘써 인솔해서 힘이 미칠 수 있는 것을 모두 다하여 용머리에 거북 좌대(座臺)로 된 신도비를 두 선조의 묘역에 세워 무궁한 후손에게 길이 보여야 할 것이니, 이는 실로 종손이 해야 할 일이요, 또한 집안사람들이 바라는 바이다.

무인년(1698, 숙종 24) 2월 5일에 종인(宗人) 구만은 재배하고 삼가 쓰다.

 

 

[주1] 반악(潘岳)의 …… 부(賦) : 반악과 육기(陸機)는 진(晉)나라 문장가로 육기는 《변망론(辨亡論)》과 《호사부(豪士賦)》 등을 지었고, 반악은 무제(武帝)가 친히 적전(籍田)을 갈 때에 그 일을 찬미하는 부를 지어 재명(才名)을 세상에 날렸다.

 

[주2] 기상(旂常) : 《주례(周禮)》 춘관(春官) 사상(司常)에 “용의 형상을 서로 어긋나게 그린 것을 기(旂)라 하고, 해와 달을 그린 것을 상(常)이라 한다.” 하였는데, 옛날 신하 가운데 국가에 공덕이 있으면 여기에 기록하여 드러내어 밝혔다.

 

 

                                                                                世乘序

 

靑陽南使君磐幼安。卽余十代祖忠景公之十一代宗孫也。一日示余其手錄家乘。自忠簡公以上。余之所同祖也。自宜寧君以下。幼安之所分系也。始于我始祖。訖于其先大夫。採摭有据。紀載無遺。其述家風而陳世德。夫豈潘文陸賦浮華夸詡者比哉。余幼而寡聞。老益昏鈍。凡於先代之遺文故事。實多昧昧。今見幼安之所輯。始得識其所不識。豈不幸甚。嗚呼。幼安承百代不遷之祀。爲諸族人祗事之宗。於是乎可無忝矣。余於此。仍竊有所感焉。性我先祖忠景公忠簡公。當國初興運極盛之際。仍祖孫爲相。功紀旂常。事光簡策。其磊磊軒天地。固無待於麗牲之顯刻。然而以後孫追慕之意言之。其所以表幽阡。只數字片石而已。無乃過於儉而太不稱乎。且我先祖之苗裔。承餘休而襲冠冕。奕世蟬聯。至于今未已。乃於國典葬令所得爲而不爲者累百有餘年矣。凡我後孫。何能無不恔於心乎。幼安篤於追遠。旣著此家乘。幸望又推其意。勖率我諸族人。咸竭其力之所及。使螭龜之制。得成於二先祖之塋域。以永示于無窮。則此實宗子事也。亦諸族人之望也。歲在戊寅二月五日。宗人九萬再拜謹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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