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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계 성혼

잡기(雜記)

작성자향산 김문진|작성시간26.06.08|조회수15 목록 댓글 0

                                                                      잡기(雜記)

 

정희량(鄭希良)은 박학하고 문장에 능하였으며 《주역(周易)》을 잘 알고 수리(數理)에 밝았다. 성품이 드높고 깨끗하여 뜻이 맞는 사람이 적었는데, 과거에 급제하여 한림(翰林)을 지냈다.

37세에 어버이의 상을 당하자, 풍덕현(豐德縣)에 여막(廬幕)을 짓고 거처하였다. 수리를 미루어 점을 잘 쳐서 위로 천문(天文)을 관찰하고 아래로 인사(人事)를 살펴 세상이 장차 혼란해질 것을 알고는 몸을 숨겨 멀리 떠나고자 하였는데, 왕래하는 산사(山寺)의 승려가 있어서 서로 계책을 정하였다. 그러고는 때때로 홀로 산에 올라가 뒷짐을 지고 배회하다가 돌아와 눈물을 흘리곤 하니, 집의 종들은 어버이를 그리워하여 그러는 것이라고 여겼다.

 

5월 5일 승려가 오자 정희량은 노복에게 멀리 나가서 나무를 해 오게 하고는 곧 승려와 함께 도망갔다. 저녁이 되어 사람들이 돌아와 정희량을 찾아 조강(祖江)의 백사장으로 가 보니, 다만 상주(喪主)가 쓰는 두건과 신, 지팡이만 있을 뿐이므로 그가 물에 빠져 죽은 것이라고 여겼다.

 

수십 년이 지난 후에 모재(慕齋 김안국(金安國)) 선생이 경기 관찰사가 되어 역루(驛樓)에 머물고 있었는데, 어떤 사람이 벽에 시를 써 붙여 놓기를 “전날 몰아치는 비바람에 놀라 문명(文明)한 이 시대를 저버렸다네. 외로운 지팡이로 우주 사이를 놀러 다니니, 시끄러움을 혐의하여 함께 시도 짓지 않는다오.[風雨驚前日 文明負此時 孤笻遊宇宙 嫌鬧並休詩]” 하였는바, 먹물이 채 마르지 않았다. 선생이 크게 놀라 역리(驛吏)에게 물으니, 대답하기를, “조금 전에 운납 노승(雲衲老僧)이 사미승(沙彌僧) 둘을 데리고 이 역루에 올라 시를 읊고 구경하였습니다. 관인(館人)이 손을 저어 물러가게 하였으나 가려고 하지 않더니, 사또를 모시는 마부와 깃발을 바라보고는 서서히 역루에서 내려왔습니다.” 하였다. 모재 선생은 이 사람이 정희량이라는 것을 알고는 급히 기사(騎士)들을 풀어 사방으로 찾았으나 찾지 못하였다.

 

모재 선생이 뒤에 한 절에 갔다가 벽 사이에 써 붙인 시를 보니, “새는 무너진 집 구멍에서 엿보고 승려는 석양에 샘물을 길어 온다.[鳥窺頹院穴 僧汲夕陽泉]”는 시구가 있었는바, 또한 정희량이 아니면 지을 수 없다고 여겼다. 그러나 그의 얼굴과 거처하는 곳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것이 없었으니, 당(唐)나라 때의 낙빈왕(駱賓王)과 같았다.

정희량은 아내를 얻었으나 멀리하여 얼굴조차 보지 않았는데, 그 아내는 늙자 단옷날을 기일로 삼고 남기고 간 갖옷을 묻어 무덤으로 삼아 지금까지 제사하고 있다고 한다. -선생이 젊었을 때에 지은 것이다.

 

鄭希良博學能文章。治易善數。性卓潔寡合。登第仕翰林。年三十七。丁憂。結倚廬于豐德縣。占推步。俯察仰觀。 知時事將亂。思欲脫身邁跡。有山僧往來。相與定謀。時時獨登山隴。負手徘徊。入則垂泣。齋僕以爲思其親也。五月五日。山僧至。希良仍遣僕隸涉遠樵採。便與逃去。及暮人還求訪。追到祖江沙壖。則但有喪冠屨杖而已。時以爲赴水也。後數十載。慕齋先生爲按察。止驛樓。壁上題詩云。風雨驚前日。文明負此時。孤筇遊宇宙。嫌鬧竝休詩。墨跡尙淋漓。先生大驚。詢于驛吏。對曰。俄有雲衲老僧携二沙彌登樓吟眺。館人揮之使退。不肯去。望見騶幢。徐下樓。先生知其爲希良也。急散騎士旁搜。不獲。先生後遊一寺。見壁間詩有鳥窺頹院穴。僧汲夕陽泉之句。亦以爲非希良莫能也。然頭顱居止。了無聲聞。猶駱賓王之於唐世也。希良娶妻。疏棄不見面。其妻老居。祭端午以爲忌。埋委裘以爲墳。祀之至今云。先生少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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