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에게도 굳이 생일이 있어야 한다면, 그날은 성도(成道)한 날이어야 할 것이다. 8만 4천 번뇌를 말끔히 털어버리고 '지혜의 눈'을 뜨면 바로 그날이라고. 섣달 초여드레! 겨우 '마지'나 한 불기 올리는 것으로 소홀히 해치우는 그 성도절을 우리는 해마다 보아오고 있다. (78쪽)
* 성도(깨달음) : 번뇌를 말끔히 떨어버린 열반 : 지혜의 눈을 뜸
우리들이 경전을 읽는다는 것은 곧 부처님의 육성을 듣는 길이다. (...) 그 누구의 음성을 통해서였건 간에 그때 그가 들은 경전은 곧 '지혜의 길'을 말씀하신 부처님의 육성과 조금도 다를 바가 없었으리라. (138쪽)
* 경전 : 부처님의 육성 : 지혜 : 깨달음
불교는 본래 지혜의 종교로서 그 최고 이상인 보리[覺]은 일체지(一切智)이며 정변지(正遍智)이다. 그리고 여기에 이르는 도피안(到彼岸)의 수단도 또한 반야(般若, 지혜)인 것이다. 불교의 초기교단 형태를 살펴보면 번뇌를 없애고 해탈에 이르기 위해 주로 계율을 지키고 선정과 참회에 힘썼다. (169쪽)
* 번뇌를 없앰 : 열반 : 해탈
구도자가 내심의 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은 최상급의 불행이다. (81쪽)
구도의 길에서 가장 뗄 수 없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부질없는 처세로써 위장할 것이 아니라, 시시로 자기위치를 돌이켜보는 참회의 작업일 것입니다. 자기반성이 없는 생활에 밝은 미래를 기약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112-113쪽)
구도의 길에서 안일처럼 무서운 질병은 또 없으리라. 안일은 도정정지(道程停止)뿐 아니라 부패를 수반하는 것이므로, 그 독소는 개체에만 머물지 않고 주변에까지 오염될 성질을 띠고 있는 것이다. (176쪽)
사형수에게는 일 분 일 초가 생명 그 자체처럼 실감된다고 한다. 그들에게는 내일이 없기 때문이다. 늘 오늘을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오늘에 살고 있으면서도, 다음날로 미루며 내일에 살려고 한다. (...) 우리는 형기를 모르는 사형수이다. 그러면서도 자기만은 특사되기를 바라는 지독한 에고이스트. "제행무상이니라, 부지런히 정진하라." 이것은 부처님이 남기신 마지막 말씀이다. 우리도 언젠가 한번은 죽기 마련이다. 죽음의 나그네가 우리를 호명할 때 "예!" 하고 선뜻 털고 나설 수 있는 연습을 해두어야겠다. 그 연습이란 일상의 정진에서 쌓이는 것. 때문에 우리가 두려워 할 것은 죽음이 아니라, 생 그것이다. (85쪽)
우리 승단의 식생활은 시급히 개선되어야 할 일들 중에 하나입니다. '단료형고(但療形枯)'의 희미하고 소극적인 뒤뜰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참여의 앞마당으로 나와야 하기 때문입니다. 식생활의 개혁은 헤비급 체중을 유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누렇게 발효된 채 가사상태(가사상태)에 놓여 있는 한국불교의 동작을 위해서인 것입니다. (87쪽)
* 단료형고 : 다만 몸[形]이 마름을 치료함, [계초심학인문]에 나오는 구절임.
* 초발심자경문(고려 후기 간행) = 발심수행장(원효) + 계초심학인문(지눌) + 자경문(야운)
'왕사성에서 멀지도 가깝지도 않은 거리'라고 그 위치를 강조한 것은 불교의 사회성을 이해하는 데에 좋은 자료가 아닐 수 없다. (88쪽)
늘 당신에게 죄스럽고 또 억울하게 생각되는 것은 그처럼 뛰어난 당신의 가르침이 오늘날 저와 같은 제자를 잘못 두어 빛을 잃고 또 오해까지 받고 있는 사실입니다. (113쪽)
율장에도 칠중(七衆)의 옷은 마땅히 달라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교단의 질서를 위해서 하루바삐 의제가 마련되어야겠다. (118쪽)
* 칠중 : 비구, 비구니 + 사미, 사미니 + 식차마나(사미니와 비구니의 중간단계) + 우바새, 우바이
또 어떤 이는 정념정지(正念正知)로써 슬픔을 안으로 새기고 있었다.
* 정념 : 마음챙김 : 집중명상
정지 : 알아차림 : 통찰명상
경전의 결집 :
1) 제1차 결집 : 불멸 몇 달 뒤 가섭의 주도로 5백 비구가 라자가하 칠엽굴에 모여 결집(5백결집)
2) 제2차 결집 : 불멸 백년 경 야사의 사회로 7백 비구가 바이샬리에 모여 울장 결집(7백결집)
3) 제3차 결집 : 불멸 이백년 경 아소카왕 후원 아래 목건련제수의 사회로 화씨성에서 1천 비구가 모여 삼장 결집
4) 제4차 결집 : 서력 2세기 경 대월지국 카니슈카왕 후원 아래 협존자와 바수미트라 주도로 5백 비구가 모여 삼장에 해석을 붙임(대비바사론). (143-144쪽)
5) 제5차 결집 : 19세기 미얀마 민둔왕 주도로 쿠도도사원에 석장경 729점으로 결집(세계문화유산 지정), 1900년에 38권의 책경으로 간행됨.
5호 16국 시대의 역경 :
전진(티베트족) 부견과 도안 : 도안은 출가자의 성을 모두 석씨로 하자고 한 스님, 구마라집 초빙을 건의
후진(티베트족) 요흥과 구마라집 : 구마라집은 구역으로 불리는데 의역이 특색, 최다 역경. (147쪽, 자체조사)
[불조통기]에 나오는 역경의 구관제(九官制) : 역주 - 역의 - 증문 - 서자 - 필수 - 철문 - 참역 - 간정 - 윤문. (148-149쪽)
현장의 19년과 신역의 특색 :
중국불교는 현장에 의해서 비로소 참된 역경자를 중국인 안에서 내놓은 셈이다. 현장의 면목은 그가 철저한 역경승이었고, 세심하고 치밀한 어학자인 점에 있다. 그가 나란다에서 배운 기간은 5년이라고 하지만, 장안을 떠나 귀국하기까지는 무려 19년이 결렸다. 그 사이에 익힌 어학과 불교사상의 안목은 중국의 학승 가운데서 으뜸이 될 수밖에 없었다. 그가 역주가 되어 역장(譯場)을 경영할 때 종래보다 훨씬 어학적으로 세심한 번역을 주장했을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구역에 대한 신역의 특징이라면 어디까지나 원전에 충실했다는 것. 따라서 직역적인 역풍(譯風)이 그 특색이다. (154쪽)
'오오, 차라투스트라여, 여기는 대도시다. 그대는 여기에서 찾을 아무것도 없고 일체를 잃어버릴 뿐이다. 그대는 왜 이 흙탕 속으로 걸어가려 하는가? 부디 그대의 발을 측은히 생각하라. 도리어 도시의 문에 침을 뱉고 돌아서라!' - 니체. (156쪽)
* 원출처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제3부 제7장임.
불교의 수많은 경전 가운데서도 가장 오래되고 역사적 것으로서 석존의 육성에 가까운 [숫타니파나]나 [아함경]에는 어디까지나 현세에 있어서 자각을 문제로 삼고 인생의 온갖 고뇌를 이성적으로 해결하려 했다. 그러기 때문에 붓다에 대해서 초자연적인 기록도 없애고 기복을 일삼는 의식도 생기지 않았다. 아쇼카왕의 조칙문에도 기복에 대한 말을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 당시의 불교에는 기복적인 요소가 행해지지 않은 증거이다. (171쪽)
중국에 불교가 전해지자 중국인은 그들의 현실적이고 공리적인 입맛에 따라 그 기원의 효과를 크게 기대했으므로 그와 같은 의식을 교설보다 존중하게 되었다. 불교가 국가의 지도자에게 보호받기 위해서는 교리를 말하고 수행을 권장하기보다는 그들의 현세적인 원망(願望), 즉 국가의 융성이나 제왕의 안녕을 비는 비법을 행하는 쪽이 보다 손쉬운 일이었다. 그리하여 승려들은 신비적인 작법에 기묘를 부리게까지 되었는데, 이것이 마침내는 일정한 형식을 갖추고 불교의식으로 굳어지게 된 것이다. (171쪽)
부처님은 이런 말씀을 하셨다. "어버이를 하직하고 집을 나온 사문은 욕심을 끊고 애욕을 버려 자기마음의 근원을 알고, 불도의 깊은 이치를 알아서 무위법을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안으로는 얻은 바가 없고 밖으로는 구하는 것이 없어, 마음은 도에도 얽매이지 않고 또한 업도 짓지 않으며 생각도 없고 지음도 없으며 닦는 것도 아니요 증(證)하는 것도 아니며, 모든 차례를 지나지 않고도 스스로 가장 높음이 되는 것이니, 이것을 일러 '도'라 하는 것이다. (174쪽)
* [사십이장경] 제2장에 나오는 말씀임.
방하착(放下着) : 아래로 내려 놓아라. (179쪽)
* 着은 동사 뒤에 붙어서 명령이나 부탁을 나타내는 어조사(어조사 着)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