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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마을 유래

지족동의 유래

작성자김기봉|작성시간09.09.26|조회수1,055 목록 댓글 0

〔위치〕지족동은 지족천을 경계로 하여 동쪽에서 북쪽으로 죽동, 하기동, 반석동과 접해 있고 서쪽으로는 갑동, 남쪽으로는 노은동과 경계를 이룬다.
〔유래〕산이 즐비하게 이어 내려와서 골짜기를 이룬 두메 지역으로 지족실 또는 지족동(智足洞)이라 부르는 곳이다.
〔연혁〕행정동으로서의 온천2동에 속하는 지족동은 백제 때 노사지현(奴斯只縣)에 속했으며, 신라 때는 비풍군(比豊郡)의 영현인 유성현(儒城縣)에 속했다. 고려 때는 공주부(公州府)에 속했으며 조선시대 초기에는 공주군(公州郡)에 속했다. 또한 조선시대 말기 고종 32년(1895)에는 공주군 현내면(公州郡 縣內面)의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폐 때에 광덕리(光德里), 송곡리(松谷里), 신촌리(新村里), 공사동(公寺洞), 은동(隱洞), 갈마동(葛馬洞), 죽곡리(竹谷里), 소읍리(所邑里)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지족리(智足里)라 하고 대전군 유성면에 편입되었다. 그러다가 1935년 11월 1일 대전읍이 대전부로 승격함에 따라 대덕군에 편입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에는 유성읍 지족리가 되고 1983년 8월 15일에는 대전시 구역 확장에 따라 대전시 중구에 편입되었다. 1984년 7월 1일에는 대전시 직할 유성출장소의 관할지역이었다가 1989년 1월 1일 대전시가 직할시로 승격함에 따라 유성구(儒城區)에 속하게 되었다.
<지명>
가마골(갈마골, 갈마동(渴馬洞))〔마을〕
〔위치〕지족동의 동쪽에 위치해 있는 마을이다.
〔유래〕이 마을은 말이 목말라 하는 형국, 즉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의 지세라 하여 갈마골(渴馬洞)이라고도 한다. 또한 옛날에 그릇을 굽던 가마가 있었다 하여 가마골이라 부른다.
가마골(가마구레)〔골〕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동쪽에 있는 골짜기로서 논을 이루고 있다.
갈미봉(갈마산(渴馬山))〔산〕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서쪽에 있는 150m 높이의 산이다.
〔유래〕이곳에 갈마음수형(渴馬飮水形)이 있다해서 부른 산 이름이다.
강가골〔골〕
〔위치〕지족동 안새미레 마을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공사실〔골〕
〔위치〕지족동 지족실 마을의 서쪽에 있는 긴 골짜기이다.
〔유래〕옛날에는 이 곳의 땅이 너무 토박하여 곡식의 수확량이 적었다고 한다. 그 후로 조정에서는 이 골짜기의 들에서 농사짓는 사람들에게는 조세를 감면하여 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이곳을 공세실(控稅-)이라 부르다가 현재는 공사실이라 부르는데, 토질이 좋아져 곡식의 수확량이 많아졌다고 한다.
〔풀이〕이 지명에서의 ''실''은 ''谷의 고훈(古訓)으로써 한계어(韓系語)의 형태소(形態素)이다.
〔특이사항〕크고 길은 이 골짜기에는 현재 몇 채의 집과 논들이 펼쳐져 있다.
극동방송 대전본부〔기관〕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쪽에 있다.
남양흥씨 대전세덕사(南陽洪氏 大田世德祠)〔재실〕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서쪽 소라실 골짜기 안에 있다.
도레미들〔들〕
〔위치〕지족동 통미거리 마을의 남서쪽에 펼쳐진 들이다.
두루봉산(둘봉산)〔산〕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남동쪽에 있는 127m 높이의 산이다.
〔풀이〕''두루봉산''의 ''두루''에 대한 ''둘봉산''의 ''둘''의 실현은 음절 축약에 의한 것이다.
뜸부기샘(뜸부기샴, 뜸북샘, 뜸북샴)〔샘〕
〔위치〕지족동 가마골 골짜기 한가운데 있는 샘이다.
〔유래〕이 샘의 주위는 논으로 되어 있는데, 이 논에 있던 뜸부기들이 물을 먹었던 샘이라 한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 샘으로써, 옛날에는 죽동 사람들이 길어다 먹었던 식수였다고 한다. 지금은 식수로 쓸 수 없는 샘으로 남아 있다.
〔풀이〕''뜸부기''에 대한 ''뜸북''의 실현은 음절 축약에 의한 것이다.
말고개〔고개〕
〔위치〕지족동 안새미레 마을의 남쪽에 있는데, 이 마을에서 공사실 골짜기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매봉산(梅峰山)(응봉산(鷹峯山))〔산〕
〔위치〕지족동 안새미레 마을의 서남쪽에 있는 202.8m 높이의 산이다.
벌통날〔산〕
〔위치〕지족동 청개골 골짜기의 남쪽에 있는 산등성이이다.
사다랑이골〔골〕
〔위치〕지족동 매봉산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새미레(삼미천(三美川))〔마을〕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써, 안새미레와 반석동(盤石洞)에 있는 바깥새미레를 통틀어 일컫는다.
서당골〔골〕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성심장로교회〔교회〕
〔위치〕지족동 은구미마을 안에 있다.
소라실〔골〕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현재의 지족동에는 삼(三)실이 있다고 한다. 즉 이곳의 소라실과 새미레 마을의 남쪽에 있는 공사실, 그리고 가마골 마을의 남쪽에 있는 지족실이 그것이다. 사람들은 이 삼실에 명당이 있다고 하여 찾는데 아직도 못 찾았다고 한다. 지금의 소라실 골짜기에는 집 몇 채와 남양홍씨 대전세덕사(南陽洪氏 大田世德祠)가 있다.
신성중앙교회〔교회〕
〔위치〕지족동 통미거리 마을안에 있다.
신촌들(新村-)〔들〕
〔위치〕지족동 안새미레 마을의 남동쪽에 펼쳐진 들이다.
안산〔산〕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동쪽에 있는 90m 높이의 산이다.
〔유래〕마을 앞쪽에 위치해 있어서 안산이라 부른다.
안새미레(신촌(新村))〔마을〕
〔위치〕지족동과 반석동(盤石洞)에 걸쳐 있는 새미레 마을을 둘로 나눌 때, 안쪽인 남쪽에 있는 마을을 일컫는다.
〔유래〕다소 최근에 이루어진 마을이라 하여 신촌(新村)이라고도 부른다.
왕바위(왕바우)〔바위〕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서쪽 산위에 있는 바위이다.
〔유래〕옛날 이곳에는 힘이 센 장수가 살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하루는 현재의 가마골 마을 동쪽 1번 국도자리(옛날에는 이곳 도로 양쪽의 산이 이어져 있었다고 한다)가 터질 것 같아 이를 막기 위해 자신의 치마에 바위를 싸가지고 왔다고 한다. 그런데 이 장수가 이곳에 도착하자마자 산이 터지는 것을 보고는 현재의 이 산위에 바위들을 쏟아놓은 것이라 한다. 그후 이 바위를 왕바위라 부르게 되었는데, 또한 이 바위가 있다고 해서 이 산을 왕바위산이라고도 부른다.
은구미(은동(隱洞))〔마을〕
〔위치〕지족동 죽궁이 마을의 동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옛날 조선말기에 서양으로부터 신교(新敎)가 들어왔을 때, 한 신도(信徒)가 이곳에서 참형을 당하였다고 한다. 이를 본 그 자손이 종교에 대한 허무함을 느끼고 이곳에 숨어 살았기에 은동(隱洞)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일은들〔들〕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동쪽에 있는 들이다.
작대골〔골〕
〔위치〕지족동 통미거리 마을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절터골〔골〕
〔위치〕지족동 안새미레 마을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유래〕옛날 이곳에 절이 있었다하여 그렇게 부른다.
점안〔골〕
〔위치〕지족동 안새미레 마을의 서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죽궁이(죽곡리(竹谷里))〔마을〕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옛날 이곳은 대나무가 무성하게 숲을 이루었던 곳이라 한다.
지족교(智足橋)〔다리〕
〔위치〕지족동 통미거리 마을의 동쪽 내에 있는 다리이다.
지족들(智足-)〔들〕
〔위치〕지족동 지족실 마을의 동남쪽에 걸쳐 있는 들이다.
지족실(지족동(智足洞), 지족리(智足里))〔마을〕
〔위치〕지족동 죽궁이 마을의 북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부락에 선비가 많이 살았으며 선비들이 지혜가 많다 하여 지족실로 불리웠다 한다.
창들(倉坪)〔마을〕
〔위치〕지족동 죽궁이 마을의 동남쪽에 있는 마을이다.
〔유래〕옛날 이곳에 사창(社倉)이 있었다고 하여 그렇게 부른다고 한다.
창들(倉-)〔들〕
〔위치〕지족동 창들 마을의 북쪽에 있는 들이다.
청개골〔골〕
〔위치〕지족동 점안골짜기의 남쪽에 있는 골짜기이다.
통미거리〔마을〕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서쪽에 있는 마을이다.
〔풀이〕이 지명어는 본래 구조는 ''통(桶)+뫼(山)+거리''로 분석할 수 있는데, ''통미거리''로 실현될 때의 ''미''는 ''뫼''의 변화형으로 볼 수 있는 지명 형태소이다.
홍은선원〔사찰〕
〔위치〕지족동 가마골 마을의 북쪽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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