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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밖의 질문

08언어추론 40번에 대한 논리학적 접근식 해설입니다.

작성자여성곤先生|작성시간10.07.29|조회수2,030 목록 댓글 1

 

 

 

    아리스토텔레스는 피해야 할 세 가지 도덕적 상태로 ‘악덕’, ‘짐승 같음’과 더불어 아크라시아(akrasia)라고 불리는 ‘자제력 없음’을 든다. 통상 자제력 없음은 스스로 최선이라고 이성적 판단을 내린 것과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것이라고 정의된다. 그런데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사람은 어떤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할 수는 없다. 그에 의하면 모든 악행은 무지의 탓일 뿐이다. 그러니 ㉠ 통상의 의미에서의 자제력 없음이란 소크라테스의 견해에서 보면 성립하지도 않는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주장이 실제와 배치된다고 지적한다. 알면서도 자신이 내린 최선의 판단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는 경우가 실제로 많다는 것이다. 자제력 없는 사람도 유혹에 넘어가기 전에는 그 나쁜 행위를 하지 말아야 한다고 명백히 생각하고 있다. 다만 그것이 나쁜 일인 줄 알면서도 어느 순간에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그 나쁜 행동을 선택할 뿐이다. 건강을 위해 식사량을 줄여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음식 앞에서 무너지는 경우를 자제력 없음이라고 본다면, 그런 예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아크라시아를 욕구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와 분노를 자제하지 못하는 경우로 나눈다. 다이어트에 실패하는 사람의 경우, 음식에 대한 욕구가 지금 먹어서는 안 된다는 이성의 통제를 적어도 그 순간에는 제압한 듯이 보인다. 분을 이기지 못하는 사람의 경우, 자신이 모욕을 당했음을 이성이 알려 주고 그런 일에 대해서는 마땅히 싸워야 한다고 감정이 이끌어 가서 분을 자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욕구에 대한 자제력 없음이 분노에 대한 자제력 없음보다 더 부끄러운 이유는 이성의 역할이 훨씬 더 무시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크라시아는, ‘악덕’ 중의 하나로 아콜라시아(akolasia)라고 불리는 ‘무절제(방종)’와 어떻게 구별되는가? 아크라시아와 아콜라시아는 육체적 욕구와 쾌락의 영역에 관계된다는 점에서는 다를 바 없다. 그러나 격정, 명예, 승리 등 육체적인 쾌락이라 할 수 없는 것들도 아크라시아에 빠지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아크라시아가 관련되는 대상의 영역이 더 넓다.

   대상의 영역만 다른 것이 아니다. 어떤 사람은 쾌락을 필요 이상으로 추구한다. 그것도 이성적 선택에 의해서 쾌락 자체를 추구한다. 그런 사람이 무절제한 사람이다. 무릇 이런 사람은 뉘우침이 없고, 뉘우침이 없는 자를 고칠 수는 없다. 뉘우침이 없는 것은 확고한 이성적 결정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그런 확고한 이성적 선택이라는 계기가 없는데도 과도하게 쾌락을 추구하는 사람이 자제력 없는 사람이다. 바로 이것이 알면서도 자신의 앎과 다르게 실천한다고 하는 경우다.

   자제력 없는 사람은 올바른 이치에 따라 행동하지 못할 만큼 욕구와 분노에 지배당하지만, 그 쾌락을 무한히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하게 될 정도까지 지배당하지는 않는다. 그러므로 자제력이 없는 사람은 마음을 돌리도록 쉽게 설득되지만, 무절제한 사람은 그렇지 않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자제력이 없는 사람이 무절제한 사람보다는 낫고, 또 무조건 나쁘지도 않다고 보았다. 그가 당초에 최선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버린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에 대한 진술로 옳지 않은 것은?

 

① 아콜라시아의 가능성까지 부정한 것은 아니다.

② 악행은 결국 행위자 자신에게도 나쁘다는 것을 함축한다.

③ 인간이 이성적인 한 나쁜 것을 원할 수는 없음을 전제한 진술이다.

④ 앎은 좋음이요, 무지는 나쁨이라는 점이 인정되어야 성립하는 견해이다.

⑤ 아크라시아는 ‘둥근 사각형’처럼 일종의 모순이라는 생각을 표현하고 있다.

 

 

 

 

  

1. 웅진패스엠디 교수질문게시판에 학생 한 분이 올려주신 질문입니다.

  

 선생님~ 08년 언어추론 40번문제요, 저는 답이 왜 4번인지 이해가 잘 안되요

처음에 답을 1번 했거든요. 아콜라시아가 알면서도 쾌락을 추구하는거니까

소크라테스는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해설 좀 부탁드려요..ㅠㅠ

 

이 분 뿐 아니라 대부분의 수험생분들이 이 문제에서 급좌절하였습니다. 많은 해설이 있었지만, 아주 드문 몇몇 예외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정답에 끼워맞추기식 해설로 일관하고 있습니다. 그만큼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그 어떤 이도 감히(?) 명함을 내밀기 힘든 난제 중 하나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므로 시험을 목전에 둔 지금 시점에 잠시 좀 더 정확한 해설에 도전해볼 필요가 있으며 현존하는 해설 중 우수하다는 것들만 몇 개 나열해보고, 제 해설로 마무리해보겠습니다.

 

 

 

2. 권종철선생 해설입니다. 

 

① 아콜라시아가 이성적 판단에 의해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이라는 점을 볼 때 참인 진술이다. 

㉠에 이르는 논증 과정을 재구성해보자.

    인간은 이성적 동물이다.

    이성적 동물은 나쁜 것을 원할 수 없다.

    악행은 행위자를 결국 나쁘게 한다.

    악행인 줄 알면서 행하는 이성적 인간은 없다.

    이 논증 구조에서 ④번은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진술이다.  

    [권종철의 기출문제심층분석 2010년판 p.269]

 

: 가장 많이 팔린다는 기출해설집에 수록된 해설입니다. 논리학적 접근이 돋보입니다. 그러나 '아무런 역할도 하지 않는 진술이다'라는 것이 완전히 틀리지는 않지만, 꼭 옳지도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아래의 사항들을 통해 판단해보시기 바랍니다.

 

 

3. 이원준선생 해설[이지엠디 꿈드림팀 버젼]입니다. 

 

① 사람이 모르면 나쁜 행위를 할 수도 있다는 점에서 아콜라시아는 가능하다.

④ 이것은 다소 미묘하게  과 엇갈린다. 물론 앎은 좋은 것이고 무지는 나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맥락에서 중요한 것은 알면서 나쁜 일을 행할 수는 없다는 점이다.

    앎이 좋은 것인지, 무지가 나쁜 것인지는 자제력 없음이 불가능하다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꿈드림팀 언어기출고사 해설집 p.158]

 

: 저로서는 이 두 선택지에 대한 모든 해설이 수긍이 가지 않는 해설입니다.

 

 

 

3. 수능 언어 비문학에서 잘나가는 후배 이해황군 해설입니다.

 

‘~해야 성립하는 견해이다.’ 이 부분을 보면서 출제자가 선택지를 어떻게 조작했는지 감이 오는 학생도 있을 것입니다. 이 선택지가 틀린 이유를 살펴보죠. ㉠의 바로 앞에 ‘모든 악행은 무지의 탓일 뿐이다’라는 말이 ㉠의 핵심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바로 이 부분을 토대로 무지는 나쁜 것이라고 추론할 수 있습니다. 즉 ㉠이 성립하는 경우에 ‘앎은 좋음이요, 무지는 나쁨이라는 점이 인정’될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④가 성립되어야 ㉠이 성립된다는 것은 거꾸로 말한 것이기 때문에 옳지 않습니다.

[언어의 기술 1권 1판 p.433]

 

: 옳은 결론을 내리고 있으나 좀더 자세히 설명하지 않은 아쉬움이 남습니다. 매력적인 답안인 ①의 해설이 없구요.

 

위의 해설을 논리학적 배경을 들어 조금 풀어 쓰면 다음과 같습니다. 즉, 지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는데

'모든 악행은 무지의 탓일 뿐이다. 그러니 통상의 의미에서의 자제력 없음이란 소크라테스의 견해에서 보면 성립하지도 않는다.'

                      P                        →                                   Q

 지문에서는 'Q이면 P이다'라고 하고 있는데, 선택지에서는 '~해야'라고 말하고 있으며 이는 '~해야'는 필요조건의 형태 즉 'Q이면 P이다'라는 전후가 바뀐 형태의 논리식이므로 이 선택지는 틀리다라는 식의 해설을 시도하고 있는 것입니다.  

 

 

4. 제 업데이트(? ^^;)된 해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옳지 않은지 알면서도 악행을 행하는 것'은 불허하지만,

    '옳다고 생각하면서 악행을 행하는 것' 즉 확고한 이성적 결정에 따라 악행을 행하는 것을 불허하는 것은 아닙니다.

    선택지에서 말하는 '아콜라시아'는 후자의 경우이며 그러므로 맞는 선택지입니다.


이 선택지의 내용 중 '모든 악행은 무지의 탓'은 '악행→무지'로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④번은 거꾸로 '무지→악행(나쁨)'이라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옳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 내용이 왜 '악행→무지'으로 도식화되는 것입니까?

    '어떤 것이 나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할 수는 없다'는 것은 

    '알면→~악행'  =  '알면(~무지)→~악행'  =  악행→무지

                [알면의 모순개념]             [대우명제]

     이렇게 다시 도식화할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하여 알 수 있는 바 번은 거꾸로 말하고 있으며 옳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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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가구가거 | 작성시간 10.07.30 1) 소크라테스는 아크라시아의 가능성만을 부정할 뿐이다. 아콜라시아는 이성적 선택의 결과이므로 소크라테스에게도 당연히 인정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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