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28㎝ 넓이 45 ㎝
성역화 이전 시조묘역 모습(2021.11.05)
2024년 8월 19일 시조님 묘역 성역화 사업 후 모습
(2025. 5.26 정기적인 제초제 처리 후 모습)
풍산홍씨 시조님 묘역과 금석문 보존사업에 부쳐
풍산홍씨 시조님의 휘(諱)는 지경(之慶) 이시며, 생몰연대는 전하지 않습니다.
시조님께서는 고려 고종(충헌왕) 29년(서기 1242년) 문과(文科)에 장원(壯元)으로 급제하시어, 관직으로는 국학직학(國學直學)을 지내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1636년 병자호란이라는 국가적 혼란 속에서, 김이태라는 자가 시조님의 묘역을 훼손하고 봉분을 무너뜨렸으며, 지석과 비석을 깨뜨려 깊이 묻은 뒤 그 자리에 거주하는 참담한 수난을 겪었습니다. 이는 가승(家乘)에 전해 내려오는 시조 묘역의 수난사로, 고려시대 무덤이 온전히 보존된 사례가 드문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나라 역사는 외침과 전란으로 점철되어 왔으며, 그 고난은 시조님 한 분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풍산홍씨 시조님을 비롯하여 4세조까지 모셔진 안동 일대는, 후손들의 대규모 이주와 더불어 여러 차례의 수난을 겪어야 했습니다.
이러한 역사적 아픔 속에서도 선조님의 흔적을 온전히 보존하고자, 우리 문중은 풍산홍씨 관련 금석문을 집성하여 탁본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는 단순한 기록 작업이 아니라, 선조님들의 정신과 원형을 후대에 전하고자 하는 보존의 실천입니다.
이를 토대로 장차 『풍산홍씨 금석문 대관집』을 간행하여, 문중은 물론 학계와 사회에 널리 공개하고자 합니다.
다만, 남북 분단이라는 현실로 인해 휴전선 인근에 모셔진 선조님들의 금석문은 접근 자체가 불가능하여, 부득이하게 이 지점에서 탁본 작업을 마무리하게 되었음을 안타깝게 전합니다.
이번 금석문 탁본사업에는 풍산홍씨 남원공파 정익공 문중에서 총 1억 2천만 원의 비용을 투입하여 주셨습니다. 이는 선조님에 대한 깊은 경의와 후손으로서의 사명감이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는 큰 결단이었습니다.
아울러 2026년 『만퇴당집』 번역사업이 종료되어 국역본이 간행되는 시점에 맞추어, 본 금석문 자료를 중심으로 한 전시회를 개최하여, 풍산홍씨 선조님들의 위대함과 역사적 가치를 널리 펼치고자 합니다.
이는 과거를 기리는 데 머무르지 않고, 미래로 이어지는 문중 문화유산의 토대를 세우는 일이라 믿습니다.
종친 여러분의 깊은 이해와 따뜻한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5년 12월 15일
풍산홍씨 정익공파종회장
홍만식 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