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만원(洪萬源) 묘비 번역본
1. 표제부
朝鮮國通訓大夫工曹正郎洪公萬源之墓
淑人韓山李氏祔左
조선국 통훈대부 공조정랑을 지내신
홍공 만원(洪萬源)의 묘이다.
숙인 한산 이씨를 좌측에 합장하였다.
2. 행장(가계 및 생애)
공의 휘는 만원(萬源)이며, 자(字)는 풍산현 사람으로 풍산홍씨이다.
그 선계(先系)는 유서 깊어 대대로 이름난 가문으로 이어져 왔으며,
세계(世系)의 자세한 내용은 선영의 묘비에 이미 기록되어 있다.
공은 태어날 때부터 자질이 뛰어나고 기상이 맑고 단정하였다.
어려서부터 학문을 좋아하여 경서와 사서를 두루 익혔으며
뜻을 세워 학업에 힘쓰니 스승과 선비들이 모두 그 재능을 인정하였다.
과거에 나아가 급제하여 벼슬길에 들어섰으며
여러 관직을 거쳐 공조정랑에 이르렀다.
공은 관직에 있으면서 법도를 지키고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여
사사로운 마음을 두지 않았으며, 청렴하고 근검하여
백성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았다.
3. 인품과 행적
공의 성품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고, 마음이 온화하고 두터웠으며
사람을 대함에 있어 항상 신의와 예의를 지켰다.
학문은 깊고 넓어 경전과 역사에 통달하였으며
글을 짓는 데에도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집안에서는 어른을 공경하고 형제간에 화목하였으며
밖에서는 사람들과 사귀되 의리를 중히 여겼다.
청렴결백함을 몸소 실천하여 재물을 탐하지 않았으며
자신을 엄격히 단속하여 한 점 부끄러움이 없었다.
4. 혼인 및 가정
배위는 숙인 한산 이씨이다.
명문가의 딸로서 부덕을 갖추고 예법을 지켜
집안을 잘 다스리고 자손을 훌륭히 길렀다.
부부가 서로 공경하고 화목하여
가문이 더욱 번창하게 되었다.
5. 생몰 및 장례
공은 1640년 태어나
1704년에 세상을 떠났다.
향년은 65세였다.
공의 부친은 양성현감(안성)지내신 주천(柱천) 모친은 증 영의정 김광찬의 따님 안동김씨, 조부는 통정대부 남원부사를 지내신 탁(𩆸) 이다.
묘비는 친동생 가선대부경상도관찰사 만조(萬朝) 짓고
당질 통정대부 수(守) 전라도관찰사 중하(重夏) 글씨를 썼다.
묘소 : 경기도 일산동구 성석동 7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