높이 111 ㎝ 넓이 65.5 ㎝(앞면)
높이 111 ㎝
홍중인(洪重寅, 1677~1752)은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양경(亮卿), 호는 화은(花隱), 풍산홍씨 가문의 대표적인 학자 가운데 한 사람으로 평가된다.
증 좌참찬 홍탁(洪𩆸)의 증손이고 조부는 현감 홍주천(洪柱天), 부친은 판돈령부사를 지내고 영의정에 추증된 홍만조(洪萬朝)의 셋째아들로 태어났다.
1714년(숙종40)에 성균관 유생이 되었고, 이후 선릉참봉(宣陵參奉)을 시작으로 여러 고을의 수령을 역임하였다. 지방 행정 경험을 쌓으면서 학문과 치적을 함께 인정받았으며, 원주목사(原州牧使)에 까지 올랐다. 특히 1741년에는 한산군수(韓山郡守)를 지냈다.
벼슬에서 물러난 뒤에는 학문과 저술 활동에 힘썼으며, 아들 홍정보(洪正輔)가 정언(正言)을 지낸 공로로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와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에 증직되었다.
홍중인은 단순한 관료가 아니라 뛰어난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였다. 그는 우리나라 역대 시문과 시화를 정리. 평론한『동방시화(東方詩話)』,『동국시화휘성(東國詩話彙成)』 계열의 편찬과 관련된 인물로 알려져 있다.
성리학적 논의를 담은 『이기설(理氣說)』,『사칠변증(四七辯證)』,『아주록(鵝州錄』등의 저술을 남겼다.
그의 삶은 학문과 절의를 중시한 조선 후기 사대부의 전형을 보여주며 풍산홍씨 가문이 조선 후기 학문·문학·관료 사회에서 차지한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묘갈명은 성호이익이 지었다.
묘소 : 천안시 구성동 산46-1
풍산홍씨정익공파종회장 홍만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