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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연재중♪

《형부와 처제 사이》 - 10

작성자핑크레인저|작성시간09.07.01|조회수3,802 목록 댓글 0

 

 

 

 

 

 

[10th Story]

 


 

 

 

 

 

 

 

"괜찮아?"

 

"응? 뭐어가."


 

 

 

아쉽게도 저녁식사는 내가 생각했었던 것보다 훨씬 조용했어야 했다.

 

아이씨. 오늘 학교에서 권재현이 벌인 짓을 생각하면 저녁밥을 굶기든가, 아니면 소금에 짤짤 절인 밥을 맥였어야 했는데!

 

핸드폰에 번호 찍어주고 먼저 교문을 나섰던 권재현은 오피스텔에 있지 않았다.

 

대신 일찍 들어와 있던 지혜언니가 있었는데 나중에 전해주는 말이, 오늘은 볼 일이 있어서 권재현이 본가로 내려갔단다.

 

본가에서 자고 내일 바로 학교로 갈 수도 있다는데….

 

언니를 바로 앞에 두면서도 드는 생각이란게, 아…, 그럼 내일은 아침에 엘리베이터 같이 탈 수 없겠네.

 

권재현이 내일부터는 학교 나설때라도 같이 나가자 그랬는데.

 

그럼 내일은 넥타이를 핑계로 가까이 마주볼 수도 없을거 아냐.

 

에휴-

 

마주앉은 두 사람에 비해 제법 괜찮은 저녁 상차림 -그래도 권재현이 먹을줄 알았던 밥상이라 열심히는 차렸다- 이 무색하게 한숨

 

을 쉬어대자, 아무것도 모를 언니는 안색을 살피며 엉뚱한 걸 물었다.

 

그나저나 세상에.

 

언니를 앞에두고 못된 생각 할 수는 있어도, 한숨까지 쉬어대다니.

 

 

 

 

"근데에-"

 

"엉."

 

"계속 물어보고 싶었는데…"

 

"응."

 

"첫날은 뭐 패스하고. 어제는 언니가 늦게 왔고…."

 

"어엉?"

 

"어때? 여기서 언니랑 살 만해?"

 

 

 

 

사실 이 때쯤 되니까 사고회로를 거치지도 않고 바로 목구멍까지 튀어오르는 대답이라는게, 살만한게 아니고 여기서 `살고 싶다`

 

였다.

 

문장을 조금 손봐준다면 언니랑 (권재현이랑) 살고 싶다.

 

숟가락만 들고서 제사 지내는 것도 아니고 멍- 하니 있다가, 언니의 말에 놀란 시선을 들었고 두 눈이 마주쳤다.

 

그러자 언니는 입가에 곡선을 그리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보였고, 이내 토담토담-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평소에는 그렇게 느껴본 적 없었던 것 같은데, 이제는 항시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권재현이랑 관계지어서 바라보니까 언니

 

가 무척 예뻐보였다.

 

원래 예쁘장한 얼굴이라 인기는 항상 많았던 것 같은데, 그렇게 단순하게 예쁜게 아니라

 

아, 이런 미소에 권재현이 반했겠구나…. 머리를 쓰다듬어 주는 손길, 이런 여성스러움을 권재현이 좋아하겠구나….

 

또 대놓고 떠오르는 못된 생각에 얼굴이 어색하게 굳어질까봐 나도 히이- 맹구처럼 마주 웃어줬다.

 

 

 

 

"응. 학교도 가깝구, 언니랑 있는것도 좋구. 언니는 뭐 워낙 바빠서 같이 살면서 얼굴도 제대로 못보지만."

 

"얌마. 지금 나 집에 붙어있으라고 시비거는거지?"

 

"아-니? 난 그냥 집에 들어와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뭐 그래, 난."

 

 

 

 

내 말에 언니는 코로 작게 웃어보였고, 이내 밥 한숟갈 크게 삼키고 꿀떡꿀떡 삼켜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입을 열었다.

 

아까와 비교하자면, 그러나 조금은… 조심스러운 목소리였는데.

 

사실 비교하자면 내 목소리가 백만천배는 더 조심스러워졌을거다.

 

 

 

 

"재현이랑은…"

 

"……."

 

"괜찮겠어? 같은 학교라서 학교에서도 얼굴 자주 보고 그럴텐데."

 

"음."

 

"게다가 남자애라도 사촌지간도 아니고, 언니 남자친구."

 

"흠흠."

 

"언니 남자친구는 완전 남이니까 불편할텐데. 재현이는 형부, 처제 그러면서 즐거워는 해도."

 

 

 

 

형부라는 말이 그러나 언니도 맘에 든건지, 아주 방실방실 입이 귀에 걸렸다.

 

그러고보니까 셋이 모였던 건 첫날에 서로 이빨 드러내며 으르렁 댔을 때 뿐이라서, 어쩌면 언니 입장에서는 내가 아직도 권재현

 

이랑 사이가 안 좋은거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다.

 

잠시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어보이며, 방실방실 입이 귀에 걸린 언니가 무안하지 않도록 나도 살짝 웃어보였다.

 

그리고 입을 열려는데, 그랬다.

 

입이 쉽게 떨어지지가 않았더랬다.

 

게다가 언니 남자친구.

 

마치 나 들으라는 듯이 한번 끊고, 다시 한번 내뱉은 그 단어를 듣자마자 깨진 유리조각이 심장에 콱 박혀버린 듯한 느낌이 들었

 

다.

 

웃다가 급하게 굳어버린 얼굴에 왜그래? 라며 언니가 물었고, 난 또 고개를 도리도리 흔들며 심호흡을 두어번 내쉬었다.

 

야. 임지윤.

 

뭐 이제 고작 3일이긴 해도 이젠 적응할 때도 되지 않었냐. 뭘 또 새삼스레 충격은 받고 그래…….

 

정신차려, 정신.

 

 

 

 

"형부는… 그냥 그래. 신경쓰지않고 지낼 수 있을 것 같아."

 

"…노력해준다면 언니로선 너무 고맙고."

 

 

 

 

그러나 완벽한 거짓말이다.

 

신경쓰지 않고서 지낼 수 있을리가 없잖아.

 

언니 몰래 쓴웃음을 흘리는데, 숟가락만 뜨고서 맹하게 앉아있는 나와는 달리 오랜만에 밥이라고 열심히 퍼먹고 있는 언니는 다행

 

이도 그런 난 눈치채지 못한 것 같았다.

 

 

 

 

"밥 해주는 것도 사실 내가 아니라 한창 먹어야 할 재현이 생각해서 너한테 너무 고맙고."

 

"밥은 뭐, 얹혀사는거니까 밥 값은 해야지."

 

"…그리고 아침에 보니까 재현이 걔도 나처럼 넥타이 못 매는 애인데 반듯하게 매져 있더라."

 

"……."

 

"재현이 말로는 네가 매줬다는데, 내가 챙기지 못하는것도 챙겨줘서 고맙고."

 

 

 

 

언니와 다시 눈이 부딪혔다.

 

혹시 일부러 저런 말을 나한테 꺼내는게 아닐까… 괜한 죄책감에 뜨끔한 마음으로 바라봤으나, 그러나 언니의 얼굴에는 아무런 악

 

의도 없었다.

 

역시 대충대충 설렁설렁 넘어가는 저 인간 성격에 넥타이 매주는 건 아무런 감흥도 오질 않나보다.

 

하긴. 감흥이 올게 뭐가 있어. 지금 넥타이 매주는거에 집착하고서 아무런 상관성도 없는 이유를 혼자 갖다붙여 대는건 난데.

 

아무래도 아침부터 싸하게 아파오던 배가 아직도 지랄대는걸 떠나서라도, 밥먹을 기분은 전혀 들지 않아서 들고만 있던 숟가락도

 

아예 내려놨다.

 

안먹어? 묻는말에 배가 아파, 쉽게 대답하자 언니는 나중에 약 먹어라, 역시 쉽게 대꾸했고 말이다.

 

 

 

 

"재현이 만난 건 3개월 밖에 안됬지만…"

 

"……."

 

"나 고등학교 다닐때도 얘넨 유명했어. 대가리에 피도 안마른 중학생들이 워낙에 잘생겨야지."

 

"얘네?"

 

"모르는 척 궁상떨고 앉었네. 니네학교 프린스4명 있잖아."

 

"…아."

 

"그래서 재현이 못 챙겨주는건 조금 아이러니지만, 나도 참 지금이 꿈같다, 야."

 

 

 

 

애인으로서가 아니라 그냥 꿈같다는 말이 동감이 되서 이때는 나도 크크크, 크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젓가락을 멀리 뻗어서 내 앞에 놓인 계란말이를 자기 밥그릇으로 옮겨간 언니도 또 크크 따라 웃더니, 흠, 목을 한번 가다듬었다.

 

이런 말 하기 미안하다는 듯, 입을 열기 전에 머리도 한번 긁적여주면서.

 

 


 

"근데 언니 조금 걱정했거든?"

 

"또 뭘?"

 

"나 고등학교 다닐 때, 진짜 우리 학교뿐만 아니라 거의 이 지역 웬만한 곳에서는 다 그 4명 좋다고 난리였거든? 지금도 그렇겠지

 

만."

 

"응응."

 

"몇 살 차이 나겠냐마는 나이먹은 우리도 그랬는데, 지금 니네학교는 뭐 안봐도 뻔해. 연예인 갖다줘도 싫어할 걸, 니네학교애들?"

 

"……."

 

"너도 빗겨가진 않았을거 아냐. 4명 전부일수도 있고 특정한 한명일수도 있지만, 어쨌든 프린스 4명한테 혹 할거 아냐."

 

"……."

 

"만약에 근데 정말 혹시라도 너가 재현이 좋아했어봐. 갑자기 남자친구라고 재현이 데려다놓으면… 혹시나 니가 상처받지나 않을

 

까 하고."

 

"흐음."

 

"근데 첫날, 왜 너 집에 간다고 난리 폈을때."

 

"응."

 

"그 때 잘만 싸우는거 보니까 좋아하는게 아닌가… 뭐 나름 안심이 됐다구."

 

 

 

 

정말로 안심한다는 목소리여서, 여기서 또 죄책감이 광폭적으로 분출했지만 난 그저 흐음… 끄는듯하게 목을 풀면서 아무런 대꾸

 

를 하지 않았다.

 

여기서 용기내서, 사실 나 권재현 좋아하던 애라서 상처 받았어. 라고 말 할 수 있는 대범한 애도 아니었고,

 

그러나 권재현을 좋아하지 않는다고 부정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사람 심란할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뱉어내놓고 언니는 밥만 열심히 먹기 시작했다.

 

마주앉은 테이블위에 두 팔을 모두 올려놓고, 거기에 얼굴을 괴고서는 언니를 무심하게 바라봤다.

 

그래도 엄마같고, 마음 따뜻하고, 그런 언니이긴 한데 어릴때부터 욕심은 많은 언니였다.

 

지금 언니가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악의없는 목소리로 저 얘기를 꺼낸게 혹시나 권재현에 대해서 나를 견제하는 마음에 미리

 

바리케이트를 쳐 놓는건가.

 

아니면 진짜로 저 얼굴대로 악의없이 동생한테 수다떤다 치고서 뱉어내는 소리인건가.

 

뭐 어쨌든, 언니를 나쁜쪽으로 몰고 싶지는 않아서 현재로서는 후자에 99% 마음이 쏠리고 있지만 말이다.

 

 

 

 

"확실히 엄청 유명은 하지."

 

"흐응- 그렇지?"

 

"우와. 그럼 언니는 도대체 권재현이 남자친구고… 박태겸이나 한지운, 이건우랑도 친한 사이인거야?"

 

"새끼덜이 확실히 고등학생답게 짖궂은 면이 있어서 쉽게 친해졌어."

 

"……부럽네. 서정고의 별들이랑 친하기도 하고."

 

"흐흠."

 

 

 

 

부럽다는 말은 200% 사실이지만, 그래도 질투심에 살짝 비틀린 마음으로 말을 했는데도 언니는 그저 기분이 좋나보다.

 

흐응- 코로 웃어대면서, 나랑 눈 한번 마주쳐주고, 밥풀 흐르도록 입 찢어지게 한번 웃어대면서, 또 나랑 눈 한번 마주쳐주고.

 

그 모습을 보면서, 에휴- 잘났셨수? 아줌마같이 장난스레 빈정거렸지만 언니는 별 신경쓰지 않는다는 투였다.

 

 

 

 

"아, 맞다!"


 

 

 

그러다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이 두 손을 맞붙잡는 언니였고, 난 또 뭔 염장 지르는 소리를 할까 싶어 눈을 게슴츠레 뜨고 언

 

니를 바라봤다.

 

 

 

 

"그럼 내가 소개시켜주면 되잖아, 너한테."

 

"어엉?"

 

"태겸이랑 지운이랑 언니가 뭐 어떻게 좀 해줘?"

 

 

 

 

하하, 됐어… 라면서 일단 고개를 양쪽으로 흔들었다.

 

언니는 내숭 떤다지만 뭐 어떻게 해주고 자시고 난 이미 한지운과 박태겸하고는 말을 트고 있는 사이였으니까.

 

그리고 무엇보다 언니를 통해서 박태겸이나 한지운을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적어도 권재현을 제외한 나머지 3명한테만큼은 권재현의 여자친구인 지혜언니의 동생…이라는 것보다는 그냥 임지윤이고 싶으니

 

까.

 

어라. 그나저나 권재현을 제외하면 박태겸, 한지운, …… 그리고 이건우까지 3명인데 언니는 왜 두명만 말하는걸까.

 

사실 그러고보면 권재현과는 다른 느낌으로 괜히 사람 기분… 솜사탕처럼 죄 뭉텅뭉텅 녹아내리게 하는건 이건우인데.

 

뭐 굳이 꼭 이어달래면 난 이건우… (하하하).

 

 

 

 

"근데 권재현 빼면 박태겸, 한지운, 그리고 이건우도 있는데."

 

"아- 그 4명중에 건우 좋아하는거였어?"

 

"아니이!"

 

"뭘 빼고 그러냐고. 언니한테 숨길 필요없다니까? 그리고 걔네 안 좋아하면 안좋아하는 애가 이상한 애 되는거 알지?"

 

"아냐, 아냐…. 난 그냥 언니가 이건우 이름은 빼길래."

 

 

 

 

동시에 언니는 드디어 밥그릇을 다 비워냈다.

 

원래부터 밥도 안먹고 얘기만 하고 있던 난, 언니가 밥그릇을 비워내자 드르륵- 의자끄는 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처음하고 다를게 없는 내 밥은 다시 밥통에 처넣고, 언니의 그릇을 싱크대에 집어넣었다.

 

대충 반찬정리를 할 때까지도 언니는 마나님처럼 의자에 앉아있기만 했는데, 그게 조금 이마에 힘줄 돋게 했으나 이어지는 말에

 

그런 생각도 잠시였다.

 

 

 

 

"건우는 안되."

 

 

 

 

제법 단호한 목소리.

 

그게 조금 의아해서 살짝 찌푸려진 미간으로 언니를 바라봤다.

 

 

 

 

"흠. 건우 좋아하는 사람 있거든."

 

"아…."

 

"나쁜 남자가 근데 매력있긴 하지."

 

 

 

 

어……? 좋아하는 사람?

 

이건우한테, 그 신비스러운 인간이 좋아하는 사람도 있다고?

 

반찬뚜껑을 부지런히 덮던 손이 잠시 느릿해졌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바보같이 언니를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르고서, 둥그래진 눈으로 가만히 서있기만 했다.

 

뭐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어?

 

 

 

 

-그리고 난 꼭 권재현 때문이 아니더라도.

 

-너랑 계속 얼굴 봤으면 좋겠다.

 


 

 

풉, 잠시 나에 대한 비웃음이 튀어나왔고 영문을 모르는 언니는 내버려두고, 잠시 멈췄던 손을 다시 움직였다.

 

난 그러고보면 참 착각 대마왕인가…….

 

처음 만났을 때 눈물 닦아주고, 안아주고. 오늘은 키스해주려고 그랬다는 말에 장난치지 말라고 그랬지만 사실 얼마나 떨렸는데.

 

그래서 난 또 이건우가 혹시나 나한테 관심 있는건 아닐까… 뭐 그렇게 생각했건만.

 

뭐야. 좋아하는 사람이 있었어?

 

이것들이 진짜 권재현이고 이건우고 쌍으로 사람 가지고 장난치나!!!!!

 

그나저나 나쁜 남자라는 건 또 무슨 말일까.

 

솔직히 프린스 4명중에서 제일 착하고 부드러운 남자가 이건우 같은데, 이건우가 어딜봐서 나쁜 남자야?

 

그래도 한지운의 귀여움도 그게 사실 이미지용이었다는 것을 바로 오늘 알게 됬는데, 이건우도 어딘가 숨겨둔 나쁜 면이 있겠지.

 

그들에 대해서 쥐꼬리만큼 알고 있는 나보다는 그래도 언니가 알고 있는 면이 더 많겠지…하는 생각에 안그래도 어지러운 머리,

 

잡생각은 떨치기로 했다.

 

에휴- 한숨쉬면서 부엌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는 날 바라보던 언니는 뚱하니 있다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

 

 

 

 

"그나저나 내일 알지?"

 

 

 

 

내일?

 

내일 토요일인데.

 

내일 뭐?

 

……물어보려다가 근데 말았다.

 

내일 주말인데, 뭐 권재현이랑 데이트하느라 내일 집에 못들어올것 같다느니 뭐 이딴 말이 나오면 어떡해.

 

게다가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내일 뭔가 있을만한 이벤트가 없다.

 

그러니까 물어봐봤자 돌아올 대답이란게 내가 상처받을 만한 말일 확률이 대략 50%를 넘어간단 말씀이다.

 

대충 고개를 끄덕이며 냉장고문을 열었다.

 

 

 

 

"응. 알어."

 

"여보세요."

 

 

 

 

내 대답을 듣기위해 기다리고 있었던건지,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마자 언니는 계속 울려대던 핸드폰을 그제서야 받았다.

 

제법 밝게 웃는 모습에 누군가 했으나… 뭐 권재현이겠지.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본가로 내려간 권재현도 지금 저녁밥을 먹고 있을거 아냐?

 

아무리 막 나가기로서니 가족들이랑 밥 먹고 있는데 전화를 하겠어?

 

다시 의아한 마음에 언니쪽으로 고개를 돌리니, 아무래도 전화의 주인공은 진짜 권재현이 아닌 듯 싶었다.

 

 

 

 

"아니, 집에 없어."

 

"흠. 나 내일 일찍 일어나야 되는데."

 

 

 

 

힐끔 내 눈치를 보더니 식탁에서 일어난다.

 

그리고 휘적휘적, 거실쇼파로 걸어가는 뒷모습.

 

3분정도 후, 다시 부엌으로 걸어온 언니는 전혀 아무렇지도 않아 보이는 얼굴로 웃어보이며 말했다.

 

 

 

 

"언니, 나가봐야겠다. 늦을지도 몰라."

 

 

 

 

대학생은, 원래 저렇게 밤에도 바쁜건가….

 

 

 

 

 

 

 

 

 

#

 

 

 

 

 

 

 

 

 

왜 1년후에 보고 있어야 할 수능을 지금 내가 보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주머니에서 핸드폰이 울려댔다.

 

아니! 난 분명히 핸드폰은 아예 집에서 안 가져 온 것 같은데?

 

당황해서 열심히 수리 문제지 위로 끄적거리고 있던 샤프도 바닥에 놓치고 고개를 들어보니, 당연히 감독선생님이고 주변의 학생

 

들까지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인건지는 몰라도 더욱 커져만가는 핸드폰 벨소리.

 

뭐야…? 뭐야!!!!

 

점점 내쪽으로 다가오는 감독선생님의 얼굴이 점점 커다래지면서, 어라. 근데 왜 감독선생님 얼굴이 권재현인거지.

 

 

 

 

"아씨."

 

 

 

 

알고보니 꿈이었더랬다. 아니, 뭐 이런 그지같은.

 

아니지. 오히려 꿈이라서 다행인가.

 

어쨌든 식겁해서 눈을 떠보니 당연하게도 주변은 아주 깜깜했다.

 

저녁밥 먹고 나갔던 언니를 기다리다 기다리다, 결국 새벽 2시쯤에 방으로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럼 지금은 3시나 4시정도일까나.

 

졸린 눈을 비비며 아직도 시끄럽게 울려대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2시 40분을 나타내는 숫자는 둘째치고서라도, 언니겠거니 했는데……

 

……

 

권… 재현? 권재현?

 

지금 액정에 뜬 이름, 이거 자다가 일어나서 헛걸 보는게 아니고 제대로 보고 있는게 이게 권재현 맞는거지?

 

얜 꿈에도 나오더니….

 

덕분에 뜨는둥 마는둥 했던 눈이 번쩍 뜨였고, 핸드폰을 열긴 여는데 손 끝이 바르르 떨려왔더랬다.

 

 

 

 

"여… 흠흠, 여보세요."

 

-잤어? 하긴. 좀 늦었네.

 

"흠흠. 아니, 뭐…. 어쩐 일이야?"

 

-심심하면 문자하라고 몸소 전화번호까지 줬는데, 고맙다는 문자 한통도 없고 말이야….

 

 

 

 

어둠이 내려앉은 방은 핸드폰 벨소리가 사라지니까 침묵에 휩싸였다.

 

그래서 그런가, 전화 너머로 들려오는 권재현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더 나긋나긋하고 금방 깬 잠인데도 불구하고, 다시 잠에 푹 빠

 

져들게 할 만큼이나 부드럽게 들렸더랬다.

 

하지만 목소리가 부드러워서 죄 녹아내리는 마음인 반면에, 몸은 발끝부터 덜덜 떨리고 있었다.

 

목을 풀었는데도 맘에 드는 목소리가 나오지 않아서 계속 목을 풀자, 미안했는지 전화너머에서 작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아, 정말 사람 애간장은 자기가 다 녹이는구나.

 

세상에 권재현이랑 새벽에 전화하게 될 줄은 누가 상상이나 했겠냐구.

 

 

 

 

-오늘 집에서 못봐서 조금 섭섭했지?

 

"웃기고 앉었네."

 

-솔직히 말해라. 지금도 내가 전화해줬다고 실실 쪼개고 있잖아.

 

"아, 그니까 영구 박터지는 소리만 계속 하라고."

 

 

 

 

하하, 제법 시원스럽게 웃는 녀석의 목소리가 들려와서 후- 하고 나도 웃음이 새어나왔다.

 

그러나 좋은건 좋은거지만, 정말 녀석은 왜 이 새벽에 전화를 한 걸까.

 

침대에서 부스스 일어나 거실로 나가 불을 켜보았다. 조금이라도 나은 목소리로 말을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다가 작정하고 볼 생각은 아니었는데 얼떨결에 현관쪽으로 시선이 갔다.

 

…세상에. 아직도 안 들어온거야?

 

내 운동화만 놓여있는 현관에 아직 언니가 신고나간 구두는 놓여있지 않았다.

 

그리고 마침, 권재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사실대로 말해.

 

"어엉?"

 

-누나 어디간거야?

 

"……."

 

 

 

 

단번에 인상이 찌푸려진건 말할 것도 없었다.

 

결국 이 새벽에 전화해서 찾는다는 것이 언니여서가 아니라, 어쩐지 아까까지만해도 몸이고 마음이고 죄 녹여대던 권재현의 목소

 

리가 대번에 뾰족해졌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무슨 일이 있나.

 

사실 권재현으로부터 전화가 왔을 때, 언니를 찾을거란 생각은 했었다.

 

근데 왠지 아직 안들어왔다고 하면 싫어할것 같아서, 권재현을 좋아하는것보단 언니를 위하는게 우선이라고 생각해서 잔다고 말

 

해주려던 찰나였다.

 

어디간거야? 라는 녀석의 목소리는 그러나, 거짓말을 할수도 없게끔 그렇게 차가웠다.

 

게다가 이미 집에 언니가 없다는 걸 알고 있는 눈치이기도 했고.

 

…아, 이거 말 잘못하면 뭔 일 나겠는데?

 

 

 

 

"방에서…"

 

-…….

 

"자."

 

-깨워.

 

"왜… 자는데 일부러 왜 깨워."

 

 

 

 

둘이 싸웠나? 내일 데이트 하는거 아니었어? 진짜 둘이 뭔 일 있나?

 

순식간에 싸늘한 냉기 폴폴 날리는 권재현때문에, 게다가 바꿔주고 싶어도 바꿔줄 수 없는 이놈의 임지혜 때문에!!!!

 

괜히 내가 더 불안해서 쇼파에 무릎을 접어 올리고, 핸드폰은 어깨에 끼워넣은채로 두 손으로 무릎을 감쌌다.

 

마주잡은 손 끝은 초조한 심중을 그대로 드러내고서 여리디 여린 손톱 끝 살을 잡아뜯고 있었다.

 

 

 


-나 그럼 지금 집으로 갈까?

 

"술 마셨어? 갑자기 왜 그래."

 

 

 

 

그때 삐빅- 현관문의 장금장치가 열리는 소리가 났다.

 

그쪽으로 고개를 돌리면서 혹시라도 수화기 너머로 들리지 않도록 재빨리 손으로 막았다지만, 그건 이미 문 여는 소리까지 들리고

 

난 후였다.

 

문이 닫히고서 빼꼼히 얼굴을 들이미는건, 패셔너블하고 자유분방한 대학생답게 제법 진한 화장의 언니.

 

아마 권재현이 집에 없는 틈을 타서 클럽이라도 갔다 온건지, 진한 화장에 꽤나 야한 옷차림.

 

자기도 늦은걸 알긴 아는건지 언니는 쇼파에 앉아있는 나를 보자마자 베시시, 미안한 웃음을 지어보였다.

 

문제는 이게 아니라…

 

 

 

 

"기다려. 그럼 언니 깨울게."

 

"응?"

 

 

 

 

그래도 마침 어떻게 타이밍 좋게 나타난 언니한테 오히려 감사해야 겠는지도 모르겠다.

 

전화 너머에서 집으로 갈까? 물어보던 권재현의 목소리는 이유는 모르겠지만 진짜로 당장이라도 집으로 달려올 태세였으니까.

 

언니를 깨운다는 말에, 지금 막 집으로 들어온 언니로서는 영구 박터지는 소리로 들렸는지 응?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형부야.

 

눈을 갸름하게 떠서 언니를 노려보며 입모양으로 조심스럽게 말하니 아아, 라고 가볍게 응수하기는 하는데…

 

난 봤다.

 

태연하기만 하던 언니의 얼굴에 잠시 난감한 웃음이 스쳐지나가는 것을.

 

아니, 나이가 21살이면 클럽 다니는거 남자친구가 어련히 눈감아줄까봐 그러게 누가 그렇게 몰래몰래 다니랬냐고.

 

게다가 분명히 3개월동안 들었을 삐빅- 장금장치 풀리는 소리랑 현관문 열고 닫는 소리까지 들렸을텐데

 

지금 깨워서 받았다는 언니의 거짓말을 권재현이 믿어줄지도 잘 모르겠고 말이다.

 

 

 

 

-후. 아냐. 됐어. 그냥 자게 냅둬. 연기 좀 해본거야.

 

 

 

 

전화기를 막 건내주려던 찰나, 그러나 이번엔 권재현이 한숨을 쉬며 말을 이었다.

 

발을 동동 구르며 나를 바라보고 있는 언니에게, 권재현은 들리지 않도록 입모양으로만 그냥 자게 냅두라는데? 라고 말하니, 언

 

니는 어깨를 으쓱이며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나저나 연기 좀 해본거라니.

 

옆에 앉은 언니는 통화 너머에서 권재현이 뭐라고 하나 궁금한 눈치였지만, 이상한 느낌에 난 언니 몰래 통화음을 점점 줄였다.

 

 


 

"그래?"

 

-응. 아까 누나랑 통화해서 밖에 있는거 알고 있었어.

 

"음……."

 

-넌 그냥 잘자고 있는거 깨워서 약올릴라고 그랬지롱.

 

"……."

 

-회사 물려받지 말고 탤런트나 해볼까.

 

"……."

 

 

 

 

밖에 있는거 알고 있었다고?

 

그럼 언니가 저렇게 난감해할 표정을 지을 이유가 없잖아.

 

너 거짓말하고 있는거잖아.

 

이렇게 드럽게 어색한 연기로 잘도 탤런트한다고 떠들고 있구나.

 

그나저나 도대체 둘이 뭐야?

 

다시 장난기를 베어물은 목소리로 말하는 권재현이었지만, 난 언니 한번 바라보고, 한숨한번 쉬고, 또 언니 한번 바라보고 힘겹게

 

입술을 열었다.

 

 

 

 

"장난 그만하고 내일 봐요, 형부."

 

-…자려고? 내가 전화까지 해줬는데?

 

"나 지금 거실인데."

 

-응.

 

"언니가 시끄러운지 방에서 나오네. 뭐, 언니 일어난김에 전화라도 할래요?"

 

-…아냐, 자라.

 

 

 

 

핸드폰을 닫고서, 뭐 어떻게 된건지 설명이라도 해달라는 눈으로 언니를 바라봤다.

 

아무래도 겉으로 보기에는 전화가 좋게 끝난것 같자, 언니는 눈이 휘어지도록 웃으며 겉옷을 벗어 쇼파에 대충 걸쳤다.

 

상황 좋게 좋게 마무리해준 동생한테 그러나 해줄 말은 없는 듯 했다.

 

방으로 들어가려 쇼파에서 일어나는 언니의 손목을 붙잡고서, 일어나있는 언니의 얼굴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다.

 

무슨 일이야? 물어보니까, 됐단다.

 

지금 이게 될 일인가……. 언니는 모르겠지만 난 전화너머로 다 지나간 겨울바람 쌩쌩부는 권재현 목소리까지 들었는데.

 

그 녀석은 아무래도 연기라고 했지만.

 

 

 

 

"귀찮다. 자자. 내일 학교에서 보면 재현이한테 나 밖에 있었다는 말은 하지말구."

 

 

 

 

권재현은 밖에 있는거 원래 알았다고 그러지.

 

언니는 밖에 있었다는 말을 하지 말라 그러지.

 

권재현은 집에 온다고까지 하지.

 

아무래도 뭐가 찔리는듯 언니는 자꾸 난감한 웃음만 짓고 있지.

 

뭐 둘이 알콩달콩 양계장 사업만 하는 줄 알았는데 뭔가 수상한 냄새가 나는거다.

 

아무래도 싸웠거나, 뭘 숨기고 있는 것 같지?

 

그나저나 둘이 언제 핸드폰 번호도 주고 받았냐는 언니의 질문에, 지금은 대들어도 내가 유리한 상황이라서

 

여태 염장지르던거 갚아주자는 심산으로 실컷 노려보며 몰러도 되네요오- 대답해주고는 방으로 들어왔더랬다.

 

어쩐지, 오늘은 잠 다 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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