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볕 (외 1편)
- 유현숙
볕이 참 좋다, 내일 뭐해?
들도 산도 붉다
올래?
자전거 타이어에 공기 빵빵 채웠어
해거름 둑길 끝까지 달리자
산촌 가을은 짧아
산집은 쉬 어두워지고 추워
저녁엔 장작 패서
난로에 불 지퍼 불멍 어때?
건너 와
입석이라도 타고
새벽의 숲이 가장 숲다운 것 알지?
빨간 장화 신고
노란 꽃 더미 건너
여뀌도 고마니도 이슬 젖은 들길 걷자
좋아하는 커피 내려 놓을게
꼭 와,
두족류
맞은편 의자에 앉은 여자의 흰 손이
남자의 허벅지에 붙어 있다
낙지발 같다
전동차 안이 푸르러지고, 풀어헤친
머리칼이
물풀마냥 물결치고
진흙구멍을 막 빠져나온 긴 낙지발이,
여자의 가는 손가락이,
개흙바닥 위를 긴다
폐선처럼
개펄에 빠진 어구처럼
낡아서 삐걱대는 저 남자, 반쯤 잠들었다
덜컹, 전동차가 흔들리고
남자의 아랫도리에서 덜컹, 낡은 부속
품들이 흔들리고
창밖에는 저녁놀이 흐르는데
가압류 딱지가 붙은 섣달그믐이 붉디
붉은 인줏빛이다
고철처럼 남자의 가랭이 사이가 산화
하고
여자의 손가락이 흠뻑 녹물에 젖는다
긴 여름의, 등이 뜨거워진 왕새우떼들
손등에서 튀어 오르고
남자의 전신에다 흡반을 댄 저 여자
너풀대는 물풀 속에 웅크린 한 마리
두족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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