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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방

2026년 천강문학상 시 대상 수상작

작성자주선화|작성시간26.06.18|조회수30 목록 댓글 2

정암루(시부문 대상)

 

-이혜순

 

 

먼 곳의 풍경도

근처의 풀벌레 소리도

누각의 벽이 된다

 

비스듬한 햇살과

바람 소리도 마찬가지

 

안과 밖이 없지만, 안쪽들이란

세상의 지붕 밑이 아닐까

비는 바깥이 되고

그늘은 집 안이 되는 이치를

이곳에선 알게 된다

 

요란한 말발굽 소리를

기와로 얹은 듯

누각은 몇백 년을 달리는 중이다

 

조망과 전망은

태평성대의 일이지만

난의 시절엔 경계와 살핌이

누각의 쓰임이 되기도 했다

 

팔작지붕을 사방이 내려다보이는 곳에다 올린 까닭은

하늘 아래 의로움을

잠시나마 앉히고자 함이었다

 

그때를 기억하듯

어디선가 바람에 실려 온 단풍잎들이

붉은 깃발처럼

누각을 휘몰아쳐 간다

 

 

 

세간리 은행나무

 

 

한 곳에 오래 서 있다 보면

고유한 이름을 얻는다

 

봄이 맡겨놓고 간 초록을

가을이 찾아와서 가져간다는 나무

육백여 년을 한 곳에 서 있다는 것은

하늘이 지표로 삼았다는 뜻

이곳에 그늘이 넓은 여름이 있고

가을이 되면서 그 그늘들이 조금씩 날아간다고

표식을 삼아 놓은 곳이다

 

천지에 가을이지만

이 늙은 가을을 보려고 찾아온 여행은

팔랑이는 노랑에 저도 모르게 물이 든다

굳건한 제자리를 일컬어

누군가는 미련하다 하고

우직하다 말하기도 하지만

떠나는 것들의 출발지이고

돌아가야 할 지점이기도 하다

 

이렇게 큰 노랑을 덩어리로 모으려면

가을 곳곳을 뒤졌을 것 같은데

그걸 또 잘게 떼어내는 일에 열중한다

 

지구를 따라도는 나무

제자리를 출발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오래된 제자리

 

그런 우직한 제자리 하나를 보겠다고

온 가을이 모여들고 있다

 

 

 

웅크린 힘

 

 

살짝만 건드려도

사방으로 튀어 오른다

 

때를 기다리며 쌓아온 힘

때가 되면 알곡들은

밖으로 뛰쳐나갈 기회를 엿본다

 

쌀도 그런 바짝 웅크린 곡식이다

저의 부피에서 몇 배로 불어나는 양이

이타적인 농법을 만들었다

 

쌀을 씻고 물을 붓는 것은

물을 앉히는 일

그 앉은 물이 격렬을 견디면

물금 부었던 자리까지

딛고 서는 힘이 된다

 

밥은 그렇게 만들어진 음식이다

고슬고슬한 냄새

햇살과 바람이 뜸 든 기다림의 합성어이다

 

바짝 웅크린 힘은

돌이나 저수지에 갇힌 물 같은 힘이 아니라

단단한 말 속에 담긴 다짐 같은 것이다

 

잘 지어진 밥 한 그릇

웅크렸던 몸이 활짝 기지개를 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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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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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최인락 | 작성시간 26.06.18 new 선생님 3편 모두 잘 읽었습니다
    잘 배우고 갑니다
  • 답댓글 작성자주선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18 new 감사합니다
    저도 배우고 있어요 선생님,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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