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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 읽는 방

2026년 제 16회 천강문학상 시 우수상

작성자주선화|작성시간26.06.20|조회수20 목록 댓글 2

흰 김은 얇은 종이 같고

ㅡ 의령 닥나무

 

- 안진영

 

 

닥나무 숲에 들면

종이 넘기는 소리가 난다

 

빈칸이 대부분인 기척은

아주 작아서 바람보다 먼저 페이지를 넘어간다

 

숲 근처에 서원도 없는데

창호를 지나온

글 읽는 소리

벼루에 풀어 놓은 농담(濃淡)이 밤새 어둠을 긋는 소리

문자 향이 꽃을 빌려 붉다

 

앞으로 나서다 다시 물러서는 방향은

수직이나 수평, 나중을 잇는 획의 첫머리라면

꽃도 붉고 열매도 붉은 곡절은

흰 면(面)이 되려는 다짐이었을까

 

가지와 가지 사이의 간격마다

구름의 교습을 받는

신반 닥나무 숲,

소나기 냄새와 뭉게구름 냄새가 지나가고

젖은 문장과 마른 문장이 번갈아 이어지고 나면

두께와 차오른 페이지는 책을 만들고

숲은 인쇄소가 된다

 

헷빛과 바람을 따라

푸른 잎의 오후를 따라

숲의 공정을 걸어갔다

삶고 두드려 농울 진 겹과 겹 사이

속도 아니고 겉도 아닌 겹겹을 묶고 보면

붓의 흔적을 모두 감춘 밤의 발목이 번지는 곳이 있다

 

책은 문자들의 창고인 줄 알지만

불빛 아래서는 일렁이고

사뿐히 종이를 날아오르는 비백이 되기도 하는데

흰 김은 가장 얇은 종이 같고

고심한 것들이 다다른 질긴 섬유질은

꼬아 끊는 수염과 닮았다

 

궁리 끝에 붉은 꽃 피고

닥나무 속은 흰 낱장이 무성하게 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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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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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석심 이신남 | 작성시간 26.06.21 잘 읽었습니다.~
  • 답댓글 작성자주선화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6.06.22 new 감사합니다 이신남 선생님,
    오늘도 즐겁게 ~ 보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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