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11. 굿바이, 마날리

작성자청랑|작성시간25.08.27|조회수253 목록 댓글 4

밤새 비가 내렸다.

빗소리는 밤새도록 일정하게 강한 톤으로 지치지도 않고 지붕을 두드려댔다.

이전에는 한두 시간 쏟아붓다가 그치곤 했는데 마치 오래 참았던 감정을 토해내듯,

비는 밤새도록 한 번의 쉬는 시간도 없이 내리고 또 내렸다.

 

1시간 정도 잤던 것 같다.

한국에서도 그랬지만, 잠은 내게 중요하지 않았다.

잠은 졸음을 쫓는 수단에 불과했다. 잠보다 명상이 훨씬 좋았다.

잠에서 충전되는 효과는 미미하지만 명상으로 충전되는 에너지는 훨씬 컸다.

내게는 지금 같은 히말라야에서의 명상은 밤마다 산해진미로 채워진 파티와 다름없었다.

마지막 밤은 그 중에서도 절정이었다.

강하게 퍼붓는 비처럼 밤새 온몸이 진동과 기운으로 넘쳤고

의식은 히말라야를 넘어 우주로 확장되었다.

 

100% 채워진 베터리에 200%, 300% 더 꽉꽉 눌러 담는 느낌이었다.

이전에 몇 번의 히말라야에서도 경험하지 못한 강력한 기운이 몰려왔다.

왜 여기서만 유독 강력한 기운이 몰려오는 걸까?

생각해보니, 그건 바로 마날리에서 받은 세 번의 딕샤(Diksha) 때문이었다.

 

딕샤(Diksha)는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영혼의 배터리를 충전하는 의식인데

반드시 신과 연결된 구루(스승)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

스승이 신과 연결되지 않았다면 그건 앙코 없는 찐빵이요, 그야말로 헛빵이요, 헛수고다. 

 

사실, 인도의 수련과 종교는 이 딕샤(Diksha)가 핵심이다.

딕샤(Diksha)의 효과와 능력을 체험하지 못하면

인도의 종교, 요가, 온갖 수련법에 대한 공부는 겉핥기나 다름없다.

 

특히, 인도에서 딕샤(Diksha) 를 한번도 체험하지 못한 채

철학책만 만지다 박사학위를 받고

우리나라에서 인도의 종교와 요가에 대해 떠드는 사람을 보면,

답답함을 넘어 분노까지 올라온다. 

그는 무지해서 잘 모르겠지만, 그건 너무나 씻기 힘든 큰 죄(罪)를 짓는 행위다. 

 

마날리에서 총 세 번의 딕샤(Diksha)가 있었다.

 

첫 번째는, 앞의 연재에서 자세하게 묘사했던 불의 푸자(Agni Puja)였다.

두 번째는, 이름(Holly Name)과 만트라를 받고 라리타 마타지와 함께 한 40분간의 명상이었다.

높은 수준에 오른 스승과 함께 같은 공간에서 명상하는 것이야말로 최상의 딕샤(Diksha)였다.

 

딕샤(Diksha)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우리 식으로 쉽게 쓴 예를 들어보자.

국선도의 청산선사가 지은 ’삶의 길‘ 이란 책에 나오는 일화다.

 

아주 먼 옛날, 즉, 고대(古代) 들머리 나라에 ’세단도사‘로 불리는 

국선도의 지도자가 많은 제자들을 가르치고 있었다.

 

하루는 제자들이 우루루 몰려와 매일 멀리 떨어진 도장까지 나오는 게 귀찮다며

이제부터 집에서 각자 열심히 수련하겠다고 했다.

도사는 각자 장작을 가지고 오게 한 뒤 한데 모아서 불을 붙였다.

 

장작불이 활활 타오르자, 이번에는 각자가 가져온 장작을 흩어놓아라고 했고, 불은 금방 꺼져버렸다.

도사는 장작불처럼 함께 모아 놓으면 잘 타지만 따로 떼어 놓으면 불이 꺼지듯이

수련도 마찬가지이므로 함께 모여서 해야 한다고 타이른다.

 

그래도 알아듣지 못하자,

세단도사는 모두 모여 줄을 당기라고 하고 자신은 반대편에서 혼자 줄을 당겼다.

모두가 당겨도 꿈쩍도 하지 않자, 이번에는 세단도사가 힘껏 당겼고

제자들은 앞으로 맥없이 끌려가다 세단도사가 갑자기 줄을 놓아버리자 모두 뒤로 벌렁 넘어졌다.

 

그러자 도사는 이처럼 도가 높은 스승이 큰 기운을 끌어당겨서 수련이 잘 되는 것이지,

뿔뿔이 흩어져 각자 수련하면 효과가 없다고 타일렀다.

 

이것이 바로 높은 스승과 함께 수련해야 하는 이유다.

이처럼, 우리 민족의 전통수련도 인도의 딕샤(Diksha)와 비슷했다.

 

제대로의 수련이라면 어디든 이래야 한다.

스승에게 딕샤(Diksha)의 능력은 매우 중요한데 반드시 쿤달리니가 각성되고

백회까지 기운이 닿아야 이러한 능력이 생긴다.

 

마날리 아쉬람에서 마타지에게 이름과 만트라를 받은 뒤 우리는 40분간 함께 명상을 했다.

각자에게 따로 만트라가 주어졌고 마타지가 선창하고 한사람씩 개별적으로 따라서 반복하게 했다.

이것도 우주의 소리를 이용한 딕샤(Diksha)의 절차다.

 

기무라선생이 모두 멀리서 왔으니 두, 세 시간쯤 함께 명상하고 싶다고 했지만,

마타지를 만나려고 수백킬로미터를 달려온 많은 제자들이 다음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마타지는 늘 앉으시는 자리에 앉아 명상을 진행하려다 뭔가 다른 생각이 났다는 듯,

우리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하고는 마하라지의 큰 사진이 걸려 있는 단 위로 천천히 올라가셨다.

그리고 단 앞에 세 개의 촛불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마하라지에게 잠깐 집중하고 기도를 올렸다.

그 순간 내 안에서 쩍 하고 열리고 벌어지는 소리가 나면서 내가 어떤 공간 속으로 쑥 들어갔다.

그게, 내가 받은 마날리에서의 두 번째 딕샤(Diksha) 였다.

그때, 나는 라리타 마타지와 마하라지가 하나로 연결되어 있고,

또 마하라지는 하늘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았고, 몸으로 분명히 느끼고 체험했다.

 

문득 석가모니 부처님이 영산회상에서 꽃을 들었던 상황이 눈앞에서 오버랩되었다.

2,600년 전의 부처님의 딕샤(Diksha)에

최고의 수준에 오른 제자 마하가섭은 체험했고,

그래서 미소로 답했던 것이다.

 

아직도 엷게 비가 내렸다. 

우리는 이른 새벽 4시 30분에 마날리 아쉬람의 숙소를 출발했다.

별일이 없다면 12시간쯤 뒤인 저녁 다섯 시쯤엔 리시케시 아쉬람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다.

그곳엔 니케탄요가의 스승 마하라지가 영원한 사마디에 드신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모두들 히말라야 아래로 내려가는 길이니 올라오는 길보다는 조금 수월할 거라고 예상했다.

다행히 우리가 출발할 즈음엔 조금씩 비도 그치고 있었다.

다시 모든 걸 신에게 맡기는 신성한 시간이 시작되었다. 언제 도착할지는 신만이 알고 있으리라.

 

얼굴이 너무 화끈거려 차 안의 백미러를 보니 얼굴 전체가 벌겋게 달아올라 있다.

어제 로탕 패스에서 잠깐 햇빛에 노출되었는데 이렇게 달아오르다니.

모두가 걱정했지만, 나는 이유를 알았고 오히려 기분은 좋았다. 

로탕 패스에서 세 번째 딕샤(Diksha)가 일어났고 내 배터리는 완전히 풀(Full)로 채워졌기 때문이다. 

 

지난밤, 밤새 나는 깨어 있었고 빗소리와 함께 히말라야의 감회를 들었다.

 

- 죽음의 계곡. 로탕 패스에서 기나긴 나의 역할은 끝났다.
  나는 여기까지다.

  오랫동안 마음졸이며 보살펴온 나의 임무는 이것으로 완성되었다.

 

- 너의 게으름에 때로는 실망도 하고, 오만하고 무지(無知)한 선택에 안타까울 때도 있었지만,

  나는 언제나 너를 떠나지 않고, 용서하고 보호하며 이곳으로 이끌었고,

  드디어 너는 성스러운 이름(Holy Name)과 만트라를 받고,

  세 번의 딕샤를 통해 영혼의 세계에 입문했다.

 

- 가라. 이제 다시 시작하라.

  다시 새로운 이름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

  마날리는 그렇게 밤새 나를 격려하고 충고하고 축복했고,

  나도 잠들지 못했다.

 

1985년도에 국선도에 입문한 지 딱 40년 만이었다.

그 해와, 그 달에 마하라지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리시케시 아쉬람에서 마하사마디에 들었고

나는 내 인생 처음으로 하늘의 기운을 체험했다.

중국 화산 서봉

그러나 스무살의 마하라지처럼, 아직은 많이 어렸고, 문제도 많았고,

서툴렀고, 욕망은 하늘을 찔렀고, 자만심은 넘쳤고,

들떴고, 무지한 채,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망아지처럼 뛰어다녔다.

 

20년 뒤인 2005년에 몸은 완전히 망가져 만신창이가 되었고

이대로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아까워 다시 마음을 잡고 열심히 수련하고 기도해 쿤달리니가 열렸고,

나의 어둠을 걷어 내고 더 높은 곳으로 나를 인도해줄 스승을 찾아 세계를 떠돌았다.

크리야요가 본부 L/A 레이크 쉬라인

요가난다의 크리야요가를 배우려 인도 캘거타와 미국의 L/A까지 갔었고,

중국 도교를 배우려 중국의 화산(華山)까지 갔었다.

그러다 책 한권(당신은 길 잃은 신이다)이 인연이 되어 리시케시로 떠났고,

드디어 어제, 마날리 로탕 패스에서 죽음의 관문을 지나 다시 새로운 출발선에 섰다. 

 

지금이 2025년이니, 쿤달리니가 열린지 딱 20년 만이다.

누군가 미리 계획한 듯 숫자의 배열이 절묘하지 않은가.

 

그런데, 예수가 니고데모에게 말한 것처럼,

새로 태어난다는 의미는 뭘까?

 

당연히 새로운 생명이 시작은 먼저 지난 것은 버려져야 하고, 완전히 죽어야 한다.

 

그러므로 모든 낡은 것들, 습관, 욕심은 버려야 되고, 완전히 죽게 해야 한다.

그런 면에서 로탕 패스, 시체의 더미가 쌓인, 죽음의 계곡은 얼마나 적절한 관문인가.

13,058피트 로탕 패스 관문

로탕 패스, 죽음의 관문을 넘어

이제 나는 다시 마하라지가 계신 리시케시로 간다.

바로 5년 전,

아무런 빛도 찾지 못한 채 절망에 갇혀 있었던 나 자신을 만나기 위해.

 

리시케시로 가는 길은 내리막이라 쉬울 거라는 예상은 일찌감치 빗나갔다.

새롭게 터널이 뚫린 길로 가면 예정보다 훨씬 일찍 도착할 거라는 말은 너무나 섣부른 장담이었다.

밤새 내린 비로 곳곳이 무너져 내렸고 새로 뚫은 터널도 무너졌는지 천 길 낭떠러지 길만 이어졌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행운이 따르고 있었다.

우리가 아슬하게 빠져나온 뒤에 곧바로 산이 무너져 길이 끊겼고

우리 뒤의 차들은 길이 뚫릴 때까지 몇 시간을 더 지체해야 했다.

그러나, 뒤로 돌아갈 수도 없으니, 그것도 사실은 행운이 아니었다. 

아슬하게 막혔다 풀렸다, 을 반복하며 조금씩 전진하고 있어

이대로라면 밤늦게라도 리시케시에 도착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들었다.

무사히만 도착한다면 몇 시간쯤 늦는 것쯤은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것도 너무나 섣부른 기대였다.

 

너덧 시간 걸려 100킬로 미터쯤 왔을 때였다.

대략 고개 하나만 넘으면 큰 위험은 없다고 생각했는데 또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바로 내 눈앞에서 산이 무너졌다.

 

산이 무너지는 것을 본 적이 있는가?

나는 산이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눈으로 정확히 봤다.

다행히 나는 몇백 미터 떨어져 있었다.

 

마침, 나는 차 안에만 있는 게 지루하기도 하고 소변도 마려워 차 밖으로 나왔다.

도로 모퉁이 나무들이 몇 그루 우거진 곳을 찾아 볼 일을 보고는 도대체 차가 왜 막힐까

눈에 힘을 주고 도로를 주시하고 있었다.

 

어, 그런데 도로 옆 산의 깎아진 면에서 갑자기 폭포처럼 물이 뿜어져 나왔다.

저곳에 폭포가 있었구나, 하는데 이번엔 물줄기가 잦아들더니 산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산이 조금씩 움직이며 아래로 허물어지더니 어, 하는 사이에 갑자기 크게 무너졌다.

 

놀라서 눈을 뜨고 있는데 몇 초쯤 뒤 이번에는 더 크게 무너졌다.

무너진 흙더미가 강으로 쏟아져 내려와 강물 위로 큰 흙먼지가 일었다.

순간적으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고

그 순간들은 슬로비디오처럼 천천히 내 기억에 또렷하게 각인되었다.

나와 비슷하게 몇 사람이 지켜보고 있었지만

모두 아무것도 보지 않았다는 듯, 고개를 돌리고 다른 곳을 보았다.

왜 그렇게 했는지 우리는 잘 알고 있었다. 왜? 그 밑에 차들이 줄줄이 서 있었던 것 같았고

그렇다면 다섯 대나 열 대쯤 흙더미에 묻혔을 것이고, 몇 대는 강물 위로 쓸려갔을 것이다.

 

어제 밤새 내린 비로 강물은 엄청나게 불어나 있었고 속도도 빨랐다.

흙에 묻혔다면 꺼내면 되는데, 물살에 휩쓸리면 방법이 없었다. 

그래서 모른 척 모두 고개를 돌린 것이다.

 

그렇게 모두가 잠깐 모른 척 하는 정적의 짧은 시간이 지난 뒤,

하나 둘 현장으로 천천히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도 그쪽으로 조심조심 걸어갔다. (계속)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김지원 | 작성시간 25.08.27 선생님, 1~10회 까지도 다 흥미진지하고
    좋았지만, 특히 이번11회는 여러가지 면에서
    특별한 내용이 많습니다~~
    1985년~2005년~2025년의 흐름등~~
    인도일정을 함께한 저로서는 수행초기 단계에
    들어선 제가 보고,느꼈던 것과 선생님께서
    보고,느끼셨던 것의 차이가 이렇게 클수가~~

    두루두루 공부도 되고, 또 부럽기도하고
    수행 막차를 탄만큼 꾸준하게 수련을 해야
    겠다는 생각을 다시 한번 다져봅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8.27 재밌게 읽어줘서 너무 고마워요 ~~ 힘 내서 더 재있게 ~ 아자~~^^
  • 작성자안빈낙도 | 작성시간 25.08.28 선생님 흥미진진합니다.
    글이 너무 맛깔스러워 흡사 무협지를 읽는 느낌입니다.
    그러다 아차차차합니다.
    이게 그 경지일진데, 너무 쉽게 읽다보니 읽는 것으로 경지를 헤아리는 누를 범합니다.

    감사합니다.

    히말라야 수행기,
    다음글이 기다려집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8.28 감사합니다 ~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합니다 ~^^
댓글 전체보기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