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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사람은, 아픈 만큼만 성숙해진다.

작성자청랑|작성시간25.08.29|조회수177 목록 댓글 0

사고가 나거나 지금 같은 재난급의 상황이 닥쳐도 인도인들은 매우 침착했다.

침착보다는 느긋하다고 하는 편이 더 적합하다.

아니다. 느긋하다는 표현보다는 아무 생각 없거나, 답답하다는 게 더 적절해 보인다.

산이 무너져 도로가 50미터쯤 파묻혔는데도 그들은 큰 관심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다.

현장으로 모여드는 사람도 많지 않았고 더군다나 현장은 너무나 평온했다.

언제 왔는지 경찰 비슷한 복장을 한 사람이 한 명 있고 작은 중장비 한 대도 옆에 널브러져 있어

뭔가 빨리 복구가 될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지만, 이내 사라졌다.

 

이 사태를 해결하겠다는 몸짓이나 표정이 아니었다. 그런 사람은 그 현장에 아무도 없었다.

인부들로 보이는 몇 사람은 아스팔트에 앉아 카드놀이에 진심을 보였다. 

 

느긋한 거로 보아 다행히 사람이 강물로 쓸려가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러나, 쓸려갔는지도 모른다. 그렇더라도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으면 발이라도 동동 구르겠지만,

인도인들은 그냥 외계인처럼 행동한다. 외부인도, 외국인도 아닌, 우주에서 온 외계인 말이다.

이건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직접 본 얘기다. 

차가 지나가는 자전거를 받았는데, 뻑 하는 소리와 함께 자전거를 탄 사람이 공중으로 붕 떴다고 한다. 

모두들 죽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엎드려 죽은 듯이 있던 사람이 갑자기 벌떡 일어나더니 부서진 자전거를 끌고 절뚝이며 그냥 걸어가더란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냥, 제 갈길을 가더란다. 

 

흙더미만 바라보다 다시 나는 차가 있는 곳으로 돌아왔다.

운전하는 기사들도 바로 앞의 재난에 대해 크게 관심이 없어 보였다.

무슨 대책을 세워야지 않냐고 했더니 괜찮다면서 다 알아서 해 줄 거라며 오히려 나보고 침착하라며 다독인다.

캄 다운.

 

다 알아서 해 준다고? 현장에 가보지도 않고 무슨 자신감이지?

내가 보기에 50미터의 도로가 파묻혔다면 세계에서 가장 빠른 한국이라도 최소 하루가 걸릴 일이었다.

그런데 여기는 인도지 않은가.

그리고 아직 히말라야가 끝나지 않은 산속이라 중장비가 이곳까지 도착하는데도 한참이 걸릴 것이다.

 

이건 침착도 아니고 느긋함도 아니고 그냥 아무 생각 없는 것이다.

설마, 신(神)이 와서 해결해 줄 거라고 기대하는 건 아니겠지?

 

한국이라면 어땠을까?

119와 소방서와 행정당국에 발발이 전화를 걸어 빨리 해결하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청와대에 전화해 내가 낸 세금이 얼만데, 국민을 보호해야지, 소리치는 사람도 있을 테고, 

몇 사람은 벌써 무너진 흙더미와 바위들을 치우기 시작했을 것이다.

 

일본이라면? 아마 매뉴얼부터 확인할 것이다.

미국인은? 잘못은 외국인들에게 있으니, 그들이 와서 해결해야 한다고 하지 않을까?

글쎄. 거기까진 잘 모르겠다.

 

그나저나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내가 인도에 와서 이런 큰 사건을 겪기는 처음이었다.

인도에서 나는 언제나 행운과 신의 도움만 받는 행운아였다.

그런데 이건 뭐지? 더군다나 세 번의 딕샤와 Holly Name을 받자마자.

마하라지가 신과 하나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도록 능력을 발휘했어야지 않는가?

 

아, 갑자기 내가 너무 한심하다.

도대체 이런 얍삽한 마음은 도대체 어느 구석에 숨어있다 튀어나와 나불댈까. 마!

 

고난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문제다.

그러므로 고통을 대하는 태도에서 인간의 수준과 레벨이 결정된다.

 

가장 낮은 레벨이 남 탓하는 사람으로 좋아질 희망이 없다.

자기 탓으로 돌리는 사람은 좋아질 가능성이 있기에 그보다 높은 사람이다.

 

신의 의식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고 결과에 연연하지 않는 사람은 해탈에 이른 사람으로

최상의 레벨이다.

부처님은, 인간의 모든 것, 즉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모든 과정이 모두 고통이며,

심지어 즐거움도 고통이라며,

고통에도 즐거움에도 집착하지 않는 중도(中道)를 깨달았다.

고통을 통해 영원한 행복(니르바나)를 성취했으니, 최상승의 레벨이다.

 

예수님은 나의 고통을 넘어 다른 사람의 고통까지 끌어안고 희생하셨으니,

역시 최상승의 레벨이다.

고통이 사람을 만든다.

고통을 대하는 태도가 바로 그 사람의 인격이요, 현주소다.

 

꽃길만 걷기를 바란다면 어리석은 사람이다.

세상에 그런 길은 없다.

고통 없이 행복하게만 살고 싶은 사람도 어리석은 사람이다.

 

행복한 장면만 가득한 SNS에 빠지면 불행해진다.

현대인에게 가장 위험한 독약이다. 

 

어려서 부족함 하나 없이 키워진 사람은 마음에 병이 들어 반드시 불행해진다.

아픈 만큼, 고통의 무게만큼, 딱 고만큼 성장하는 게 인생의 실체다.

 

그나저나, 꼼짝없이 갇혔다.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돌아갈 수도 없다.

앞에서도 얘기했듯이 우리가 지나온 길은 이미 무너졌다.

우리가 운이 좋았다고 했지만, 사실은 그들이 더 운이 좋았다.

최소한 그들은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앞으로도 뒤로도 갈 수 없다. 꼼짝없이 중간에 갇혔다. 

 

길 위에서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다행히 아쉬람에서 받은 과자가 있어 배고픔은 해결되었지만, 여자들은 화장실이 문제였다.

운 좋게 차 트렁크에 두꺼운 비닐 깔판이 있었다.

사방에서 네 명의 남자들이 잡고 가려주면 그 안에서 해결했다.

 

불과 하루 전에,

혹시 이런 상황이라도 오면, 남자들은 눈을 감아야 한다고 했는데 현실이 되었다.

그런데 눈을 감았을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왜 중요하지 않게 되는지 잘 모르겠다는 사람은 상상력을 더 발휘해야 한다.

 

참으로 공교롭게도 이건 5년 전 나의 상황과 너무나 판박이다.

젊은 시절, 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이건 너무나 빤한, 초보적인 각본 아닌가요? 

나는 하늘을 보고 물었다. 

그러나 하늘은 엷게 흐려 있고 한가롭게 가랑비만 뿌렸다.

소설이라면, 시나리오라면 식상하겠지만, 이건 분명히 현실에서 진짜 일어난 Real 현실이다.

 

2019년. 나는 마하라지의 책 ’혼의 과학(The Science of Soul)’을 읽고 리시케시행을 결행했다.

내 인생의 마지막 승부처라고 나는 생각했다. 내 판단을 철석같이 믿었다.

내가 틀릴 거라는 생각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인생은 끊임없는 선택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택에 걸린 무제한의 책임을 짊어져야 한다. 

 

「야구시합에도 승부처가 있듯이 인생도 전부를 걸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있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 승부처에서는 내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한다.

   내가 30년 동안 공들인 직장에서 사표를 던지고 리시케시행을 결심한 것은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임을.

   그것도 9회말 투아웃의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사랑하라

그러나 나는 한발 늦었고 결과적으로 운이 나빴다.

마하라지가 닦아놓은 길은 사라졌고 잡초만 무성했다.

다시 되돌릴 수는 없었다.

나는 차가운 갠지스 강 옆 쓸쓸한 아쉬람에 갇혀 문득 이대로 영원히 사라져도 괜찮다고 생각했다.

그것도 나쁘지 않은 인생의 마무리였다.

 

그때처럼, 지금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세상은 왜? 늘, 새롭게 무엇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이런 시련이 닥치는 걸까?

 

「사람들은 오아시스의 야자나무들이 지평선에 보일 때 목말라 죽지.

   무언가를 찾는 도전은 언제나 초심자의 행운으로 시작되고,

   반드시 가혹한 시련으로 끝을 맺지.」 - 연금술사

 

다시 그때로 돌아가 어떻게 이 책을 마무리했던가 되새겨 보았다.

그런데 깊이 생각해보니 5년 전과 비슷했지만 똑같은 상황이 아니었다.

사건의 무게가 완전히 달랐다.

그때는 나 혼자만의 문제였지만, 지금은 여러 사람들을 책임진 입장이었다.

각자의 상황은 더 복잡하고 다양했다.

 

혼자라면 어떻게든 되겠지 마냥 기다리면 되겠지만

다음날 한국으로 꼭 돌아가야 하는 사람도 있고 중요한 해외출장이 잡힌 사람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죽을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상황은 더욱 악화되었고 빨리 돌아가야 하는 사람들은 더 초조해지기 시작했다.

이제 길이 뚫릴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보름이 지나도 그 길은 복구되지 않았다고 한다.  

 

시급히 돌아가야 할 사람은 세 사람이었다.

그곳을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원주민들이 이용하는 가파른 비탈길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그 길을 넘어 세 개쯤의 산을 넘고, 

그 곳에서 다른 차를 빌려 델리 공항까지 간다는 계획이었다.

많은 고민 끝에 세 사람은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중간에 무너져 2미터쯤 점프를 해야 구간이 제일 큰 문제였다.

남자 한 명은 괜찮겠지만 여자 둘은 위험했다. 더군다나 큰 캐리어까지 들어야 한다.

최대한 불필요한 짐을 버린다고 하더라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었다.

 

그것도 캄캄한 밤에 또 비까지 내린다면 최악이었다.

비가 많이 오면 결행하지 않기로 했지만,

이미 산은 많은 비를 머금고 있어 무너지거나 미끄러져 거센 강물로 떨어지면

시체를 찾기도 힘들 것이다.

 

중간에 짐승을 만날 수도 있고 강도를 만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래도 꼭 가야 한다며 세 사람은 어려운 마지막 결정을 내렸다.

우리의 걱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바닥에서 점프 연습도 해보이며 2미터 정도는 괜찮겠다고 했다.

 

인생은 끝없는 선택이다. 늘 우리는 선택하고 그 선택에 무한의 책임을 져야 한다.

옆에서 왈가왈부할 문제가 아니다. 그러나 내면에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래도 이건 아니지 않니?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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