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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안녕, 리시케시 – 神은 잠들지 않는다.

작성자청랑|작성시간25.09.02|조회수193 목록 댓글 2

드디어, 천신만고 끝에 우리는 리시케시 요가니케탄 아쉬람(Yoga Niketan Ashram)에 도착했다.

중간에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폭우와

거리를 가득 메운 시바 축제 인파 때문에 밤 9시가 되어서야 겨우 도착했다.

늙고 낯익은 경비원이 힘겹게 문을 열어 줬다.

벌써 세 번째이고, 6년 전에는 3개월 동안 머물렀던 곳이라 옛집에 돌아온 기분이었다.

희미한 가로등만이 몇 개 켜져 있고 아쉬람은 더 적막해졌다.

앞차의 기무라선생이 마하라지가 입멸해 계시는 명상홀에 차를 멈췄고 나도 차에서 내려 뒤따라 들어갔다.

 

명상홀에 들어서는 순간 깜짝 놀랐다.

마하라지가 계신 작은 홀에 들어가 참배를 하려고 했는데 홀 전체가 부서진 잔해들만 가득했다.

기무라선생은 넓게 만들려고 공사 중이라고 하셨다.

 

니케탄요가는 인도에 총 여섯 개의 아쉬람이 있고

그중에 가장 중요한 아쉬람이 바로 이곳 리시케시의 요가니케탄 아쉬람이다.

그래서 6년 전, 나는 직장을 그만둔 뒤, 니케탄요가를 배우기 위해 이곳으로 왔다.

그러나 나를 가르쳐줄 스승은 단 한 사람도 없었다.

 

심지어 요가선생이나 직원들도 아쉬람에 대해서 깊이 알지 못했다. 

탐정처럼 혼자서 찾고 공부할 수밖에 없었다.

 

어느날 아침. 평소처럼 명상홀에서 아침 요가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가려는데

흰 옷을 사제가 꽃과 향을 들고 유리로 된 문을 열고 벽속으로 들어 갔고

나는 뭔가 있다는 낌새를 느끼고 닫히는 유리문을 밀고 뒤따라 들어갔다.

작은 방안에 대리석으로 된 네모진 선반이 있고,

한쪽에는 시바신이, 또 중앙에는 마하라지의 밀랍이 놓여 있어

시바신을 모신 작은 신전으로 생각했다.

 

 - 사제가 눈으로 자신의 오른손 쟁반에 들고 있던 꽃을 가리켰다.

   나는 노란 꽃을 바치고 방금 사제가 했던 것처럼 대리석 아래에 엎드려 이마를 댔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꼬리뼈에서 뜨거운 기운이 폭발하더니 머리를 향해 곧장 올라갔다.

   엎드린 내 이마가 바닥에 딱 붙어 꼼짝도 할 수 없었다. - 그럼에도 사랑하라.

 

당시에는 시바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마하라지의 은총이었고 내게 보낸 격려였다.

네모진 대리석 안에는 마하라지가 입멸해 계셨지만,

그러한 사실을 아쉬람의 누구도 내게 가르쳐주지 않았다.

2023년에 후쿠오카에서 기무라선생을 만나 그 얘기를 했더니 놀라시며

마하라지가 바로 그 대리석 석관에 안치되어 있다고 하셨다.

울컥했지만, 초면에 실수를 하면 안된다는 생각에 간신이 참았다.

 

몇 몇 책에도 언급되어 있지만 마하라지는 평소 인간의 수명은 100세라며

자신도 그쯤 죽을 거라는 말씀을 여러 차례 하셨는데,

그래도 건강하셨기에 그렇게 갑자기 돌아가실 거라고는 아무도 생각 못했다.

기무라선생은 일본에서 소식을 들었다. 

1985년 4월 23일이었다. 

 

1975년도에 기무라선생은 리시케시에서 처음 마하라지를 만났다.

벨기에 국적을 가진 마하라지 제자의 소개로 왔고, 끝까지 공부하고 싶다고 했더니, 그렇게 하라고 하셨다.

마하라지는 누구의 소개로, 어떤 인연으로 온 사람인가를 중요하게 생각했다. 

 

승낙이 떨어지지 않아 많은 사람들이 돌아갔는데

대부분 머리가 길거나 수염을 기른 겉멋이 든 수행자들이었다.

 

기무라 선생보다 1년 앞선 1974년도에 17살의 라리타 마타지는 언니와 함께 리시케시로 왔다.

어릴 때부터 두 자매의 꿈에 마하라지가 나타나 자기를 만나러 오라고 했고

부모님을 어렵게 설득해 무려 이틀이나 걸려 리시케시에서 마하라지를 만났다.

그러나 전혀 뜻밖에도 마하라지는 자매에게 여자는 아쉬람에 머물 수 없으니 다시 돌아가라고 했다.

 

두 자매는 몹시 당황했다.

분명 꿈에서 오라고 해서 간신히 부모를 설득하고 인도 남쪽 벵갈루루에서

무려 이틀이나 걸려 리시케시까지 왔는데 여자는 아쉬람에 머물 수 없다는

인도의 관습을 내세워 다시 돌아가라고 하다니.

꼼짝없이 되돌아가야 할 상황에서 그들은 이곳에 오라고 한 분이 사실은 한 분 더 있었다고 고백했다.

마하라지는 그 분의 인상착의를 듣고는 그들에게 관습을 깨고 머물도록 허락하셨다.

또 다른 한 분은 바로 마하라지에게 모든 것을 전수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스승인 아트마난다지였다.

 

만남의 과정도 특별했던 라리타 마타지는 3년 뒤인 1977년에 바로 이곳 리시케시 아쉬람에서

12시간 동안 첫 사마디에 들었고, 6년 뒤인 1983년도에 10일간의 완전한 사마디에 들었다.

사마디 상태에서 마하라지는 154가지의 빛의 지식을 비롯해

스승 아트마난다에게서 받은 모든 요가의 지식을 전수하며, 이제 스승에게 진 큰 빚을 갚았다며 안도했다.

 

그때부터 마하라지는 갑자기 평생 해오던 요가수련을 멈추었고 급격하게 노화가 진행되었다. 

그리고 2년 뒤인 1985년 4월에 영원한 사마디에 드셨다.

 

자기가 죽으면 어떤 위치에 어떤 크기의 석관을 만들어 안치하라고 미리 지시는 했었지만,

건강하셨기에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스스로 요가수련을 멈춰 영혼을 육체에서 분리했지만,

무려 10일 동안 마하라지의 육체는 식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더 뜨거워졌다고 한다.

몸이 뜨거워 사후경직이 일어나지 않았기 때문에

급하게 석관을 만들고 홀 공사를 하는데 10일이나 걸렸지만,

몸이 뜨거워 가부좌 자세로 안치하는 데 아무 지장이 없었다.

 

그러나 안치 당일에도 몸이 너무 뜨거워 의사가 진짜 돌아가셨는지 심장에 청진기를 대보기도 하고

귀에다가 진짜 돌아가신거냐고 크게 소리도 질러보았다고 한다.

그러나 심장은 영원히 멎은 상태였고 마하라지는 대답이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얼음을 가져와 억지로 몸을 식혔다고 한다.

 

마지막까지 스승은 제자들에게 신의 존재와 요가의 신비함을 가르친 셈이다.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도 마찬가지였다.

요가난다는 무려 15일간이나 부폐하지 않았고 은은하게 향기가 돌았다. 

 

만약, 마하라지께서 요가수련을 멈추지 않았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건강하게 살아 계셨으리라 확신한다.

왜? 그게 쿤달리니의 효과이고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쿤달리니가 각성되면 우주의 에너지가 내 몸에 들어와 노화가 느려지고 늘 에너지가 넘쳐 건강하다.

이건 일반적인 기수련이나 명상의 체험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에

직접 경험하지 않으면 절대 알 수 없다. 

 

마하라지의 자서전에 보면 가장 가장 많이 언급되는 것도 바로 쿤달리니다.

마하라지의 요가를 쿤달리니의 요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또, 인도의 수행자들이 가장 많이 질문하는 것도 쿤달리니다.

크리야요가의 파라마한사 요가난다는 쿤달리니 각성 없이는 절대 완전한 사마디(해탈)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쿤달리는 요가의 핵심이다.

시바링감에 우유를 붓고 향과 꽃을 바치는 것도 쿤달리니를 각성시켜 달라는 염원이다.

시바신을 요가의 신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그렇고,

히말라야를 시바신이 다스린다고 하는 것도 카일라스산의 형태가 시바신의 링감을 닮았기 때문이다.

카일라스를 세계의 중심 수미산(須彌山)으로 부르는 것도 같은 의미다.

리시케시 갠지스 시바링감

1885년 쯤, 리시케시와 30킬로 미터쯤 떨어진 하리드와르의 중간에서 태어나신 마하라지는

중학교 2학년 무렵인 열다섯 살에 산스크리트 공부를 못하게 하는 아버지와의 불화를 피하기 위해

무작정 가출을 감행했고

어린 나이에 혼자 리시케시 위쪽 히말라야로 올라가 스승을 찾아다니며 명상했다.

 

그때는 호랑이를 비롯해 코끼리와 뱀 등 야생동물들이 많아

나무 위에 자리를 만들어 명상했다고 한다.

2019년에 나는 니케탄요가를 배우기 위해 무작정 왔다가

가르쳐줄 스승이 아무도 없어 마하라지가 명상했던 바로 그 장소를 떠돌며 혼자서 명상했다.

마하라지도 얼마나 가슴이 아팠으면, 시바신전으로 착각하고 자기 앞에 엎드린 나에게 은총을 베풀었을까.

 

1년짜리 비자를 받고 인도에 왔지만,

3개월만에 나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허탕만 치고 돌아간 줄 알았는데 이때 마하라지의 은총이 씨앗이 되어,

2023년에 마하라지의 일본인 제자 기무라선생에게 연락이 닿았다.

기무라선생은 일본에 머무는 기간이 한달이 되지 않을 정도로 매우 바쁜데

마침, 한국과 가까운 후쿠오카 요가니케탄 아쉬람에서

코로나로 5년 동안 중단된 스승에 대한 감사제를 하려고 하는데

올 수 있으면 방문해도 좋다고 했다.

 

E - 메일 한 통을 믿고, 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이고,

더구나 일본과 사이가 좋지 않은 한국인이고,

어지간해서는 자기 집에 외부인을 들이지 않는 게 일본의 관습인데,

더군다나 5년 만에 열리는 가장 중요한 행사의 참석을 허락했다.

 

그것도 갑자기 우리가 방문하는 바람에 일본 니케탄 요가 회원들의 참석을 대폭 줄여가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 짧은 메일을 보고 허락을 하시게 된 거냐고 주저하며 물었다.

의외로 대답은 너무나 간단했다.

 

“스승 마하라지께서 너를 보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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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댓글 리스트
  • 작성자양현주 | 작성시간 25.09.15 너무 신기합니다.
  • 답댓글 작성자청랑 작성자 본인 여부 작성자 | 작성시간 25.09.15 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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