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시합에도 승부처가 있듯이, 인생도 전부를 걸어야 하는 중요한 순간이 있다.
인생은 연습이 없다. 승부처에서는 내 영혼까지 갈아 넣어야 한다.
내가 30년 공들인 직장에 사표를 던지고 리시케시행을 결심한 것은 지금이 내 인생의 가장 중요한 승부처임을,
그것도 9회말 투아웃의 마지막 기회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 그럼에도 사랑하라.
위의 책에도 썼듯이, 2019년, 나는 내 인생의 마지막 승부를 위해 리시케시에 왔다.
요가 니케탄 아쉬람에서 아무 희망도 찾지 못하고 헤맬 때,
우연히 바로 옆 시바난다 아쉬람에 왔다가
세계로 뻗어나간 아쉬람의 위상에 한없이 부러웠다.
6년 만에 다시 나는 시바난다 아쉬람을 찾았다. 이번에는 혼자가 아니라 회원들과 함께였다.
세계적 명성에 걸맞지 않게 시바난다 아쉬람은 한산했다.
시바난다 요가의 본부인 시바난다 아쉬람은 요가니케탄과 담벼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아쉬람의 크기는 비슷하지만 유명세로 따지면 니케탄요가는 무명(無名)에 가깝다.
시바난다 요가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 많은 나라에 센터를 두고 있다.
작년에 기무라선생이 해인사 호텔에서 열린 한국요가협회 지도자 수련회에 참가해
인도 리시케시에 있는 니케탄요가 아쉬람을 아느냐고 물었을 때 한 명도 손을 들지 않았지만,
리시케시 시바난다 아쉬람을 아느냐고 묻자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다.
시바난다 아쉬람 바로 옆에 니케탄요가 아쉬람이 있다고 하자 모두 놀라워했다.
이처럼, 같은 담벼락을 쓰고 있지만 두 아쉬람은 너무나 다르다.
두 아쉬람의 창립자인 시바난다와 마하라지는 비슷한 시기에 태어났다.
마하라지는 인도 최북단 히말라야 근처에서 태어났고, 시바난다는 인도의 가장 남쪽 타밀나두에서 태어났다.
태어난 지역은 달랐지만, 두 분 모두 히말라야에서 스승을 만나 궁극의 깨달음을 얻고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에 전한 뒤, 시바난다는 1963년 76세에, 마하라지는 1985년 100세에 돌아가셨다.
누가 더 높은 도를 성취했는지 묻는 것은 어리석은 질문일지 모른다.
그러나 부처님이 세상에 없는 도를 깨쳤다고 선언하셨듯이, 도(道)의 성취도는 사람마다 분명히 차이가 있다.
또, 두 수행자와 두 요가를 비교하는 건 나름 시사점이 있고 배울 점도 있다.
우선, 수련 기간에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
시바난다는 말레이시아에서 의사로 근무하다 현대의학에 한계를 느끼고 37살에 귀국해 히말라야에서 영적인 탐구를 시작한다.
운 좋게 히말라야 리시케시 근처에서 곧바로 스승을 만나 3년 동안 수련한 뒤
리시케시에서 나환자들을 위한 무료병원을 지어
길거리에 넘치는 나환자들을 무료로 치료하며 수련도 지도한다.
반면에, 마하라지는 15살에 출가해 시바난다보다 10배나 긴 시간인 40년간 히말라야에서 수련한 뒤
60세 무렵부터 사람들을 가르치고 오로지 도력(道力)으로 수천 명의 환자들을 치료한다.
요가의 내용을 보면, 시바난다 요가는 너무나 쉽고 간단하며
굳이 시바난다 아쉬람이 아니라도 어디서나 배울 수 있는 평범한 요가다.
실력으로 따지면 세계랭킹 1위와 랭킹 100위의 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또 마하라지가 명확하게 스승의 이름과 계보를 밝힌 반면,
시바난다는 리시케시 인근에서 도사를 만나 크리야요가를 배웠다고 하나, 누구인지 밝히지 않았다.
이것은 도의 세계에서는 나의 조상을 밝히지 않은 것과 다름없다.
그러나, 앞에서 언급했듯이 지금까지의 승자(勝者)는 분명 시바난다 요가였다.
왜 이런 결과로 연결 되었는지 깊이 조사하고 숙고해볼 필요가 있다.
첫 번째 이유는, 니케탄요가의 수준이 너무 높다는 것이다.
너무 높아서 문제라는 게 쉽게 이해가 가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튼 마하라지의 대표 저서인 혼의 과학(Thd Science of Soul)은 이해하기도 어렵거니와
수십 년을 수련해도 웬만해선 접근할 수 없는 수준이다.
마하라지는 무려 40년 동안 수천 명에게 가르쳤는데, 겨우 라리타 마타지 단 한 명만이 비슷한 수준에 올랐을 뿐이다.
그만큼 대중화가 어렵다는 것인데 이것은 전 세계로의 영역 확장에 너무나 큰 약점이다.
반면에, 시바난다 요가는 너무나 쉽고 평범해 어디서나 쉽게 배울 수 있는 쉬운 요가다.
일반적이고 특별한 것도 없으니, 대중의 관심을 받기가 어려웠을 텐데,
시바난다 요가는 세계적인 요가로 발전했다.
무슨 이유일까? 그건 바로 헌신과 봉사의 실천이다.
예전에 리시케시는 한센병 환자들이 넘쳐나던 도시였다.
리시케시 아쉬람으로 향하는 길 양쪽을 새까맣게 메울 정도로 그렇게 나환자들이 많았다고 한다.
이들을 위해 시바난다는 1936년 무료병원을 설립했고 길거리에 넘쳐나는 환자들을 데려와 씻기고 닦고 치료했다.
요가는 별거 없었지만, 엄청난 선업(善業)을 닦은 덕분에 전국에서 기라성(綺羅星) 같은 제자들이 모여들었다.
제자 치다난다는 인도의 우표에 등장할 정도이고,
쿤달리니 탄트라의 저자인 사티야난다 사라스와티는 비하르 대학을 설립하고, 인티그럴 요가를 만들어 세계적인 요가로 키웠다.
그러나, 아직 담장을 맞댄 두 아쉬람의 승부가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다. 마지막 승부가 남았다.
찾는 사람이 급격히 줄어든 리시케시 시바난다 아쉬람처럼 시바난다 요가도 한계에 봉착했고,
대표제자인 사치야난다에 대한 이런저런 악소문도 심각하다.
무엇보다 창립자인 시바난다의 수련기간이 너무나 짧았던 게 바닥을 드러내는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수행(修行)이라고 하는 것은 히말라야에서 어떠한 고수(高手)를 만나더라도 3년 안에 이룰 수는 없다.
마하라지는 스무 살에 큰 스승을 만났지만, 무려 37년간 닦아야 했고, 55세에 더 큰 스승을 만나 마침내 최고의 도를 완성했다.
그러나, 너무 높다는 것도 문제였다.
니케탄 요가는 너무나 높고 어려워 오를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그러나, 기라성 같은 제자는 없었지만, 다행히 지혜로운 제자 기무라선생이 있었다.
선생은 니케탄 요가의 요가의 문제점을 파악하고 해결점을 찾아내 일본 내에서 대중화에 성공했고,
중국, 몽골, 유럽, 동남아를 비롯해 이제는 요가의 본고장인 인도에까지 발을 넓히고 있으며, 한국에도 상륙했다.
기무라선생은 담장 넘어 너무나 가까운 시바난다 아쉬람에서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다.
운명적으로도 선생은 시바난다 아쉬람과 인연이 있었다.
지혜의 요기(Giana Yogi)라는 이름(Holly Name)을 선택하는데도 시바난다 요가 회장의 비서가 도움을 줬다.
지혜의 요기라는 세례명답게 기무라선생은 지혜로웠다.
니케탄요가에 무엇이 부족한 지 잘 알았다.
높다는 것은 것은 치명적으로 자만과 교만으로 빠질 가능성이 높다.
아무리 높은 수련을 성취했다가 하더라도 자만하고 교만하면 추락하고 만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는 말은, 추락했을 때 더 크게 망하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기무라선생은
시바난다 아쉬람의 봉사와 헌신을 일본 니케탄 요가에도 도입했다.
일본 니케탄요가협회는 지금까지 30년 넘게 일본의 마약중독자, 교도소, 정신병원 등의 시설에서 무료로 요가를 가르쳤고
많은 중독자와 어려운 사람들을 도왔으며, 한국, 태국 등지에도 점차 봉사를 확장하고 있다.
또 일본니케탄요가는 의사출신인 시바난다가 의학과 요가를 결합한 것처럼,
의학과 과학적 연구와 요가를 연구했고, 의사, 심리학자, 정신과의사 등 다양한 의학의 전문가들을 모아 학회를 설립해
많은 연구성과를 거뒀다.
마하라지가 높은 도력으로 병자들을 치료했지만,
그 원리를 모르면 계승될 수 없기 때문이다.
계승될 수 없으면, 그 도는 흐르지 않고 멈추고 사장되어 버린다.
기무라선생은 마하라지보다 도력(道力)은 미치지 못하겠지만,
니케탄 요가의 체계와 지도 매뉴얼을 만들고 과학과 의학으로 체계를 잡고
봉사와 헌신을 도입해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한 단계 더 발전시켰으며,
현재까지 무려 50년간 이어지고 있고 계속 발전하고 영역을 넓혀가고 있다.
그리고 2024년. 드디어 니케탄 요가는 한국에 상륙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니케탄 요가를 한 단계 발전시키는 방법이 없을까.
어렵게 요가를 전한 정성에 대한 보답으로, 우리의 역할을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고,
다행히 최근에 방법을 찾았다.
밀교의 종주국이라는 티베트. 그것도 살아 있는 붓다(生佛)라고 불리는 달라이라마 곁에서
무려 38년간 머물며 밀교를 배웠던 청전스님은,
우리나라에도 밀교의 전통이 있었다며, 고려말의 보우스님과 조선시대 진묵스님까지 내려왔지만,
지금은 맥이 끊겼다며 시중의 단전호흡이 바로 그거라고 하셨다.
우리나라 불교에서 밀교의 맥이 끊어진 이유는 다른 나라와 비슷하다. 어렵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쉬웠지만 지금은 어려운 이유는 환경이 오염된 탓도 있고
물질 시대의 발달로 정신이 퇴보하고 타락한 이유도 있다.
이제는, 어느 하나의 방법으로는 쿤달리니의 각성(임독맥의 유통)이 너무 어려운 환경이 되었다.
그래서, 각 수련의 진액을 뽑아내고 융합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금 일본에서 발전한 니케탄요가는 테라피요가다.
그러나, 마하라지가 대표 저서 '혼의 과학' 밝혔듯이 니케탄요가는 최상승의 라자요가(Raja Yoga)다.
그래서 반드시 쿤달리니가 각성되어야 한다.
쿤달리니가 각성되지 않으면 육체 안에 존재하는 생기체와 감성체, 지성체, 환희체, 원인체 등
미세한 몸을 볼 수 없고, 볼 수 없으면, 니케탄요가를 터득하기 어렵다.
쿤달리니를 걱정하는 사람도 있다.
나쁜 마음을 가진 사람이 쿤달리니로 개발된 초능력을 남용할 수도 있으니까.
그러나 그건 기우(杞憂)다. 하늘이 그런 사람에겐 절대로 기회를 열어 주지 않는다.
설사 각성되었더라도 나쁜 마음으로 바뀌면 그 능력은 즉시 하늘에서 닫혀 버린다.
심전선화(心田善化)가 안되면 진기단법은 꿈도 꾸지 말라는 게 바로 그런 이유다.
또 쿤달리니가 잘못 각성될 수도 있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 부분엔 나도 동의한다.
지금까지 의도하지 않았는데 쿤달리니가 각성된 많은 사람들이 나를 찾아왔다.
불교, 위파사나, 심지어는 천주교 신자도 쿤달리니가 열려 고생하고 있다며 나를 찾아온다.
그래서 쿤달리니는 반드시 숙달된 전문가로부터 지도를 받아야 한다.
내일 수련하겠다고 말하지 말라.
당신이 말하는 내일은 결코 오지 않을 것이다. - 요가난다
https://youtu.be/8EnVCXqr0HM?si=MFdvHLFumrCs4z0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