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하루 종일 진행되었던 축하행사가 끝난 뒤, 드디어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서 이름을 받았다.
과연 내 이름은 무엇일까?
하루 종일 길고 긴 행사를 치른 뒤라 피곤했지만,
다들 기대와 설렘과 궁금함으로 다시 집중을 끌어올렸다.
내 이름은 카이발랴난다 요기(kaivalyananda Yogi)였다.
처음 들었을 때, 나는 적잖이 당황했고, 솔직히 약간 실망했다.
나는 지혜로운 사람이고 싶었고 ‘지혜’ 라는 단어를 좋아했다.
한국에서 받은 몇 개의 법명(法名)이 있는데 대부분 지혜를 뜻하는 내용이었고
이번에도 나는 그와 비슷한 뜻의 이름을 기대했다.
기무라선생이 마하라지에게 받은 이름도 기야나 요기(지혜의 요가 수행자) 였다.
얼마나 멋진가.
그리고 마하라지의 ‘사라스와티’라는 이름도 지혜를 뜻한다.
그런데 카이 뭐 어쩌고다. 뭐지? 낯선 단어였다.
그리고 사실, 그리 낯설지 않은 단어였는데
내 예상과 어긋나는 바람에 낯설게 느꼈던 것 같다.
얼핏 인체를 교정하는 서양의 카이로 프라틱이 떠올랐다.
- 대단합니다. 어마어마하게 큰 이름입니다.
그랬다.
기무라선생이 탄복하실 정도로,
카이발랴난다 요기(kaivalyananda Yogi)는 엄청나게 큰 이름이었다.
카이발랴난다(kaivalyananda)는 해탈, 모크샤를 뜻한다.
묵티카 우파니샤드에는 카이발랴 kaivalya 가 우파니샤드의 본질(本質)이며,
네 가지의 해탈(Moksha) 중에서도 가장 높은 상태라고 하며,
반드시 깨달은 스승으로부터 108개의 정통 우파니샤드 전부를
철저히 배우고 연구해야 획득할 수 있는 경지라고 한다.
힌두교의 Moksha
불교의 열반(Nirvana)과 같은 의미다.
나는 전통명리학에 바탕을 둔 성명학을 유명한 명리학자에게서 10년간 배웠다.
명리학과 성명학은 매우 어려운 학문이다.
명리학을 완전히 완전히 마스터해야 비로소 그 사람에 맞는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음양오행과 그 사람의 타고난 운명과 부족함과
넘치는 부분을 정확히 분석해야 그 사람에게 딱 맞는 이름을 지을 수 있다.
성명학의 역사는 공자의 정명론(正名論)까지 올라갈 정도로 역사가 깊다.
이름이 그 사람의 운명에 차지하는 비중은 5%라고 한다.
얼핏 비중이 작아 보이지만 한계에 이른 사람에겐 생사를 좌우한다.
아무튼, 이름은 적당해야 하고 분수에 맞아야 한다.
욕심 많은 부모가 아이의 타고난 품성과 그릇은 무시하고
무조건 크고 좋은 이름을 지으면 그 아이의 인생을 망치게 된다.
청룡, 용호, 대혁, 대길, 등등의 이름들이 성공한 사례는 거의 없다.
그런데 내가 받은 이름도 마찬가지,
커도 너무 큰 이름이다.
수천킬로미터 떨어진 곳에서 마타지는 어떻게,
무슨 기준으로 이름을 지으신 걸까?
그 사람이 살아온 이력과 정보를 보고?
아니면 생년월일로? 태어난 별자리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으로?
이름을 지은 글자가 산스크리터어로 되어 있어 더 궁금했다.
그래서 마타지에게 많은 질문이 쏟아졌다.
이게 무슨 의미죠? 이렇게 해석하고 살면 되는 건가요?
모두들 직접 이름을 지은 본인에게 명쾌한 대답과 설명을 듣고 싶었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전혀 예상밖이라 크게 실망할 수 밖에 없었다.
마타지의 대답은 짧고 명쾌했다.
- 나도 모릅니다. 나는 마하라지에게 그 이름을 받아서 대신 전달할 뿐입니다.
장내는 침묵이 흘렀다.
이 말씀을 이해하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다.
물론, 잠깐의 침묵만으로 이 문장 전부를 절대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 연재의 맨 첫 번째에 밝혔듯이, 나는 이번 인도 여정에 두 권의 책을 챙겼다.
한권은 붓다고사 스님의 '청정도론'이고 다른 한권은 '아비담마 길라잡이'다.
청정도론은 지극히 청정한 도(visuddhi)를 논한 것이고,
아비담마는 다르마(Dhamma-法)를 다룬 책이다.
즉, 두 책 모두 부처님이 말씀하신 열반(Nirvana)을 성취하기 위한 핵심의 책이다.
즉, 이 길에서 내가 밤낮없이 꿈에도 잊지 못하는 단 하나의 소원은,
바로 kaivalya, 즉 '해탈' 이었다.
신비롭게도, 각자에게 주어진 이름들은
각자의 내면과 인생을 오랜 세월 동안 깊이 들여다보지 않으면,
절대 나올 수 없는 이름이었다.
이름이 커다고, 이름의 의미가 작다고 기뻐하거나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모두의 이름에는 똑같이 그 이름의 의미를 부여잡고
깨달음, 즉 이번 생에 해탈을 꼭 달성하라는 목표이고, 지침이었다.
꼭, 해탈할 필요가 있을까?
맛있는 거 먹고, 행복하고 즐겁게 살다가 죽는 것이 인생의 최선이라고 주장할 수도 있다.
여기에 석가모니 부처님의 의견은
"즐거운 것은 유한하므로 고통이고,
즐거움만 추구하다 죽으면, 다음 생은 반드시 지옥에 태어나니,"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방일하지 말고,"
"열심히 자신을 등불 삼아 열반을 추구해야 한다"고 하셨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문자는 갑골문자다.
즉, 전쟁을 해야 되는 지 말아야 되는지를 하늘(神)에게 물었고
그렇게 기록한 것이 갑골문자다.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중국의 위협을 피해 티베트를 탈출할 때 하늘에 접신한 사람에게
탈출할 경로를 물었고, 탈출에 성공했다.
신이 추천한 탈출의 경로는 경비가 삼엄해 발각될 위험이 너무 높았고
사람들의 머리로 생각할 수 없는 예상밖의 길이었다.
달라이 라마는 주위의 반대를 무릎 쓰고 신성에 의지해 탈출에 성공했다. 나중에 그 길이 최선이었음이 밝혀졌다.
즉, 신성(神性)은 오래전부터 인간에게 주어진 축복이자 선물이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신과 접촉할 수 있을까?
당연히 YOGA다.
YOGA는 신과의 합일을 뜻한다.
즉, 신과 합일하는 것이 요가다.
이것을 아는 요가수행자가 의외로 많지 않다.
신과 합일을 달성한 요기(수행자)는 스승(구루)의 자격이 주어진다.
그래서 스승과 신은 하나로 여기고 신과 다름없이 존경하고 숭배하는 것이다.
1980년에 출간된 “Science Vital Force” 에는
라리타 마타지가 처음 12시간 동안
신과 합일(YOGA)하는 사마디의 체험 과정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자세히 읽어보면 너무나 사실적이며,
사마디를 통해 어떻게 신과의 합일이 일어나는지,
스승의 역할이 무엇인지, 스승과 제자가 동일한 의식의 세계에서 어떻게 만나는지를 자세히 묘사하고 있다.
“나의 제자인 라리타(라리타 마타지)는 우리 캠프에서 명상을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당시 스무 살이었습니다.
1977년 7월 19일, 그녀는 12시간 동안 삼매에 들었습니다.
우리 캠프에는 약 30명의 수행자가 있었고, 모두 경이로움에 휩싸였습니다.
그녀는 나무 아래서 명상을 하고 있었습니다.
몸의 어떤 부분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아침에는 햇살이 비치고 있었지만, 오후에는 이슬비가 내려 옷이 젖어 있었습니다.
비를 막기 위해 담요를 두르긴 했지만
그녀는 움직이지 않고 안정을 유지했습니다.
삼매에서 깨우기 위해 그녀의 머리를 만져보니 시원했습니다.
드디어 감았던 눈을 뜨자 그녀의 눈은 붉게 빛나고 있었습니다.
손은 꽉 쥐어져 있었습니다. 호흡은 매우 느렸고, 맥박 또한 느리고 약했으며,
손발은 힘없이 뻗어 있었습니다.
그녀를 다시 의식으로 돌아오게 하는 데 약 30분이 걸렸습니다.
그녀에게 물었습니다.
"이 12시간의 삼매 동안 무엇을 보거나 경험했죠?"
라리타가 말했습니다.
"당신이 저를 앉히고 머리를 만지자
몸에 평화와 진동이 느껴졌습니다.
당신이 제 머리를 쓰다듬자 진동이 멈췄고
프라나의 경련이나 흔들림도 멈췄습니다.
그리고 수축하는 것처럼 느껴지던 프라나도 정상화되었습니다.
그 후 브라흐마란드라에서 다양한 신성한 빛이 보였습니다.
보기 드문 선명함과 예리함을 지닌 여러 장면들이 제 앞에 나타났고,
저는 그것들을 보고 기뻤습니다.
그 후 저는 심장 주변으로 향했고,
그곳에서 신성한 지식이 저를 가득 채우고
그것과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모든 것을 잊고 저 자신조차 잊었습니다.
시간의 흐름도 전혀 몰랐습니다.
당신이 제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을 때 비로소 삼매가 끝났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 Science Vital Force
이후, 사마디 시간을 계속 늘려가던 라리타 마타지는
1983년에 12일간 완전한 사마디에 들었고
마하라지는 그녀에게 모든 요가YOGA, 즉 신과의 합일에 관한 모든 지식을 전수했다.
그때로부터 42년이 지났고,
오늘, 라리타 마타지는 마하라지를 통한 신과의 합일을 통하여
신성으로부터 부여된,
신성한 이름을 우리에게 전했다.
나는 물었다.
"마타지,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해탈에 이를 수 있습니까?"
마타지께서는 온화하게 웃으며 대답하셨다.
"요가 수행자는 누구나 카이발랴난다, 즉, 해탈을 목표로 한다.
나도 마찬가지이고 기무라선생도 마찬가지다.
욕망을 내려놓고 열심히 기도하라.
정진하고 또 정진하라.
하늘의 마하라지, 그리고 나, 기무라선생 모두 너를 응원할 것이다."
나는 이 한마디면 족했다. 더 이상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았다.
6년전 리시케시 아쉬람 작은 방안에서
내가 작은 빛도 찾지 못하고 절망 속에 갇힌 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간절하게 기도했을 때,
마음 저 깊은 곳에서 들려왔던 바로 그 목소리였다.
지금도 히말라야 어딘가에서 나를 지켜보고 계실 스승에게
내 영혼의 끈을 놓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정적 사이로 무언가 뜨거운 게 볼을 타고 흘러 내렸다.
“가라, 가라, 두려워하지 말고 가라. 길을 잃은 자만이 찾고,
도전하는 자만이 기회가 열릴 것이다.
힘들더라도 견뎌라,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가서 성취하라.
나는 언제나 너의 곁에서 너를 응원하고 보호하고 힘을 보탤 것이다.
주저하지도 뒤돌아보지도 말고 가라.”
히말라야의 위대한 스승은 그렇게 또 내 등을 떠밀었다. - 그럼에도 사랑하라, 중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