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날씨는 괜찮을 것입니다.
전날, 기무라선생은 4천미터 로탕 패스(Rohtang Pass)의 날씨가 괜찮을 거라고 하셨다.
내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당신 스스로 다짐하듯 우리에게 약속하셨다.
어라, 이게 뭐지? 뭔가 있는데? 하는 느낌이 스쳐 갔지만 순간적이고 낯설어 실마리는 잡히지 않았다.
그런데 몇 시간 뒤, 라리타 마타지께서도 내일 로탕 패스에 가느냐고 물으면서 정말 좋은 곳이라며,
기무라선생과 짜기라도 한 듯, 날씨는 괜찮을 거라는 약속을 다짐하듯 하셨다.
아, 그때야 나는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건 우주와 조화를 이룬 사람들이 하는 우주의식과의 소통이었다.
그러나, 그분들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쉽게도 비가 내리고 있었다.
사실은 밤부터 계속 비가 내렸다.
우리는 두꺼운 옷과 담요, 그리고 우비도 따로 챙겼다.
해발 4천미터에서 바람 불고 춥고 비까지 온다면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그 상황에서 요가와 명상은 무리였다.
’Rohtang Pass‘는 말 그대로 ’시체 더미‘를 뜻한다.
서쪽으로는 파키스탄과 중동으로 통하고, 북쪽으로는 티베트 중국과 연결되어 고대부터 무역상들의 교통 요충로였다.
그러나 워낙에 날씨의 변화가 심하고 높은 데다 길이 험준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어 붙여진 이름이었다.
3천미터가 채 되지 않는 백두산도 맑은 날이 거의 없어
천지를 보려면 3대가 덕을 쌓아야 가능하다고 한다.
그런데 해발 4천미터가 넘는 험준한 로탕 패스에서 맑은 날을 본다는 것은 더욱 어려울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거의 매일 비가 내리는 7월의 우기(雨期)이지 않는가.
숙소 마당 앞에는 현지인이 가져온 낯선 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탄 차는 에어컨이 나오지 않았다.
7월의 인도에서 에어컨이 나오지 않는다는 건 슬픈 일이다.
현지인의 차를 꼭 타야 규정은 안전 때문이기도 하고 검문소를 통과하는 기준이었다.
히말라야는 중국이 지키고 있는 티베트와 파키스탄 국경이 가까워
곳곳에 군인들이 검문을 했다.
올라갈수록 길은 점점 험해졌다.
빗물에 깊게 팬 곳이 많고 절벽 낭떠러지가 높아져도 현지인은 속도를 늦추지 않았다.
급격하게 고도를 높이는 바람에 어지럽고 토하는 사람까지 생기자 약간 속도를 늦추기도 했지만
금방 원래의 속력으로 돌아갔다.
사람은 한번 붙은 습관을 바꾸기가 매우 어렵다.
더군다나, 수행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거의 기적이나 다름 없다.
차창 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이 침엽수림으로 바뀌었다.
길은 밤새 내린 비로 인해 곳곳이 무너지고 보수한 흔적들이 반복적으로 지나갔다. 그래도 보수를 하고 있는게 어딘가.
이제 나무는 보이지 않고 민둥산과 비구름만 보였다.
에어컨 없는 낡은 차가 난간도 없는 미끄러운 절벽길을 무서운 속도로 질주했다.
Rohtang Pass, ’시체 더미‘ 라고 이름까지 붙을 정도면
계곡마다 얼마나 원혼들이 많겠는가.
위험에 정신이 팔린 사이 비가 그쳤다.
날씨는 괜찮을 것이라는 약속이 완성되었다.
그런데,
갑자기 질주하던 차도 멈췄다. 고도를 보니 해발 3천미터를 넘어섰다.
- 운이 좋으면, 산악대장이 신비한 꽃을 선물할 것입니다.
멈춘 차량에서 뛰어 내린 산악대장이
느닷없이 미끄러운 산 위로 뛰어 올라가기 시작했다.
그는 산악대장 답게 군복 비슷한 바지를 입고 있었다.
다리를 다친 살찐 토끼라도 본 것일까.
의아해하고 있는데 그가 바위 아래를 가리켰고
그곳에는 신비하고 아름다운 꽃이 금방 이슬에 얼굴을 씻고 피어 있었다.
기무라 선생이 스스로 한 두 번째 약속이 이루어졌다.
우리는 운이 좋았고, 산악대장은 우리에게 신성한 꼿을 선물했다.
그렇다고 꽃을 꺾은 것은 아니었다.
신비의 꽃은 멸종희귀종으로 전세계인들이 사랑을 독차지하고 있는 꽃이었다.
Himalayan Blue Poppy
’Himalayan Blue Poppy‘는 주로 히말라야 해발 3천미터에서 5천미터 사이에서 자라는데
눈이 녹은 직후의 짧은 여름 동안 꽃을 피우며,
꽃잎이 선명한 푸른 색이라고 하여 ’Blue Poppy‘라는 이름이 붙었다.
잎과 줄기에 털이 많은 게 특징인데 히말라야의 추운 날씨에 견디기 위해서다.
우리가 본 꽃도 약 1미터에 가깝게 자랐는데
3천미터 이상에서 자라나는 히말라야 야생 꽃은 길어야 10센티미터 내외인데,
고산지대에서 자라는 꽃 중에서 대단히 키가 크고
슬픈듯 푸르고, 투명하면서 아름답기까지 하다.
그래서 히말라야의 여왕이라고 불린다.
사실 아름답다는 단어보다 훨씬 깊고, 차갑고, 고요한 기품까지 느껴진다.
한마디로 이 세상 꽃이 아닌 것 같다.
어떻게 하면, 어떤 환경에서,
얼마나 많은 인고의 시간을 이기고 견뎌내야
저렇게 아름다운 꽃이 되는 걸까?
고산지대는 춥고 햇살은 강렬하다.
그래서 추위를 견디기 위해 가지에 많은 털이 있고
꽃과 잎에는 왁스층이 덮고 있어 자외선을 반사하고 비바람의 추위를 견딘다.
히말라야에 피는 꽃들은 모두 아름다운데
그 중에서 ’Himalayan Blue Poppy‘는 여태 내가 본 히말라야 꽃들 중에서도 단연 최상이다.
요즘 말로 2위와 현격한 차이가 나는 압도적 1위다.
나는 히말라야에 올 때마다 왜 유독 히말라야의 꽃들이 아름다울까 생각했다.
결론은 혹독한 환경 때문이다. 눈과 추위와 바람과 비는 너무나 혹독하다.
이 혹독한 환경을 이기고 짧은 여름에 최대한 아름다운 꽃을 피워야
벌과 나비의 도움을 받아 열매를 맺고 생명을 이어갈 수 있다.
그래도 Himalayan Blue Poppy는 이 세상 아름다움의 한계를 초월했다.
초탈했다고 해도 할까.
아무튼, 가만히 보고 있으면,
그 모습이 인간의 한계를 초월한 성인(聖人)같다.
그래서 신성하다는 찬사가 붙었을 것이다.
잠시 멈춘 차가 다시 미친 듯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야크가 보이기 시작하고 무리를 지은 말과 고산족이 보이기 시작했다.
바람이 많이 불고 추웠다. 한여름에도 이런데 다른 계절이면 오죽할까.
마하라지는 이곳에서만 40년을 보냈다.
눈과 추위와 배고픔과 늘 죽음의 공포가 상주하는 이곳에서 40년을 보냈다니.
이 혹독한 환경을 견디고 극복했기 때문에 마하라지는 범접할 수 없이 아름답고 높은 도(道)를 완성할 수 있었으리라.
요가에서는 사람도 나무와 똑같이 보는 경전이 많은데
일반적인 사람이 아니라
도(道)를 완성한,
즉 인간의 나무에서 아름다운 빛의 꽃을 피운 요가수행자(Yogi)를 뜻한다.
“위로는 뿌리를, 아래로는 잎사귀를 갖는 것은 불멸의 무화과나무이다.
바로 이 나무가 순수한 브라만이다.
사람들은 흔히 이 나무를 불사의 존재라고 부르며, 모든 이들이 이 나무에 몸을 의지한다.”-카타 우파니샤드
요가수행이 절정에 이르면 우주에서 머리(브라마란드라/百會)를 통해 우주의 기운을 곧바로 받는다.
이때 제3의 눈(靈眼)이 열리고 육체는 빛의 몸으로 바뀐다.
즉, 사람에게 빛의 꽃(空華)이 피어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 됩니까?
요한복음에 니고데모가 묻자, 예수님은 거듭 태어나야 한다고 했고,
늙은 니고데모가 그럼 내가 다시 어머니 뱃속에 들어갔다가 다시 태어나야 합니까?
재차 묻자, 너는 유대인의 선생이면서 그런 것도 모르냐며,
물과 성령(기름부음/쿤달리니)으로 거듭 나야 한다고 대답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은 쿤달리니 각성의 핵심 요지이다.
모세가 장대 끝에 뱀을 메달아 사람들을 낫게 했다는 것도
쿤달리니 에너지(뱀처럼 휘감고 올라감)를 획득한 모세가
이 에너지를 통해 사람들의 병을 고쳤다는 의미다. 예수의 기적도 마찬가지의 원리다.
요한복음에 사람들 안에 빛나는 생명이 있다고 했고,
마태복음엔 육체의 눈이 하나가 되면 몸 전체가 빛으로 가득찬다고 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쿤달리니 에너지의 상승으로 새벽에 샛별(빛)을 체험했다.
부처님은 깨친 뒤 첫 설법 초전법륜경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비구들이여,
전에 본 적 없는 법(法)의 빛이 나에게 일어났다, 하셨고,
현실에서 빛나는 해와 달과 불처럼, 똑같이 이 법의 지혜도 밝게 빛난다,고 하셨다.
마하라지는 ’혼의 과학‘에서
인체의 눈이 사물을 보기 위해서 빛이 필요한 것처럼,
쿤달리니 에너지가 상승해야 내 안의 여러가지 몸을
영안으로 볼 수 있는 것이라고 밝혔다.
국선도의 청운(靑雲)도인은, 하늘과 사람은 둘이 아니고 하나이며,
밝음을 받는 법을 알고, 올바로 닦으면 하늘과 땅의 참된 주인이 된다, 고 하셨다.
그러나, 한번 붙은 습관도 고치기 어려운데,
더군다나, 사람이 수행과 쿤달리니를 통해 완전하게 새롭게, 거듭 태어나는 것은 너무나 어렵고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꽃 Blue Poppy처럼,
혹독한 과정과 어려운 환경을 이겨내야 한다.
고통을 이겨내고 빛의 꽃을 피운 사람은 우주와 하나가 되어 무엇이든 이루어지게 할 수 있다.
기무라 선생과 라리타 마타지는,
오늘 로탕 패스의 날씨가 좋을 것이라고 했고
약속은 이루어졌다.
"쿤달리니 힘의 각성은 대단히 어렵고,
절대 우연히 각성할 수 없다.
능력 있는 구루(스승)에 의해
수년간 혼신의 명상으로 쿤달리는 각성할 수 있다.
쿤달리니가 상승하면,
영안이 열리고,
전체 우주가 나타난다.
예수는 척추에 감겨 있는 통로를 통하여
생명력을 거꾸로 흐르게 하여 불멸의 상태,
그리스도 의식,
'신의 아들' 을 달성하였다." - 파라마한사 요가난다 ’그리스도의 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