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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으름의 진화심리학

작성자이덕하|작성시간07.02.27|조회수697 목록 댓글 1
게으름의 진화심리학

게으름의 진화심리학

덕하

2007-02-27

 

 

 

게으름의 역설.. 1

환경 변화와 게으름.. 2

협동과 게으름 그리고 도덕.. 3

 

 

 

 

 

게으름의 역설

 

사람이 일하기 싫어하고 게으름 피우기를 좋아한다는 것은 상식으로 통한다.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볼 때, 이것을 당연한 것으로 치부할 수는 없다. 게으름은 필요한 일을 하지 않는 것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생물학적으로 볼 때, 필요한 일이란 곧 생존과 번식에 도움이 되는 일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얼핏 보면 게으름은 생물학과 정면으로 모순된다. 너무 게을러서 먹을 것을 찾지 않는 동물은 굶어 죽을 것이고, 너무 게을러서 섹스를 안 하는 동물은 자손을 남길 수 없을 것이고, (포유류나 조류의 경우) 너무 게을러서 자식을 돌보지 않는 동물의 자식은 죽기 십상일 것이다.

 

자연 선택은 생물을 매우 부지런하게 행동하도록 설계해야만 할 것 같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는 동물계에서 부지런함을 목격한다. 개미와 베짱이 이야기에서는 개미만 부지런한 것으로 나오지만 사실 곤충이 열심히 소리를 내는 것은 노는 것이 아니다. 이런 소리는 주로 영역 방어와 짝짓기를 위한 노력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왜 게으르단 말인가?

 

게으름은 또한 도덕적 문제이기도 하다. 보통 게으름은 비난의 대상이다. 왜 게으른 것을 비난할까? 옆에 있는 경쟁자가 게으름을 부리면 자신에게 유리한 것이 아닐까? 따라서 오히려 게으름을 찬양함으로써 더 게으르게 행동하도록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환경 변화와 게으름

 

어떤 사람이 직장 일을 땡땡이 치고 나이트 클럽에 가서 놀거나, 리니지 같은 게임을 한다면 그 사람은 게으르다고 비난받는다. 학생이 학교 공부를 하지 않고 친구와 뛰어놀 때도 게으르다고 비난받는다.

 

인간은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하였다. 남자들은 사냥을 하였다. 따라서 남자들은 열심히 사냥을 하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즉 사냥을 즐기도록 설계되었을 것이다. 이것이 현대의 남자들이 사냥을 스포츠로 즐기는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농경이 시작되면서, 그리고 산업 사회에 접어들면서 해야 할 일의 성격이 엄청나게 바뀌었다. 그래서 노동이 지겨운 일이 된 것이다.

 

컴퓨터 게임은 인간이 재미있어할 만한 것들을 이용해서 만들어졌다. 중독성이 강한 리니지 게임은 사냥과 매우 흡사하다.

 

나이트 클럽에 가서 부킹을 하는 것은 현대인의 관점에서는 노는 것이지만 진화론적 관점에서는 그렇지 않다. 유전자 경쟁에서 승리하려면 생존만으로는 부족하다. 생존은 짝짓기를 위한 전제일 뿐이다.

 

동물의 놀이에 대한 연구는 놀이가 곧 생존과 번식을 위한 훈련임을 밝혔다. 인간의 놀이도 예외일 수 없다. 인간은 놀이를 통해 사냥 기술, 싸움 기술, 사회 생활의 규칙 등을 익힌다. 놀이는 곧 학습이었다. 그런데 문명의 시작과 함께 인간이 배워야 할 것들이 급격히 바뀌었다. 그래서 공부는 지겨운 것이 되었다(이런 설명은 현재의 교육 체제 때문에 공부가 훨씬 더 지겨운 것이 되었다는 사실과 모순되지 않는다).

 

요컨대, 인간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만큼 게으르지 않다. 만약 진화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말이다. 인간도 개미와 베짱이만큼 생존과 번식을 위해 분투하도록 설계되었다. 다만 현대 산업 사회가 아니라 과거 사냥-채집 사회에서 진화론적으로 성공하도록 설계되었을 뿐이다.

 

 

 

 

 

협동과 게으름 그리고 도덕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게으름에 대해 비난할 때에는 특정한 것들만 비난한다. 게으름은 대체로 경쟁 상황에서가 아니라 협동 상황에서 비난받는다. 이것이 무슨 뜻인지 살펴보자.

 

어떤 두 남자가 한 여자를 두고 구애 경쟁을 벌인다고 가정해 보자. 이 때 남자 A가 남자 B를 “너는 왜 그렇게 구애를 하는 데 게으름을 피우니?”라고 비난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반면 어떤 두 남자가 공동으로 어떤 작업을 하는 상황을 생각해 보자. 이 때에는 “왜 너는 열심히 일하지 않고 게으름을 피우니?”라는 비난이 나오기 십상이다.

 

구애 상황에서는 B가 게으름을 피울수록 A에게는 유리하다. 반면 협동 작업에서 B가 게으름을 피운다면 A에게는 불리하다. 협동에는 무임승차자가 있을 수 있다. 무임승차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준다. 물론 그 피해를 대가로 무임승차자는 이득을 본다. 따라서 이런 무임승차자를 처벌하도록 우리의 도덕적 분노가 설계된 것이다.

 

협동 노동을 하는 개미는 게으름을 피우지 않는다. 왜냐하면 단수배수성(haplodiploidy, 반배수성)이라는 독특한 생식체계 때문에 일개미들이 서로 인간의 부모-자식보다도 더 가까운 혈연으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협동은 가까운 친족이 아닌 경우에도 존재한다. 그것이 불화의 씨앗이다. 논리적 순서를 말하자면 먼저 가까운 친족이 아닌 사람들 사이의 협동이 진화했고, 그 다음에 그 협동을 이용해먹는 무임승차 즉 게으름이 진화했고, 그 다음에 그 게으름을 처벌하기 위한 도덕적 분노가 진화했고, 그 다음에 그 도덕적 분노를 달래기 위한 죄책감이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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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NiceZic_연호 | 작성시간 08.12.24 정말 그렇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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