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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작성자이덕하|작성시간07.09.26|조회수374 목록 댓글 0
진화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진화 심리학이란 무엇인가

 

이덕하

2007-0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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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 심리학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1

감정과 충동.. 2

인지 심리학보다 인지 심리학적인.. 3

진화 심리학은 심리학의 부분이 아니라 심리학 전체다.. 4

서판과 모듈론.. 5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 5

인간과 동물의 연속성.. 7

가설 만들기 능력과 입증/반증 능력.. 8

이론 통합 능력.. 8

적응 만능주의?. 9

현대의 홍적세인.. 10

진화 심리학의 제국주의.. 11

 

 

 

 

 

진화 심리학이라는 단어는 사라질 것이다

 

심리학은 동물의 마음 즉 동물의 신경내분비계가 무슨 일을 어떻게 하는지를 연구하는 학문이다. 진화 심리학은 진화 생물학과 컴퓨터 과학을 심리학에 적용하려고 한다.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왜냐하면 동물의 신경내분비계 역시 진화의 산물이며 신경내분비계가 하는 일이 바로 정보 처리이기 때문이다.

 

진화 생물학의 탄생에 결정적인 기여를 한 다윈은 동물의 육체뿐 아니라 정신과 행동까지도 당연히 진화의 산물이라고 믿었으며 진화론을 바탕으로 심리학이나 윤리학을 재정립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19세기 초의 몇몇 심리학자가 그 길을 따르려고 했다. 하지만 무슨 이유인지 20세기 내내 진화 생물학은 심리학 연구에서 거의 배제되었다. 따지고 보면 진화 심리학에 특별한 것은 없다.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심리 역시도 진화의 산물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고려하려고 할 뿐이다.

 

컴퓨터 과학과 컴퓨터 기술의 발전, 그리고 신경학의 발전으로 20세기 중반에 심리학에 중요한 혁명이 일어난다. 그것은 인지 혁명이다. 인지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뇌를 컴퓨터 즉 정보 처리 기계로 보는 법을 배우게 되었다. 신경학적 발견을 고려해 볼 때 이것 역시 너무나 당연한 전제다. 인간의 뇌는 글자 그대로 컴퓨터다.

 

다시 말하지만 진화 심리학에 특별한 것은 없다. 너무나 당연한 사실 즉 동물의 육체와 생리뿐 아니라 뇌와 심리도 진화의 산물이다라는 명제와 뇌 또는 신경내분비계가 하는 일은 정보 처리다라는 명제를 받아들이고 그 명제의 함의를 끝까지 추적하려고 할 뿐이다. 오히려 특별한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에 적대적인 심리학자들이다. 그들은 여러 가지 이유로 이 두 가지 명제를 온전히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는다.

 

심리학자들 다수가 너무나 당연한 이 두 명제를 받아들이는 것은 시간 문제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진화 심리학이라는 단어가 쓸모가 없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심리학자들이 진화 심리학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되면 진화 심리학이라는 용어는 사라지고 지금 우리가 진화 심리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그냥 심리학이라고 불리게 될 것이다.

 

 

 

 

 

감정과 충동

 

1980년대 쯤에 진화 심리학이 탄생하기 전에, 또는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1960년대에 조지 윌리엄스, 윌리엄 해밀턴, 로버트 트리버스 같은 사람들이 생물의 이타성을 진화 생물학적으로 해명하기 전에 심리학은 두 부류로 나뉘었다. 주류를 형성하던 쪽은 행동주의와 인지 심리학이었으며 정신분석 계열이 비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정신분석은 그 모든 엉터리 방법론과 엉터리 이론들에도 불구하고 20세기 지성계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 인기의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정신분석에 적대적이었던 행동주의와 인지 심리학의 무능력이 중요한 이유로 보인다.

 

행동주의와 인지 심리학은 사람들이 정말 알고 싶어하는 것 즉 사랑, 미움, 질투, 도덕성 같은 문제들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았다. 특히 행동주의가 더 심했다. 그들은 인간 심리의 대부분을 불가지론적으로 대했다. 감정 같은 문제에 대해서는 과학적 연구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공백을 정신분석이 메꾸었다. 과학이 없으면 미신이 그 공백을 채우기 마련이다. 과학적 심리학이 감정을 설명하려고 하지 않자 미신 또는 사이비과학인 정신분석이 그 공백을 채운 것이다. 물론 정신분석이 사이비과학으로 필연적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창시자인 프로이트는 과학적 상상력은 지극히 풍부했지만 검증 능력은 지극히 빈약한 인물이었고 그의 제자 중 아무도 검증 능력을 보완해주지 못했다. 대체로 프로이트를 따랐던 사람들은 검증 능력에 있어서는 프로이트만큼이나 구제불능이었으며 과학적 상상력에서는 프로이트보다 떨어졌다. 과학이 발전하려면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여러 가설을 만들어낼 필요도 있지만 그 가설을 최대한 과학적으로 입증/반증할 필요도 있다. 정신분석은 입증/반증 절차에 있어서는 완전히 무기력했다.

 

반면 행동주의는 입증/반증 절차에 있어서는 과학의 지위에 걸맞는 능력을 갖추었지만 과학적 상상력 즉 가설 설정 능력에 있어서는 지극히 무능력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학습이라고 이름 붙인 매우 좁은 영역을 연구했다. 서판(blank slate, tabula rasa) 같은 잘못된 전제에서 출발할 것도 문제였지만 행동주의의 더 큰 문제는 심리학의 광대한 분야 중 대부분을 아예 포기한 것이었다.

 

진화 심리학의 탄생과 함께 정신분석이라는 미신에 맡겨졌던 감정의 영역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

 

 

 

 

 

인지 심리학보다 인지 심리학적인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신경내분비계가 정보 처리 기계라고 보는 인지 심리학의 명제를 충심으로 받아들인다. 사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지 심리학자들보다 더 인지 심리학적이다. 인지 심리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인지 과정을 정보 처리 이론을 바탕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여기서 더 나아간다.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감정과 충동 역시 정보 처리 과정이라는 너무나 당연한 사실을 받아들이며 그 함의를 끝까지 추적하려고 한다. 인지 심리학은 인간의 뇌를 블랙박스라고 본 행동주의보다는 일보 전진이었다. 뇌 회로를 몽땅 밝혀내지 않더라도 뇌에 대한 여러 가지 가설을 만들고 입증/반증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지 심리학자들 역시 행동주의자들처럼 인간의 감정과 충동을 설명하기를 꺼렸다.

 

인간의 감정과 충동이 뇌의 산물이라면 그리고 뇌가 정보 처리 기계라면 감정과 충동도 정보 처리 과정이다라는 너무나 당연한 명제가 도출된다. 진화 심리학은 인지 혁명으로부터 나온 이 당연한 명제를 받아들일 뿐이다.

 

참고로, 인지(cognition)이라는 단어를 CosmidesTooby가 기존의 용법과 다르게 쓰기 때문에 혼동이 초래되고 있다. 전통적인 인지 심리학자들이 인지라는 단어를 쓸 때에는 보통 감정과 충동을 배제한다. 반면 CosmidesTooby는 인지를 계산(computation)과 동일시한다. 여기서 계산이란 신경내분비계에서 일어나는 정보 처리 과정 즉 인간의 감정과 충동을 포함하는 과정이다.

 

 

 

 

 

진화 심리학은 심리학의 부분이 아니라 심리학 전체다

 

대중들에게는 진화 심리학이 주로 사랑, 질투, 살인 등을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이것이 진화 심리학의 전부가 아니다. 동물은 진화의 산물이다, 신경내분비계는 정보 처리 기계다라는 명제는 심리학의 모든 분야에 적용될 수 있다. 감각, 운동, 기억, 학습 등에도 진화 심리학의 명제가 적용될 수 있으며 적용되어야 한다는 말이다.

 

사실 진화 심리학을 개척한 사람들에는 언어를 연구한 노엄 촘스키와 시각을 연구한 David Marr도 포함된다.

 

 

 

 

 

서판과 모듈론

 

선천성을 부정하려는 경향은 행동주의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인지 심리학자들 역시 이런 경향이 있으며 20세기의 지성계 전체가 빈 서판이라는 전제에 지배당했다.

 

진화 심리학은 인간의 뇌가 수 많은 모듈들로 이루어졌으며 그 상당 부분이 진화에 의해 만들어진 선천적인 것들이라고 생각한다. 이것 역시 너무나 당연하다. 범용(general-purpose) 모듈 몇 개가 엄청나게 다양한 것들을 처리할 수는 없다. 인간의 생리를 위해서는 심장, 허파, 간과 같은 엄청난 수의 부품들이 필요하다. 인간의 심리를 위해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심장이 해독 작용을 할 수는 없고, 간이 피 순환 작용을 할 수는 없다. 피 순환에는 심장이, 해독에는 간이 필요하다.

 

심장과 간이 눈에 뚜렷이 보이는 반면 인간의 뇌는 뚜렷이 눈으로 구분되는 부품들로 이루어진 것 같이 보이지는 않는다. 회색 뇌세포들의 한 뭉치로 보일 뿐이다. 하지만 뇌도 여러 부품들로 이루어졌음에 분명하다. 우리는 여러 부품으로 이루어지지 않은 범용 장치가 어떻게 그렇게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는지를 상상도 할 수 없다. 시각 처리를 위한 모듈들과 청각 처리를 위한 모듈들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다. 또한 시각 처리를 위한 모듈들은 다리 운동을 제어하는 모듈들과 독립적일 수밖에 없다. 독립적이라는 말이 완전히 절연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다. 심장과 허파가 서로 독립적인 기관이라고 해서 둘 사이에 아무런 상호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것은 아닌 것이다.

 

인간의 뇌가 얼마나 많은 수의 부품들로 이루어졌는지는 먼 미래에나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언어학이나 시각학처럼 상대적으로 발달한 심리학의 분야에서는 언어 처리, 시각 처리를 위해 얼마나 많은 부품이 필요한지를 조금씩 밝혀내고 있다.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

 

사회 생물학이라는 용어나 진화 심리학이라는 용어나 매우 애매하고 다양하게 쓰인다. 아래의 내용을 읽을 때에는 이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일각에서는 사회 생물학이 나찌의 학문으로 낙인 찍히면서 진화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는 별로 맞지 않는 것 같다. 우선 진화 심리학이라는 용어를 만들어낸 사람들이 그 이야기를 부정하고 있다. 진화 심리학은 한편에서는 사회 생물학자들의 어떤 경향에 대한 반발로 태어났다.

 

사회 생물학자들은 인간의 행동에 초점을 두는 경향이 있다. 물론 인간의 행동에 초점을 두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진화론적 게임 이론에서 행동으로 곧바로 직행한다는 점에 있다. 그러면서 동물을 fitness-maximizer(적응도를 최대화하는 존재)로 보는 경향이 생겼다. 동물이 포괄 적응도를 최대화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이다. 어떤 측면에서는 그리 틀린 말은 아니지만 다른 측면에서 보면 매우 틀린 말이다.

 

생물은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는 우연적 과정과 필연적 과정을 포함한다. 유전적 부동(genetic drift) 등이 우연적 과정이고 자연 선택 등이 필연적 과정이다. 둘 중 어느 것이 더 본질적인지를 따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둘 모두 본질적이다. 하지만 우연보다는 필연이 더 연구하기가 쉽다. 과거의 진화 역사를 몽땅 재구성해낼 수 있다면 과거에 어떤 우연 때문에 어떤 돌연변이가 생겼고, 어떤 우연 때문에 어떤 유전적 부동이 있었는지를 모두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따라서 우연적 과정으로 우리는 거의 아무 것도 설명할 수 없다. 반면 자연 선택 과정으로 생물의 어떤 특성을 설명하기 위해 과거에 대한 모든 것을 알 필요는 없다. 이것이 진화 심리학을 포함한 진화 생물학에서 유전적 부동보다는 자연 선택이 인기가 있는 이유다.

 

자연 선택의 핵심은 번식 경쟁이다. 번식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살아남는다는 명백하고 뻔한 명제가 자연 선택의 핵심인 것이다. 번식 경쟁에서의 승리와 포괄 적응도를 높이는 것은 동의어다. 따라서 한편으로 볼 때 생물은 포괄 적응도를 최대화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예컨대 동물들은 생판 모르는 개체보다는 자신의 가까운 친족을 돌보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런 과정을 신비화해서는 안 된다. 어떤 신비한 과정이 있어서 동물이 포괄 적응도를 최대화하는 것은 아니다. 포괄 적응도를 높이기 위해서는 어떤 메커니즘이 필요하다. 또한 그런 메커니즘에는 오작동의 여지가 있다. 왜냐하면 모든 메커니즘에는 허점이 있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뻐꾸기 새끼를 돌보는 양부모 새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 양부모는 뻐꾸기 새끼에게 속는다. 그리하여 자신의 새끼가 아님에도 자신의 새끼처럼 키운다. 이것은 그 새의 자식 인지 메커니즘이 어떤 신비한 완벽한 것이 아니라 물리적 실체가 있는 불완전한 메커니즘이기 때문이다.

 

진화 심리학은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에 초점을 맞춘다. 진화론적 궁극 원인이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만들어내며, 이 심리적 메커니즘이 행동을 만들어낸다. 행동을 만들어내는 이 과정에서 매우 부적응적인 사태가 발생하기도 한다.

 

사회 생물학자들은 이런 심리적 메커니즘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 따라서 심리적 메커니즘이 신비화된다. 그러다 보니 부산물(by-product)을 적응(adaptation)으로 보는 경향이 생기기 쉽다.

 

 

 

 

 

인간과 동물의 연속성

 

진화 심리학의 두 명제는 인간의 다른 동물들이 연속선상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도록 이끈다.

 

창조론을 받아들인다면 인간과 다른 동물 사이에 엄청난 질적인 차이가 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신이 인간을 매우 특별하게 창조해서 동물과는 엄청나게 다르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반면 진화론은 동물들이 서로 친족관계에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의 지식을 바탕으로 볼 때 지구상의 모든 동물이 촌수가 다를 뿐 서로 친족인 것 같다. 인간과 침팬지는 약 6백만 년 전쯤에 갈라졌다고 한다. 인간과 고릴라는 약 9백만 년 전쯤에, 인간과 오랑우탄은 약 천2백만 년 전쯤에 갈라졌다. 갈라진 시기가 멀면 대체로 더 많이 달라진다. 뒤집어 이야기하면, 갈라진 시기가 가까우면 더 비슷하다. 우리는 인간과 더 가까운 친족일수록 인간과 더 비슷할 것이라고 대략적으로 예측할 수 있다.

 

동물의 뇌를 정보 처리 기계로 보는 인지 심리학도 인간과 동물의 연속성으로 인도한다. 과거에는 동물을 기계로 보는 반면 인간은 기계를 초월한 어떤 존재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 하지만 둘 모두 기계일 뿐이다. 뉴런들과 호르몬들의 상호 작용 속에서 정보가 처리되기는 인간이나 바퀴벌레나 마찬가지다. 서로 다른 정보를 다른 식으로 처리할 뿐이다.

 

 

 

 

 

가설 만들기 능력과 입증/반증 능력

 

진화 심리학은 기존의 심리학적 방법론을 몽땅 거부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존의 방법론을 거의 몽땅 받아들인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예컨대 행동주자들과 인지 심리학자들이 개발한 엄격한 통계학적 절차를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또한 이중맹검법(double blind test) 같은 신중한 절차 역시 거부할 이유가 전혀 없다.

 

진화 심리학만의 방법론으로 어떤 가설을 입증/반증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과학적 방법론이라면 어떤 것이든 몽땅 동원해야 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진화 심리학이 기존의 주류 심리학과 동일한 것은 아니다.

 

진화 심리학은 진화 생물학적 지식을 적극 활용한다. 진화 생물학은 종의 기원 이후 엄청나게 발전했으며 수많은 이론들이 만들어지고 검증되었다. 진화 생물학의 이런 이론들과 가설들은 심리학 가설을 만드는 데 엄청난 도움이 된다. 있을 수 있는 과학적 가설들은 무한히 많다. 진화 생물학적 지식은 이런 가설 공간(hypothesis space)에서 영양가 있는 가설을 골라내는 데 매우 유용하다. 물론 정보 처리 이론 역시 가설 설정에 도움이 된다.

 

진화 생물학이 가설 설정에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 입증/반증에도 도움이 된다. 동물의 심리가 진화의 산물이라면 동물의 심리는 진화 생물학의 이론과 충돌해서는 안 된다. 만약 어떤 동물의 심리가 진화 생물학의 어떤 이론과 충돌한다면 그 심리에 대한 심리학적 연구가 틀렸거나 해당 진화 생물학 이론이 틀렸음을 뜻한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진화 생물학을 상당히 깊이 공부한다. 반면 주류 심리학자들, 정신분석가들, 주류 사회과학자들은 진화 생물학에 대해 거의 모른다. 따라서 그들은 자신의 심리학 이론이 진화 생물학과 어떻게 충돌하는지에 대해서도 무관심하다.

 

 

 

 

 

이론적 통합 능력

 

기존의 주류 심리학에서 이룬 성과를 무시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엄청난 과학적 실험을 했으며 엄청난 데이터를 축적했다. 그런데 그 데이터를 이어줄 끈이 부족하다. 진주는 많은데 목걸이를 만들기 위해 진주들을 연결해 줄 끈이 없는 것이다.

 

다윈의 자연 선택 이론은 수많은 생물학적 지식을 엮어주는 끈의 역할을 한다. 이 끈이 생물학적 현상의 일부인 심리학적 현상을 위한 끈이 되지 못할 이유는 없다.

 

예컨대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얼마나 멍청한지를 보여주는 실험을 많이 했다. 그들의 실험 결과를 보면 인간은 매우 비합리적이다. 물론 그들의 실험 자체에 큰 결함이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왜 인간이 그렇게 바보 같이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그들이 설명할 수 없었다는 점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인간이 과학 탐구를 위해 진화한 것이 아니라 번식 경쟁에서의 승리를 위해 진화했다는 점을 주목함으로써 그런 인간의 불합리성을 설명할 수 있었다. 인간의 사고 방식이 엄격한 과학 이론을 정립하는 데 있어서 불합리성을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 불합리성을 번식 경쟁이라는 맥락에서 보면 합리성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것을 생태적 합리성이라고 부른다. 예컨대 맹수에게 당하는 것이 엄청난 번식 손실을 초래할 수 있다면 맹수의 위험을 과대 평가하는 것이 즉 어떤 측면에서 볼 때 맹수의 위험을 불합리하게 과장하는 것이 생태적으로 볼 때는 합리적이다. 정보는 한정되어 있어서 어차피 완벽한 판단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값싼 오류를 범하는 것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도록 하는 오류를 범하는 것보다 유리하다.

 

한편으로 사회 생물학자들은 궁극 원인에서 행동으로 직행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다른 한편으로 인지 심리학자들은 궁극 원인을 무시하고 근접 원인과 행동만을 설명하려는 경향이 있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이 두 가지 편향을 극복하려고 한다. 궁극 원인(진화론적 게임 이론), 근접 원인(심리적 메커니즘), 행동 모두를 통합적으로 설명하려고 하는 것이다.

 

 

 

 

 

적응 만능주의?

 

리처드 르원틴이나 스티븐 제이 굴드는 사회 생물학과 진화 심리학을 적응 만능주의라고 비판한다. 우선 용어에 대해 살펴보자. 진화 심리학자들과 굴드 같은 비판자는 적응론(adaptationism)이라는 단어를 매우 다르게 쓴다. 굴드의 adaptationism은 적응 만능주의라고 번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굴드에 따르면 진화 심리학자들은 부산물을 적응으로 설명하려는 오류를 엄청나게 많이 범한다고 한다. 그들은 자신들이야말로 적응 만능주의에 대한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고 본 듯하다.

 

하지만 적응 만능주의에 대해서는 조지 윌리엄스가 Adaptation and Natural Selection(1966)』에서 굴드보다 훨씬 일찍, 훨씬 더 상세하고 엄밀하게 논파했다. 또한 윌리엄스의 이 책은 진화 심리학자들이 성경처럼 받드는 책이다. 굴드와 르원틴이The Spandrels of San Marco and the Panglossian Paradigm: A Critique of the Adaptationist Programme(1979)」을 발표하기 13년 전에 나온 책이다. 물론 대중들에게는 굴드와 르원틴의 어설픈 비판이 윌리엄스의 골치 아픈 책보다는 훨씬 더 많이 알려졌다.

 

 

 

 

 

현대의 홍적세인

 

1만년 전쯤에 홍적세가 끝났다. 그 시점은 인간의 농경, 목축과 함께 문명이 꽃피기 시작한 시점이기도 하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흔히 현대인을 현대를 살아가는 홍적세 사람들이라고 묘사한다. 현대의 인간이 살아가는 환경은 산업 사회인 반면 인간이 진화한 환경은 사냥-채집 사회라는 것이다.

 

이런 묘사에는 오해의 여지가 있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지난 1만 년 동안 인간 진화가 전혀 일어나지 않았다고 믿을 만큼 바보가 아니다. 단지 1만 년(1세대를 25년으로 따지면 400세대)은 진화론적으로 보면 상당히 짧은 기간임을 강조할 뿐이다. 400세대의 진화도 진화다. 하지만 많은 것이 바뀌기에는 너무 짧다.

 

또한 사냥-채집 사회 이전의 수십억 년 동안 인간 조상이 전혀 진화하지 않았다는 것을 뜻하지도 않는다. 인간의 심리적 특성 중 대다수는 인간 이전에 진화한 것이다. 예컨대 천만년 전에도 우리 조상들에게는 시각이 있었으며 공격성이 있었다. 사냥-채집 사회가 인간의 최근 진화(지난 1만년을 무시했을 때)가 일어난 환경임을 강조할 뿐이다.

 

사냥-채집 사회와 현대 사회의 차이는 인간 행동의 부적응적 측면 중 상당 부분을 설명할 수 있다. 콘돔 사용, 마약 복용, 엄청난 규모의 비만 등은 급격한 환경 변화로 인한 부적응적 양태다.

 

우리는 우리 조상들의 환경을 100% 재구성할 수는 없다. 따라서 틈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이런 점을 두고 진화 심리학은 결코 과학이 될 수 없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비판을 하는 사람들은 진화 심리학의 가설 검증 방식을 심하게 오해하는 사람들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사냥-채집 사회에 대한 재구성된 상으로부터 인간의 심리에 대해 여러 가설들을 만들어낸다. 물론 재구성이 불완전하기 때문에 틀린 가설을 만들어낼 가능성도 있다.

 

하지만 진화 심리학자들은 가설을 만들고는 연구가 끝났다고 착각하지 않는다. “과거 조상들의 환경이 이랬으니까 인간은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진화시켰을 것이다라는 가설을 만든 다음에는 그 가설을 입증/반증하기 위해 노력한다. 인간은 아직 멸종하지 않았다. 따라서 실제로 그런 심리적 메커니즘이 있는지 여부를 현존하는 인간을 연구함으로써 밝혀낼 수 있다. 물론 기존 심리학자들의 방법론을 포함한 온갖 과학적 방법들을 동원할 수 있다.

 

 

 

 

 

진화 심리학의 제국주의

 

에드워드 윌슨은 심리학이나 사회학도 결국 생물학이라고 말했다. 뭐 틀린 말은 아니다. 사회도 정신도 결국 생물 현상이니까. 사회과학자들은 윌슨의 이런 말에 발끈했다. 생물학 제국주의라는 것이다. 흔히 발끈한 사회과학자들의 동기를 자신의 영역을 잃을까봐 설명한다. 나는 이런 설명에 동의할 수 없다.

 

진화 생물학은 다른 연구 영역 즉 심리학, 역사학, 사회학, 경제학이라는 영역 자체를 없애지 않는다. 진화 생물학이 없애는 것은 진화 생물학 이론과 모순되는 엉터리 이론들이다. 주류 심리학자들과 주류 사회과학자들이 진짜로 두려워하는 것은 또는 진짜로 두려워할 만한 것은 자신의 학문 영역 자체가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론들이 소멸되는 것이다. 20세기 지성계를 풍미했던 사회이론가들에게는 커다란 무기가 있었다. 다름 아닌 진화 생물학에 대한 무지였다. 그들은 진화 생물학과 정보 처리 이론에 무지했기 때문에 자신들의 이론이 진화 생물학이나 정보 처리 이론과 모순되더라도 개의치 않았다. 왜냐하면 모순된다는 사실조차 몰랐기 때문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그런 모순점들을 하나하나 드러내고 있다. 이제 주류 사회학자들은 더 이상 싸구려 이론을 팔아먹기 힘들어졌다. 물론 그들은 내 책이 더 이상 팔리지 않으니까 진화 심리학은 나빠라는 식으로 말하지 않는다. 진화 심리학은 나찌 이론이야, 진화 심리학은 그럴 듯한 이야기일 뿐이야 같은 공격이 더 효과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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