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젤의 뜀뛰기와 핸디캡 원리
뜀뛰기의 미스터리
늑대 같은 포식자가 다가오고 있을 때 가젤(gazelle)이 stotting을 하는 경우가 있다. stotting이란 위로 높이 뛰어오르는 것을 말하는데 적당한 번역어를 찾지 못해서 이 글에서는 뜀뛰기로 번역할 것이다.
얼핏 보면 뜀뛰기는 바보 같은 행동으로 보인다. 늑대가 쫓아오면 잽싸게 도망가는 것이 유리할 텐데 위로 뛰어오르니 말이다. 날지 못하는 가젤로서는 위쪽으로 뛰어오르는 것은 별로 현명해 보이지 않는 도주 방법이다. 위쪽으로 뛰어올라고 결국 중력 때문에 아래로 떨어지게 마련이고 늑대로부터 멀어지지 않는다. 또한 뜀뛰기로 체력을 낭비하면 도주에 더 불리해진다.
그렇다고 이런 행동을 극히 소수의 가젤들이 보이는 것도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그 가젤을 정신병자 가젤이라고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뜀뛰기는 가젤의 정상적인 행동으로 보인다.
늑대가 쫓아오는 위급한 상황에서 뜀뛰기 장기 자랑을 해서 얻을 것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생물학자들은 이 이상해 보이는 행동을 설명하기 위해 나섰다.
이타적 행동?
어쩌면 이런 행동은 다른 가젤들을 위한 이타적 희생인지도 모른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리는 대신 남들을 돕는 행동일 수 있는 것이다.
이타 행동 가설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가젤이 뜀뛰기를 해서 포식자의 위험을 주변 가젤들에게 알린다는 가설이다. 다른 하나는 가젤이 포식자의 주의를 자신으로 끌어들임으로써 남들을 보호한다는 것이다.
포식자를 발견한 동물이 주변 동물들(친족이나 친구)에게 포식자가 나타났다고 알리는 것이 여러 종에서 관찰되었다. 하지만 보통 뜀뛰기 같은 방식이 아니라 경보 외침(alarm call) 같은 방식이 쓰인다. 뜀뛰기는 경보 신호(alarm signal)로서는 부적절하다. 왜냐하면 소리는 다른 곳을 보는 동물도 들을 수 있는 반면 뜀뛰기는 그 쪽을 보는 동물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소리를 지르는 것은 비용도 덜 든다. 이것이 뜀뛰기가 경보 신호라는 가설이 별로 설득력이 없는 이유다.
어떤 새는 포식자가 다가올 때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자신이 다친 척 하여 포식자를 둥지에서 멀리 유인한다. 뜀뛰기를 이런 식으로 설명하기에는 문제가 있다. 만약 자신에게로 유인하려고 했다면 높이 뜀뛰기를 할 것이 아니라 다리를 절뚝거려야 할 것이다. 실제로 늑대는 뜀뛰기를 하는 가젤을 잘 쫓지 않는다. 늑대로서는 팔팔한 가젤을 쫓는 것이 별로 현명한 행동이 아니기 때문이다.
늑대에게 보내는 신호
Zahavi는 『The handicap principle: a missing piece of Darwin's puzzle(1997)』에서 뜀뛰기는 주변 가젤들에게 보내는
신호가 아니라 늑대에게 보내는 신호라고 해석했다. 가젤은
뜀뛰기를 함으로써 자신이 얼마나 건강한지를 과시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늑대는 그 신호를 보고 뜀뛰기를
잘 하는 가젤을 쫓아가기를 포기한다는 것이다. 즉 가젤은 자기 혼자 살자고 뜀뛰기를 하는 것이다. 이전에는 가젤의 뜀뛰기를 다른 가젤을 위한 이타적 행동으로 해석했는데
Zahavi는 이기적 행동으로 해석한다. Zahavi의
해석은 여러 면에서 그럴 듯해 보인다.
경보 외침의 경우에는 이해 관계를 공유하는 동물들끼리의 의사 소통에 쓰인다. 부모가 자식에게 경보 외침을 통해서 포식자가 가까이 있음을 알릴 때가 전형적인 예다. 이 때에는 어느 정도의 신뢰가 전제되어 있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포식자가 가까이 있다는 정보를 자식에게 잘못 전달할 이유가 별로 없다. 따라서 신호의 효율성이 중시된다.
반면 포식자와 피식자는 이해 관계를 공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속임수가 난무할 수 있다. 이 때 피식자가 포식자에게 신호를 보내기 위해서는 속임수가 아님을 보증해야 한다. 가젤이 자신이 건강하다는 것을 늑대에게 알리기 위해 어떤 특유의 울음 소리를 낸다고 하자. 그러면 부실한 가젤도 그런 울음 소리를 낼 것이다. 즉 속임수를 쓰기가 쉽다. 뜀뛰기의 경우에는 속임수를 쓰기 힘들다. 왜냐하면 부실한 가젤은 높이 뛰어오를 수 없기 때문이다.
늑대는 뜀뛰기 하는 가젤을 보고 매우 높이 뛰어오르는 가젤이 도망치기도 잘할 것이라고 결론 내릴 수 있으며 이런 결론은 합당하다. 실제로 늑대는 높이 뜀뛰기 하는 가젤을 잘 쫓지 않는다.
뜀뛰기라는 신호로서 양측 모두가 이득을 얻는다. 건강한 가젤이 뜀뛰기를 하면 늑대는 보통 쫓아오지 않는다. 그러면 가젤은 두 가지 이득을 얻는다. 늑대와 술래잡기를 하지 않으면 그 만큼 힘을 절약할 수 있다. 그리고 건강한 가젤이라고 하더라도 늑대에게 잡힐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부실한 가젤에 비해 확률이 낮을 뿐이다. 늑대가 쫓아오지 않으면 만에 하나 잡힐 가능성도 사라진다.
늑대도 얻는 것이 있다. 건강한 가젤을 쫓아가면 잡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 따라서 뜀뛰기 하는 가젤을 포기하고 좀 더 부실한 가젤을 고르는 것이 낫다.
불쌍한 부실한 가젤은 뜀뛰기를 하지 않는다. 괜히 해 봤자 자신이 높이 뛰지 못한다는 것만 드러날 뿐이다. 부실한 가젤은 늑대가 쫓아오면 최대한 잽싸게 도망갈 수밖에 없다. 늑대가 뜀뛰기를 하면서 여유를 부리는 가젤을 놔 두고 잽싸게 도망가는 가젤을 쫓아가지만 부실한 가젤로서는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 왜냐하면 건강한 가젤이 뜀뛰기라는 모방하기 힘든 신호를 보내는 전략을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핸디캡?
나는 Zahavi가 강조하는 바 중 하나는 옳다고 생각한다. 이해 관계가 충돌하는 개체끼리 신호를 주고 받을 때에는 속임수가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신호 자체가 정직성을 보장해야 한다. 뜀뛰기라는 신호는 “나는 건강하니까 나를 잡을 생각은 포기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라는 의미를 늑대에게 전달한다. 이 신호는 정직하다. 왜냐하면 오직 건강한 가젤만이 아주 높이 뛰어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Zahavi는 여기서 더 나아간다. 오직 핸디캡이 되는 행동만이 정직한 신호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뜀뛰기는 핸디캡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뜀뛰기를 하면 시간과 에너지가 낭비되기 때문이다. 늑대가 바로 가까이까지 쫓아오고 있는데 뜀뛰기를 하는 것은 결정적인 시간 낭비다. 또한 뜀뛰기를 하면 도망칠 때 써야 할 에너지도 조금은 낭비된다.
내가 문제를 제기하고 싶은 것은 과연 이런 핸디캡이 뜀뛰기가 정직한 신호가 되기 위해 본질적으로 필요한 것인지 여부다.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핸디캡이 정직성을 강화할 수는 있다. 정말 도망치는 데 자신이 있지 않고서야 늑대가 코앞까지 다가왔는데 뜀뛰기로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더 큰 핸디캡은 더 큰 정직성을 뜻한다.
하지만 별로 핸디캡이 되지 않는다 하더라도 뜀뛰기는 정직한 신호로 쓰일 수 있다. 늑대가 상당히 멀리 있을 때 뜀뛰기를 하더라도 만약 늑대가 높이를 제대로 측정할 수만 있다면 뜀뛰기는 정직한 신호로 인정될 수 있다. 또한 뜀뛰기를 한 번만 하더라도 늑대가 그것을 보기만 한다면 뜀뛰기의 정직성은 보장된다. 즉 시간 낭비와 에너지 낭비의 크기는 뜀뛰기 신호의 정직성을 보증하는 본질적 조건이 아니다.
공작의 꼬리의 경우에는 핸디캡이 정직성을 보증하는 본질적인 부분일지 모르지만 뜀뛰기의 경우에는 아닌 것 같다. 신호의 정직성을 보증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이며 핸디캡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기 공유
사냥-채집 사회에서 채집한 식물은 보통 가족들끼리 먹지만 사냥으로 잡은 고기는 보통 부족 내에서 골고루 분배된다. 이런 현상은 진화론적으로 볼 때 미스터리다. 매우 중요한 자원을 남들에게 주는 것은 바보 같은 행동으로 보인다. 사냥-채집 사회의 인간들은 고기에 많이 의존한다. 왜 남자들은 번식 경쟁에서 매우 중요한 아내는 남과 공유하지 않으려고 하면서 마찬가지로 중요해 보이는 고기는 남과 공유하는 것일까?
핸디캡 원리 지지자들은 이런 현상도 핸디캡으로 설명하려고 한다. 자신이 잡은 고기를 남에게 주는 것은 핸디캡이다. 즉 자신의 번식에 손해가 된다. 이런 손해를 보면서도 잘 살아남았다는 것은 자신이 그 만큼 뛰어나다는 것을 보장한다. 이것은 거추장스러운 꼬리를 달고도 살아 남은 수컷 공작이 자신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실제로 사냥-채집 사회에서 사냥을 잘 하는 남자는 지위도 높고, 더 예쁘고 젊은 여자와 결혼하고, 혼외 정사도 더 많이 한다. 즉 번식 경쟁에서 성공한다. 이것은 여자들이 사냥을 잘 하는 남자를 더 섹시하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하지만 핸디캡 원리를 적용한 이런 설명에는 문제가 있다. 사냥을 잘 해서 자기 가족하고만 먹어도 그것은 남들에게 알려진다. 왜냐하면 사냥 장면과 먹는 장면이 목격되기 때문이다. 이것은 늑대가 멀리 있을 때 뜀뛰기를 해도 늑대에게 정직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뜀뛰기의 경우 본질적인 정보는 자신이 얼마나 높이 뛰는가이다. 늑대에게 자신의 뜀뛰기 능력을 과시하기 위해 굳이 늑대가 코앞까지 오기를 기다릴 필요는 없다. 마찬가지로 남자는 자신이 얼마나 사냥을 잘하는지를 알리기 위해 굳이 사냥한 고기를 남들에게 다 나누어줄 필요는 없다. 남들을 약 올리면서 혼자 다 처먹어도 남들은 그가 얼마나 사냥을 잘 하는지를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