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주의와 무임승차 그리고 인간 본성 - 두번째
이야기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과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
머리말
어떤 분이 「사회주의와 무임승차 그리고 인간 본성」을 읽고 반박하는
글을 올리셨다. 나는 인터넷에서 그 분과 논쟁을 하게 되었고 결국 이 글을 쓰게 되었다. 이 글을 쓰게 된 계기를 제공해 주신, 그리고 이 글에 나오는 몇
가지 아이디어를 제공해 주신 그 분께 감사드린다.
나는 이 글에서 「사회주의와 무임승차 그리고 인간 본성」 중 “사람들이 사회주의 체제에서 무임승차하지 않는 이유” 섹션에서 쓴 내용을 더 상세하게 다룰 것이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사회주의
우선 무임승차자에 대한 “처벌”이 강력한 사회주의도 이론상 가능함을 지적해야겠다.
일할 능력이 없는 아기, 일할 능력을 잃어버린 노인, 중증 장애인, 중병에 걸린 환자가 무임승차하는 것에 시비를 걸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아기는 커서 일을 할 것이고, 노인들은 젊었을 때 일을 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보상을 받는 것은 당연하며, 운나쁘게 장애인이나 환자가 된 사람을 사회가 보살펴 주는 것은 일종의 보험이다.
너무나 게을러서 일을 안하거나 아무도 읽지 않는 소설을 쓰는 사람처럼 사회적으로 인정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들을 진정한 의미의 무임승차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이 글에서 앞으로 나는 무임승차자를 이런 의미로 쓸 것이다). 내가 선호하는 사회주의에서는 이들에게도 기본적인 의료, 교육, 의식주, 대중 교통은 공짜다. 반면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사회주의”에서 이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처럼 굶주려야 할 것이다. 직업 교육을 받거나 하지 않는 이상 말이다.
어쨌든 나는 무임승차가 허용되는 사회주의 사회가 왜 가능한지를 다룰 것이다.
무임승차자의 수학적 정의
엄밀한 정의는 아니지만 “평균적인 노동 시간 이하로 일하는 사람”을 무임승차자로 정의할 수 있을 것이다.
아주 단순화된 모델을 생각해 보자. 이 사회에서 하루에 이루어지는 총 노동 시간은 1000 시간이다. 이 노동으로 총 1000 원의 재화가 만들진다. 1 시간 당 1 원의 재화를 생산하는 것이다. 이 재화 중 500 원 어치는 공짜로 분배되고 500 원 어치는 시장에서 팔린다. 모든 노동자의 임금 총액은 500 원이다. 이 사회에는 노인, 어린이, 병자 등이 없다. 모든 사람이 건강한 어른이다. 사회 구성원은 모두 100 명이다. 숙력도, 노동 강도, 업종의 차이 등도 무시하겠다.
그렇다면 평균 노동 시간은 10 시간이다. 이 사회에서 10 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사람을 무임승차자, 10 시간 일하는 사람을 손해도 이익도 보지 않는 노동자, 10 시간 이상 일하는 사람을 초과 노동자라고 볼 수 있다.
각각의 사례에 대해 간단한 산수를 해 보겠다.
첫째, 극단적인 무임승차자의 경우. 이 사람은 전혀 일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공짜 서비스를 받는다. 이 사람이 받는 공짜 서비스는 5원 어치이다. 사회의 총 공짜 서비스가 500원 어치이고 사회 구성원이 100 명이기 때문에 500 / 100 = 5 이다. 이 사람은 5 원의 이득을 본다.
둘째, 평균적인 노동자의 경우. 이 사람은 10 시간을 일한다. 임금으로 5 원을 받는다. 총 노동 시간이 1000 시간이고 총 임금이 500 원이기 때문에 1 시간당 임금이 0.5 원이다. 따라서 10 시간 * 0.5(시간당 임금) = 5 원이다. 이 사람은 공짜 서비스 5 원 어치를 받고 유료 서비스 5 원 어치를 받는다. 총 10 원 어치를 생산하고, 총 10 원 어치의 서비스를 받기 때문에 손해도 이득도 아니다.
셋째, 알바뛰는 무임승차자의 경우. 이 사람은 5 시간을 일한다. 임금은 5 시간 * 0.5(시간당 임금) = 2.5원이다. 이 사람은 5 원 어치를 생산하고 총 7.5원 어치(공짜 5원 + 임금 2.5원)를 소비하기 때문에 약간은 무임승차하는 것입니다. 이 사람은 2.5 원의 이득을 본다.
넷째, 초과 노동자의 경우. 이 사람은 15 시간을 일한다. 임금은 15 시간 * 0.5 = 7.5 원이다. 이 사람은 15 원어치를 생산하고 총 12.5원을 소비하기 때문에 2.5 원을 손해본다.
무임승차의 장단점
먼저 무임승차의 장점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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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1 : 지겨운 노동을 안해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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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점 2 : 자신이 하고 싶은 일(하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다.
이번에는 단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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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1 : 가난하게 살아야 한다. 내가
그린 사회에서는 의료, 교육, 기본적인 의식주, 대중교통 등만 공짜다. 나머지는 돈을 내고 사야 한다. 무임승차자는 술도 못 마시고 극장도 못 간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어느 정도의 문화 생활도 공짜일 수 있으나 논의의 편의상 극장도 모두 유료인 것으로 가정하겠다. 내가
문화 생활이 모두 유료인 사회주의를 지지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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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점 2 : 사회적으로 경멸받는다.
우선 전문 노동자들의 경우에는 무임승차할
이유가 별로 없다. 왜냐하면 이들은 마르크스의 말대로 즐기면서 노동하기 때문이다. 단순 노동을 해야만 하는 사람들은 일을 하기 싫어할 것이다. 세상에
단순 노동을 좋아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본주의 하에서 단순 노동을 하는 이유는 안 그러면 굶주리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무임승차해도 된다. 그렇다면
단순 노동을 해야 하는 사람들이 모두 무임승차자가 되는 것은 아닐까?
자본주의 체제에서의 노동은 단순 노동에 대한
혐오를 강화한다. 노동시간이 길고, 노동강도가 높고, 수입이 적고, 위험하다. 사회주의
사회에서의 노동은 다를 것이다. 노동시간이 짧아지고, 노동
강도도 낮아지고, 수입이 늘어날 것이며(어쩌면 전문 노동자보다
더 많이 받을지도 모른다), 덜 위험할 것이다.
전문 노동자는 선망이 대상이다. 이것을 뒤집어 얘기하면 단순 노동은 경멸의 대상이다. 나는 사회주의에서도
이런 선망과 경멸이 완전히 사라질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본주의 하의 단순 노동자의 적은
수입은 그런 경멸을 더 강화한다. 사회주의에서는 단순 노동에 대한 경멸도 작아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단순 노동에 대한 혐오가 줄어들 것이다. 이것은
무임승차의 <장점 1>이 (자본주의에 비해) 줄어들 것임을 의미한다. 또한 노동 시간이 줄어든다는 사실은 무임승차의 <장점 2>도 줄어들 것임을 의미한다.
반면 사회주의에서는 무임승차의 <단점 1>도 줄어든다.
자본주의의 가난은 굶주림이지만 사회주의의 가난은 문화 생활 등을 누리지 못하는 것에 한정될 것이기 때문이다.
무임승차자에 대한 경멸이 사회주의에서 줄어들지
여부는 잘 모르겠다. 자본주의의 실업자들에게는 “일자리가 없어서”라는 핑계 또는
정당화가 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단순노동을 하기만 한다면 보수가 충분한 일자리가 모두에게 보장된다. 따라서 사회주의의 실업자(무직자가 더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는 더 경멸받을 수 있다. 반면 사회주의에서는 법률로 무임승차를 허용할
것이기 때문에 경멸이 줄어들 수도 있다.
무임승차의 장단점 중 어느 것이 클지에 대해서는
정량분석이 불가능하다. 또한 이것은 사회주의 사회의 평균 노동 시간이 얼마일지에 달려 있는데 이것은
그 사회에 사는 사람들이 결정할 문제다.
양의 피드백(positive feedback)과
음의 피드백(negative
feedback)
만약 사회주의 사회에서 무임승차자가 늘어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나는 여기에서 양의 피드백 요인과 음의 피드백 요인을 분석해 보겠다. 음의 피드백 요인은 늘어난 무임승차자가 다시 줄어들도록 만든다. 즉
음의 피드백 요인은 안정화 요인이다. 반면 양의 피드백 요인은 무임승차자가 계속 늘어나도록 만든다. 만약 양의 피드백 요인이 더 강하다면 결국 사회 구성원 모두가 무임승차자가 될 것이다. 이것은 사회의 붕괴로 이어진다.
양심의 진화와 음의 피드백
잠시 생물학을 살펴보자. 만약 이기적 행동을 제어하는 음의 피드백 요인이 없거나 부족하다면 이기적 행동을 촉발하는 유전자가 개체군에
퍼져서 모든 개체가 이기적 행동을 할 것이다. 이것이 숫사자가 유아 살해를 하는 이유다. 숫사자는 자신의 새끼가 아닌 아기 사자들을 죽여버린다. 왜냐하면
그런 행동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아기 사자를 죽이면 그 아기 사자(남의
자식이다)를 키우는 비용이 절감된다. 또한 아기 사자가 죽으면
암사자는 곧바로 임신할 수 있는 상태가 된다. 숫사자의 입장에서는 일거양득이다.
이런 잔인한 행동을 막을 수 있는 행동을
할 만한 존재가 있는데 바로 암사자다. 암사자의 입장에서는 자신이 애써서 수개월 동안 임신해서 몇 개월 (또는 몇 년) 동안 젖을 먹여 키운 아기 사자가 죽는 것은 커다란
손실이다. 암사자는 숫사자의 그런 행동을 막을 동기가 있다. 하지만
숫사자의 힘이 훨씬 더 세기 때문에 그런 행동을 막을 수 없다. 또한 아기 사자를 죽인 숫사자는 암사자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랑 섹스해서 아기를 낳을래 아니면 섹스를 거부해서 계속 아기 없이 살래.” 암사자는
울며 겨자먹기로 숫사자와 섹스를 할 수 밖에 없다. 음의 피드백 요인이 너무 약한 것이다.
반면 인간 남자들 사이의 협동의 경우에는
다르다. 남자들끼리는 힘이 비슷하다. 따라서 숫사자, 암사자 사이의 힘의 심한 불균형은 없다. 인간 남자는 다른 인간
남자가 아주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면 그것에 보복할 수 있다. 인간에게는 싸가지 없는 행동을 판단하고 기억할
수 있는 정신적 능력이 있다. 또한 싸가지 없는 행동에 대한 도덕적 분노라는 메커니즘도 있다. 이것이 배은망덕한 행동을 막는 음의 피드백 요인이다. 그리고 이것
때문에 인간의 양심이 진화한 것이다.
양의 피드백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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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피드백 요인 1 : 무임승차가 늘어나면 경멸이 줄어들 수 있다. 너도 나도 무임승차하게 되니까. 깨끗한 거리에서는 담배꽁초를 결코
버리지 않는 사람도 거리가 지저분하면 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않고 담배꽁초를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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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 피드백 요인 2 : 늘어난 무임승차자는 무임승차자들을 위한 정책에 투표할 것이다. 만약 그런 정책이 통과하면 무임승차는 더 매력적인 것이 될 것이다.
음의 피드백 요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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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피드백 요인 1 :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면 생산량이 줄어든다. 그러면 “기본적인 의식주”의 수준이 낮아진다. 무위도식자는 더 질낮은
음식을 먹으며 더 좁은 집에서 더 허름한 옷을 입고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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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피드백 요인 2 :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줄어들면 열심히 일하는 사람에 대한
선호가 더 커진다.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 소위 희귀 자원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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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의 피드백 요인 3 : 무임승차자에 대한 일하는 사람의 분노가 커진다. 아홉 사람이 한 명을 먹여 살릴 때는 가만 있던 사람도 자신 혼자 아홉 사람을 먹여살려야 한다면 정말 열받을
것이다. 이것은 “기본적인 의식주” 수준을 낮추는 역할을 할 것이다. 분노는 공격을
위한 메커니즘이다. 일하는 사람들은 공짜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줄임으로써 무임승차자의 삶을 더 비참하게
만들려고 할 것이다.
권력 관계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면 전체 사회의 생산량이
줄어든다. 그렇다면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 공짜 서비스를
줄이거나 유료 서비스를 줄이거나. 공짜 서비스를 줄이면 무임승차자의 생활 수준이 하락한다. 반면 유료 서비스를 줄이며 일하는 사람들의 생활 수준이 하락한다(물론
상황은 이분법적이지 않겠지만 논의의 편의상 단순하게 서술하겠다).
무임승차자가 늘어나면 무임승차자를 위한 정책(즉 유료 서비스를 줄이는 것)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늘어날 것이다. 반면 무임승차자에 대한 일하는 사람들의 분노는 커질 것이다. 그렇다면
어떤 식으로 결판이 날까?
결국 누구에게 힘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나는 일하는 사람들에게 더 큰 권력이 있을 것이라고 본다. 왜냐하면
첫째, 일하는 사람들은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다. 똥개도 “도덕적으로” 우월한 위치에 있을 때 즉 자신의 영역의 중심점에 있을 때는 엄청난 힘을 발휘한다. 그럴
때에는 허약한 개도 힘센 개에게 덤빈다. 실제로 그럴 때에 힘센 개가 물러서는 경우가 많다.
둘째, 일하는 사람들은 실제로 사회를 운영하는
사람들이다. 열받은 노동자들이 파업하면 사회가 마비된다. 하지만
열받은 무임승차자들이 파업(예컨대 단체로 컴퓨터 게임을 중단하기)한다고
해서 거들떠 볼 사람은 없다.
결론
나의 결론은 사람들이 극도로 이기적이라 하더라도
내가 선호하는 사회주의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 사회에서도 무임승차자를 제어할 수 있는 메커니즘은
있다. 물론 무임승차자가 한 명도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회가 위기에 처하는 일은 없을 것 같다.
나는 사람들이 이렇게 극도로 이기적이라고
믿지 않는다. 인간에게는 욕심, 욕구, 이기심 등이 있는 반면 동정심, 죄책감, 정의감 등도 있다. 그리고 이런 인간들의 본유적 정신적 메커니즘들의
상호작용들은 너무나 복잡하기 때문에 그것이 사회주의 사회에서 어떤 식으로 나타날 지를 예측하기는 너무 힘들다.
나는 이 글에서 인간의 악마적인 측면만 부각시켜서
논의를 했다. 왜냐하면 인간이 악마적이라 하더라도 사회주의가 가능함을 보여준다면 그 설득력이 더 강력할
것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