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망의 진화심리학
절망의 역설
절망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을 포기한다. 얼핏 생각하면 이것은 이기적 유전자에게 손해를 끼치는 행태인 것 같다.
사자에게 쫓기는 사람을 생각해 보자. 그 사람은 심한 부상을 당해서 도망가기가 힘들다. 그 사람은 결국 절망에 빠져서 도망가기를 포기한다. 모든 것을 포기한 그 사람은 사자를 공격하지도 않고 가만히 잡혀 먹는다.
심한 부상을 당했기 때문에 죽어라고 도망가거나 사자에게 반격을 시도하더라도 성공할 가망성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망성이 0 %는 아닐 것이다. 희망을 버리지 않고 조금만 더 도망치다 보면 좋은 일이 생길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잠시 후에 사자가 심장 마비를 일으켜 죽을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이 구해 줄 수도 있다. 반격을 했는데 운 좋게도 사자의 눈을 제대로 찔러서 사자가 도망칠 수도 있다.
살아남을 확률이 0.1 %밖에 안 되더라도 살기 위해 발버둥치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에게는 도움이 될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절망에 빠진다면 살아날 확률이 0 %이지만 발버둥치면 그 확률이 0.1 %로 커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절망에 빠진다는 사실은 진화론적으로 보아 역설적인 것으로 보인다. 이 역설을 해결하는 한 가지 방법은 절망을 일종의 병리 현상으로 보는 것이다.
적응으로서의 절망 메커니즘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해 보면 절망이 적응일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달을 수 있다. 혈연 선택이 그 해답에 대한 열쇠를 제공해 준다.
위의 예에서 만약 나 혼자만 사자에게 쫓긴다면 살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적응적이다. 하지만 나의 형이 같이 있다면 어떨까? 만약 내가 살려고 발버둥친다면 형이 나를 구하다가 같이 죽을 수도 있다. 반면 내가 모든 것을 포기한다면 형이 살아남을 가능성이 더 커질 것이다.
절망과 치유
절망에 빠진 사람의 경우 희망을 품고 있는 사람에 비해 치유가 잘 안된다고 한다. 이것이 얼마나 과학적으로 입증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의사들 사이에서는 상식으로 통하는 것 같다.
여기서도 상황은 위와 비슷하다. 회복 가망성이 거의 없는 병에 걸렸을 때 빨리 죽는다면 가족이 덜 고생하게 된다. 그 가족은 나와 유전자를 많이 공유하기 때문에 절망에 빠져서 병이 더 급속히 악화된다면 결국 이기적 유전자에게 이득이 될 수 있다.
절망과 자살
나는 「콘돔과 자살 - 진화심리학적 고찰」에서 자살을 고통-회피 메커니즘의 부작용으로 설명할 수 있다고 썼다.
하지만 절망에 빠진 사람들의 자살을 적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절망이 치유에 악영향을 끼치는 것을 무의식적 자살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무의식적 자살이 적응이라면 의식적 자살도 적응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http://en.wikipedia.org/wiki/Learned_helplessness 에 학습된 무기력에 대해 간단히 설명되어 있다.
동물이나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상황에 장기간 노출되면 절망에 빠진다. Martin Seligman은 이것을 무기력이 학습된다고 보았다. 행동주의적 사고 방식이다.
나는 이 현상을 절망 메커니즘의 발현으로 볼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입증/반증할 것인가?
친족은 나와 유전자 일부를 공유하지만 나는 나 자신과 100 %의 유전자를 공유(?)한다. 따라서 친족을 위한 나의 희생은 무제한적이지 않다. 그러므로 절망 메커니즘은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만 발현되어야 한다. 하지만 이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따라서 사람들이 정말 절망적인 상황에서만 절망에 빠진다는 사실은 “절망 메커니즘은 적응이다”라는 가설에 부합하기는 하지만 그 가설을 입증해 준다고 볼 수는 없다.
절망 메커니즘은 나의 상황이 얼마나 절망적인지를 따지기도 해야겠지만 내가 친족에게 얼마나 폐를 끼칠지도 따져야 한다. 나를 도와주는 사람이 나와 더 가까운 친족일수록 이기적 유전자에게는 손해가 더 커진다.
사자에게 쫓기는 예를 다시 따져보자. 만약 나 혼자 도망치고 있다면 나를 구하다가 죽을 사람이 없을 것이다. 만약 나와 사촌형이 같이 도망치고 있다면 나의 사촌형이 같이 죽을 수 있다. 만약 나와 친형이 같이 도망치고 있다면 나의 친형이 같이 죽을 수 있다. 만약 나의 친구가 같이 도망치고 있다면 친구가 죽을 수 있다.
이 때 친형이 죽는 경우는 이기적 유전자의 입장에서 보면 가장 손해가 큰 경우다. 반면 나 혼자 도망치는 경우에는 살려고 발버둥친다고 해도 이기적 유전자가 손해를 보지 않는다. 따라서 친형과 같이 도망칠 때에는 가장 쉽게 절망에 빠져야 하고 혼자 도망칠 때에는 절망에 덜 빠져야 한다.
이것은 상식과 반대인 것 같다. 우리는 보통 의지할 사람이 없을 때 더 쉽게 절망에 빠진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절망 메커니즘의 적응 가설은 그 반대를 예언한다.
친구는 나와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다. 따라서 친구가 죽더라도 이기적 유전자는 큰 손해를 보지 않는다. 절망 메커니즘은 도와줄 사람이 나와 얼마나 친하냐가 아니라 나와 얼마나 가까운 친족인가를 따질 것이다.
치유의 예에서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만약 내가 고아라면 내가 살려고 발버둥친다 해도 이기적 유전자는 손해볼 것이 없다. 반면 가족들이 나를 돕고 있다면 이기적 유전자가 손해를 볼 수 있다. 따라서 고아일 때에는 쉽게 절망에 빠지지 않는 것이 이기적 유전자에게는 유리하다. 또한 가족과 사이가 나빠서 가족이 나를 도와주지 않는 상황에서는 내가 살려고 발버둥쳐도 가족에게 손해를 끼치지 않는다. 만약 절망 메커니즘의 적응 가설이 맞다면 상식과는 반대로 가족이 없거나 가족이 나를 외면할 때 오히려 절망에 잘 빠지지 않을 것이고 병은 더 잘 치유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