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중 기억할만한 것
23. 건강할 때 마지막 의사를 밝혔더라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중 23번째
나는 저술이나 강연 등 기회가 닿을 때마다 사람들에게 존엄한 죽음을 위해 임종의 순간을 고민하고 자신의 마지막 의사를 명확히 해두라고 간곡히 호소한다. 하지만 주위를 둘러보면 극단적인 상황을 가족과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하는 사람은 거의 없는 듯하다.
텔레비전 드라마나 영화를 보면, 생과 사를 넘나드는 상황에서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거나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장면을 쉽게 접할 수 있다. 이는 말 그대로 드라마 속 이야기다. 현실은 절대 그렇지 않다. 드라마에서는 시청률을 올리려면 불치병에 걸린 소녀가 입술을 파르르 떨며 마지막 대사를 읊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
죽음을 앞에 둔 사람은 말 한마디를 이어가기 힘들뿐더러 의식이 없는 경우가 많아 전혀 움직이지 못한다. 게다가 ‘사랑하는 가족과 함께’가 아니라 중환자실에서 호스나 기계, 의사와 간호사에 둘러싸여 있는 경우가 훨씬 많다.
이런 상황에서 환자는 과연 자신의 생각과 의사를 또렷이 전할 수 있을까? 대답은 명백하게 ‘아니요.’다. 죽기 직전에는 이렇게 하고 싶다거나 저렇게 해달라고 생각하는 일 자체가 버겁다.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먹은 바를 전할 수 없는 상황, 곧 갓난아기로 되돌아간다. 아니 갓난아기라면 기본적인 욕구는 확실하게 전하려고 하기 때문에 오히려 나을지도 모르겠다. 가족도 ‘아기는 아기니까’라며 이해하고 사랑으로 보듬어준다.
하지만 죽음 앞에 선 사람은 정신이 혼미한 가운데 시간과 공간의 인지 능력이 크게 떨어지기 때문에 기본적인 욕구를 표현하는 횟수가 점차 줄어든다. 서글프지만 현장에서 접하는 현실이다.
여기서 잠시 ‘연명 치료’와 관련해 의미 있는 통계 자료를 소개하고자 한다. ‘연명 치료’란 수명을 연장시켜주는 치료로, 고통을 덜어주는 완화 치료와는 의미가 다르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말기 의료 조사 및 검토회 보고서’에 따르면, 자신이 고통을 동반하는 말기 환자 입장에 처했을 때 ‘단순 연명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대답한 사람은 전체 일반인 가운데 21퍼센트, 전체 의사 가운데 34퍼센트, 간호사 가운데 25퍼센트, 전문 간병인 가운데 21퍼센트로, 많은 사람들이 연명 치료를 원하지 않았다. 반면 자신의 환자 또는 가족이 말기 환자인 경우, ‘단순 연명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대답한 일반인은 12퍼센트, 의사 19퍼센트, 간호사 13퍼센트, 전문 간병인 11퍼센트로, 연명치료 거부 숫자가 10퍼센트 넘게 줄어들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지속적 식물 상태로 더 이상 소생 가능성이 없다는 진단을 받았을 때, ‘단순 연명 치료를 중단해야 한다.’고 대답한 일반인은 33퍼센트, 의사 39퍼센트, 간호사 30퍼센트, 전문 간병인은 29퍼센트였지만, 자신의 환자 또는 가족이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일반인 15퍼센트, 의사 17퍼센트, 간호사 9퍼센트, 전문 간병인 9퍼센트의 사람만이 연명 치료에 부정적인 입장을 나타냈다. 20퍼센트나 차이가 나는 이 수치는 환자 본인의 뜻과 가족의 뜻이 얼마나 다른지 보여주는 결과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지는 이야기다. 자신이 죽을 때 는 가망 없는 연명 치료를 받고 싶지 않지만 가족이 아플 때는 단 하루라도 오래 살았으면 하고 바라는 것이 사람 마음이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환자의 가족의 동상이몽 때문에 환자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가족들이 의료진에게 연명 치료를 간청하는 일도 흔하다.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 어떻게 자신의 의중을 표현해야 할까?
이 질문의 모범답안은 딱 하나다. 자신의 의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양심적인 대리인을 미리 염두에 두는 일이다. 죽는 순간까지 자신을 대신해 입과 귀가 되어줄 사람, 자신의 진심을 전해줄 대리인을 찾아 부탁하면 된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건강할 때 마지막 임종 순간을 떠올리면서 스스로 원하는 바를 종이에 기록해두는 방법이 가장 확실하다. 이런 상황이라면 이렇게 해달라는 ‘사전의료 지시서’가 이에 해당한다.
물론 모든 상황을 완벽하게 재현하기는 어렵겠지만, 의사가 봐도 부족함이 없는 사전의료 지시서를 준비한 환자를 실제로 본 적이 있다. 더욱이 스무 장이 넘는 문서를 매년 추가로 작성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언급하고 있었다.
사전의료 지시서는 작성 자체도 의미 있는 일이지만 무엇보다 문서를 통해 환자 본인과 가족들, 의료진이 마지막 순간까지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끈을 만들 수 있다는 데 더 큰 의미를 찾을 수 있어 권장할 만하다.
사람 마음은 변하기 마련이다. 따라서 스무 장이 넘게 깨알같이 채운 지시서의 주인공도 해마다 내용을 수정했다. 문서는 작성한 순간. 이미 과거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종이에 기록한 자신의 바람대로 의료 행위가 진행된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그래도 글로 남겨두면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것보다는 덜 후회한다는 사실만은 분명하다.
작성을 할 때 중요한 것은, 마지막 치료와 관련해 의료진이나 가족들에게 바라는 바를 솔직하게 말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의식이 혼미해져서 이성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을 때, 자신의 입과 귀가 되어줄 대리인에게 평소 신념과 가치관을 충분히 전해두는 대화도 중요하다. 그리고 최대한 세세한 일까지 언급하면서 솔직하게 속내를 드러낼수록 좋다. 어쩌면 주위 사람들은 터놓고 말하기 껄끄러운 문제를 당신이 먼저 이야기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리는지도 모른다.
나는 병원에서 환자의 진심을 알아보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지는데, 그 과정에서 언성이 높아질 때가 종종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대화가 끝날 즈음에는 가슴에 달고 있던 무거운 돌을 내려놓은 듯 환자의 표정이 한결 가벼워 보인다.
의사는 의료 분야의 전문가이므로 환자와 가족은 의사에게 스스럼없이 묻고 희망사항을 드러내야 한다. 그리고 그러한 대화를 통해 어떤 결론을 이끌어냈다면 의사를 전적으로 믿고 그 결정에 따라야한다. 자신의 뜻을 밝혀야 할 문제는 확실하게 주장하고, 의사에게 맡겨야 할 치료는 맡기고 신뢰한다. 이 균형이 중요하다. 균형을 잡기 위해서라도 환자 입장에서 결코 양보할 수 없는 문제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말고 당당하게 강조해야 한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보면 구체적인 치료법을 놓고 환자와 가족이 옥신각신하는 장면을 자주 접하게 된다. 특히 말기 의료에서는 의견대립이 심하다. 만약 환자와 가족의 의견이 서로 다르다면, 의료진이 개입해 대화의 물꼬를 트는 방법도 추천하고 싶다. 제삼자와 함께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지금까지 지켜본 환자들은 자신보다 훨씬 젊고 힘 있는 보호자의 큰소리에 아무런 대꾸도 하지 못하고 따르다가 조용히 떠나는 경우가 많았다. 물론 가족의 기대에 부흥하는 일이 환자의 바람이자 그것이 가족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환자 본인이 진심으로 원하지 않는 의료 행위를 가족과 의사가 맘대로 합의하여 결정한 뒤 치료를 감행하는 일은 환자에게 너무 가혹하지 않을까? 문제는 이런 안타까운 사례가 적지 않다는 사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평소에 가족끼리 마지막 순간을 스스럼없이 이야기하는 자리가 중요한 것이다.
노파심에서 한마디 보태자면, 이럴 때는 이렇게 대처한다는 완벽한 매뉴얼 작성이 대화의 목적이 아니다.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는 가족, 보호자, 대리인이 만의 하나 문제가 생겼을 때, 당신을 대신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 있게 신념과 가치관, 죽음을 바라보는 생각을 전하는 데 그 목적이 있다. 죽음을 이야기한다는 것은 훌륭한 대리인을 키우는 계기가 된다.
사전에 준비가 없어도 가족들의 마음을 서로 훤히 꿰뚫고 있는 모범 가정이라면 굳이 언어로 다짐해둘 필요가 없을 테지만 이런 이심전심으로 무장된 가정이 과연 얼마나 될까? 부디 사랑하는 가족을 두고 조금이라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떠나고 싶다면, 자신의 마지막 의사를 확실하게 밝혀두는 준비를 잊지 않길 바란다.
1.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맙다는 말을 많이 했더라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중 1번째
병원에 있으면 다양한 사랑의 모습을 보게 된다. 누구에게나 ‘사랑’이라는 단어는 소중한 사람을 떠오르게 하는 말일 것이다. 연인, 남편 혹은 부인, 아이들, 장성한 아들딸, 그리고 절친한 벗…….
당신은 소중한 사람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건넨 적이 몇 번이나 있는가? 신기하게도 이 말은 가장 익숙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가장 입 밖으로 내기 어려운 말이다. 말을 하는 사람도 또 듣는 사람도 익숙해지려면 다소 시간이 걸린다. 특히 나이가 지긋한 세대에서는 ‘사랑해’라는 말을 일 년에 한 번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런 사람들에게 장소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유롭게 구사 할 수 있는 마법의 언어, ‘고마워’를 추천하고 싶다. 고맙다는 인사만으로도 충분히 마음을 전할 수 있을 테니까. 그리고 여기, 마지막 순간에 만감을 담아 고맙다는 인사를 남긴 한 남자의 이야기가 있다.
Y선생은 일흔을 한참 넘긴 남자 환자였다. 그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다가 정년퇴임을 하고 교토 시내에서 홀로 지내고 있었다. 젊은 시절, K대에 입학하기 위해 고향이었던 아키타 현을 떠난 이후 쉰 해가 넘도록 그곳을 찾지 않았다. 결혼도 하지 않은 채 오직 학문에만 전념한 외골수 인생이었다.
Y선생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깐깐한 노교수였다. 큰 소리를 내지 않을 뿐이지 그의 고집은 황소라도 꺾을 기세였다. 그런 그의 몸에서 대장암 덩어리를 발견했을 때, K대학교 병원 담당 의사는 강력하게 수술을 권했다. 타당한 권유였다. 종양이 완벽히 제거되면 완치도 충분히 가능했다. 하지만 Y선생은 의사의 제안을 막무가내로 거부했다. 말도 되지 않는 이유였다.
“나는 수술이 싫소. 절대로 하지 않겠소.”
그의 억지를 당해낼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모두 혀를 내두를 정도로 대단한 똥고집이었다. 결국 수술 동의서에는 끝까지 사인을 하지 않았다. 그러자 가장 나처해신 사람은 담당 의사였다. Y선생은 명망 있는 동문 선배이자 존경받는 교육자였다. 이런 중요한 환자를 아무런 치료도 하지 않은 채 손을 놓고 있다면 대학병원 의사로서 그리고 그의 후배로서 곤란하고 어려운 상황에 처할 것이 분명했다. 어쩌면 Y선생의 동문 가운데 누군가에게 호되게 혼이 날지도 모를 일이었다. 이런저런 사정 때문에 대학병원에서도 Y선생을 설득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동원했다. 하지만 주위의 이런 눈물겨운 노력에도 불구하고 그는 끝까지 고개를 끄덕이지 않았다.
“내가 안 하겠다는데 도대체 왜 그렇게 말들이 많아? 몇 번 말해야 알아듣겠어, 자네들은!”
그의 고집에는 어떤 것도 총하지 않았다. 대학병원에서도 치료를 거부하는 환자를 오래 입원시킬 수는 없다. 담당의사는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내과 부장과 연락해서 Y선생을 우리 병원으로 옮기게 했다.
그 선택은 옳았다. 독신 생활을 이어나가기에 환자의 체력은 현저히 떨어져 있었다. 그는 간병인도 한사코 거부했다. 심장도 폭탄이나 마찬가지일 정도로 좋지 않아 발작의 위험 때문에 집에서 혼자 생활한다는 것은 도저히 무리였다. 왕진 의사를 보낸다고 해도 그와 잘 지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까웠다. 결국 병원의 장기 입원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다행히 우리 병원의 내과 부장과 Y선생은 그럭저럭 궁합이 맞았다. 병세도 더 이상 악화되지 않았다. 권위에 다소 약했던 Y선생은 간호사나 다른 의료진과는 자주 부딪혔지만 적어도 내과 부장이라는 직함을 가진 담당 의사화는 싸우지 않고 별 탈 없이 지냈다.
그러나 사건은 성생이 입원한 지 여섯 달이 지난 어느 날에 벌어졌다. 내과 부장이 Y선생에게 나를 소개했다.
“Y선생님, 이쪽은 오츠 선생입니다. 오츠 선생은 통증 완화 전문의니까 여러 가지 문제를 상담하시면 좋을 겁니다.”
그의 첫인상은 강렬했다. 앙상하게 마른 몸에 긴 얼굴. 그는 기분 나쁜 시선으로 나를 머리에서부터 발끝까지 훑어보았다. 마치 생물학 교수가 연구 대상을 관찰하는 눈빛이었다.
“안녕하세요? 오츠라고 합니다.”
내가 가볍게 고개를 숙이자 그가 말했다.
“자네는, 아니 선생은 굉장히 어려보이는구만. 꼭 학생 같소. 그건 그렇고 나한테 무슨 통증이랄 게 있다고 상담을 하라고 하는 건지 원.”
나는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그때의 만남의 운명의 전주곡이 아니었나 싶다. 그로부터 며칠 후 나는 마른하늘에 날벼락 같은 소식을 접했다.
“내과 부장님이 개업을 하신다고요?”
그렇다면 Y선생의 새로운 주치의는 내 몫이 될 게 분명했다. 나는 곧장 내과 부장에게 달려갔다.
“선생님, 혹시 Y선생을 제가 맡아야 하는 건......”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말끝을 흐리는 나에게 부장은 방긋 웃으며 대답했다.
“괜찮아, 오츠 선생이라면 잘 지낼 수 있을 거야.”
그는 명실 공히 내과 부장이라 Y 선생과 충돌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게다가 내과 부장은 정면 공격형 의사가 아니라 당근과 채찍을 능숙하게 부릴 줄 아는 측면 수비형 책사였다. 신경질적이면서도 대책 없는 나와 Y 선생은 사사건건 부딪힐게 뻔했다. 나는 몹시 불안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내과 부장은 병원을 그만두었고, 나는 결국 Y선생의 주치의가 되었다.
“안녕하세요?”
“또 자넨가?”
매일 아침 회진을 돌 때 마다 이불을 어깨까지 뒤집어쓰고 누워 있는 Y선생은 늘 못마땅한 표정으로 나를 대했다.
“그래. 오늘은 뭔 일이야?”
“아니, 특별한 용건이 있어서가 아니라 회진입니다.”
“알았네.”
그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싸늘한 바람을 일으키며 벽을 향해 돌아누웠다. 이래서야 제대로 진찰을 할 수가 없었다.
“오늘은 좀 어떠세요?”
“아무렇지도 않아. 도대체 내가 왜 병원에 있어야 하는지 모르겠구먼.”
“그야 편찮으시니까 그렇죠.”
“그리고 어째서 내가 지금 이런 병원에 누워 있는 거지? 다시 K대 학교 병원으로 가고 싶어. 거긴 일본 최고의 병원이잖아.”
“K대 병원에서 선생님을 꺼려하는데 어쩌지요?”
“말도 안 돼! 거긴 내 모교 병원이야. 나는 K대 졸업생이라고. 동문을 거부할 리가 없지. 천하의 K대가 아닌가!”
나는 슬슬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선생님 뜻은 잘 알겠습니다만 방법이 없잖습니까? 그러니 여기에서 잘 지냅시다.”
크고 작은 언성이 매일 이어졌다. 아침마다 병실을 찾는 일마저 힘겨웠다. 게다가 간호사의 원성도 하늘 찔렀다.
“선생님, 저 환자는 도대체 언제까지 병원에 있나요? 너무 힘들어요.”
“받아주는 병원도 없는데 무작정 퇴원시킬 수는 없잖아요. 그렇다고 왕진 의사가 그 환자를 돌봐주겠어요?”
말기 암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은 많지 않다. 게다가 환자의 성격이 보통이 아니다. 어디를 가더라고 며칠 고래고래 소리만 지르다가 쫓겨날 게 뻔했다. 순간 머릿속에 뜻밖의 생각이 들었다.
‘정말로 집에 가고 싶으면 이 고집불통 노교수는 분명 기어서라도 병원을 퇴원했을 것이다. 그런데도 교수는 병원을 떠나지 않고 있다. 오랜 세월을 홀로 외롭게 지낸 선생은 표현이 서툴러서 그렇지 많은 사람들이 북적대는 병원 생활을 내심 좋아하고 있는 게 아닐까?’
“어, 선생 왔네.”
매일 씨름하는 동안 Y선생은 조금씩 나를 의사로 인정해주었다. 하지만 마치 이를 잡듯 사람을 관찰하는 눈초리는 여전했다.
“선생, 속이지 마.”
“속인다고요?”
“아프지도 않은 나를 여기 병원에 가둬놓고 있잖아.”
“선생님 체력이 조금씩 떨어지고 있어요.”
그를 처음 만났을 때와 비교하면 그의 몸은 눈에 띄게 앙상해져 있었다.
“그러지 않아.”
“그런데 왜 선생님은 치료를 거부하세요?”
“난 아프지 않으니까.”
반복되는 입씨름을 그만두고 싶은 마음에 나는 화제를 돌렸다.
“그런데 선생님은 아키타가 고향이신가 봐요.”
“뭐? 자네 내 뒷조사를 했구먼?”
“아뇨. 여기 진료카드에 적혀 있어서요.”
“맞아. 하지만 한 번도 가지 않았어. 난 K대 졸업하고 줄곧 교토에만 있었으니. 여기서 몇 십 년 동안 살았어. 내 집은 온통 책 천지야. 돈도 전부 집에 보관하고 있으니까 우리 집은 보물 금고나 다름없지.”
“우와, 굉장하네요.”
나는 문득 Y선생에게 형제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럼 가족 분들은 어떻게 지내세요?”
그는 고개를 홱 돌리며 애써 내 시선을 피했다.
“몰라.”
“보고 싶지 않으세요?”
“몰라. 나 잘 거야.”
그는 입을 굳게 다물었다.
그의 몸에 있는 암세포가 서서히 세력을 넓혀갔다. 그의 체력은 가파르게 떨어졌고, 걸음걸이도 불편해졌다. 배는 복수가 차올라 불룩 튀어나왔다. 그래도 Y선생은 치료를 완강하게 거부했다. 여러 의사가 다양한 치료방법을 제안했지만 이를 모두 뿌리쳤다.
“난 환자가 아냐. 그런데 이 배는 뭐야? 선생,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야?”
그는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나를 응시했다.
“대장에 문제가 있어요.”
“아니, 난 병에 걸리지 않았다니까! 난 환자가 아니야!”
그렇게 이 주일 가량 시간이 흘렀다. Y선생은 음식조차 제대로 삼키지 못했고 폐렴까지 겹쳐 몹시 위독한 상태였다. 상태는 나빴지만 다행히 환자가 느끼는 통증은 심하지 않은 모양인지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퍼붓는 독설은 여전했다. 그즈음 가장 난처했던 문제가 바로 가족이었다.
“가족한테 연락하지 마. 연락하면 절대 안 돼!”
그는 늘 이렇게 외쳤다. 분명 아키타에 있는 형은 그가 아픈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하나뿐인 혈연이라 병원 의료진과 상의한 끝에 나는 아키타에 있는 형에게 연락을 취했다. 형이라고 하면 못해도 나이가 여든은 족히 넘었으리라. 환자가 사망했을 때 유골과 유품을 인도해야하는 절차를 부탁하고자 별 기대 없이 전화버튼을 눌렀다.
“여보세요.”
“안녕하세요? 여기는 교토 병원입니다.”
나는 Y선생의 형에게 지금까지의 자초지종을 모두 전했다.
“네, 알겠습니다. 그럼 당장 찾아뵙겠습니다.”
이 말을 마지막으로 전화가 끊겼다. 지금 온다고는 했지만 아키타는 꽤 먼 지역이었다. 바로 출발하기도 어려울 터였다. 더욱이 전화상으로 그는 다리가 불편하다고 말했다. 누군가 대리인을 보낸다는 뜻이겠거니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간호사가 나를 다급히 찾아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선생님, Y교수님 형님 되시는 분과 부인께서 오셨습니다.”
“네?”
나는 놀라움을 감추고 서둘러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자 침대에 누워 있는 Y선생 앞에 서있는 노신사와 그 곁에 앉아 있는 노부인이 보였다. 두 사람 도두 지팡이에 몸을 의지하고 있었다.
“선생님, 처음 뵙겠습니다. 제가 이놈 형입니다.”
노신사는 고개를 숙이며 깍듯하게 인사했다.
“아, 오셨군요. 오츠라고 합니다.”
어젯밤 전화로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온 형의 신속한 행동에 나는 혀를 내둘렀다. 그러고는 엄청난 불호령을 각오한 채 Y선생이 누워있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예상 밖의 장면이 펼쳐졌다. Y선생이 평소와 180도 달랐다. 고분고분한 목소리는 물론이고 고집불통태도도 마치 거짓말처럼 사라진 모습이었다.
“어이, 내가 지금 선생님 말씀을 듣고 올 테니까 가만히 누워 있어. 알았지?”
지금까지 한 번도 본 적 없는 얌전한 태도로 Y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나와 함께 병원 복도로 나온 노부부는 지팡이에 의지해서 아주 천천히 걸었다.
‘아니, 이 걸음으로 아키타에서?’
감동할 정도로 놀라운 일이었다. 오랫동안 연락이 두절된 가족들에게 환자의 위급한 상태를 알리면 대체로 이런 대답이 돌아온다.
“그 사람, 저희는 몰라요. 인연 끊은 지 오래됐습니다.”
“유골만 보내주세요. 화장은 그쪽에서 알아서 하시고요.”
이렇게 냉담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으리라.
‘지금까지 연락 한번 없다가 새삼 이제 와서......’
그런데 Y선생의 가족은 거동하기 불편한 몸을 이끌고 아키타에서 교토까지 한걸음에 달려왔다. 통화를 끝내기 무섭게 바로 집을 나섰던 것이다. 정말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노부부는 천천히 진료실로 들어서더니 고개를 숙이며 정중히 인사했다.
“동생 놈이 민폐를 끼쳐서 정말 죄송합니다.”
나는 형님의 깍듯한 태도에 당황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저 녀석은 어릴 적부터 뭐든지 제 멋대로였지요. 아마 선생님께서 꽤 힘드셨을 겁니다. 제 얼굴을 봐서라도 부디 용서해주십시오.”
연령대를 가늠할 수 없는 굵은 목소리와 당당한 기세에 나는 나도 모르게 기가 죽었다.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렇죠?”
나는 옆에 있던 간호사를 바라보며 동의를 구했다. 그러자 Y선생의 고약한 성격에 손사래를 치던 간호사도 눈시울을 적시며 말했다.
“네, 물론이지요. 전혀 민폐를 끼치지 않았어요.”
너무나 겸손한 형의 모습에 우리는 환자의 독특한 성격을 설명할 기회를 놓치고 말았다. 아니, 우리가 설명하지 않아도 형은 동생의 그러한 성격을 잘 알고 있었다.
“아, 어서 여기 앉으세요.”
나는 전화로 대충 이야기한 내용을 소상히 설명하고 그간의 경과를 말했다. 노부부는 진지한 표정으로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선생님......”
이야기가 거의 마무리가 될 무렵, 형은 다짐한 듯 입을 열었다.
“부디 동생을 살려주십시오. 부탁드립니다.”
“물론입니다. 저희도 할 수 있는 방법은 모두 해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동생분이 치료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어요. 저희가 말씀드리는 치료를 받으면 좀 더 편해질 텐데요. 형님께서 말씀해주시면 어쩌면 생각이 바뀔 수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네, 잘 알겠습니다. 제가 동생에게 단단히 일러둘 테니까, 부디 제 동생을 잘 부탁드립니다.”
몇 십 년 만의 재회였다. 그동안 Y선생은 가족들과 소식을 끊고 지냈다. 오랫동안 얼굴도 보지 못한 동생을 이토록 챙기는 형의 모습을 보면서 그들 사이에 아직 남아있는 형제의 끈끈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형은 진찰실 문을 나서자마자 동생의 병실로 향했다. 병실에 들어서저마자 고함을 질렀다.
“이놈아!”
그 목소리에 놀란 Y선생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래?”
“왜라니! 의사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았다고?”
“들었어.”
“거짓말 하지마! 선생님께 다 들었어. 이제 선생님 말씀 잘 들을거지?”
“알았어.”
여든이 넘은 형에게 꾸지람을 듣는 일흔이 넘은 Y선생의 모습은 마치 어린 소년 같았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났다. 환자의 병세는 상당히 심각한 상태였다. 낮에도 누워있는 시간이 않았고 호흡도 가빠서 마음의 각오를 단단히 하고 있어야 했다. 그런데 형이 오면서부터 신기하게도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가족과의 재회로 고비로 병상은 잠시 소강상태에 머물렀다. 형 부부는 병실에서 동생을 지키면서 며칠 교토에 머물렀다.
“선생님 말씀 잘 들어야 한다. 또 멋대로 굴면서 의사 선생님과 간호사 선생님을 괴롭혔다간 아주 혼날 줄 알아.”
“알았어. 아니, 알겠습니다!”
형은 나이를 믿기 힘들 만큼 힘이 넘치는 목소리로 동생에게 다짐을 받고 나서 나에게 말했다.
“선생님 잘 부탁드립니다. 이 녀석이 또 말썽을 피우거나 무슨 일이 생기면 곧장 날아오겠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생기면 저에게 바로 연락을 주십시오.”
그렇게 형은 아키타로 떠났다.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Y선생을 뒤로 하고. 예상했던 대로 형과의 약속은 며칠을 넘기지 못했다.
“뭐? 내가 언제? 나는 그렇게 말한 적 없어!”
변함없이 그는 내가 권하는 치료를 거부했다. 그래도 환자와의 거리는 조금 가까워진 듯 했다.
“그리고 선생, 진짜 너무했어. 내 허락도 없이 형을 부리다니. 치사해.”
“하하, 훌륭한 형님을 두셨던 걸요.”
“우리 형이 얼마나 무서운 사람인데.”
“형님이 그렇게 무서우세요?”
“당연하지. 우리 형은 가장이라고. 대가족의 우두머리. 형님 말씀은 곧 법이야. 절대 거역할 수 없어. 무서워, 무서워.”
“그러세요? 근데 벌써 형님 말씀 거역하시려고 하잖아요?”
“알았어. 알았어. 다시는 형을 부르지 않는다고 약속해줘.”
하지만 나는 선생의 말과 진심이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래도 형님이 계시니까 훨씬 좋아지셨어요. 또 모셔올까 봐요.”
“앗, 잠깐만!”
선생의 뜨거운 시선을 모른 척하고 나는 병실을 나왔다. 고집쟁이 Y선생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니 친근하게 느껴졌다. 무엇보다 가장 놀라운 사실은 일주일을 넘기기 힘들 것 같았던 환자의 병세가 다시 좋아진 것이었다. 그야말로 가족 사랑의 힘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째에 접어들자, 다시 암세포가 고개를 들었다. 선생은 하루가 다르게 쇠약해졌다. 몸은 뼈만 앙상하게 남았고 침대 위에 축 늘어져 있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러던 어느 날 저녁, Y선생의 혈압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마지막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을 느꼈다. 그의 형에게 전화를 넣을까 말까 망설였다. 형도 다리가 불편할 뿐 아니라, 심장과 다른 장기에도 여러 질병이 있어서 걸어ㄴ다니는 시한폭탄이나 다름없었다. 그때 어디선가 형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바로 오겠습니다. 그러니 문제가 있으면 저에게 전화를 주십시오.”
형이 말한 그때가 바로 지금인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전화 버튼을 눌렀다. 대화는 간단했다.
“여보세요. 교토병원입니다.”
내가 말을 건네자 수화기 저편에서 형은 기침을 하면서 대답했다.
“선생님, 동생한테 무슨 일이라도?”
“괜찮으세요?”
“네, 괜찮습니다. 동생은?”
“아무래도 며칠을 넘기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네, 선생님 제가 바로 가겠습니다.”
전화를 건 시각이 저녁 여덟 시 무렵이었다. 그날 밤 당직이었던 나는 다음날 아침 몽롱한 상태에서 눈을 떴다. 몸을 일으켜 가운을 입으려고 할 때 연락이 왔다.
“여보세요.”
“선생님, 2층 병동인데요. Y교수님 형님이 오셨어요.”
“벌써?”
지난번처럼 노부부는 전화를 끊자마자 아키타에서 교토행 기차를 타고 곧장 병원으로 달려온 모양이었다. 그렇지만 병원복도를 걸을 때는 한 걸음 한 걸음이 힘겨운 것 같았다. 나는 다시 한번 감탄과 감동을 느꼈다. 형은 나를 보자마자 황급히 말했다.
“동생은, 제 동샌은, 어디 있습니까? 선생님!”
나는 노부부를 병실로 안내했다. 요즘 Y선생은 거의 눈을 뜨지 못했다. 불러도 대답이 없을 때가 많았다.
“동생, 괜찮아?”
형의 목소리를 들은 Y선생은 고개를 끄덕였다. 간호사가 다급하게 환자를 불렀다.
“들리세요? 형님이 오셨어요. 들리시면 형님에게 뭐라고 대답 좀 해보세요.”
선생은 천천히 눈을 떴다.
“그렇게 소리 지르지 않아도 들려.”
“뭐야, 이 녀석 순전히 꾀병이었구먼.”
그때 Y선생의 눈에서 한줄기 눈물이 흘렀다.
“형......”
“너 농담 집어치워. 이 형은 저 아키타에서 날아왔다고, 알아?”
목소리가 떨렸다. 형도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 같았다. 혈압이 떨어지고 소변도 나오지 않고 호흡 부전도 진행되어 남은 시간이 초단위로 흘러갔다. 이런 위급한 상황에도 형이 부르는 소리에 동생은 대답했다. 오후가 지나 밤이 되자 선생은 간단한 대화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우리가 아무리 불러도 대답조차 못했는데....... 마치 다른 사람처럼 상태가 크게 좋아졌다. 임종이 가까워졌을 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다.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보는 것처럼 마지막 순간까지 말할 수 있는 상황은 환상일 뿐이다. 하지만 아주 드물게 어떤 보이지 않는 힘으로 마지막 시간이 만들어질 때도 있다. 형제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서로 흉금을 터놓는 시간을 선물로 받았던 것이다. 침대에 누워 있는 동생과 침대 옆 의자에 앉은 형은 다음날 아침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아침에 병실을 찾았을 때 형은 창밖을 보며 서 있었다. 많이 지쳐 보이는 그를 부축하려고 하자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 동생이 고맙다고 했어요.”
“고맙다고요?”
“네, 이 천하의 악동이 고맙다고......”
나는 Y선생의 얼굴을 보았다. 평소의 험상궂던 표정은 온데간데없고, 온화한 미소가 얼굴 가득 번져 있었다.
“네, 고맙다더군요. 동생과 오래도록 옛날이야기를 했어요. 마지막에 고맙다는 인사까지 듣고……. 선생님, 저는 정말 기쁩니다.”
몇 시간 후 Y선생은 눈을 감았다. 까칠하고 괴팍했지만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선생은 어쩌면 마음을 솔직하게 표현하는 법을 잘 몰랐을지도 모른다. 그런 그가 마지막 순간 형의 사랑에 고마운 마음을 전했다. 숨을 거둔 그의 얼굴은 마지막 숙제를 다 마친 아이처럼 평온하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고마워”
후화 없는 마지막을 위해 꼭 필요한 말이 아닐까.
5. 나쁜 짓을 하지 않았더라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중 5번째
K는 범죄자였다. 그는 죽음의 문턱에 서 있었다. 덮쳐오는 통증에 고통스러워하던 K는 어느 날 문득 내게 말했다.
“용서를 받고 싶습니다.”
며칠 뒤 K는 세례를 받기로 결심했다. 그런데 세례식 날짜가 다가오면 다가올수록 그의 얼굴에는 공포의 기색이 역력했고 굉장히 불안한 상태를 보였다.
“선생님, 이런 저도 구원을 받을 수 있을까요?”
K눈 점점 더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죄를 후회하고 있었다. 이 세상이 끝난 후, 저 세상으로 향한 문이 자신에게 굳게 닫혀 있음을 느끼는 듯했다. 그리고 그제야 자신이 저지른 죄의 무게를 깨닫는 동시에 후회로 뒤범벅된 공포를 실감하는 것 같았다.
“제가 지은 죄는 다시 주워 담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후회합니다. 후회하고, 후회하고, 또 후회합니다. 저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드디어 세례식 당일이 되었다. K는 이마에 성수가 뿌려진 순간 갑자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무릎을 꿇었다.
“어, 어 엉......”
그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어깨가 점점 더 거세게 들썩거렸다. 세례식이 끝날 때까지 그는 아무 말 없이 그렇게 눈물을 흘렸다.
며칠 후 K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진심이 신의 마음에 닿은 걸까? 먼 길을 떠나는 날, 그의 표정은 더없이 온화했다.
세례식을 며칠 앞두고, K를 괴롭힌 것은 불안과 두려움이었다. 사실 다른 환자들에 비해 K는 신체적인 고통은 없다고 봐도 좋았다. 그런데도 그는 몹시 괴로워했다. 돌이킬 수 없는 죄를 저질렀다는 후회, 내세에도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초조함……. 어찌나 겁을 냈는지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까지도 그 공포가 무시무시한 지옥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K의 마지막을 지켜보면서 죄는 정말 지을 게 못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남이 보지 않아도 자신은 보고 있다. 그리고 하늘이 내려다보고 있다. 그러니 죽음의 그늘이 드리우면 지난날의 후회와 함께 하늘이 용서하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가 가슴을 후벼 판다. 죽어서도 용서받지 못할 거라는 공포와 다음 생이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두려움이 마음을 갈기갈기 찢어놓는 것이다.
죽음 앞둔 환자들 중에는 ‘내가 지은 죄가 많아서 지금 그 죗값을 치르고 있는 거야.’ 라며 자신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다. 나쁜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죽을병에 걸렸다고 자책하는 환자도 간혹 만날 수 있다. 그러나 그럴 필요는 없다. 나는 사람의 마음이 얼마나 약한지 의료 현장에서 수 없이 실감했다. 약하니까 가끔은 해서는 안 될 말을 내뱉고, 해서는 안 될 행동을 저지르기도 한다. 살면서 단 한번도 나쁜 짓을 저지르지 않은 사람이 과연 있을까?
소설에나 등장하는 매사에 정의로운 사람은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다.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고 그렇기 때문에 감정의 포로가 되었을 뿐이다.
그러니 당신을 해치려는 사람도 역시 보잘것없는 인간일 뿐임을 인정해주자.
미워하지 말고, 복수하려 하지 말고, 나와 같은 외롭고 약한 인간이라고 말이다.
범지구적으로 생각해보면 인간이 일 년 동안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동물을 희생시키는지, 얼마나 많은 식물을 해치는지는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크고 작은 살생을 저지른다.
그 외에도 우리가 얼마나 많은 자원을 낭비하고 어마어마한 양의 쓰레기를 배출하고 있는지 모른다. 환경 보호를 생각한다면 지구에서 살아 숨 쉬는 일 자체가 악행이다.
언행으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일 역시 얼마나 많이 일어나고 있는지 주위를 조금만 살펴도 알 수 있다. 좋은 의도일 때조차 상대방의 가슴에 생채기를 낼 수 있으니, 어쩌면 사람인 이상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일을 피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 모른다.
슬프게도 인간은 다른 생명을 희생양으로 삼지 않으면 자신의 목숨을 부지하기 어려운 생물이다. 그러니 죄를 반성할지언정 자책하지는 말자. 도를 지나친 죄책감은 자신을 파괴할 뿐이다. 단지 인간으로서 넘지 말아야 할선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도 나약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단순히 형벌 때문이 아니라, 죄를 범했다는 죄책감이 자기 자신을 공포의 구렁텅이에 빠뜨릴 것이다.
나는 가끔 K가 떠오른다. 살면서 가능한 한 ‘악’을 멀리해야 죽음 앞에서 덜 후회하고 덜 괴로워한다는 것을 깨달을 때마다 말이다.
25. 신의 가르침을 알았더라면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중 25번째
“다음 세상에서 만나요. 다음에는 더 잘해줄게요.”
여러 종교를 떠나 다음 세상, 즉 ‘내세’라는 단어는 왠지 모르게 신비로운 분위기를 띤다. 그래서 인지 나 역시 병원에서 환자를 떠나보낼 때 ‘다음 세상’을 언급할 때가 많다. 내가 자연스럽게 내세를 얘기하는 이유는 조상을 소중하게 모셨던 아버지의 영향이 큰 것 같다. 어쩌면 내가 태어나기 한 해 전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환생이 바로 나라는 이야기를 듣고 자란 탓에 내세와 환생을 더욱 친근하게 느끼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세상을 떠난 환자들이 멀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심지어 실제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마저 들 때가 있다. 내세를 믿으면 좋은 점은, 이 세상의 이별은 일시적이라는 것, 그래서 다음 세상에서 우리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위안을 받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내세의 존재는 이별의 슬픔을 치유해주는 강력한 힘을 지닌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는 이런 믿음이 필요한 사람이 꽤 많다.
영적 치료 가운데 ‘무라타 이론’이라는 말이 있다. 이 이론에서는 말기 환자가 영적 고통, 즉 살아있는 의미를 찾지 못하고 영혼의 고통을 느끼는 이유를 크게 세 가지로 구분한다. 죽음을 초월한 미래에 대한 확신(시간 존재)과 신뢰할 수 있는 가족, 친구, 의료인의 존재(관계 존재), 그리고 스스로 결정할 수 있는 자유(자율 존재)가 바로 그것인데, 이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 이상의 요소가 흔들리면 영적 고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한편 이 세 가지 요소 가운데 하나가 사실 되면 이를 다른 요소로 보완함으로써 영적 고통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매우 흥미로운 이론이다.
마지막 시간이 다가오면 대개 자신의 일을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할 수 없기 때문에 ‘자율 존재’를 상실하기 쉽다. 그래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 곧 ‘관계 존재’가 중요해진다. 관계를 통해 ‘자율 존재’의 상실을 메우는 것이다. 또 한 가지 ‘자율 존재’를 보완할 수 있는 것이 죽음을 초월한 미래에 확신, 곧 ‘시간 존재’다.
생명 윤리, 의료 윤리 등을 연구한 교토대학교 칼 베커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 현대의 일본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죽음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내세를 믿는 신앙이 희박해진 사실과 관련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 주장이 타당하게 들리는 이유는 종교나 신앙에 의지했을 때 우리가 얼마나 편안한 죽음을 맞을 수 있는지 잘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단지 천국에 가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죽음 직전에 세례를 받거나 신앙을 고백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이들을 두고 천국을 훔치려는 천국 도둑이라며 비웃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사람들이 마지막 순간 종교를 찾는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내세를 확신하고 싶은 희망 때문에 종교를 찾을 수 있고, 또 마지막 순간에 삶과 죽음의 의미를 붙들고 싶은 간절한 소망 때문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하루하루 숨 쉬는 게 너무 고통스러워서 지푸라기라고 잡는 심정으로 종교에 매달리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솔직히 죽음 앞에서는 직업 귀천이나 사회적 지위 따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름만 들어도 누구나 아는 대기업 회장이 죽음 앞에서 크게 절규하는 반면, 지극히 평범한 보통사람이 오히려 죽음 앞에서 한 치의 동요도 없다. 많이 갖고 많이 누렸던 사람은 그만큼 잃는 것도 많아서 마지막 순간이 다가올수록 무언가에 매달리고 싶은지도 모른다. 평생 아쉬울 게 없었던 인생이기에 마지막까지 인생의 끈을 놓지 않으려고 집착하는지도 모르겠다.
죽음의 사신이 찾아왔을 때의 불안은 누구나 견디기 힘들 만큼 엄청나다. 이를 대비해 건강할 때 종교를 공부하고 나름의 종교관을 확립한다면 보다 편안한 죽음의 순간을 맞을 수 있을 것이다.
비단 죽음 때문이 아니더라도 종교 활동을 통해 인간사를 깨닫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으랴. 병상에서도 다양한 종의 깨달음을 깨우치려고 공부에 매진한 여든이 넘은 환자가 나에게 이런 유언을 남겼다.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자신의 머리로 생각하는 일이 가장 중요합니다.”
여러 종교를 음미하고 깊이 생각해보는 일은 분명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인간은 생각하는 갈대다.’라는 파스칼의 명언을 굳이 상기하지 않더라도 ‘생각하는 일’은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준다.
믿음은 모두 허황된 것이라는 선입견을 버리고 종교에 관심을 가진다면 생각지도 못했던 발견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자신이 찾던 인생의 진실을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고, 인간의 고뇌와 의문이 모두 하나로 귀결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허무하고 건조한 마음이 자연스럽게 치유될지도 모른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라는 사실을 아무쪼록 잊지 않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