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과 세 친구는 하나님의 지혜로 신앙은 지키되 그 권세는 권세대로 인정을 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앙인 이었지만 민족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느나라의 벼슬을 했습니까?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바벨론의 관리였습니다,
그럼 유대인의 입장에선 다니엘과 세 친구는 매국노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참으로 많이 생각해야 되는 문제 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역사. 국가 등을 들어 나타내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일하시기 때문에 세상역사와 나라들에 대하여 그 체제와 습관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거부하고, 도전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해야 되고 하나님이 그 속에서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 죄수로 잡혀서 로마로 끌려가는 것으로 복음의 사도직분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는 당신의 귀한 종을 위해 로마를 벌하거나 뒤집지 않으십니다,
그 체제 그대로, 이스라엘이 노예면 그 상태 그대로 두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신앙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삶은 세상에서의 삶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대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명령입니다,
믿음이란 신앙적인 용어나 형태로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믿는다' 라는 것만 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부분까지 문제들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부분까지 종교적으로 영역화 하려는 싸움을 해서는 안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회사에서의 '신우회';같은 모임이 그럴 위험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예배드리고, 뭐하고해서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갖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처한 입장에서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성실함이 세상에서의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취하기 위한 성실이 아니라 주께 하듯 하는 성실함을 가진다면 그 모든 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을 내가 벌어먹고 살기 위한 생존수단으로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앉혀논 자리요 그 환경속에서 빛이고 소금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명령으로 받으셔야 한다는 겁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표어나 어떤 구호를 거창하게 내 세우거나 입술로 외치는 신앙적 형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다른 자세와 성실로써 하나님과 기독교를 증거하라는 겁니다,
성경은 세상 사람과 동일한 조건과 환경과 책임 속에서 그들이 눈가림만 하고 사는데 비하여 우리는 단 마음과 성실함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더욱 더 경쟁을 시키고 있다는 점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자기의 이익과 판단과 자기의 궁극적인 심판관이 되어서 세상일들을 처리하는데 비하여 신자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그 시각 속에서 두렵고 떨림과 성실과 단 마음으로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맡겨진 일들에 대해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성실히 이행하는 자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요셉이 무엇으로 인정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가지고 그가 한 노예생활로써 비록 그가 억울함을 가지고 죄인으로 들어와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푯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그런 차원에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보이는 종교적인 행위로써 여러분의 신앙을 대치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
다니엘과 세 친구는 신앙인 이었지만 민족주의자는 아니었습니다,
다니엘과 세 친구는 어느나라의 벼슬을 했습니까?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바벨론의 관리였습니다,
그럼 유대인의 입장에선 다니엘과 세 친구는 매국노 아닙니까?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구에게 알려주고 계십니까?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입니다,
참으로 많이 생각해야 되는 문제 입니다,
결국 하나님은 그의 일을 이루시는데 있어서 역사. 국가 등을 들어 나타내신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겁니다,
하나님께 그렇게 일하시기 때문에 세상역사와 나라들에 대하여 그 체제와 습관 그런 것에 대해 너무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거부하고, 도전적이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해해야 되고 하나님이 그 속에서 일을 이루어 나가신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말하자면 사도 바울이 죄수로 잡혀서 로마로 끌려가는 것으로 복음의 사도직분을 감당하게 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전하는 당신의 귀한 종을 위해 로마를 벌하거나 뒤집지 않으십니다,
그 체제 그대로, 이스라엘이 노예면 그 상태 그대로 두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방편을 찾으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사회에서의 모든 문제에 대한 책임을 신앙적이고 초월적인 것으로만 해석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삶은 세상에서의 삶 자체에 있다는 것을 알고 거기에 대처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신자와 불신자를 막론하고 모든 인류에게 공통적으로 주신 명령입니다,
믿음이란 신앙적인 용어나 형태로 적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동일하게 우리의 삶에 있어서 '믿는다' 라는 것만 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부분까지 문제들의 영역이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 부분까지 종교적으로 영역화 하려는 싸움을 해서는 안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회사에서의 '신우회';같은 모임이 그럴 위험이 많습니다,
회사에서 예배드리고, 뭐하고해서 기독교적인 분위기를 갖는 것에 대해 하나님이 복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신앙생활이란 내가 처한 입장에서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성실함이 세상에서의 어떤 가치 있는 것을 취하기 위한 성실이 아니라 주께 하듯 하는 성실함을 가진다면 그 모든 것이 바로 신앙생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직장을 내가 벌어먹고 살기 위한 생존수단으로서만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이 나에게 앉혀논 자리요 그 환경속에서 빛이고 소금으로서의 역할에 충실하라는 명령으로 받으셔야 한다는 겁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표어나 어떤 구호를 거창하게 내 세우거나 입술로 외치는 신앙적 형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과 다른 자세와 성실로써 하나님과 기독교를 증거하라는 겁니다,
성경은 세상 사람과 동일한 조건과 환경과 책임 속에서 그들이 눈가림만 하고 사는데 비하여 우리는 단 마음과 성실함으로 살고 있는 것으로 더욱 더 경쟁을 시키고 있다는 점을 언제나 기억해야 합니다,
세상사람들이 자기의 이익과 판단과 자기의 궁극적인 심판관이 되어서 세상일들을 처리하는데 비하여 신자란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는 그 시각 속에서 두렵고 떨림과 성실과 단 마음으로 주를 사랑하는 마음이 맡겨진 일들에 대해 누가 보든지 안보든지 성실히 이행하는 자로 우리를 부르셨고 우리는 그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요셉이 무엇으로 인정 받았다고 생각하십니까?
그의 성실함과 정직함을 가지고 그가 한 노예생활로써 비록 그가 억울함을 가지고 죄인으로 들어와 있지만 다른 사람과는 확연히 다른 점이 눈에 띄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푯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그런 차원에서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보이는 종교적인 행위로써 여러분의 신앙을 대치하지 말기를 바랍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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