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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티를 나누어요

자기를 기쁘게 말라

작성자최경옥|작성시간05.09.02|조회수13 목록 댓글 0
 

자기를 기쁘게 말라


[롬 15:1-3]

1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2 우리 각 사람이 이웃을 기쁘게 하되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할지니라

3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기록된 바 주를 비방하는 자들의 비방이 내게 미쳤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12장부터 산제사로서 세상의 삶에서 내가 보여야할 실천적 삶을 보여주고 있으므로 우리는 나의 신앙생활이 흔들림이 있어야 한다.

나의 신앙생활은 교회의 어떤 틀속의 모습이 전부가 되어 전도, 심방, 기도, 전도, 봉사가 전부가 되어있는데 실질적 신앙은 신앙의 근본이 되는 본질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흔들릴 것은 빨리 흔들어 없애 버리고 새로운 삶이 되어져야 한다.


기독교 신앙의 근원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신앙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다 릴레이식으로 믿음의 경주를 하는데 히 12:1절의 허다한 증인들이 먼저 가서 뒤에 오는 우리를 박수치며 응원한다.

우리가 이기어야 이기고 먼저 간 그들도 이기기 때문이다.

나아가 머리되신 그분도 완성이 되기 때문이다.

히 11장의 믿음장의 사람이 나오고 히 12장의 허다한 증인들이 나오게 된다.

믿음의 사람이 증인이 되듯이 우리도 믿음의 사람이 되어 증인 가운데 하나로 들어가야 한다.


이들은 자신만 위하여 살지 않고 함께 가는 사람을 위해서 살았다.

주님은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고 함께 갈 자들을 위해서 죽으신 것과 같다.

모세와 바울도 저들을 살리고 내가 생명책에서 지움 받아도 좋다고 하며 공동체를 생각한 것이다. 이것이 신앙인의 삶이다.


세상은 강한 자가 약한 자위에 군림하지만

교회는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 이들과 함께 가야 완성되기 때문이다. 그들을 버리고 가면 강하다고 하는 나도 완성되지 못한다.

약한 자를 감싸주는 형님이 되어야 그 집안이 콩가루 집안이 안된다.

교회도 가정도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사랑으로 돌봐주어야 한다.

돌봐주는 것을 보니 그는 강한 자라는 인정을 받는다.

이렇게 하나로 가는 이유는 덕을 세우기 위해서이다.


*덕을 세우 3619 oijkodomhv oikodome  {oy-kod-om-ay'}

3624와 1430의 어간의 합성어의  여성(추상명사);'건축', 즉(구상적으로)'건축물', 상징적으로'확정', 건물, 교회 <고전 14:5>여명. a house or building;


@건축하는 건축물이다

고전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운다는 것은 사랑으로 행하며 집을 지어가는 것이다.

즉 하나님의집은 사랑으로 짓는 집이라는 것이다.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

지식을 가진 자가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며 그것을 지식으로만 써 먹으면 교만하게 된다.

그러나 그 지식을 나를 위하지 않고 남을 위해서 주고자 할때 이것은 교만이 안된다.

우리는 분명히 지식을 가지고 잇어야 한다. 지식이 없으면 망한다.

그러나 이 지식을 어떻게 쓰느냐가 문제이다.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 지식을 주고자 하는 마음이 분명 있어야 우리는 죽지 안는다.

지식은 자기의 것이지만 자기의 것을 나누어 주는 것은 사랑의 특성이다.

나에게 주어진 여러 가지 좋은 것을 [지식, 생명, 은사, 진리]나누어 주어야 한다.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한다?

강한 자는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고 있다.

자기를 기쁘게 하며 사는 자는 지식으로 교만해 진자이다.

이것은 자신을 인정해 달라고 하는 것이다. 어린자의 모습이다.

많이 알지만 육의 사람인 것이다. 주님은 인정받기 원하지 않았다.

십자가에 죽기 위해, 긍휼로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오시고 다음에 우리의 머리로 오신 것이다.

머리는 완전하고 몸은 불완전하지만 불완전한 몸을 위해서 자기도 불완전한 모습을 보이겠다는 것이다.

손이 불구이면 나는 전체가 불구로 보인다 그러므로 그분도 불구로 보이게 되지만

이것을 감수하며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게 하신 것이다.

[세상에서 남편이 무시당하면 그 집 식구가 모두 무시당하는 꼴이 된다]

[남편이 왕이면 부인은 왕비이며 자식들은 공주와 세자가 된다]

[서로 위하여 살아가는 그곳에 서로의 기쁨이 있는 것이다]

[나만 기뻐하는 자는 나만 위하는 자이다]

자신은 강하지만 약한 자를 위해서 자신도 약한 모습으로 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강한 자의 수용이고 기다림이다.

모세와 바울이 그렇고 갈렙과 여호수아가 40년이라는 긴 시간을 같이 약한 자와 함께 광야를 돌므로 함께 한 것이 그 모습이다.

주님은 이것을 목적으로 오신 것이며 우리에게도 그것을 요구하신다.


왜?

하나님의 나라는 공동체로서 함께 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분은 우리의 모퉁이 돌이 되어 함께 지어져 갈 것이기 때문이다.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그리스도의 법은 한 몸으로 각지체가 서로 연합하고 균형과 조화를 이루어 나가는 것이다. 자기 자신을 위해서 존재하는 지체는 없다 . 모두 남을 위해서 지체는 존재한다.

오른 손이 오른 손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잇는가 모두 옆에서 도와주어야 오른 손도 존재한다. 나의 잘한 부분을 못한 자와 함께 나누므로 서로 조화가 이루어지게 된다.

가정도 남편의 부족함을 여자가 메꾸어주고 , 아내의 부족함을 남편이 메꾸어 주며 사는데 인간은 나의 잘남을 알아 달라고 하니 안된다. 정말 힘든 일이다.

이것은 강한 자의 수용성이 있어야 이루어진다.

그리고 서로 피차 복종하므로 이루어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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