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우리들의 이야기

얼음 호수의 약속 4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08|조회수11 목록 댓글 0

《달빛 정원의 여왕》

4부. 얼음 호수의 약속

바람의 궁전을 떠난 지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아리아와 루미는 북쪽 하늘 끝에 있는 얼음의 나라에 도착했다.

그곳은 세상의 시간이 잠시 멈춘 듯한 곳이었다.

하얀 눈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고, 얼음으로 된 나무들은 수정처럼 빛나고 있었다.

숨을 내쉴 때마다 하얀 입김이 피어올랐다.

루미는 몸을 떨었다.

“너무 추워요.”

아리아는 자신의 망토를 벗어 루미의 어깨에 둘러 주었다.

“조금만 참자.”

멀리서 푸른빛이 보였다.

그것은 얼음 호수였다.

달빛을 품은 듯 신비롭게 빛나는 거대한 호수.

하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다.

너무 조용했다.

새 소리도 없고,

바람 소리도 없고,

물결 소리조차 없었다.

마치 세상 모든 소리가 얼어붙은 것 같았다.

호수 중앙에는 거대한 얼음꽃 하나가 피어 있었다.

수백 개의 수정 꽃잎이 펼쳐진 거대한 꽃.

그리고 그 꽃 속에 무언가가 잠들어 있었다.

루미가 놀라 외쳤다.

“백조예요!”

정말이었다.

은빛 날개를 가진 아름다운 백조 한 마리가 얼음 속에서 잠들어 있었다.

그 모습은 마치 살아 있는 조각상 같았다.

아리아는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그 순간.

얼음꽃이 희미하게 빛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호수 전체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나를 깨우려 하는가.”

아리아는 놀라 주위를 둘러보았다.

“당신은 누구신가요?”

“나는 달의 거울을 지키는 수호자.

은빛 백조 레아.”

루미는 숨을 삼켰다.

전설 속 존재였다.

달의 거울을 찾기 위해 반드시 만나야 하는 수호자.

아리아는 정중히 말했다.

“저는 달빛 정원의 여왕 아리아입니다.”

잠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레아가 말했다.

“왜 나를 깨우려 하는가.”

아리아는 별빛이 사라지는 이야기와 검은 안개에 대해 모두 들려주었다.

레아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한참 뒤.

호수 위로 작은 눈송이가 흩날렸다.

“세상이 다시 어둠에 잠기고 있구나.”

아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달의 거울이 필요합니다.”

그러자 레아는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하지만 나를 깨우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하다.”

루미의 얼굴이 굳어졌다.

“대가요?”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

아리아는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가장 소중한 기억.

그것은 자신의 일부를 잃는 것과 같았다.

루미는 고개를 저었다.

“안 돼요!”

하지만 레아는 조용히 말했다.

“기억은 마음의 빛이다.

빛을 얻으려면 빛을 내어주어야 한다.”

호수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아리아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녀의 머릿속에는 수많은 기억이 떠올랐다.

꽃들과 웃던 날.

별빛 아래 춤추던 밤.

달빛 정원에서 보낸 행복한 시간들.

그 가운데 가장 소중한 기억 하나가 있었다.

어린 시절의 기억.

처음 꽃의 목소리를 들었던 날이었다.

어린 아리아가 눈물을 흘리고 있을 때 작은 들꽃이 말했다.

“울지 마.”

그 순간 세상이 달라졌다.

꽃들이 말을 하기 시작했고,

바람이 노래하기 시작했고,

별들이 친구가 되어 주었다.

그 기억은 아리아의 인생을 바꾼 시작이었다.

루미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 기억은 안 돼요.”

아리아는 미소를 지었다.

“괜찮아.”

“하지만…”

“세상을 지킬 수 있다면.”

루미는 더 이상 말하지 못했다.

아리아는 얼음꽃 앞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손을 내밀었다.

푸른 빛이 그녀의 가슴에서 천천히 흘러나왔다.

어린 시절의 기억이 빛이 되어 하늘로 떠올랐다.

꽃들과 처음 만났던 날.

처음 웃었던 날.

처음 꿈을 품었던 날.

모든 것이 빛으로 변했다.

그리고 얼음꽃 속으로 스며들었다.

순간.

쿠르르르—

호수 전체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얼음이 갈라졌다.

거대한 얼음꽃이 천천히 열렸다.

눈부신 은빛 빛이 사방으로 퍼졌다.

그리고 마침내.

은빛 백조 레아가 눈을 떴다.

수천 년 동안 잠들어 있던 눈동자가 별빛처럼 빛났다.

거대한 날개가 펼쳐졌다.

은빛 깃털들이 하늘로 흩날렸다.

루미는 감탄했다.

“정말 아름다워…”

레아는 아리아를 바라보았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너는 진정한 여왕이구나.”

그 순간.

레아의 가슴에서 작은 수정 조각 하나가 떠올랐다.

초승달 모양의 수정이었다.

“달의 거울의 첫 번째 조각이다.”

아리아는 조심스럽게 그것을 받았다.

수정은 따뜻했다.

마치 살아 있는 심장처럼.

그러나 기쁨도 잠시.

멀리 하늘이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검은 안개가 얼음 나라를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별빛을 삼키며.

꽃들의 노래를 삼키며.

그리고 그 안개 속에서 한 여인의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장미 왕관을 쓴 여인.

슬픔으로 가득 찬 눈동자.

바람의 왕이 말했던 존재.

세레나였다.

아리아와 세레나는 처음으로 서로를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운명의 이야기는 새로운 장으로 접어들기 시작했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