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아와 첫 번째 별꽃》
3부. 바람도 기억하지 못하는 길
여행은 새벽에 시작되었다.
달빛 정원의 꽃들은 루시아와 아린을 배웅하기 위해 모두 깨어 있었다.
장미는 향기를 선물했고,
백합은 은빛 꽃잎 하나를 건네주었다.
달맞이꽃은 조용히 속삭였다.
“길을 잃더라도 마음은 잃지 마렴.”
루시아는 꽃들에게 손을 흔들었다.
아린도 웃으며 인사했다.
그리고 둘은 북쪽 하늘을 향해 길을 떠났다.
별빛 씨앗은 루시아의 가슴 주머니 안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반짝.
반짝.
마치 길잡이 별처럼.
며칠 동안 둘은 숲을 지나고 언덕을 넘었다.
그러나 지도는 점점 이상해지고 있었다.
어제까지 보이던 길이 사라지고,
없던 길이 새롭게 나타났다.
아린이 나침반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상해.”
“왜?”
“길이 움직이고 있어.”
루시아는 고개를 갸웃했다.
길이 움직인다는 말은 처음 들었다.
그때였다.
바람이 갑자기 멈췄다.
나뭇잎도 흔들리지 않았다.
새들도 노래를 멈추었다.
세상이 숨을 참는 것 같았다.
그리고 눈앞에 거대한 문이 나타났다.
투명한 바람으로 만들어진 문이었다.
문 위에는 오래된 글자가 새겨져 있었다.
“기억하지 못하는 자는 지나갈 수 없다.”
아린이 숨을 삼켰다.
“여기야.”
루시아는 조심스럽게 문에 손을 올렸다.
그러자 문이 물결처럼 흔들렸다.
그리고 수많은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너는 누구니?”
“무엇을 찾고 있니?”
“왜 이 길을 걷고 있니?”
루시아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하지만 곧 눈을 감고 대답했다.
“나는 꽃의 아이 루시아예요.”
문은 조용히 빛났다.
“무엇을 찾고 있니?”
“첫 번째 별꽃을 찾고 있어요.”
빛이 더욱 강해졌다.
마지막 질문이 들려왔다.
“왜?”
루시아는 잠시 생각했다.
그리고 조용히 말했다.
“슬픈 별을 집으로 돌려보내고 싶으니까.”
순간이었다.
거대한 바람의 문이 천천히 열리기 시작했다.
쿠우우웅—
문 너머에는 놀라운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길이 하늘 위에 떠 있었다.
구름으로 만들어진 길.
별빛으로 이루어진 다리.
그리고 저 멀리 끝없는 안개.
아린은 감탄했다.
“정말 존재했구나.”
루시아도 숨을 삼켰다.
이곳이 바로—
바람도 기억하지 못하는 길.
전설 속 장소였다.
그 길은 특별했다.
한 걸음 걸을 때마다 과거의 기억들이 떠올랐다.
어린 시절의 웃음.
그리운 목소리.
잊고 있었던 풍경들.
길 자체가 기억으로 만들어져 있었던 것이다.
루시아는 문득 아리아의 이야기를 떠올렸다.
세레나를 용서하던 날.
새벽이 찾아오던 순간.
그 기억들이 별빛이 되어 길 위에 흩어졌다.
아린도 걸음을 멈추었다.
“보여.”
“뭐가?”
“어릴 때 잃어버린 별.”
루시아는 놀라 그를 바라보았다.
아린은 조용히 웃었다.
“나도 별을 잃어본 적이 있어.”
그의 눈빛에는 오래된 외로움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더 묻지 않았다.
여행에는 때로 말보다 침묵이 필요한 순간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계속 걸었다.
그런데 길 한가운데에서 이상한 존재를 만났다.
작은 새 한 마리였다.
몸은 눈처럼 하얗고,
눈동자는 금빛으로 빛났다.
새는 길을 가로막고 앉아 있었다.
“안녕.”
새가 말했다.
루시아와 아린은 동시에 놀랐다.
“새가 말을 해!”
새는 고개를 갸웃했다.
“꽃이 말하는 건 괜찮고?”
루시아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 말이 맞았다.
새는 스스로를 소개했다.
“나는 하얀 길잡이.”
“잃어버린 정원의 문지기야.”
아린이 물었다.
“그 정원은 어디 있어?”
새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날개를 펼쳤다.
“가까워.”
“하지만 먼저 시험을 통과해야 해.”
그 순간.
안개가 갈라지기 시작했다.
저 멀리 거대한 그림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구름으로 이루어진 거대한 새.
눈동자는 붉게 빛나고 있었다.
루시아는 본능적으로 씨앗을 품에 안았다.
씨앗이 떨리고 있었다.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하얀 길잡이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림자 까마귀.”
“잃어버린 별을 삼키는 자.”
붉은 눈동자가 루시아를 향했다.
그리고 씨앗을 향해 날카로운 울음소리를 냈다.
끼이이익—!
하늘이 흔들렸다.
바람도 기억하지 못하는 길 위에 새로운 위기가 찾아온 것이다.
그리고 루시아는 아직 알지 못했다.
그림자 까마귀의 몸속에 사라진 별 하나가 갇혀 있다는 사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