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을 심는 아이》
2부. 망각의 계곡
북쪽으로 향하는 길은 점점 조용해졌다.
새들은 노래하지 않았고,
바람도 나뭇잎을 흔들지 않았다.
마치 세상이 무언가를 잊어버린 것처럼.
루시아와 아린은 나란히 걸었다.
별빛 씨앗은 여전히 루시아의 가슴에서 은은하게 빛나고 있었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아린이 갑자기 걸음을 멈춘 것이다.
“왜 그래?”
루시아가 물었다.
아린은 당황한 얼굴이었다.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었지?”
루시아는 깜짝 놀랐다.
“망각의 계곡으로 가고 있잖아.”
아린은 잠시 생각하다가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표정은 여전히 불안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길을 걸을수록 기억들이 조금씩 흐려지기 시작했다.
어제 먹은 음식.
지난주에 본 꽃.
어린 시절 좋아하던 노래.
사소한 기억들이 안개처럼 사라지고 있었다.
그날 저녁.
그들은 은빛 나무 아래에서 쉬게 되었다.
루시아는 모닥불을 피우며 생각에 잠겼다.
“이상해.”
아린도 고개를 끄덕였다.
“계곡이 가까워질수록 기억이 지워지는 것 같아.”
그 순간.
품속의 별빛 씨앗이 강하게 빛났다.
반짝.
반짝.
그리고 허공에 작은 글자가 나타났다.
잊지 말 것.
두 사람은 숨을 삼켰다.
씨앗이 경고하고 있었다.
다음 날.
마침내 망각의 계곡 입구에 도착했다.
그곳은 예상과 달랐다.
무섭거나 어둡지 않았다.
오히려 아름다웠다.
하얀 안개가 흐르고,
수많은 은빛 꽃들이 피어 있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꽃들에는 이름이 없었다.
루시아가 물었다.
“저 꽃 이름이 뭐지?”
아린이 대답하려다 멈췄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던 것이다.
꽃들은 피어 있었지만,
자신의 이름을 잃어버린 채 흔들리고 있었다.
계곡 깊은 곳으로 들어가자 작은 연못 하나가 나타났다.
연못의 물은 거울처럼 맑았다.
그런데 물속을 들여다본 순간,
루시아는 놀라 뒤로 물러났다.
연못 속에는 자신의 모습이 없었다.
대신 어린 시절의 기억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아리아와 처음 만났던 날.
꽃들과 처음 이야기하던 날.
첫 번째 별꽃을 만났던 날.
그러나 기억들은 하나둘 물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마치 누군가 지우고 있는 것처럼.
“안 돼!”
루시아가 손을 뻗었다.
그때 연못 가운데서 작은 빛 하나가 떠올랐다.
별이었다.
하지만 아주 희미했다.
꺼져 가는 촛불처럼.
별은 슬픈 목소리로 말했다.
“기억해 줘.”
루시아는 가슴이 아팠다.
“누구를?”
별은 떨리는 빛을 내며 말했다.
“우리를.”
그 순간.
계곡 전체가 흔들렸다.
안개가 갈라졌다.
그리고 수많은 아이들의 모습이 나타났다.
꿈에서 보았던 아이들이었다.
별의 아이들.
그들은 서로의 이름을 잊어버린 채 떠돌고 있었다.
어떤 아이는 자신의 집을 기억하지 못했고,
어떤 아이는 왜 울고 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했다.
그들은 모두 별빛을 잃어가고 있었다.
루시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왜 이런 일이…”
그때 계곡 가장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낮고 오래된 목소리였다.
“그들은 잊혀진 아이들이다.”
안개가 걷히며 누군가 모습을 드러냈다.
은빛 망토를 입은 노인이었다.
그의 눈동자는 밤하늘처럼 깊었다.
노인은 천천히 말했다.
“세상에서 잊혀진 꿈들.
기억되지 못한 약속들.
이름을 잃어버린 별들.”
루시아는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당신은 누구세요?”
노인은 조용히 대답했다.
“나는 기억의 정원사.”
그리고 손에 들고 있던 지팡이를 하늘로 들어 올렸다.
순간 계곡 깊은 곳에서 거대한 문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문은 별빛으로 만들어져 있었지만 반쯤 부서져 있었다.
문 위에는 오래된 문장이 새겨져 있었다.
잊혀진 이름들의 문
기억의 정원사는 슬픈 미소를 지었다.
“사라진 별들은 모두 저 문 너머로 갔다.”
루시아는 문을 바라보았다.
문 틈 사이로 희미한 별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리고 아주 멀리서,
누군가 울고 있는 소리가 들렸다.
별빛 씨앗은 그 방향을 향해 강하게 빛났다.
반짝.
반짝.
반짝.
마치 말하는 것 같았다.
“찾았어.”
루시아는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사라지는 별들의 비밀.
별의 아이들이 잊혀진 이유.
그리고 자신이 찾아야 할 존재가—
바로 저 문 너머에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