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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이야기

영혼의 피리(3부작)

작성자박미정|작성시간26.06.16|조회수17 목록 댓글 0

영혼의 피리

3부. 마지막 노래

아라와 하얀 사슴은 북쪽 하늘 끝에 있는 그림자의 성을 향해 길을 떠났다.

검은 안개는 점점 짙어졌다.

꽃은 피지 않았고 새들은 노래하지 않았다.

바람조차 숨을 죽인 듯 고요했다.

길을 걸을수록 사람들의 잃어버린 꿈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하늘에는 반쯤 그려진 무지개가 떠 있었고, 땅에는 날지 못한 종이학들이 떨어져 있었다.

어떤 곳에는 끝내 쓰이지 못한 시가 바람에 흩날렸고, 어떤 곳에는 그리지 못한 그림들이 그림자처럼 서 있었다.

아라는 가슴이 먹먹해졌다.

“이게 모두 잃어버린 꿈들인가요?”

하얀 사슴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람들은 꿈을 잊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빼앗긴 것뿐이란다.”

며칠 뒤.

마침내 거대한 검은 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성 위에는 먹구름이 소용돌이쳤고 창문마다 어둠이 흐르고 있었다.

성문이 천천히 열렸다.

그 안에서 모르칸이 걸어 나왔다.

검은 망토를 두른 그는 생각보다 늙고 외로워 보였다.

“네가 영혼의 피리의 주인이구나.”

아라는 피리를 꼭 쥐었다.

“꿈을 돌려주세요.”

모르칸은 씁쓸하게 웃었다.

“왜?”

“사람들은 꿈이 필요해요.”

“필요하다고?”

그의 눈빛이 흔들렸다.

“사람들은 꿈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희망을 말하면서도 서로 상처를 주고, 사랑을 말하면서도 미워하지.”

아라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모르칸의 말에도 진실이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을 지켜보았다. 결국 실망만 남았다.”

그는 손을 들어 올렸다.

순간 거대한 수정구가 하늘에 떠올랐다.

수정구 안에는 수많은 빛들이 갇혀 있었다.

아이들의 꿈.

젊은이들의 희망.

노인들의 추억.

세상의 모든 아름다운 이야기들.

“이제 이것들은 영원히 잠들 것이다.”

수정구가 검게 물들기 시작했다.

그때였다.

아라의 손에 들린 영혼의 피리가 따뜻하게 빛났다.

그리고 피리 속에서 작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기억하렴.”

“누구세요?”

“나는 피리의 영혼이란다.”

맑은 빛이 피리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빛 속에 젊은 시절의 모르칸이 나타난 것이다.

그는 한때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던 빛의 수호자였다.

꽃을 피우고 별을 깨우며 아이들에게 희망을 전해 주던 존재였다.

아라는 그 모습을 바라보며 깨달았다.

“당신도 꿈을 사랑했군요.”

모르칸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만해.”

“당신은 아직도 꿈을 사랑해요.”

“아니다!”

“아니에요. 정말 미워했다면 이렇게 간직하지 않았을 거예요.”

아라는 수정구를 바라보았다.

꿈들은 파괴되지 않았다.

모두 소중히 보관되어 있었다.

모르칸은 침묵했다.

수백 년 동안 누구도 그의 슬픔을 이해하려 하지 않았다.

그때 아라가 천천히 피리를 입술에 가져갔다.

후우우우—

마지막 노래가 시작되었다.

피리 소리는 바람이 되었다.

바람은 숲으로 날아갔다.

꽃들에게 닿았다.

강물에게 닿았다.

아이들의 창가를 스쳤다.

노인들의 기억을 깨웠다.

그리고 마침내 모르칸의 가슴속 가장 깊은 곳에 닿았다.

그 순간이었다.

수정구가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

갇혀 있던 꿈들이 하나둘 하늘로 날아올랐다.

수천 마리의 빛새가 된 꿈들은 세상 곳곳으로 흩어졌다.

잃어버렸던 희망이 돌아오고 있었다.

아이들은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고,

시인은 시를 쓰기 시작했고,

화가는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고,

지친 사람들은 다시 미소를 찾기 시작했다.

모르칸의 검은 망토도 천천히 빛으로 변해 갔다.

그는 오래도록 말없이 하늘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처음으로 미소 지었다.

“내가 너무 오래 슬퍼했구나.”

아라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 혼자 계시지 마세요.”

모르칸의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수백 년 만의 눈물이었다.

검은 성은 사라지고 그 자리에 거대한 꽃의 정원이 피어났다.

꿈의 꽃이었다.

그날 이후 아라는 영혼의 피리를 들고 세상을 여행했다.

피리 소리는 슬픈 이에게는 위로가 되었고,

지친 이에게는 용기가 되었으며,

길을 잃은 이에게는 희망이 되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바람의 연주자라고 불렀다.

그러나 아라는 늘 같은 말을 했다.

“피리가 특별한 것이 아니에요. 누구의 마음속에도 영혼의 피리는 있답니다. 다만 잊고 있을 뿐이에요.”

지금도 바람이 조용히 불어오는 저녁이면 어디선가 맑은 피리 소리가 들려온다고 한다.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잠시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잊고 있던 자신의 꿈을 다시 떠올린다.

그것이 영혼의 피리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선물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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