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폭력을 부르는 수치심

작성자박숙영|작성시간14.03.29|조회수319 목록 댓글 0

폭력을 부르는 수치심

 

                                                                                              박숙영

 

기 싸움

“준호야! 임준호(가명 중2)!”

교실 뒤편에 있는 준호를 불렀다. 내 목소리를 들은 준호는 썩소를 날리더니 뒷문으로 나간다. 그 모습을 본 나는 머리가 띵해지면서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다. “야! 너 뭐야! 임준호! 선생님이 부르는 소리 안 들려?” 그래도 아이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냥 나간다.

나는 분노에 차서 앞 문을 열어 젖히고 나가 복도에서 있는 힘껏 소리쳤다.

“야! 너 거기 안 서!”

나의 분노에 찬 목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시끌시끌했던 복도가 한 순간에 조용해지고, 장난치며 놀던 모든 아이들의 시선이 나와 준호의 팽팽한 기 싸움에 집중되었다. 그 순간 나는 후회했다. 이 상황을 왜 만들었을까? 이 많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이 기 싸움에서 지면, 앞으로 많은 학생들이 나를 우습게보겠구나. 이제 나는 이 기 싸움에서 물러날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나의 두려움을 숨기고 눈을 부릅뜨고 준호를 쏘아 보았다. 그러나 준호는 이번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나를 다시 한 번 돌아보더니 비웃으며 반대편으로 몸을 움직인다. 다시 공이 나에게로 돌아온 것이다. 이번에 나는 어떤 무기를 사용해야 하나. 짧은 순간에 나는 어떤 답도 찾지 못한 채, 습관적으로 말을 뱉어 버렸다. “다섯 셀 동안 당장 내 앞으로 와! 하나! 둘! 셋!….” 이 말은 그 당시 5살인 우리 아들에게 습관적으로 했던 말이다. “다섯 셀 때까지 이빨 닦아라, 다섯 셀 때까지 옷 갈아입어, 다섯 셀 때까지 ….” 절박한 이 순간에 왜 하필이면 유치원생에게나 하는 유치한 ‘다섯 셀 때까지’ 인가….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은 어마 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와 그리고 미래와 함께 오기 때문이다

-수치심이 내면화된 학생

준호 앞에서는 학급 규칙이 모두 멈추어 선다. 8시40분까지 등교하는 것도, 남아서 청소하는 것도, 수업 시간에 제 시간에 앉아 있는 것도, 준호에게는 예외였다.

준호의 상태는 갈수록 심해져서 무단조퇴, 담임교사 지도거부, 흡연, 수업 중 여교사에게 욕설 등등으로 이어졌고, 결국엔 준호는 1학기를 마치기도 전에 선도위원회의 처벌을 두 번이나 받았다. 그러나 준호는 결코 나아지지 않았다. 오히려 그 아이의 눈매는 더 날카롭고 무서워져갔다.

 

왜 일까? 준호는 왜 변하지 않는 걸까?

준호의 아버지는 엄한 편으로, 준호가 잘못을 하면 폭력을 가한다는 것을 어머니로부터 듣게 되었다. 준호는 초등학교 때 공부를 썩 잘했지만, 중학교에 올라오면서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아졌고, 아버지와 부딪치는 일도 자주 일어났는데, 그럴수록 아버지의 폭력수위는 높아져가서 골프채로 맞기도 했다고 한다.

 

내가 만난 준호는 상처 입은 영혼이었다.

그는 자신의 잘못과 부족함으로 인해 비난과 신체적 폭력, 모욕감을 경험했고, 자신을 사랑받을 만한 존재로 여기지 않았다.

인간은 누구나 잘못도 하고 실수도 한다. 하지만, 잘못을 고쳐주고 바꾸려는 부모의 양육 방식에 따라 아이는 잘못에 대한 죄책감뿐 만 아니라, 자신의 존재에 대한 무가치함으로 받아들이면서 수치심을 내면화하게 된다.

 

폭력적인 행동의 근본적인 심리적 동기나 이유는 수치심과 모욕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다

“폭력적인 행동의 근본적인 심리적 동기나 이유는 수치심과 모욕감으로부터 벗어나고자 하는 바람이다.”

많은 폭력적 행동 뒤에는 수치심이 작동하고 있는데, 수치심이란, 자신의 결점으로 인해 사랑이나 소속감을 누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할 때 느끼는 극심한 고통을 말한다.

수치심은 죄책감과 차이가 있는데, 간단히 말하면 이렇다.

죄책감 = ‘내가 한 짓’이 나쁘다.

수치심 = ‘난’ 나쁘다.

수치심은 일종의 두려움이다. 인간은 누구나 심리적 ‧ 정서적 ‧ 인지적으로 유대감, 사랑, 소속감을 갈망하는데, 수치심은 우리가 한 일, 도달하지 못한 목표 등으로 유대감을 유지할 자격을 박탈당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다. ‘누가 날 사랑하겠어. 누가 내 곁에 있으려 하겠어.’ 자신의 실수나 부족함을 자신의 존재 부정으로 내면화한다. 자기존재에 대한 부정과 무가치함은 자신의 감정과 욕구가 수치심에 묶이게 되면서 시작된다.

 

수치심을 자극하는 학교 문화

수치심은 부모의 양육 태도에 의해 영향을 받지만, 교육과 사회, 문화, 종교에 의해 내면화 된다. 여기에서는 학교를 중심으로 수치심을 자극하는 학교의 일상적인 문화에 대해 살펴보려한다.

 

1. ‘무언가 부족해’ 문화 : 완벽주의

학교에서는 100점이 기준이다. 점수가 안 좋으면 실패자가 된다. “공부도 못하는 것이….” 이런 꼴을 당하지 않으려면 수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데, 결과가 아무리 좋아도 늘 ‘부족해’를 경험하게 한다. 시험점수가 좋지 않은 아이들은 학교에 오면서부터 수치심을 느낀다.

무한 경쟁의 학교구조 덕에, 성적이 좋은 학생조차도 항상 ‘난 부족해’에 시달려서, 학생들은 노력한 만큼의 결과가 아니라, 노력한 것 그 이상의 것 ‧ 완벽함을 추구하게 한다. 누구도 ‘이만 하면 됐어’를 외치지 못하고 늘 결핍감에 시달린다.

문제는 아이들의 수치심은 학교 제도의 결함에 의한 것이라는데 있다. 학교에서 실패한 아이는 깊은 곳에 수치심을 묻어 두고 또 다른 치명적인 수치심을 내면화한다.

 

2. 당위적 문화 : 선택의 여지가 없는….

학교 안에서는 당연한 것들 투성이다. 이미 정해진 절대적인 것들로, 소통해볼 여지가 없다. 당위적 지식을 전달하는 수업, 당위를 요구하는 생활지도는 권위적이고 강요로 흐를 수 밖에 없다. 당위문화에서는 자신의 의견이나 필요를 말하거나 요구할 수 없으며, 그저 순종하고 따르는 것이 미덕이어서, 얌전하고 말없는 학생이 모범생으로 인정받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자율성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의 하나이며, 자율성의 박탈은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의 삶의 통제력 ‧ 주도권을 부정하는 것과 같은 심각한 일이다. 자신의 필요를 말할 수 없고, 자신의 필요를 해결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건강한 성인이 될 수 없다.

 

3. 적개심을 부추기는 문화

지금 우리의 학교는 존중과 배려와 거리가 먼 적개심을 부추기는 문화로 팽배해 있다. 비난 ‧ 꼬리표 ‧ 조롱 ‧ 멸시 ‧ 남 탓 ‧ 평가 절하 ‧ 편 가르기 ‧ 따돌리기 …. 또래 그룹 내에서는 가혹하게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교사의 생활지도의 방식에도 적개심을 부추기는 패턴들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너는 그것도 모르니?”, “네가 그럴 줄 알았다.”, “당장 ~해!”와 같은 교사의 언어적 표현도 문제지만, 과정이 아닌 행위와 결과중심의 판단, 상벌점제의 기계적 적용과 같은 학생을 대상화하는 태도도 학생들의 수치심을 자극하게 된다.

 

수치심의 결과

1. 단절

수치심은 다른 사람과의 유대감과 소속감으로부터의 단절을 가져온다. 인간은 ‘개인’으로서 보다 가정이라는 ‘공동체’로 먼저 태어난다. 부모의 안전한 돌봄과 사랑 ‧ 신뢰와 같은 유대감이 있었기에, 아이는 세상 밖으로 한 발자국 나갈 용기를 낼 수 있는 것이다. 이는 단절로 인해 인간이 신체적 ‧ 정서적 유대감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온전하고 자율적인 한 개인으로 성장할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유대감과 소속감의 단절은 인간의 공감 스위치를 꺼버리고, 인간을 대상화하게 한다. 그래서 교실에서 따돌림이나 폭력의 피해가 발생해도, 자신의 일이 아니면 방관하게 되고, 가해자의 경우에는 진심으로 피해에 대해 이해하고 자발적 책임을 지거나 사과하는 것을 하지 못한다. 결과적으로 피해에 대해 공감하는 능력을 상실하여 반사회적 행동하게 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단절’은 수치심으로 인한 가장 치명적인 피해라고 할 수 있다.

 

2. ~인척 살기 : 거짓 자아

수치심은 자기 자신의 존재 부정 ‧ 무가치함에 대한 두려움이다. 수치심에 묶인 사람은 자기 자신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위장하게 되는데, 주로 부모와 교사, 또래와 사회가 요구하는 사람으로 ~인 척 살아가게 된다.

때때로 남자 아이들 간의 사소한 갈등이 물리적 폭력으로 번지는데, 약해보이는 것이 싫어서 센척하다가 싸움이 심각하게 커지는 경우들이다. 센 척은 주로 안전에 대한 두려움이 원인이다. 안전에 대한 욕구로 인해 아이들은 욕설하거나 거칠게 행동하게 되지만, 그러한 공격적인 행동은 모두의 안전을 위협하는 악순환이 될 뿐이다.

‘~인척 살기’는 자기 자신을 잃고 다른 사람으로 살아가는 ‘자신과의 단절’을 가져온다. 자신의 주관보다는 또래의 유행이나 외모를 따르려는 행동, 그리고, 자신의 진로를 부모나 사회가 기대하는 대로 정하는 것, 기계적으로 공부하는 것 등등이 모두 자신과 단절된 모습들이다. 나 자신과의 단절을 가져오는 행위나 일들은 내면의 공허함과 외로움을 가져오기 때문에, 열심히 할수록 삶이 더욱 황폐해진다.

 

3. 반사회적 행동

수치심은 친사회적 행동으로 부터 멀어지게 한다.

얼마 전에 발표한 학교폭력실태조사에 의하면, 가해자 중 24.4%가 피해경험이 있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이 조사결과에서도 알 수 있듯이, 수치를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그대로 수치를 전가시킨다. 비난과 조롱 ‧ 멸시 ‧ 남 탓 ‧ 편 가르기 ‧ 따돌림 ‧ 물리적 폭력 등등을 당한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같은 방법으로 자신의 수치심을 전이시킨다.

또한 수치심은 타인뿐만 아니라 자신을 향하기도 하는데, 자기비난, 자기분열, 완벽주의, 중독, 자살 등으로 스스로에게 가학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수치심의 강력한 해독제, ‘단절’에서 벗어나 ‘연결’하기

브레네 브라운은, 수치심은 인간이 경험하는 가장 원초적인 감정 중에 하나이고, 누구나 수치심에 대해 말하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한다. 브레네 브라운의 말대로라면, 수치심을 피할 수가 없다. 그렇다면, 수치심을 숨길 것이 아니라, 나의 취약성을 인정하고 관리하는 것이 최선일 것이다.

“교사는 생활지도 과정에서 수치심을 어떻게 관리할 수 있는가?”

수치심은 사회적 감정으로, 단절에 대한 두려움이다. 그래서 수치심의 가장 적절한 해법은, 단절에서 벗어나서 관계가 회복되어 ‘연결’되는 것이다. ‘연결’은 바로 ‘공감’에서 시작된다.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은 이미 수치심이 내면화된 상처받은 영혼들이다. 그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의 것이 바로 ‘공감’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말처럼 그렇게 쉽지는 않은 것이 현실이다. 가장 어려운 점은 교사도 수치심에 묶여 있는 취약성을 지닌 존재라는 것이다. 교사도 아이들과의 관계 속에서 수시로 ‘나는 능력 없는 교사야’라며 수치심에 빠져버린다.

 

나와 연결, 그리고 너와 연결

준호와 나는 관계를 회복하지 못한 채, 1년 동안 싸우면서 보냈다. 그 후로도 준호는 지속적인 흡연으로 선도위원회가 한 차례 더 열렸고, 우리 반에 들어오시는 선생님들은 준호로 인해 어려워했다. 준호와의 관계로 나는 피폐해진 나의 영혼을 만났고, 우울증도 겪어야 했다. 교사를 언제 그만 두어야 하나 라고 고민하기도 했다. 나도 나의 수치심에 묶여서 헤어 나오지 못한 것이다. 준호는 간신히 3학년에 올라갔고, 나는 그 다음 해에 학교를 옮겼다.

지금 다시 준호를 떠올리며 나의 수치를 드러내는 이유는 내가 나와 연결되기 위해서다. 나의 취약성에 대해 수치스럽게 받아들이지 않고, 드러내고 나를 공감하기로 선택했다.

그동안 나는 ‘능력 있는 교사가 되어야 한다.’, ‘기독교사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 ‘아이들을 잘 관리해야만 한다.’ 하면서, 나의 실수를 용납하지 못했다. 그리고는 아이들의 한 마디에 분노하고 무너져 버리곤 했다.

수치심에 사로잡힌 담임으로부터 준호는 또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을까. 준호에게 학생으로서의 규칙준수에 대해서는 수시로 요구했지만, 그 아이와의 정서적 교류의 기회는 많지 않았다. 규칙을 어기면 벌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했고, 담임지도에 순종하지 않을 때는 기 싸움에 밀리지 않기 위해 더욱 강제력만 행사하려고 했었다.

지금 이 순간 그러했던 나를 애도한다. 내가 얼마나 준호와 연결되고 싶었는지, 그리고 재미있게 보내고 싶었었는지….

 

이제, 수치심으로 인한 ‘단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는 ‘연결’을 선택한다.

매 순간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과 더 이상 분리되지 않기를….

매 순간 너를 있는 그대로 보고, 너의 두려움과 기쁨을 함께 소통할 수 있기를….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