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FIFA 월드컵의 유래 ◈
FIFA 월드컵은 단일 종목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스포츠 행사이지요
FIFA 월드컵은 20세기 초 올림픽운동, 특히 1920년 올림픽대회에
그 뿌리를 두고 있어요
1920년 앤트워프 올림픽대회의 축구 경기에는
남미, 아시아 및 아프리카를 포함한 14개국이 참가했고,
1928년 암스텔담 올림픽에는 17개국이 참가했으며,
이때까지 FIFA에서 주관하는 축구대회는 없었지요
따라서 1920년 5월 26일 FIFA는 독자적인 축구대회 개최계획을
발표함으로써 FIFA 월드컵이 탄생하였어요
쥘 리메(Jules Rimet) 회장은 1926년 FIFA 총회에서
“FIFA 회원국 축구협회가 파견하는 모든 국가대표팀이 참가할 수 있는
제1회 FIFA 월드컵을 개최한다.”는 안건을 통과시켰지요
1930년 제1회 FIFA 월드컵의 개최권은 우루과이에 주어졌어요
그러나 유럽의 전후 복구사업과 대공황 사이의 기간에 열린 이 대회는
개최 2개월을 앞두고서도 참가 신청을 한 유럽국가는 한 나라도 없었지요
쥘 리메(Jules Rimet) 회장의 적극적인 교섭의 결과,
유럽의 4개국을 포함한 13개국이 출전한 가운데 FIFA 월드컵 첫 대회는
1930년 7월 13일부터 7월 30일까지 우루과이의 3개 경기장에서 개최됐어요
그러나 올림픽 중간 연도를 택해 4년에 한 번씩 개최키로 한 FIFA 월드컵은
프랑스에서 열린 제3회(1938년) 대회 이후
12년 동안 전쟁으로 인해 중단되었지요
전쟁의 종식과 함께 1950년 제4회 대회가 브라질에서 다시 개최되었어요
그런데 FIFA 월드컵 역사를 통하여 2개의 FIFA 월드컵 트로피가 있었는데,
첫 번째 트로피는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지요
FIFA가 1930년에 제1회 FIFA 월드컵을 개최키로 결정한 후,
프랑스 조각가인 Abel LaFleur는 우승팀에게 시상할 순금 트로피를 제작했어요
이 트로피는 준보석으로 된 받침대 위에 승리의 여신이 팔을 뻗쳐
팔각형 컵을 받들고 있는 조각품이었지요
이 트로피는 FIFA 월드컵의 창시자인 Jules Rimet 회장을 기리어
줄리메컵으로 불려지고 있지만, 제2차세계대전 전에 열린
제3회의 대회(1930, 1934, 1938년) 때에는 그냥 월드컵으로만 불리웠어요
이 트로피는 1970년 대회에서 브라질이 우승함으로써
당시 유일한 3회 우승국인 브라질이 영원히 차지하게 된 것이지요
이 트로피는 제2차대전 중 침략군을 피해 이탈리아의 한 가옥의
침대 밑에 숨겨지기도 했으며, 1966년 영국에서 열린 월드컵대회 직전에
일반에게 전시되던 중 도난당하기도 했어요
영국 경시청이 이 트로피를 찾아 나섰지만 실패했지요
그런데 이 트로피를 ‘픽클즈’ 라 불리는 잡종견 한 마리가
교외의 쓰레기통에서 찾아냈어요
이 트로피는 1983년 브라질에서 다시 도둑을 맞았는데,
이때에는 도둑들이 녹여 없앤 것으로 추측되지요
이에따라 브라질축구협회는 복제품을 만들어 대신 보관하고 있어요
두 번째의 FIFA 월드컵 트로피는 FIFA가 53개나 되는
디자인 중에서 선정하여 1974년 FIFA 월드컵에 내놓은 것이지요
이탈리아 조각가인 Silvio Gazazniga가 18캐럿 순금으로 제작한 것인데,
이 조각가의 설명에 따르면,“바닥에서 나선형으로 솟아오르는 선들이
지구를 떠받치고 있는데, 이는 2명의 선수가 감격적인 우승의 순간을
역동적으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 했어요
현재의 이 트로피는 높이가 36cm(14인치), 무게가 4,970g(11파운드)이며,
영구적으로 FIFA의 소유물이고, 우승팀에게는 도금한 복제품을 수여하지요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월드컵은 이번이 23회 인데
‘북중미 월드컵’으로 미국, 캐나다와 함께 3개국이 공동 개최하여
멕시코에서 3번째로 열리는 대회이지요
이로서 멕시코는 제9회 1970 멕시코 월드컵, 제13회 1986 멕시코 월드컵에
이어 세 번째 월드컵을 개최하는 나라가 됐어요
그런데 월드컵 대회는 전 세계인들이 보고 즐기는 축제 이지요
우리나라 역대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스포츠 행사는
1998년 프랑스 월드컵 벨기에전이었어요
지상파 3사 합산 시청률이 무려 74.7%를 기록했지요
하지만 최고 추억으로 2002년 월드컵 폴란드전을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지요
합산 시청률은 74.1%로 벨기에전보다 약간 낮았지만,
당시 전국을 뒤덮은 거리 응원 열기를 감안하면
실제 시청 규모는 사상 최대일 것이지요
이 경기 최고 순간 시청률은 경기 종료 4분 전 86.3%까지 치솟았어요
중년층 이상 기억에 강렬하게 남는 경기로
1983년 멕시코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가 있지요
당시 우루과이와 8강전에서 김종부가 오른쪽 측면에서 올린 크로스를
신연호가 결승골로 연결해 사상 최초로 4강 신화를 쓰자
전국은 열광의 도가니로 변했어요
그때는 TV가 없는 교실이 많았지요
그래서 학생 집 TV를 학교로 가져와 연결해 보기도 했어요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라디오를 켜놓고 아나운서 목소리에
주먹을 흔들고 함성을 질렀지요
그때는 선생님들이 흔쾌히 단체 시청을 허락했어요
체코전이 열린 지난 12일 서울의 한 초등학교 4학년 담임은
학생들 성화에 교실 TV를 켜지 않을 수 없었지요
“제발 보여주세요”라는 학생들 호소를 계속 외면했지만
4교시 10분 정도 남기고 황인범이 동점골을 넣을 때
사방에서 함성 소리가 들리자 도저히 안 보여줄 수 없었어요
경북의 한 고교에서는 교장이 수업 시간에 월드컵 시청을 허용한 교사를
문제 삼으려 하자 재학생이 성명문을 내며 항의하기도 했지요
지구 반대편에서 열리는 이번 대회는
시차 때문에 한국 대표팀의 남은 예선 경기(19일·25일)도
핵심 근무 시간인 오전 10시 시작이지요
삼성전자는 지난 12일 수원 본사 각 건물의 로비와 강당에서
월드컵을 중계했어요
업무 지장이 없는 선에서 자연스럽게 시청하라는 것이지요
LG그룹은 여의도 LG트윈타워의 지하를 단체 관람석으로 개방했어요
현대차그룹은 단체 관람 계획 없이 ‘원칙’을 지켰지요
광화문의 한 회사는 19일 오전 10시 30분이던 아침 회의 시간을
1시간 앞당기기로 했어요
2022 카타르 월드컵의 경우 누적 시청자가 50억명에 이른 것으로
FIFA는 추산했지요
이 정도면 전 세계인이 동시대를 살고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하는 의식이나 다름없어요
이제 내일(19일) 10시면 주최국 멕스코와 우리나라가
진검승부를 벌여야 하지요
지난번 체코전에 이어 승리를 거머쥐었으면 좋겠어요
지금의 초등학생들이 중년이 됐을 때도 체코전이나 멕시코전
혹은 다른 명승부를 추억하게 될 것이지요
그때 선생님이 TV를 켜주었는지도 얘기거리의 하나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
-* 언제나 변함없는 조동렬(一松)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