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 병실 그 환자를 대할때 그런 일상적인 대화를 할수는 없다.
왠지 그래서는 안될것 같았다. 그네들의 일상이 늘 안녕할수는 없으니까
안녕이라는 사소한 언어에서 불일치함을 느꼈기 때문이리라.
3주째 되는 금요일에 그녀의 병실에 들어가서 그 얼굴과 마주하면서
결국 하는 말은 얼굴이 맑아보여요.
괜찮으셨어요?
살짝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지만 곧이어 다가오는 통증으로 인상을 쓰기시작했다.
보호자가 급하게 간호사를 찾았고 간호사는 마약성 진통제를 주사하였다.
통증은 쉽게 가라앉은듯 보였는데 이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하였다.
살고 싶다는 소망을 말하지는 않았다.
그저 저 진통제를 맞고 싶지 않다고만 한다.
통증은 없지만 몽롱한 상태로 하루이틀이 그냥 지나간다고 하소연한다.
얼마 남지 않은 시간을 그렇게 허비하고 주검앞으로 가야하는 자신이 서글프다면서
큰눈에 그렁그렁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따뜻하게 손을 잡아 주고 잠시 쓸어주었다. 말은 필요 하지 않았다.
마음자리 하나 그냥 그곳에 놓아두고 돌아 나왔다.
함께 동행했던 스님이 그녀의 흰손을 부여잡고 이야기를 시작하였다.
스님은 위로가 되었을지 모르겠지만 충분히 들어주고 돌아와서 스스로도 편안하다고 하신다.
58세 자궁 경부암으로 들어온 그녀는 항암치료를 거치면서 머리칼은 거의 없지만
항상 샴푸해주길 원했다.
누군가에게 자신의 몸이 존중시 된다는 느낌이 좋다고 했다.
대우 받는다는 느낌으로 기분좋다는 말이 우리에게는 칭찬이다.
호스피스 자원봉사!
하필이면 그것인가? 희망이 없는 절망의 끝자락에 있는 그들에게 기를 얻을수 없음을 말했다.
아마도 그가 생존해 있다면 전혀 할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나는 이 길에 만족한다.
항상 건강한 사람 편에서 보다는 나약한 사람 편에 서있던 일생이 아니었던가?
이제 죽음 앞에 처해있는 그들을 보면서 나는 죽음이 삶과 함께 있음을
스스로 느끼고 싶었다.
그리하여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니고 우리가 겸허히 받아들여야 하는 자세임을
배우고 싶은것 같다.
금요일 오후에 나서면서 나는 저번 금요일에 계시던 분이 그대로 계시기를 원하는
기도 보다는 평안하게 임종하셨으면 좋겠다는 기도로 시작한다.
호스피스 병동의 환우들은 살기를 바라지 않았다.
오직 평안한 임종을 기대할 뿐이다.
더 이상 아픔이 없는 편안한 세계로 마음 편하게 떠나고 싶음을 알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