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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빈 신명기 설교

신 21:10-14

작성자doulosdei|작성시간26.06.16|조회수30 목록 댓글 0

121회 설교: 21장 두 번째 설교

15561225일 수요일

 

21:10-14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규정 안에 머물렀더라면, 그들은 우상 숭배자들과 아무런 방식으로도 서로 섞이지 않도록 차라리 자신들의 지파 중에서 아내를 취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정욕은 좀처럼 억제하기 어렵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여기서 하나의 허용을 베푸십니다. , 전쟁의 법에 따라 이방인 여인을 포로로 잡은 사람이 그녀를 아내로 맞이하고자 할 때, 그렇게 하기 전에 먼저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마치 죽은 사람처럼 슬퍼하며 울게 해야 합니다. 이는 그녀가 새로 태어난 것처럼,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의 몸 안으로 접붙여진 것처럼, 자신이 태어난 조국과 친족을 모두 잊게 하려는 목적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전쟁 시에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하고, 이전에 우상을 섬겼던 이방 여인들을 반드시 취하려 했던 자들의 정욕을 제한하고자 하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제 그 수단은 (내가 이전에 말한 바와 같이) 그 여인들이 더 이상 자신들의 이전 삶을 기억하지 못하도록, 말하자면 변화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분이 그들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아야 한다고 말씀하신 이유입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손톱을 기르게 하다로 번역하는데(왜냐하면 글자 그대로는 그러하기 때문입니다), 즉 손톱을 자라나게 하여 크게 만들어서 그들의 외모를 보기 싫게 훼손하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수단을 통해 그들의 남편들이 그들을 싫어하게 만들려 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완전히 반대입니다. 왜냐하면 프랑스어에서 보통 머리를 손질하거나 수염을 다듬는다고 말할 때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둥글게 다듬는 것, 그리고 수염을 깎거나 자르거나 정돈하는 것을 의미하듯], 히브리인들 역시 똑같은 어구의 표현을 사용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 의식을 행하도록 지정하신 것은 모든 부정함을 제거하기 위함이었으니, 말하자면 만약 그들이 자신들의 피부 자체를 긁어내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렇게 해서라도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태생적 권리를 완전히 포기하여 모세의 손을 통해 그의 율법을 주신 하나님을 섬기는 유대인이 되게 하려는 뜻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슬퍼하며 울어야 했던 그 슬픔 역시 동일한 목적을 향해 있었습니다. 이처럼 우리는 이제 이 율법이 어떤 목적을 위해 주어졌는지를 봅니다.

이제 그 안에 포함된 교훈을 모으는 일이 남아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사람들이 얼마나 방종을 부리는지 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세상적인 어떤 번영을 누릴 때, 그때 그들의 정욕은 더욱더 늘어나고 끓어올라 좀처럼 진정되지 못합니다. 사람들이 성읍을 점령하거나 어떤 정복을 이룬 뒤에는, 너무 넓은 여지를 취하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억제하지 못합니다. 만약 유대인들이 자신들의 집에서 평온하게 머물며, 모든 사람이 자신의 친족 중에서 아내를 취하라는 하나님의 법도를 따랐더라면(형제가 자매를 취하는 것은 율법으로 금지되었으므로, 내가 의미하는 바는 하나님께서 온 세상 가운데서 택하신 가문인 아브라함의 혈통을 뜻합니다), 그들은 불신자들과 함께 자신들을 더럽히는 일로부터 보존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평생 도록 미신 속에서 양육되어 온 이방 여인과 유대인이 결혼하는 것은 일종의 더러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밖으로 멀리 나아가지 않았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일단 어떤 전쟁이 일어나고 하나님께서 어떤 민족을 상대로 승리를 주시자, 그때 그들의 방탕함은 그 경계를 넘어 터져 나왔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너무 많은 이점을 주시는 것이 항상 우리에게 유익한 것만은 아님을 봅니다. 왜냐하면 만약 우리가 너무 강해지면, 우리의 무모함은 참을 수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스스로 자신의 몫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면, 흔히 하는 말처럼 우리는 즉시 깃털을 세우고 볏을 세우며, 이는 경험을 통해 확인되는 바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뜻대로 우리를 대하지 않으실지라도, 그분이 우리를 낮추시는 것은 우리가 언제나 어떤 절제와 온유함(sobriety and mildness) 속에 머물도록 하시기 위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임을 확신합시다. 참으로 그분이 우리를 번성하게 하실 때조차도, 우리는 기꺼이 자신을 낮추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스스로를 높일 때마다 우리의 교만은 언제나 처벌을 받고 꺾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우리가 목을 곧게 세운다면, 하나님께서는 온 힘을 다한 타격으로 우리를 치실 수밖에 없습니다. 스스로의 선한 뜻으로 복종하고 자신의 경계를 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위로를 받습니다. 그러나 완악함으로 반드시 그분을 이기려 하는 자들은, 자신들의 머리 위에 임하는 그분의 손길을 더욱 아프고 무겁게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첫 번째로 주목해야 할 바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복과 은혜로운 선물들을 남용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리하여 만약 그분이 그들에게 세상적인 번영을 보내주시면, 그들은 그 안에서 너무나 크게 자랑할 기회를 취하며, 자신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고 자신들의 정욕을 너무나 방종하게 따르니, 마치 (그들이 보기에) 모든 것이 자신들에게 허용된 것처럼 행동합니다. 우리는 그것을 너무나 많이 봅니다. 그리하여 만약 사람들이 승리를 얻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이 모든 방식의 약탈과 강탈을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여 그 어떤 것도 아끼지 않습니다. 우리가 타인들보다 우월한 위치에 서게 될 때, 우리는 어떤 상태에 놓입니까? 우리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들을 우리의 수하로 만들고 그들의 목을 발로 짓밟고 싶어 합니다. 상황이 그러함을 우리가 아는 만큼,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더 잘 다스리시고 우리가 그분의 멍에를 평온하게 메도록 하시기 위해 우리를 낮은 처지에 붙들어 두실 타당한 이유가 있음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세상적인 번역을 누리는 자들은 자신들이 너무 큰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지 않도록 스스로를 잘 살펴야 하며, 우리의 본성이 본래 그러한 방향으로 기울어지기 쉽고 그쪽으로 너무나 크게 쏠린다는 점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번영의 시기에 스스로를 경계해야 하며, 자신을 절도(modesty)의 경계 안에 붙들어 두도록 올바르게 정신을 차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결혼에 대해 다루어야 하며, 왜 우리 주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방인 및 불신자들과 결혼하지 말라고 그토록 엄격하게 뜻하시고 명령하셨는지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 바울이 결혼에서의 우리의 맺어짐을 멍에에 비유한 것은 이유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17:17; 고후 6:14). 왜냐하면 한 쌍의 황소가 함께 멍에를 멨을 때, 한 마리가 가면 다른 한 마리도 필시 따라가야 하고, 한 마리가 삐딱하게 끌면 다른 한 마리 역시 곁길로 틀어질 수밖에 없는 것과 같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친밀함에서도 똑같이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방인들과 맺어지지 않으면서도, 그들 가운데서 교제하며 지낼 수 있다는 점은 참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성 바울이 말하듯) 우리가 선한 사람들과 하나님의 자녀들 외에는 아무와도 동행하지 않으려 할 때, 이 세상 밖으로 나가야만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고전 5:10). 그러나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고 가는 수단들이 있되, 그것은 오직 나그네의 방식으로만 행해져야 합니다. 어떤 사람에게서 물건을 사는 자는 그 사람에게 속임수를 당할까 봐 두려워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그의 선한 행동거지에 대해 꼬치꼬치 캐묻지 않을 것입니다. 그저 자신의 물건을 사고, 자기 길을 갈 뿐이며, 그런데도 자신이 거래한 그 사람과 어떤 언약을 맺은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만약 그가 일단 친밀한 대화 속으로 들어가 그와 함께 먹고 마시기 시작하며, 그들 사이에 보통 함께 살아갈 만큼 그러한 면식이 생기게 된다면, 성 바울은 그것이 곧 멍에가 된다고 말합니다. 이제 우리는 결혼이 온 세상에서 가장 거룩한 종류의 동행(company)임을 압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자신의 아내와 동행하기 위해 아버지와 어머니를 둘 다 떠날 정도입니다(2:21; 19:5). 그러므로 사람이 자신의 아내와 결합하여 만사에 각자가 상대방의 마음과 뜻과 목적을 은밀히 공유하지 않고서는 결혼을 체결하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준 당사자들이 결국에는 어떻게 완전히 망가졌는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그들을 자신의 백성으로부터, 말하자면 잘라내어 썩은 지체처럼 되게 하셨는지를 보기 때문이며, 이 모든 것이 발람의 모략을 통해 일어났습니다(25:1; 31:15). 왜냐하면 발람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도록 자신의 입을 열지 않으실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신이 저주를 쏟아내려고 공모했을 때, 완전히 그 반대로 말하도록 강제되시는 것을 보았을 때, 자신의 마지막 방책으로 유대인들이 이방 여인들과 교제를 시작하게 하라는 모략을 주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그 여인들이 유대인들의 마음을 미혹하고 그들을 우상 숭배로 타락하게 하여, 그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대적하는 하나님의 보응을 격동하게 함으로써 그것이 그들의 멸망으로 돌아가게 하려는 목적이었습니다.

아니, 만약 다른 이가 없고 오직 솔로몬 한 사람만 있었다 할지라도(왕상 11), 그가 어디로 떨어졌는지를 잘 고려하는 자들에게는 그의 본보기만으로도 머리카락이 머리 위에 곧추설 만큼 충분했을 것입니다. 확실히 그는 탁월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하나의 거울이나 비할 데 없는 진주처럼 내세우고자 하셨으며, 그는 너무나 탁월한 지혜를 부여받아 모든 사람이 그를 기이히 여겼고, 정말로, 그는 하나님의 선지자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이방 여인들이 그의 마음을 미혹하였으니,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위해 보존하시고 구별하셨던 그 지역 안에서 우상 숭배가 온전한 여지를 얻고 지배하도록 방치하였고, 우상들을 향해 신전들을 건축하기까지 했습니다. 하늘의 천사와도 같았던 그러한 사람이 지옥으로 떨어지고 하나님께서 그를 악한 마음에 내버려 두시어, 그 결과 그가 너무나 짐승처럼 되어 하나님의 예배와 종교를 뒤엎어버린 것을 우리가 볼 때, 그가 유익을 얻은 만큼에도 훨씬 미치지 못하는 자들은 어떻게 행하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이방 민족들, 특히 가나안 땅의 여인들을 아내로 취하는 것을 그토록 엄격하게 금지하신 것에 이유가 없지 않음을 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그분의 뜻은 그들이 우상 숭배자들과 자신들을 맺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어째서입니까? 그것은 사탄이 모든 것을 황폐하게 만들고, 모든 일을 무질서와 혼돈으로 이끌 수 있도록 들어올 입구를 만들고 틈을 열어주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방지하고자 하셨습니다.

이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된 오늘날에는 이방인도 유대인도 더 이상 없으며, 우리에게는 율법 아래에 있던 것과 같은 그러한 구별이 더 이상 없다는 점은 참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성 바울이 말하듯 막힌 담이 허물어졌으니(3:28), 그리하여 이제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에 의해 불리시기를 원하시고 모든 사람이 그분을 아버지라 부르기를 원하시는 만큼, 우리는 이제 형제 된 화목 안에서 서로 연결되어야 하며, 따라서 우리 자신을 함께 결속해야 하기 때문입니다(2:14). 정말로, 그러나 불신을 통해 자신들을 분리하고 교회의 몸에 속하려 하지 않으며,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우리에게 선포된 하나님을 거부하고 그분이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든 사람에게 선사하시는 양자 삼으심에 동참하려 하지 않는 자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구원의 길로부터 우리 자신을 멀어지게 할 작정이 아니라면, 적어도 그러한 자들에게는 고착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알면서도 고의로 불신자들과 자신을 맺는 자는, 자기 안에서 행할 수 있는 한 스스로를 하나님의 나라에서 추방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성 바울은 우리가 불신자들과 멍에를 함께 메지 말아야 한다는 이 권면을 사용하며(고전 6:19,20), 옛 시대에 유대인들에게 말씀하셨던 것들이 우리에게도 속해 있으므로, 우리가 모든 미신과 우리를 그 안에 얽매는 모든 자들로부터 멀리 피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우리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주님의 성전의 물질적인 기명들을 멜 뿐만 아니라, 그분이 자신의 성령으로 거하시는 그분의 살아있는 성전들 자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몸과 영혼을 둘 다 그분께 제물로 드려, 우리 자신이 온전히 그분께 구별되게 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이 우리를 자신의 자녀로 택하셨음을 보는 만큼, 이미 선포된 바와 같이 우리가 몸과 마음의 모든 타락함으로부터 깨끗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므로 상황이 그러함을 볼 때, 우리는 사람이 결혼하고자 할 때 자신을 순결하게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서 진척시켜 줄 수 있는 그러한 아내를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택해야 한다는 점을 배워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타락하게 되지 않더라도, 우리 자신만으로도 이미 충분히 연약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선한 길에 서 있고, 아무리 좋은 마음을 품고 있으며 잘 행하기를 바랄지라도, 그는 악한 동행으로 인해 곧 망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이 그것을 보고 있습니다. 만약 사람이 방탕한 자나 행실이 나쁜 자와 그저 함께 술을 마시기 시작할지라도, 그는 뒤로 돌이켜 날이 갈수록 다른 이보다 더 악해질 위험에 처하게 되니, 그리하여 여러분은 그가 완전히 마귀처럼 변하는 것을 보고 기이히 여길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제 작은 음주가 이 일을 행한다면, 사람이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아내와 동행할 수밖에 없을 때는 어떠한 일이 뒤따르겠습니까? 진실로 사람이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거꾸러뜨려 내던지고, 아내를 취할 때 눈을 감아버리며, 그녀에 의해 도움을 받아 그들이 한마음 한뜻으로 거룩하게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처신할 수 있도록 자신의 선택에 아무런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명백한 시험하는 행위입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하거니와) 그것은 우리가 잘 주목해야 마땅한 요점입니다. 오늘날 그토록 많은 결혼이 불행한 결말에 이르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눈을 두지 않고, 사람들의 마음이 자신들의 정욕과 쾌락에 사로잡혀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그들이 재물을 구하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는 고려 대상이 되지 못하며, 그러므로 그분은 그러한 경멸에 대해 필시 보응하시니, 경험이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분은 그렇게 행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에서 만약 사람이 이방 여인(, 하나님의 경외함 속에서 자라나지 못했고, 그의 말씀 안에서 교훈을 받지 못한 불신자)과 결혼하고자 한다면, 그는 그녀에게 다가가기 전에 먼저 그녀가 완전히 변화되었는지를 살펴야 한다고 말씀하신 바를 더욱더 잘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내가 자신의 이전 삶의 방식을 먼저 버리지 않고, 그때부터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며 순결하게 그의 말씀에 고착되기로 고백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옛 양육 방식을 자신의 마음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리지 않고, 정말로, 흔히 말하듯 자신의 허물까지 벗어버리지 않았다면, 그녀는 치명적인 독과 같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기서 그 여인이 자신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으며, 자신의 [] 의복을 버리고, 마치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잃은 것처럼 슬퍼하며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곳에서, 진실로 그러한 의식들은 유대인들에게 효력이 있던 것이며, 오늘날 우리가 그러한 표상들을 사용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우리는 그것이 어떤 목적을 향해 있었는지를 눈여겨보아야 하니, 즉 그 여인들이 (내가 이전에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의 교회의 몸 안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말하자면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의 근거가 되니, 사람이 아내를 취하고자 할 때는 그녀가 미리 개혁되었는지, 그리고 그녀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알아서 그곳에 자신을 결합하고 모든 우상 숭배를 기꺼이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를 살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인이 그러한 상태에 이르기까지는, 그리스도인 남자가 그녀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하는 것은 허용되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약 그가 그 전에 그녀를 취하고, [하나님께서] 그 뒤에 그녀를 돌이키게 하는 은혜를 그에게 베풀어 주실지라도, 여전히 그는 자신이 잘못을 범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남성들에 대해 말한 바는 여성들에게도 똑같이 해당합니다. 왜냐하면 여성들이 남성들의 마음을 유혹하는 자신들만의 유인책을 가지고 있듯, 남성들 역시 여성들을 쉽게 유혹하여 그들을 구원의 바른 길에서 돌이키게 하고, 그들을 파멸시킬 수 있음을 세상이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성이 자신의 뜻으로 나아가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 악하고 방탕하게 사는 자, 법이 없는 자, 술주정꾼이나 욕설을 퍼붓는 자를 남편으로 취할 때, 그것은 그녀가 하나님을 버리고 그의 교회 밖으로 스스로를 추방하는 것과 다름없으며, 그녀는 온갖 종류의 저주가 자신의 머리 위에 내리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결혼에 관해 우리에게 말해준 바를, 우리를 우리의 길에서 밀쳐낼 수 있는 다른 모든 일에 대해서도 똑같이 이해합시다. 그리고 우리가 언제나 더 나은 쪽으로 여전히 세워질 수 있도록, 그러한 동행자들과 교제하는 법을 배웁시다. 왜냐하면 우리 각자가 스스로 연약하므로, 우리에게는 우리를 바로잡아 줄 수 있는 그러한 사람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경외함을 가지고 있으며 거룩하고 정직한 삶을 이끄는 자들과 우리 자신을 맺도록 구해야 하고, 자신들의 가증한 일들 안에 우리를 얽매려고 부단히 애쓰는 자들을 멀리 피해야 합니다. 우리가 악의적이고 삐뚤어진 사람, 하나님을 경멸하는 자, 혹은 모든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 방탕한 한량을 볼 때, 우리는 그를 전염병처럼 여겨야 하며, 그를 완전히 피해야 합니다. 무엇을 위해서입니까? 누구든지 그에게 가까이 가는 자는 즉시 그에 의해 확실히 감염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명백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잘 행하도록 가르치기에 적합한 그러한 동행을 우리가 자주 찾아야 하며, 그와 반대로 우리 안에 있는 연약함 때문에 모든 악의 기회들을 멀리 피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하셨음을 마음속에 잘 간직합시다. 우리는 잘 행하는 것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돌이키는 데 많은 것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친족을 포기해야 하는 여인들을 위해 그토록 많은 의식들을 지정해 두신 것을 볼 때, 그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순결하게 그리고 그분이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대로 섬기고자 한다면, 우리의 본성 자체를 잊어버려야 한다는 점을 그분이 우리에게 깨닫게 하려 하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악한 훈련을 받았고 어떤 악한 관습 속에서 양육되어 왔을 때, 우리에게 그러한 일이 악하다는 말을 듣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그러함을 우리가 보고 우리에게 철저히 증명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그것으로 인해 더러워진 상태를 그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우리 안에 너무나 깊이 뿌리박혀 있어서 단번에 뽑아낼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이 어린 시절부터 잘못 양육 받아 스무 살 나이가 되기까지 무질서한 집안에서 거주했을 때, 비록 그가 그 뒤로 평생 도록 자신이 이전에 보았고 자신에게 스며들었던 그 타락함들을 잊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을지라도, 결코 그것을 완수해 낼 수 없으며, 언제나 여전히 얼마간의 얼룩이나 흠을 보유하게 될 것이라는 이 사실을 우리는 철저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께서 다른 것이 아닌 오직 선하고 정직한 본보기들만을 보며 자라나서, 그것을 통해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을 공경하는 법을 배운 자들에게 얼마나 은혜로우신지를 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양육을 받도록 허락해 주시는 것은 헤아릴 수 없는 특권이며, 그것을 남용하는 자들은 불행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에게 자신들의 자녀들을 잘 훈육하고 그들을 선하게 양육하는 일에 수고를 쏟게 만드는 훨씬 더 큰 자극이 되어야 하니, 왜냐하면 사람 안에는 타락함이 너무나 커서 일단 악덕에 물들고 감염되면 큰 고통을 겪지 않고서는 그것을 좀처럼 억제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이 결과적으로 우리가 이 본문에서 기억해야 할 바이며, 이는 모든 사람이 참된 종교와 미덕 안에서 자신들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에 깨어 경계하도록 하려는 것입니다.

또한 반대로, 자녀들은 자신들의 편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무산시키지 않도록 깊이 유의해야 하며, 오히려 그 은혜가 효력을 보게 하여 자신들의 선한 양육을 통해 그 뒤로 평생 도록 더 나은 상태를 누려야 합니다. 아울러 아버지들과 어머니들은 자신들의 자녀들이 정처 없이 방탕하게 내달리도록 방치하지 않도록 크게 주의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것이 어떻게 그들을 즉시 망가뜨리고 그 불쌍한 영혼을 철저한 파멸로 이끌기에 충분한지를 보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 자신이 잘못 양육 받았을 때, 즉 악하게 가르침을 받았을 때, 우리는 우리 안에 있는 그 감염된 자국들을 뽑아내기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을 행하기 쉬운 일로 여겨서, 수많은 이들이 그러하듯 그저 귀를 털어내기만 하면 되는 것처럼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들은 못된 짓을 저지르고서도, 자신들이 모든 극단적인 죄악으로 치닫지만 않는다면 스스로를 세상에서 가장 잘 개혁된 사람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런데도 그들은 여전히 자신들의 이전 타락함의 일부를 보유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온 세상은 여전히 그들 안에서 잘못 양육 받은 흔적들을 볼 수 있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은 잘못 양육 받은 사람이 자신을 개혁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 점은 종교 안에서 관찰되어야 합니다. 교황 제도 안에서 양육된 자들, 내 말은 그 안에서 길들여져 말하자면 짐승처럼 된 자들(왜냐하면 교황주의자들 사이에서 가르쳐지고 존중받는 도리의 가장 거룩한 요점 중 하나는, 사람들이 지각도 없고 이성도 없이 스스로 아무것도 분별하지 못하며, 오히려 이성 없는 짐승처럼 코가 꿴 채 끌려 다녀야 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이 그러한 무지 속에 길들여졌을 때, 정말, 그들이 나중에 복음의 순결함으로 나아올지라도, 우리 각자가 자신 안에서 경험을 통해 발견하듯 그들이 자신의 이전 타락함을 모두 제거하기 위해 경이적일 만큼 큰 수고를 쏟지 않는 한, 여전히 얼마간의 찌꺼기를 보유하게 됩니다.

많은 어리석은 영혼들이 자기 안에 있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참된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미사는 가증한 것이며, 그 안의 여러 가지 일들이 사탄이 고안해 낸 것이고,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고착되어야 한다고 말해줄 때, 그들은 아주 좋습니다. 나에게는 다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미사와 고해성사를 멀리할 것이며, 내가 지난날 보았던 모든 일들을 다 포기하겠습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왜 그렇습니까? 그것들이 더 이상 사용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이제 잠들어 있는 상태입니다. 그러나 만약 제단이 다시 세워진다면, 사람이 미처 손을 돌리기도 전에 그들은 지금 설교를 듣기 위해 무리 지어 몰려드는 것만큼이나 빠르게 즉시 미사로 달려갈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설교를 들으러 오는 것은 세워지기 위함이 아니며,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은 그들을 정죄하고 그들로 하여금 변명할 수 없게 만드는 역할을 할 뿐입니다. 그러한 자들에 대해 말하자면, 그들은 교황 제도의 미신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올바르게 깨어나 마음의 찔림을 받은 자들은, 자신을 살필 때 이와 같이 생각할 것입니다. ‘, 나에게는 어린 시절의 악한 양육으로 인한 이 비뚤어진 흔적이 여전히 내 안에 남아 있구나.’ 하나님의 경외함으로 합당하게 마음의 찔림을 받고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유익을 얻기를 갈망하는 사람은, 십 년이나 이십 년이 지난 끝에도 그 뒤에 여전히 그것의 어떤 뿌리가 남아 있음을 발견할 것이며, 필시 그것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합니다.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경우에서 이를 봅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저 왜곡된 모임들이나 집회들 속에 다른 이보다 얼마나 더 깊이 빠져 있었는지에 따라, 그는 그 뒤로도 언제나 그것들의 자양분을 그만큼 더 많이 보유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하나님의 학교에서 가장 잘 유익을 얻은 자들일지라도, 그들이 일단 이러한 수도원 생활이나 교황 제도의 지옥 같은 굴 속에 가라앉아 있었던 적이 있다면, 그 뒤로 언제나 자기 안에 그것의 정체 모를 찌꺼기들이 남아 있음을 스스로 느낍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낮추어 붙들어 두시며, 이를 통해 그들에게 말하자면 그 싸움을 향해 스스로를 날카롭게 할 숫돌을 쥐여 주시니, 이는 그들이 자기 자신의 악덕을 더 잘 알고 다른 이들을 가르치기에 더 적합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나 상황이 어떠할지라도, 우리는 우리가 어린 시절의 악한 양육을 통해 받아들인 그 타락함들을 즉시 뿌리 뽑지는 못할 것임을 확실히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여기에 세워두신 표상을 통해 뜻하신 바니, 즉 여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 거하고자 한다면, 자신들의 머리를 밀고, 손톱을 깎으며, 자신들의 익숙한 의복을 버리고, 완전히 그리고 깨끗하게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어떤 면에서 다시 새롭게 만들어져야 하며, 자신들의 친족을 완전히 포기했어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악 안에서 훈련받고 미신 속에 빠져 있던 자들이, 자신들을 하나님께로 온전히 돌이키기 위해 평생토록 자신들의 악덕에 대항하여 싸워야만 한다는 것을 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여기에 하신 말씀과 부합하는 시편 45편의 말씀을 실천에 옮겨야합니다. 거기서 이르시기를, “내 딸아, 귀를 기울이고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솔로몬의 아내에 관해 말한 것이나, 그 표상 아래에서 하나님의 교회가 어떻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영적으로 결혼하게 되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 그녀가 자신의 아버지와 친족, 그리고 이전의 모든 삶의 방식과 자기 조국의 모든 관습을 잊어버려야 한다는 조건 위에서 그러합니다. 그리고 나는 이 본문이 여기에 포함된 일들과 관련이 있다고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왜입니까? 그녀는 이방 땅의 여인이었고 평생토록 우상 숭배자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녀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칠 수 있도록 지난 모든 세월을 잊고 자신의 양육 방식을 기억에서 지워버려야 하며, 그리할 때 왕이 그녀의 아름다움을 사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는 마치 솔로몬 왕이 그의 아내가 하나님의 백성과 온전히 연합하기를 갈망한다고 고백하고 이집트의 모든 가증한 일들로부터 자신을 분리하기 전까지는, 그녀 안에서 그 어떤 기쁨도 취하지 말아야 하며 그녀를 기뻐하거나 좋아해서도 안 된다고 말씀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나는 이 안에서 우리가 어떤 친족이나 조국에 속해 있든 상관없이 모든 사람을 위한 일반적인 법칙을 가지게 된다고 여러분에게 말했습니다. 왜입니까? 우리의 참된 솔로몬이요, 자신의 교회와 거룩한 혼인을 맺으시며 우리가 자신에게 아내와 같이 되기를 원하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고린도후서 11장에서 성 바울이 말한 바와 같이, 복음의 선포 역시 동일한 목적에 봉사합니다. 그가 말하기를, “내가 너희를 순결한 처녀로 예수 그리스도께 중매하노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이 우리에게 선포될 때마다, 마치 남성들이 여성들과 혼인으로 맺어지고자 할 때, 구혼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자신과 결혼하자고 구혼하시는 것과 다름없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처럼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군사와 종으로 삼으시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게 여기시며, 오히려 우리가 자신에게 접붙여져 아내가 남편에게 가까운 것처럼 자신에게 그토록 가까워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어떠한 조건 위에서입니까? 우리가 우리 자신의 본성 안에 계속 머무는 한, 우리는 그분과 연합할 수 없으며, 그분 역시 우리 안에서 그 어떤 기쁨도 취하실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옛 혈통과 친족들을 잊어야 하니,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조상 아담에게 속해 있는 한, 혹은 인간에게서 난 것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는 한, 우리에게 무엇이 있겠습니까? 내가 말하거니와, 우리에게는 극심한 삐뚤어짐 외에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이 표상이 오늘날 우리에게 하나의 교훈으로 봉사해야 함을 잘 주목해야 합니다. , 율법 아래에서 우리 주님께서 이방 여인들에게 손톱을 깎고 머리카락을 밀며 이전의 의복과 장식들을 버리라고 하신 것은, 마치 우리가 우리의 익숙한 의복을 벗어버리지 않는 한, 즉 우리의 옛 행실과 삶의 방식을 버리지 않고 완전히 변화되어 우리의 갈망이 더 이상 자신과 혼인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다스림을 받으며 우리 자신의 본성에서 난 모든 것과 악한 관습으로 배운 모든 것을 버리는 데 있음을 공개적으로 나타내지 않는 한, 결코 그분의 교회의 몸이나 믿음의 권속이 될 수 없고 그분의 은총 안으로 용납될 수도 없음을 우리에게 생생한 그림으로 보여주신 것과 다름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교훈이 우리에게 얼마나 유익한지,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를 유대인들만을 위해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를 잘 실천에 옮길 줄만 안다면 우리에게도 유익한 교훈을 주고자 하셨음을 봅니다.

이제 여기에 그 여인이 자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를 슬퍼하며 울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곳에서, 그것은 여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살아가게 된 것을 아쉬워해야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경험을 통해 너무나 잘 보듯, 본성적인 감정(affections)들이 얼마간 그것들에 대항하여 싸우는 일 없이는 단번에 죽어 없어질 수 없음을 우리가 깨닫게 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심지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훈련받아 마땅히 처신해야 하는 대로 스스로 행하기를 갈망할지라도, 여전히 그는 자신의 내면에서 커다란 거역과 상충하는 것들을 발견할 것이며, 따라서 필시 자기 자신을 쳐서 복종시켜야만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정욕과 육신적인 감정들이 우리 안에 거하시며 우리를 선으로 감동하시고 격동하시는 하나님의 성령에 대항하여 싸우는 것은, 단 하루 동안이 아니라 우리의 평생토록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여기서 슬퍼하는 것에 대해 말씀하신 곳에서, 그것은 비록 여인이 자신의 친족으로 인해 애통해하고 자신의 죄스럽고 타락한 감정들로 인해 괴로워할지라도, 그런데도 그녀의 애통함은 결국에는 그것들을 발밑으로 짓밟아 누르고 잊어버리는 그러한 방식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신 것과 다름없음을 우리는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로써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오직 상황이 우리의 마음에 들고 우리의 염원대로 흘러가서 그것을 행할 때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않을 때에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아님을 주목해야 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우리의 악한 정욕들로 인해 괴로움을 당하고 찔림을 받을 때라도 마땅히 행해져야 합니다. 그리하여 비록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도록 우리 자신을 맞추어 가는 것이 어렵고 그것이 우리에게 쓴 약처럼 느껴질지라도, 우리는 그 때문에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슬퍼하며 울고 그것들을 버리는 것이, 즐거워하고 웃으면서 그동안에 우리의 웃음이 애통과 이 갊으로 변할 것이라는 이 경고가 우리의 귀에 울려 퍼지게 두는 것보다 우리에게 훨씬 더 낫기 때문입니다(8:12).

그러므로 우리는 이 안에서 우리 주님께서, 우리 안에 그 어떠한 연약함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이 우리의 마음을 낙심하게 만들어서는 안 되며, 우리가 어떠한 형편에 처할지라도, 언제나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여전히 우리 자신을 쳐서 개혁에 힘써야 한다는 점을 언제나 상기시키고자 하셨음을 잘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약 사탄이 우리의 길에 걸림돌을 던져 우리를 물러서게 하거나 돌아서게 만들려 한다면, 우리는 그것들을 물리쳐야 하며, 그것들을 극복하기 위해 스스로 분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가 마치 우리의 친족과 친구들을 애통해하는 것처럼 울 수밖에 없을지라도, 우리는 우리의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내어드리기 위해 세상적인 것들을 포기하는 일을 여전히 견고히 버텨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평온하게 우리를 소유하시게 하고, 그분이 복음을 통해 우리와 맺으시는 거룩하고 영적인 결혼의 약속을 우리가 신실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이 일은 한 달 동안 행해져야 하며, 그 기간 동안 남자는 그녀를 자신의 집 안에 머물게 하되, 그녀를 만지거나 그녀에게 다가가지도 말아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처음에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이 본문에서 유대인들을 다소 용납하시고 유예해 주셨음을 보는데,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정욕에 너무나 크게 사로잡혀 있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것은 오직 절제(moderation) 안에서만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우리는 (내가 이미 처음에 언급한 바와 같이) 자신들의 유인책으로 우리를 미혹할 수 있는 그 기회들을 멀리 피하도록 가르침을 받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눈을 뜨자마자 사탄은 어떻게든 우리의 눈을 부시게 만들어, 즉시 자신에게로 이끌 수 있는 이런저런 수단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는 자신의 올무를 미리 그렇게 놓아두어 우리가 미처 알기도 전에 붙잡히게 만듭니다. 그러니 우리가 멀리서부터 기회들을 찾아 나설 때, 우리에게 어떠한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성령께서 친히 [우리를 대신하여] 이르시기를, “주여, 내 눈을 돌이켜 모든 시험을 보지 않게 하소서라고 하신 곳에서 우리에게 깨닫게 하시는 바와 같이, 우리는 아침 일찍부터 밤늦게까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해야 마땅합니다(119:31; 141:3). 우리의 귀와 우리의 다른 모든 감각에 대해서도 똑같은 말씀이 주어집니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께서 친히 손을 얹으시어 자신의 성령으로 우리를 다스려 주시지 않는 한, 그 모든 것들은 방탕함과 사악함의 전령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더 큰 불량함으로 유혹하는 데 쓰일 수 있는 그 시험들을 멀리 피하는 법을 배웁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평온하게 우리를 향유(fruition)하실 수 있도록 그것들을 멀리 피합시다. 그리고 우리에게 그 어떠한 시험이 닥쳐올지라도, 그것을 기르지 말고 즉시 끊어버리도록 구합시다. 또한 우리의 정욕을 따르는 데 너무 조급해하지 맙시다. 이것이 우리가 여기서 주목해야 할 마지막 요점입니다.

결론적으로, 남자가 결혼하고자 하는 여인을 그녀에게 다가가기 전 온전히 한 달 동안 자기 집에서 가까이 두고 머물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신 곳에서, 그 안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그토록 뜨겁고 무모한 정욕을 가진 모든 자들에게 넘치도록 마땅하고 필요한 치유책을 보여주셨습니다. 우리는 어떤 정욕이든 일단 사람의 마음에 들어오면 첫 타격에 그를 불사르고, 그가 아무런 안식도 취할 수 없을 만큼 그러한 방식으로 그를 휩쓸어 간다는 것을 봅니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여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서 사람들에게 하나의 고삐를 쥐여 주시니, 그러한 방식으로 아내를 취하려는 자는 그녀에게 먼저 슬퍼하며 자신의 본래 백성을 버릴 한 달간의 유예 기간을 주기 전까지는 그녀에게 들어가지 말라고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이전에 말한 바와 같이, 이 의식이 그것의 사용에 있어서는 이제 더 이상 지속되지 않는다는 점은 참된 사실이나, 그런데도 이는 여전히 우리의 배움을 위해 봉사해야 합니다. , 마귀가 우리의 정욕을 따라 우리를 몰아가고, 어떤 사소한 생각이 우리의 머릿속을 사로잡자마자, 즉시 우리가 모든 결박과 고삐를 부수고 그것을 향해 내달리는 만큼, 우리는 스스로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럴지라도 너는 이 경우에 네 이가 갈릴지라도 자신에게 고삐를 채워야 한다. 그리고 만약 네가 미친 짐승과 같다면, 너는 네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강력한 손길에 의해 정복당해야 한다.’ 그러한 방식으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항하여 싸워야 하며, 우리는 이 교훈을 날마다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악에 시험을 당할 때마다 우리 자신을 스스로 책망하려고 힘쓰지 않는다면 우리는 즉시 정복당할 것이며, 마귀는 일단 한 번 붙잡으면 우리를 다시는 놓아주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자기의 것인 그 먹이를 확실히 움켜쥐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리고 그의 성령의 능력으로 시험들을 물리치기 위해 싸우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일들을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을 기뻐한다면, 그리고 사탄이 우리를 기습하려 하고 모든 선한 도리와 권고에 우리가 등을 돌리게 하려고 애쓸 때, 우리가 반대로 우리 자신과 이와 같이 결론을 내리며 이르기를, “이제 나는 정신을 차려 내가 배운 바와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시는 목적을 깊이 생각해야 한다고 한다면, 내가 말하거니와 만약 우리가 우리의 정욕을 정복하기 위해 그러한 숙고를 취한다면, 사탄은 정복당할 것이며,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어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시고, 우리가 어떤 무절제한 자유를 취함으로 인해 그의 복된 선물들이 망가지지 않는 방식으로 그것들을 사용하도록 우리를 능력 있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본문에서 더 나아가 기억해야 할 바는, 비록 모세가 여기서는 오직 여인들에 대해서만 말할지라도 우리는 이 도리를 우리에게 닥쳐오는 다른 모든 시험에 적용해야 한다는 점이니, 그리하여 우리가 첫 타격에 그것들에 의해 정복당하지 않고 온전히 안정되게 처신하여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게 하고, 그분의 말씀에 의해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은 것은 그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의 허물을 자복하면서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무릎을 꿇고, 그분께서 우리로 하여금 그 허물들을 깊이 느끼게 해 주시기를 기도합시다. 그리하여 그것들을 슬퍼함으로써 우리 자신 안에서 이처럼 낮아지고 괴로워하여, 세상과 우리 자신의 본성에서 난 모든 것을 기꺼이 포기하고 우리를 이 상태로 부르신 그분께 우리 자신을 더욱더 내어드리고 바칠 수 있게 되기를 구합시다. 이는 그분이 우리를 자신의 몸의 지체로 삼고자 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그분의 양자 삼으심을 따라, 우리가 그분께 거록한 백성이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 이와 같이 아룁시다. 전능하신 하나님, 하늘에 계신 아버지여,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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