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회 설교: 18장 세 번째 설교
1555년 12월 2일 월요일
신 18:10-15 “그의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나 점쟁이나 길흉을 말하는 자나 요술하는 자나 무당이나 진언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를 너희 가운데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모든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이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시느니라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완전하라 네가 쫓아낼 이 민족들은 길흉을 말하는 자나 점쟁이의 말을 듣거니와 네게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런 일을 용납하지 아니하시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너를 위하여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그의 말씀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효력을 나타내게 하시려고, 그들 가운데서 모든 미신들을 버리라고 그들에게 명하셨음을 보았습니다. 왜냐하면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는 사탄의 거짓말들 및 부패들과 결합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한쪽이 되거나 전적으로 다른 쪽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이 순서가 세상 끝날까지 준수되어야 한다고 여러분에게 선언했습니다. 그렇게 함에 있어서 나는 여기에 기록된 여러 종류의 미신들을 설명하는 것을 지금까지 남겨 두었습니다. 무엇보다 먼저 유대인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해서는 안 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두 가지 방식으로 이해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들이 그러한 분노에 사로잡혀 그들의 자녀들을 희생 제물로 불태웠다는 것을 알고 있으며, 그것은 끔찍한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인간의 경건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소외될 때 얼마나 어리석은지 볼 수 있습니다. 필연적으로 그들은 모든 인간적 이성을 빼앗겨야 하고, 필연적으로 마귀가 그들을 사로잡아 모든 사람에게 끔찍한 그러한 광기 속으로 그들을 몰아가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그들의 자녀들을 몰록에게 희생 제물로 바친 이 해악이 유대인들 가운데서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자녀들을 불 속으로 지나가게 하는 또 다른 방식이 있었는데, 모세는 이 장소에서 이방인들 사이에서 그것이 준수되었던 바에 따라 오히려 그것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그러한 의식들을 행할 때 그것을 정화 또는 깨끗하게 하는 한 방식이라고 일컬었습니다. 예를 들어, 교황 제도 안에, 성 요한 전야(Midsommer night)의 그들의 모닥불들 속에 그것의 어떤 잔재가 남아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거룩한 불(그들이 그것을 존중했던 바와 같이)의 기운을 받으러 그것 주위를 돌면서 그것이 일종의 정화라고 스스로 확신하는 그러한 종류의 마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미신들을 주술의 수에 넣으십니다. 이와 같이 교황주의자들은 그들의 성수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대항하여, 그리고 그것의 참된 표징인 세례에 대항하여 그들 스스로 고안해 낸 일종의 깨끗하게 함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이 그들이 정해진 것,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오직 유일한 희생 제물에 의해서 그리고 성례들에 의해 동일한 것의 기록들과 보증들을 받음으로써 깨끗하게 되려고 할 때, 인간이 그들 자신의 두뇌로 고안해 내는 모든 방식의 정화들이나 깨끗하게 함들을 여기서 정죄하신다는 것을 잘 주목합시다. 성례들 자체가 인간을 깨끗하게 만드는 이 능력을 그들 안에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들을 씻어내는 것은 세례의 물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리와 실체를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는 하나의 모형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고난에 의해 성취된 그것을 우리 안에 인치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 주님의 의미는 인간이 스스로를 정화하는 수단들이나 방식들을 고안해 내지 말고, 그가 그의 율법 안에서 명하신 것에 만족해야 한다는 이 한 가지 점에 관한 한 이와 같습니다.
또한 그는 새들의 비행에 주의를 기울이는 자들과 때를 관찰하는 자들에 대해 말합니다. 비록 우리가 별들에 따라 때의 과정을 주목하는 것이 우리에게 합법적일지라도, 우리가 자연의 질서를 넘어설 때 그것은 정죄 받아 마땅한 저주받은 미신입니다. 태양의 과정에 의해 한 해를 측정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에 따른 것입니다. 달의 과정에 의해 달(달들)을 측정하는 것과, 하나님께서 모든 행성들과 별들 안에 두신 다른 것들을 관찰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봉사하도록 태양과 달을 정해 놓으셨다고 하신 것은 헛되이 하신 말씀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또한 그것들은 낮과 밤을 다스리는 일종의 통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그것으로부터 그에 대해 언급된 바와 같이 때의 차이가 생겨납니다. 그러므로 만일 인간이 그 경계들 안에 머물러 있다면, 그것으로부터 아무런 악도 나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그들이 그것들을 벗어나서 방황하고, 자연의 일반적인 과정을 넘어선 다른 것들을 고안해 내기에 이른다면, 그것은 인간이 사법적 점성술(judicial Astrology)이라 부르는 것과 같은 마귀적인 미신입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별들의 배치에 의해 인간의 운명을 말하는 일을 떠맡으려는 환상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아주 많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말하기를, 이러한 사람은 그러한 결말에 이르게 될 것이라거나, 또는 만일 그가 그러한 날에 여행을 떠나면, 그러한 행성이 지배하고 그러한 행성의 꼬리를 향해 그것의 각도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일이 그에게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다시 만일 인간이 그러한 각도 아래에서 태어나면, 그는 그러한 방식으로 죽어야만 한다고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제한을 넘어서서 이러한 방식으로 것들을 고안해 낼 때, 그것들은 자연의 질서를 부패시키는 마귀적인 고안물들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기서 모세가 시간에 대해 행해지는 그러한 모든 점술들을 금하고 있음을 잘 주목합시다. 이는 우리가 겨울과 여름을 고려해서는 안 된다거나, 우리가 계절에 따라 심고 거두어서는 안 된다거나, 우리가 달들의 계절에 따라 그리고 우리가 기회가 가장 잘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는 바에 따라 우리의 포도나무들을 가꾸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모든 것들의 완전한 파멸이 될 것이며, 하나님께서 세우신 질서를 폐지하는 것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의 의미는 인간이 그들의 어리석고 사악한 욕망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경계들을 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정해 놓으신 이 명백함에 우리 자신을 지킵시다.
더우기, 그가 “새들의 비행에 의한 점술”에 대해 말하는 바와 관련하여, 그것은 내가 앞서 말했듯이 이방인들 사이에서 너무나 흔한 악덕이었습니다. 그들이 어떤 일을 손에 잡으려 할 때, 그들은 공중을 널리 두루 바라보러 나갔으며, 어떤 새가 날아가는 것을 볼 때까지는 어떤 일에 대해서도 결론을 내리지 못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서너 마리 있거나, 또는 그것들이 동쪽이나 북쪽으로부터 오면, 그들은 그것들을 즉시 표징들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저주받은 종류의 점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그분께서 그것들을 위해 정해 놓으신 것 외에 다른 어떤 용도로 끌어들일 때, 모든 것을 망쳐버린다는 것을 일반적인 법칙으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들이 어떤 방식으로 사용되기를 원하시는지 주목합시다(나는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 점으로부터 돌아서자마자, 그분의 일들을 그렇게 변장시키는 것은 그것들의 저주받은 부패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새들이 이 장소에서 저 장소로 날아감으로써 우리에게 말하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으며, 그것들이 네 마리인지 다섯 마리인지 우리가 계산하도록 하거나, 이 지역이나 저 지역 밖으로 그것들이 날아가는 것을 불운의 징조로 받아들이도록 창조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들은 인간이 그들 자신의 어리석은 호기심으로부터 위조해 내고 사탄에 의해 그들의 귀에 불어넣어진 순전한 마술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러한 것들을 금하셨다고 해서 우리가 놀라지 맙시다. 왜냐하면 우리가 그러한 미신들과 어리석음들에 물들게 되자마자, 우리는 필연적으로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돌아서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호기심 많은 사람들에게는 공의로운 형벌이 뒤따르므로, 그들은 항상 의심하고 당혹감 속에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죽은 피조물들이나 이성도 없고 지각도 없는 그러한 피조물들에게 의지하는 한, 그들은 필연적으로 항상 불확실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모든 것들을 확신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경외)은 우리가 가질 수 있는 가장 좋은 버팀목(hold)입니다(시 33:8). 나는 우리가 하나님을 동시에 우리의 아버지로 받아들이는 그러한 존경하는 마음의 하나님에 대한 두려움을 의미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그분을 무서워한다면, 우리는 여전히 결코 적지 않은 고통과 불안 속에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사랑으로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복종시킨다면, 참으로 그분의 보호는 우리가 기댈 수 있도록 유익할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는 사탄과 그가 우리를 대적하여 행하는 모든 것을 무시할 수 있습니다. 반대편 입장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우리는 새들과 짐승들 둘 다를 두려워할 것이고, 바람과 비를, 태양과 달을, 땅과 하늘을 두려워할 것이며, 요약하자면 (사람들이 말하듯이) 심지어 우리 자신의 그림자들조차 우리를 두려워하게 만들 것입니다. 그리고 태양과 달에 자신들을 복종시키고, 그것들이 마치 우리를 다스리는 통치권을 가진 것처럼 그것들을 우상들로 만드는 자들에 관해서는, 그러한 모든 자들은 참으로 그들 속에 하나님의 두려움이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그러므로 필연적으로 그들은 새로이 휩쓸려 가야 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예언자 예레미야가, 이미 말한 바와 같이 적어도 불신자들이 고안해 낸 주술들에 따라, 하늘의 징조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우리에게 명백히 금하는 이유입니다(렘 10:2).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그러한 방식으로 그것들을 두려워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통치권을 박탈하여 그것을 별들과 다른 죽은 피조물들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태양과 달이 우리에게 빛을 주고, 그것들의 자연적인 용도로 우리에게 봉사하기를 원하십니다 (태양이 땅을 데우고, 달과 별들이 그것들의 영향력을 주는 것처럼 말입니다). 나는 그분이 이 모든 것들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 자신만이 유일한 통치자가 되시도록 그렇게 그것들의 본성과 특성들을 유지하기를 원하신다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태양이나 달이 우리에 대해 그러한 권세를 가지고 있어서, 그것들이 우리를 향한 그것들의 각도에 의해 우리에게 어떤 불행이나 번영을 가져다주지 않으면, 우리가 한 걸음도 걸어갈 수 없다고 상상할 때, 하나님 자신이 그만큼 비하되시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렇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피조물들에 의해 일하신다고 말해진다면,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분은 그러한 방식으로 그것을 하려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이 유지해 오신 수단에 눈을 두어야 하며, 우리는 그것을 넘어서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통치권을 조각조각 찢어서 그것을 생명 없는 피조물들에게 그렇게 나누어 주는 자들은 누구든지 순전히 미친 자들이며, 그들이 항상 정신이 나갔거나 겁에 질린 사람들처럼 되어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하는 것은 아주 타당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연의 과정을 넘어서는 일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 자신을 우리 하나님의 손과 인도하심 아래 그러한 방식으로 두는 것을 배웁시다. 그것이 우리가 여기서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다른 종류들에 관해서는, 참으로 인간이 많은 사람들이 하려고 애써왔던 바와 같이 그것들을 구별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 주술사들, 마술사들, 점쟁이들, 신접한 자들과 일하는 자들, 그리고 죽은 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주술사들에 관해서는, 그들이 손재주로 인간의 눈을 속이고 자신들이 하지 않는 일들을 하는 것처럼, 인간이 믿게 만드는 이러한 요술쟁이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마귀가 불신자들 위에 그러한 통치권을 가지고 있어서, 비록 어떤 일이 참으로 실제로 행해지지 않았을지라도, 그 환상이 너무나 커서 인간으로 하여금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고 있다고 믿게 만듭니다. 그리고 그것은 일종의 주술, 즉 마귀적인 환상인데, 인간이 누군가가 늑대로 변형되었다고 생각하게 되거나, 참으로 아무런 실체나 진리가 없는 어떤 것의 형상을 자신이 보고 있다고 생각하게 될 때 그러합니다. 이제 그러한 일들이 행해질 수 있는지 없는지 질문이 제기됩니다. 왜 안 되겠습니까? 우리에게는 모세가 했던 것처럼 개구리들이 올라오게 만들었던 바로의 마술사들의 예가 있습니다(출 8:7). 마귀가 자신의 권세 안에 어떤 것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든 원치 않으시든 간에 무언가를 행하기 위해 그분을 대적하여 싸울 수 있다고 상상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가 하나님의 손 아래에 있으며, 허락이나 승인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을 압니다. 그가 참으로 많은 것을 시도할 수는 있겠지만, 말하자면 손가락 하나도 움직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에 대해 우리는 욥에게서 충분히 명백한 예를 봅니다(욥 1:6). 왜냐하면 우리는 마귀가 거기서 천사들 가운데 있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즉, 그가 기꺼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와서 회계를 보고해야 하고, 그분의 허락을 받아야 하며, 용납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합이 그의 우상 숭배로 인해 속임을 당하게 하려 하실 때에도 그처럼 언급되어 있습니다(왕상 32:21). 그러므로 여러분은 성경이 마귀가 마치 자신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어떤 것을 시도할 수 있는 것처럼 그분과 구별되는 자신만의 독자적인 통치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어떻게 보여주는지 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허락에 의해 그는 참으로 공기를 어지럽힐 수 있고, 또한 다른 일들을 할 수 있는데, 그러한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폭풍우와 우박을 보내신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누구에 의해서 그분이 그것을 하십니까? 사악한 천사들에 의해서입니다(시 78:49). 왜냐하면 그분은 거기서 하늘의 천사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 위에 하나님의 원수를 갚는 일을 집행하는 마귀들의 이름을 지명하여 말씀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경험이 또한 보여주는 바와 같이) 마귀들이 주술들에 의해 그러한 많은 환상들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잘 주목합시다. 그리고 참으로 그러한 일들은 어둠 속에서가 아니면 행해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하나님에 의해 조명을 받는 동안에는, 어떤 인간이 우리에게 늑대로 보일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그러한 쓸데없는 것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될까 봐 두려워할 필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믿음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안에 비추었어야 했을 빛을 우리가 꺼버린 것과 우리가 하나님께 우리의 등을 돌린 것에 대한 공의로운 보응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그분에 의해 다스려지기를 원하지 않을 때, 그때 우리는 더 이상 흰색과 검은색을 분별하지 못하며, 인간이 우리에게 늑대들처럼 보이고, 모든 것들이 무질서하게 되는데, 그것은 공의로운 일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그들의 주술들에 의해 것들의 모양을 나쁘게 변형시키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는 바와 관련하여, 우리는 율법이 불필요하지 않음을 주목합시다. 왜냐하면 상황이 그러하므로, 우리에게 예들이 있는 바와 같이 그러한 일들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결론이 내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입니다. 그리고 점쟁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이 일들을 예견하는 것이 가능한가는 질문거리가 되는데, 왜냐하면 장래의 일들을 미리 아는 것은 하나님의 직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것이 마귀에게 속할 수 있겠습니까? (예언자 이사야가 말하는 바와 같이) 우상들은 아무것도 내다볼 수 없다는 것은 확실합니다(사 41:23). 그리고 사탄에 관해서는, 그는 항상 필연적으로 거짓말의 아비여야 하며, 그에게 조언을 구하는 모든 자들을 속여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때때로 사탄이 장래의 일들을 말하도록 허락하시는데, 그것은 진리에 순종하려 하지 않는 자들을 더욱 완고하게 하시기 위함이며(우리가 13장에서 예로 보았던 바와 같이), 그것은 이미 부분적으로 다루어졌습니다(살후 2:11,12; 신 13:3). 그럼에도 불구하고, 점쟁이들이 대부분 아주 흔하게 거짓말을 한다는 것 또한 사실이며, 그러한 수단에 의해 우리 주님께서는 그러한 방식으로 사탄의 조언을 구하는 자들을 현혹하십니다. 그리고 그 외에도, 주술사들과 점쟁이들 그리고 그와 같은 다른 자들이 때때로 장래의 일들을 말한다고 해서 우리가 그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맙시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들이 더 깊이 오류 속에 빠져들게 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께서 공의롭게 허락하신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필연적으로 기꺼이 속고자 하는 한, 그분은 그들이 멸망하도록 그렇게 버려두십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장래의 일들을 치는 자들에 관해 왜 율법이 만들어졌는지 봅니다. 또한 그는 마술사들(Sorcerers)에 대해 말합니다. 그리고 이 종류는 많은 것들을 포함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하나님을 버리고 자신들을 사탄에게 넘겨주어야 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입니까? 그들이 필연적으로 끔찍한 혼란 속에 떨어져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사탄이 한 번 우리를 사로잡고 우리의 눈을 막은 후에,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로부터 자신의 빛을 거두어 가셔서,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의 성령을 빼앗기고 모든 이성이 없는 상태가 된 후에는, 끝이나 한도도 없이 무한한 오용들이 뒤따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마술들이 나옵니다. 마술사들에 대해 믿기 힘든 많은 일들이 보고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가 그것들에 대해 언급되는 것을 들을 때, 우리는 그것들을 싫어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 마음속으로 슬퍼해야 하며, 그렇습니다, 참으로 우리 머리의 머리카락들이 그로 인해 곧추서야 합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와 동시에 우리는 그것들이 하나님을 버린 자들 위에 던져진 하나님의 보응들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우리를 경외함과 두려움 속에 붙들어 두는 원인이 될 수 있도록, 인간이 한 번 바른 길로부터 돌아선 후에 얼마나 짐승같이 되는지 우리가 보는 바에 따라, 우리의 하나님을 시험하거나 그분을 가지고 놀지 않는 것을 배웁시다. 참으로 만일 이것에 대한 예가 두세 개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이상하게 보일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마술이나 주술이 지배력을 떨쳐왔으며, 그렇습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진리를 거부함으로 인해 더 큰 지배력을 떨쳐왔음을 압니다. 그리하여 인간이 한 번 진리를 대적하는 데로 떨어지고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에 의해 가르침 받기를 멸시했던 곳에는, 사탄의 더 많은 환상들, 그렇습니다, 참으로 더 과도한 환상들이 뒤따랐으며, 그것들은 또한 더 명백하고 비참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무엇으로부터 옵니까? 성 바울이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그의 편지에서 우리에게 보여주는 원인으로부터가 아닙니까? 즉, 진리에 순종하려 하지 않는 자들이 거짓말들에 의해 완전히 왜곡된다는 것입니다(살후 2:11,12). 그리고 그때부터 마귀는 필연적으로 더 큰 힘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고삐를 주시어 인간을 그렇게 멀리 끌고 가시므로 그들이 추악한 괴물들이 되기 때문입니다. 요약하자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술들과 마술들에 대해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가 가련한 불신자들이 처해 있는 그러한 미로 속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고, 그렇습니다, 참으로 우리가 한 번 그분의 말씀을 버렸을 때 완전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데까지 나아가지 않게 하시려고, 우리를 그분의 말씀의 순종 아래 단단히 붙들어 두시기 위함임을 마음속에 간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께 순종하고 우리 자신을 그분의 입에 복종시키는 이 단순함 안에 거합시다.
또한 여기에는 신접한 자들과 일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그것과 관련하여, 사탄의 환상들은 필연적으로 끔찍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입니까? 모든 시대에 그들이 존재해 왔으며, 우리는 사울 왕이 무당을 찾아갔을 때 그 일의 주목할 만한 예를 봅니다(삼상 28:7). 그는 왕으로서 이전에 모든 주술들과 모든 종류의 파멸적인 속임수들을 금했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집행하는 데 있어 도덕적으로 행동했었습니다. 그러나 결국 그는 너무나 비참하게 되어서 무당을 뒤쫓아 달려가는 데로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의 원인이 무엇이었겠습니까? 그가 하나님을 멸시했다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그리하여 결국 그는 절망에 빠졌고, 자신을 전적으로 사탄에게 넘겨주었는데, 그는 그 일을 아주 잘 보여주었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여러분이 그 문제를 신중하게 들여다본다면, 인간의 이성이 그들을 내면적으로 갉아먹는 슬픔으로 인해 정신이 나가고, 하나님의 말씀의 어떤 위로를 받는 대신 그러한 고통에 압도되어 온전한 절망에 빠질 때, 사탄의 환상들이 인간을 지배하게 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탄이 언제 어떤 신체적인 형상으로 인간을 만나 그의 올무들에 그를 얽어맵니까? 인간이 마음에 어떤 슬픔을 품고 있거나, 그의 이웃을 향해 어떤 증오를 품고 있을 때, 또는 여자가 그녀의 남편을 원망할 때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그러한 감정들이 지배력을 떨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재갈을 물고 씹는 지경에 이르고 그들의 슬픔 속에서 너무나 완고해져서 절망에 빠지고 더 이상 어떤 위로도 받아들이려 하지 않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모든 기억을 거부하고 그분의 이름이 매장되기를 바라는 그러한 극단에 이르기까지는, 사탄에게 즉시 고삐를 주어 인간 위에 군림하게 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사탄을 향해 문이 열려 있으며, 그가 들어가서 인간이 능히 대적할 수 없는 자신의 환상들을 만들어내기 때문입니다. 이 일에 대해 우리는 사울에게서 좋은 경고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그는 하나님께 범죄하였고, 그리하여 그의 왕국을 빼앗겨야만 했는데, 그것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기쁘신 뜻이었기 때문이며, 그가 자신을 낮추는 것 외에는 그에게 다른 도리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가 하나님의 불쾌하심을 달래줄 아무런 수단이 없음을 보았을 때, 그가 사무엘에게 아첨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얻은 것이 너무나 적어서, 그가 선지자의 겉옷을 찢었을 때(삼상 15:27,28), 선지자가 그에게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왕국을 왕에게서 찢으실 것입니다”라고 말하자, 그는 비명을 지르고 자신의 경계 밖으로 자신을 내던지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더 이상 무엇을 해야 하겠는가?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으니, 나 또한 내 편에서 그분을 버려야겠다.” 그리고 이것의 끝이 무엇이었습니까? 그는 무당들을 쫓아갔습니다. 그가 전에는 주술사들을 처벌했었으나, 이제는 그들을 찾으러 갑니다. 그리고 그것으로부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무엘이 어떤 형상으로, 즉 그림자와 환상으로 그에게 나타났고, 그리하여 그는 선지자가 무당의 수단에 의해 다시 일으켜 세워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다윗의 왕국이 세워지기까지 그에게 성별된 권위를 주셨던 그러한 왕에게 이와 같이 일어난 것을 우리가 보는 한, 우리가 그것에 대해 무엇이라 말하겠습니까? 우리가 두려움 속에 살아가도록, 그것을 내가 이미 언급했던 그러한 교훈에 적용합시다. 왜냐하면 인간이 악 속에서 자신들을 그렇게 느끼고 의도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움츠러들어 멀어질 때, 사탄이 필연적으로 그들을 소유해야만 하며, 그때는 그에게 불가능한 것이 아무것도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당들에 대해 보고된 믿기 힘든 일들을 들을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처럼 대단히 큰 보응을 집행하신다고 해서 우리가 이상하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한 번 그분께 그들의 등을 돌리고 심지어 의도적인 악의로 그분을 버렸을 때, 그들은 필연적으로 순전한 짐승들이 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마지막으로 여기에는 “죽은 자들에게 조언을 구하는 자들”에 대한 언급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죽은 자들과 어떤 일이든 상관하는 것은 우리 주님의 뜻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주문을 사용하는 자들은 자연의 온전한 질서를 왜곡하려고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자신들이 할 수 있는 바를 할지라도, 그들은 산 자와 죽은 자를 함께 모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마귀가 그들 사이에 개입하여 죽은 자들의 인격을 가장하므로, 외적인 보기에 죽은 사람 자신이 나타나는 것처럼 보이지만(얼마 전에 반복하여 말했던 바와 같이), 참으로 실제로 그러한 환상들을 만들어내는 것은 마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죽은 자들과 상관하는 것을 금하셨음을 보는 한, 우리가 우리의 경계들 안에 머물러 있고 그분께서 세우신 질서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으로 우리가 보지 못하는 어떤 것도 시도하지 않는 동안에는 결코 속을 수 없음을 잘 주목합시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는 또한 죽은 사람들의 유령들이 다시 올라온다고 지금까지 말해진 모든 것들이 사탄의 속임수들에 불과했다는 것을 보며, 인간이 그것들에 의해 속았을 때, 그것은 그들이 의도적으로 자신들을 사탄의 노예로 양도한 것과 다름없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은 교황 제도 안에서 큰 경건함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이 순례를 행하고 미사가 노래되게 했으며, 그렇습니다, 참으로 그들의 모든 영혼들의 축제(feast of all souls)가 일 년에 한 번 지켜지게 했던 원인은, 게으른 머리를 가졌던 어떤 경건한 수도사의 계시나 꿈 때문이었습니다. 그는 죽은 사람들의 영혼들의 부르짖음을 들었고, 이에 따라 교황주의자들은 죽은 자들을 위해 엄숙한 축제가 지켜져야 하며 그들을 위해 이러이러한 것들이 행해져야 한다고 결론을 내렸습니다. 요약하자면, 인간이 교황 제도 안에서 죽은 자들을 위한 예배를 고안해 낸 것에 있어서, 그것은 순전한 마술 외에 아무것도 아니었으며, 참으로 하나님께서 이 본문에서 싫어하시고 완전히 혐오하시는 그러한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방식으로 죽은 자들을 위해 기도하는 그들의 경건함을 가진 자들은 모두 무당들과 마술사들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을 모욕하며 사탄의 주술들을 믿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여기에 있는 이 일들이 작고 용납할 만한 잘못들로 기록되지 않았음을 주목합시다. 오히려 그것들이 하나님 앞에 가증한 일들이며, 가나안 백성이 그러한 범죄들과 악행들로 인해 뿌리째 뽑혀야 했다고 명백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우리는 비록 다른 악덕들은 용서받을지라도, 이것은 반드시 처벌받고 완전히 뿌리째 뽑혀야 함을 봅니다. 그러므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여겨지기를 원한다면, 우리가 이 가증이라는 단어가 무엇을 뜻하는지 이해하도록 합시다. 즉, 우리가 마술들, 주술들, 그리고 그와 같은 다른 것들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참으로 우리는 그러한 것들이 심지어 이방인들 사이에서조차 어떻게 항상 싫어함을 받아왔는지 봅니다. 주술이 아무리 크게 지배했었을지라도, 인간이 “이것이 잘된 일인가?”라고 물었을 것은 큰일이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어찌 그러한가? 그것은 괴물 같은 일이며, 수치스럽고 저주받은 일이다”라고 말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이방인들은 그것에 대해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의 마음속에 그렇게 새겨져서 율법의 교리 없이도 심지어 책망을 받게 하시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교황 제도 안에서 모든 자들이 그들의 우상 숭배들 속에서 무당들이라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사무엘상 15장에서 하나님께서 그 두 가지 죄를 함께 결합하시기 때문이며(삼상 15:23), 정말, 참으로 내가 이미 여러분에게 죽은 자들을 위한 예배가 일종의 마술이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항상 그 용어를 혐오하며 그것을 완전히 싫어합니다. 그리고 왜입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을 더욱 변명할 수 없게 만드시려고 그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술사들이나 무당들을 우리 가운데 용납하는 것이 우리가 할 일이 아님을 주목합시다. 그리고 만일 이것들이 금지된다면, 우리는 그와 동시에 모든 다른 종류의 점술이 하나님 앞에 치명적인 범죄들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만일 재판관들과 행정관들이 그들의 의무를 다한다면, 그들이 살인자들을 용납하지 않는 것처럼 그것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을 것이 확실합니다. 체(siue)를 돌리는 것(우리가 이 지방에서 그것을 일컫는 바와 같이)은 작은 잘못처럼 보이지만, 그것은 인간의 살을 산 채로 벗기는 것보다 더 처벌받아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무엇 때문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의 예배를 전복시키는 것이며, 자연의 질서를 왜곡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자연의 질서가 인간과 짐승들 사이에서 혼동된다면, 그것이 처벌받고 또 처벌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게 하는 데 어떤 이성이 있겠습니까? 그리고 참으로 인간이 그러한 주술들로 시작할 때, 그들이 자신들의 몸을 짐승들과 함께하도록 내어주는 것보다 더 깊고 끔찍한 지하 감옥 속으로 떨어진다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사탄에 의해 모든 무당들과 마술사들 위에 동일한 환상들이 만들어지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것의 근본적인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들이 하나님의 진리로부터 돌아섰다는 것 외에 무엇이겠습니까? 비록 그것 안에 하나님의 직무를 사탄에게 돌리는 것 외에 더 이상의 악이 없을지라도, 그것은 결코 용납될 수 없는 문제였을 것입니다. 나에게 감추어진 일이 있어서 내가 그것을 알고자 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당신에게 드러내실 마음이 없으십니다. 그것은 상관없으니, 비록 그분이 거절하실지라도 나는 어떻게든 그것을 찾아낼 것이며, 그렇습니다, 나는 마귀적인 환상에 의해 그것을 이해할 것입니다. 만일 이것이 용납된다면, 그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인들로 여겨지기를 원한다면, 마술들, 주술들, 그리고 그와 같은 다른 것들이 강도질들이나 살인들보다 우리 가운데서 덜 용납되어야 함을 주목합시다.
또한 “율법 안에서 결코 훈련받지 않은 이방인들이 그러한 일들 때문에 뿌리째 뽑혔다”고 언급될 때, 그것은 참으로 우리의 머리에 머리카락들이 곧추서게 만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에 대한 아무런 지식도 전혀 가지지 못했던 불신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셨다면, 그처럼 잘 경고를 받고 있으며, 하나님께서 그 일을 용납하지 않으실 것이고, 그러한 가증한 일들이 그분 앞에 악취를 풍기며, 우리가 그것들로부터 깨끗하게 되어야 하고 그렇지 않으면, 그분이 우리를 완전히 부인하신다고 우리에게 큰 소리로 외치시는 것을 듣고 있는 우리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나겠습니까? 내가 여러분에게 묻건대, 우리가 하늘로부터 그러한 경고를 받고서도 여전히 깊이 잠들어 누워 있을 때, 우리가 용서받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자신의 직무를 포기하셔야만 할 것입니다. 다시, 여기에 기록된 바와 같이, 첫째로 하나님께서 그러한 가증한 일들을 참아내지 못하신다는 것과, 둘째로 그분을 대적하여 의도적으로 반역하지 않고, 그들의 미신들 속에서 항상 완고해졌으며, 좋은 교리를 결코 알지도 맛보지도 못했던 자들을 뿌리째 뽑으심으로써, 무슨 형벌이 그 뒤를 따를 것인지를 사실상 보여주셨다는 것과 관련하여, 그러한 자들이 사탄과 상관함으로 인해 뿌리째 뽑히는 것을 보는 한, 우리가 더 잘 주의를 기울이고 모든 환상들과 속임수들로부터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 자신을 억제하는 것을 배워서, 만일 우리 가운데 마술사나 무당이나 점쟁이가 있다면, 그들이 활발하게 억누름을 받도록 하는 것이 우리에게 당면한 과제입니다. 만일 독살자나 도둑이 있다면, 모든 사람이 그에게 달려듭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모든 법을 왜곡하고 모든 정치체제와 자연의 질서를 폐지하려고 노력하는 자들이 인류의 공동 원수라는 것이 알려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들은 훨씬 더 나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군림해야 한다고 명령하셨기 때문이며(사 2:3,4), 마귀가 모든 것을 전복시키고 모든 것들을 끔찍한 혼란 속으로 몰고 가려고 할 때, 우리 각자가 그 해악을 미연에 방지하는 데 부지런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많은 미신들이 용납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또한 사탄에게 우두머리 자리를 주시어 우리를 완전히 압도하게 하신다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습니다. 눈먼 말똥가리처럼 행동하며 아무것도 보려 하지 않고, 해악이 우리 가운데 정착하도록 용납해 온 자들에게 화가 있을지어다. 왜냐하면 그것은 그것이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우리가 그것에 너무나 멀리 그리고 너무나 깊이 빠져서 다시 빠져나오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기까지 필연적으로 더욱더 증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이 본문에서 기억해야 할 일입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우리는 모세가 여기서 “유대인들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되며,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의 선지자에게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하는 바를 잘 주목합시다. 그것은 내가 이미 설명했던 바에 따른 것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자신의 입에서 가르침을 받게 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그처럼 좋은 해결책을 주셨으니, 우리가 그분께 귀를 기울이는 것이 아주 당연한 이치라는 것입니다. 만일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에 대한 아무런 증거가 없다면, “그렇지만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해야 합니까? 불신자들은 그들의 환상들에 의해 것들을 찾아낼 수단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상들을 섬기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그들은 우리보다 더 나은 형편에 있습니다”라고 주장하는 것이 우리에게 절반의 변명은 되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러한 방식으로 우리가 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만일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기꺼이 귀를 기울인다면, 우리가 충분한 가르침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분은 자신이 우리 가운데서 선지자들을 일으키실 것이라고 덧붙이십니다. 이는 마치 그분이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가련한 인간들아, 내가 너희의 무지함과 연약함에 맞추어 내려가서 인간들의 입을 통해 너희에게 말할 정도로 너희에게 그토록 은혜를 베푸는데, 너희는 나의 교리로부터 사탄의 쓰레기로 돌아서서, 내가 너희에게 가장 적합하고 편리한 것으로 선택한 가르침의 방식에 너희 자신을 익숙하게 만들 마음을 너희 마음속에 품지 못하니, 너무나도 배은망덕하고 악독하지 아니하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기서 자신이 우리 가운데서 우리의 형제들 중 하나일 선지자를 일으키실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참으로 우리는 천사들이 우리에게 말하러 하늘로부터 내려와야 한다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품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갈망하는 것은 어리석은 욕망으로부터 솟아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더 온전히 보여질 바와 같이)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소리를 그분의 하늘의 위엄 속에서 듣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경험을 통해 알고서 너무나 두려워하여, 하나님께서 모세의 입을 통해 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간청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만일 그 선택권이 우리에게 주어진다면,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입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항상 가장 좋다는 것을 우리가 아는 것은 확실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그러하다는 것이 알려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전에 보았던 바와 같이, 그리고 하나님 자신이 거기서 다시 확언하시며 말씀하시는 바와 같이, “나는 백성들의 요청, 즉 그들과 나 사이에 중보자가 있어야 하고, 내 이름으로 나로부터 그들에게 말을 전해 줄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요청을 좋게 여긴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와 같이 여기서 우리 주님께서는 인간들이 그분이 자신의 교회에 지정하시고 세워 두신 선지자들과 교사들에 의해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전해질 때, 그것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그들의 배은망덕함을 책망하십니다. 만일 그분이 “내가 나의 천사들을 보내겠다”고 말씀하셨다면, 그것은 대단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인간이 심지어 하늘의 계시들조차도 어떻게 오용하는지 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 형제들 가운데서 너희에게 한 선지자를 일으키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에게 그만큼 더 자신을 맞추어 주시고 우리에게 한 단계 더 낮게 내려오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처럼 친근하게 나아오셔서 우리와 마치 입과 입을 마주 대하듯 말씀하시는 것을 우리가 보는 한, 만일 우리가 “나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자신의 천사들을 보내 주시기를 바란다, 나는 그분이 어떤 기적들을 행하시기를 바란다, 나는 그분이 나에게 어떤 계시들을 보내 주시거나 죽은 자를 나에게 일으켜 세워 저세상에서 행해지는 일들의 어떤 소식을 나에게 말해 주시기를 바란다”고 말한다면, 우리가 미친 것보다 더 나쁘지 않겠습니까? 우리가 그러한 무절제한 욕망들을 가질 때, 우리는 필연적으로 마귀에 의해 몰려가고 있는 것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보십시오,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근하게 가르치고자 하십니다. 어떤 방식으로입니까? “내가 인간들을 일으키리라” 하십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 동료처럼 지내는 데 익숙한 것을 볼 때, 그분이 자신을 우리에게 이와 같이 맞추어 주심에 있어서 우리에게 얼마나 큰 특권을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본성상 거짓말쟁이들이며, 우리는 허망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자신의 말씀의 전파자들과 자신의 확실한 진리의 사령 전령들로 지정하십니다. 그분은 인간들을 자신의 이름으로 말할 자신의 도구들로 지정하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의 말씀이 신실하게 설명되게 하시고 우리를 가르칠 목자들을 두게 하시는 은혜를 베푸실 때, 그것은 모든 호기심이 우리 가운데서 버려지고, 우리 중 누구도 언제나 찾으나 결코 진리의 지식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그러하듯이 어리석은 욕망들에 이끌리지 않도록, 우리를 그러한 믿음의 단순함 속에 단단히 붙들어 두기에 충분한 특권임을 우리는 마음속에 간직합시다(딤후 3:7). 우리가 이것저것을 묻는 그러한 질문자들이나 변론자들이 되지 않도록 조심합시다(나는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는 것으로 우리에게 만족하게 하십시다. 왜냐하면 그분께서 그 순서를 그처럼 확증하셨으므로 그것이 그분에 의해 가르침을 받는 바로 그 길임을 우리가 의심할 필요가 없다고 우리 자신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뒤에 더 온전히 선언될 바와 같이) 우리 하나님께서 자신의 율법을 확증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더욱 확실한 것으로 여겨지게 하시려는 목적으로 그분은 또한 우리에게 선지자들을 남겨 주셨으며, 복음이 공포되었을 때 그것은 한층 더 온전한 인정을 받았음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선지자 학개가 말한 바와 같이) 하나님께서 땅뿐만 아니라 하늘도 흔드셨기 때문입니다(학 2:7). 그러므로 우리가 마치 바로 그 샘물과도 같은 율법으로부터, 그리고 선지자들로부터, 그리고 우리 모든 지혜의 완전함인 복음으로부터 끌어내어진 교리를 들으러 나아올 때, 우리가 우리 앞에 놓인 것들을 시험하기 위해 그 시금석을 취하고 하나님께 가르침 받기를 갈망할 때, 우리가 확실한 기초 위에 서 있으며, 우리의 구원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든지 가지게 될 것임을 의심하지 맙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학교에서 가르침 받기를 자신들의 마음속에 품지 못하는 자들에게 모든 무익한 사색들을 버려두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절반만 말씀하시거나,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결코 더 많이 알지 못하게 하려고 마치 우리를 공중에 매달아 두는 것처럼 말씀하시지 않고, 우리가 철저히 확신하며 우리 영혼의 구원 위에 안전하게 기댈 수 있도록 그러한 지식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것으로 우리에게 만족하게 합시다. 이와 같이 여러분은 그 나머지가 더 온전히 펼쳐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리면서, 우리가 이 본문을 어떻게 실천에 옮겨야 하는지를 봅니다.
이제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우리의 죄들을 인정하며 엎드립시다. 그리하여 그분이 우리가 행해 왔던 것보다 우리의 죄들을 더 잘 느끼게 해 주시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러한 회개와 함께 그분께 더욱더 이끌려서 우리의 모든 정욕들을 버리고, 우리의 온전한 소망이 그분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 되기를, 그리고 우리가 그분의 순종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물러가게 함으로써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치우치지 않도록, 그분을 향한 그러한 경외함 속에 붙들려 있기를 기도합시다. 또한 그분이 한 번 우리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으니, 사탄이 자신의 환상들과 주술들로 우리의 눈을 멀게 하려고 아무리 시도할지라도, 우리가 사탄의 어떤 계략으로 인해서도 결코 그 길로부터 돌아서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그리고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에 의해 우리가 그의 올무들에 떨어져 그에게 붙잡히고 결국에는 삼켜지고 파멸에 빠지도록 방치되지 않기를 기도합시다. 오히려 우리가 성령에 의해 이와 같이 조명을 받아서, 오직 우리의 파멸만을 겨냥하는 사탄의 모든 유혹들을 피하고 멀리하기를 기도합시다. 그분이 이 은혜를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백성과 민족들에게도 베풀어 주시기를 기뻐하시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