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3회 설교: 17장 두 번째 설교
1555년 11월 18일 월요일
신 17:2-7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어느 성중에서든지 너희 가운데에 어떤 남자나 여자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 언약을 어기고 가서 다른 신들을 섬겨 그것에게 절하며 내가 명령하지 아니한 일월성신에게 절한다 하자 그것이 네게 알려지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조사해 볼지니 만일 그 일과 말이 확실하여 이스라엘 중에 이런 가증한 일을 행함이 있으면 너는 그 악을 행한 남자나 여자를 네 성문으로 끌어내고 그 남자나 여자를 돌로 쳐죽이되 죽일 자를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의 증언으로 죽일 것이요 한 사람의 증언으로는 죽이지 말 것이며 이런 자를 죽이기 위하여는 증인이 먼저 그에게 손을 댄 후에 뭇 백성이 손을 댈지니라 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할지니라”
우리는 이전에 만일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섬김을 왜곡하도록 권하려 한 남자나 여자가 있다면, 그들은 그것 때문에 죽어야 한다는 것을 보았습니다(신 13:1,6). 이제 여기에 이보다 훨씬 더 엄격한 법이 있으니, 곧 만일 백성 가운데 우상 숭배자가 한 사람이라도 발견된다면, 그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비록 그가 다른 사람들을 타락시키거나 그들을 악행으로 유혹하려 하지 않았을지라도, 그 당사자는 머리와 목숨을 잃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진실로 이것은 첫눈에는 가혹한 처사로 보이니, 마치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진리에 반하는 어떤 행위를 열심히 행한 자들에게 그와 같은 엄격함을 사용하신 것에 대해 그분을 원망하는 것을 우리가 보는 바와 같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존귀를 합당하게 무게를 두지 않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보다 죽을 필멸의 피조물을 더 크게 여깁니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군주를 대적하여 음모를 꾸몄거나 공공의 국가 체제를 바꾸려 했다면, 그는 아무런 주저함 없이 사형 선고를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군주의 원수와 비밀리에 회담을 가졌거나, 그에게 호의를 보였거나, 그와 함께 공모한 것으로 판명된다면, 아무도 그러한 불충을 변명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이 모든 처사는 오직 사람을 대적한 것일 뿐입니다. 그러나 만일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돌이켜 우상들을 찾아 쏘다닌다면, 사람들은 그것이 아무것도 아닌 일인 양 그를 용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하나님의 존귀가 감소하는 것이나 그분의 위엄이 훼손되는 것을 개의치 않는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사건에서 유능한 재판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말씀된 바를 기억하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귀에 그와 같은 값을 매기셨을 때 과도하셨다고 생각하지 맙시다.
이제 말씀하시기를, “만일 남자나 여자가 발견된다면” 하셨으니, 이는 어떤 연약함도 악행을 가리는 막(shrouding sheet)이 되지 못하게 하려 하심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여자의 행위일 뿐이라고 말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재치와 용기와 지각을 가진 남자가 그 일을 행했다면 그것은 주목해야 했을 일이지만, 쉽게 속아 넘어가는 어리석은 영혼들이 행한 것을 보니, 그들이 단번에 죽음으로 끌려가야 함이 마땅하겠습니까? 우리가 사정들을 얼마나 경감하려 드는 버릇이 있는지 부디 보십시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대로, 그것이 남자이든 여자이든 우리가 개의치 말아야 하며, 그 행위 자체가 너무나 가증하여 벌 받지 않은 채 남아있어서는 안 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심으로써, 그러한 핑계들을 차단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처벌로 나아가기 전에 그분은 우리가 그 일이 어떻게 된 것인지 온전히 이해하기를 원하시며, 그 일의 진상이 밝혀지기를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그것이 네게 고해지거든 그것을 부지런히 조사하라, 그리하여 만일 네가 그것이 참됨을 발견하거든 너는 그러한 죄를 범한 당사자를 끌어내어 돌로 쳐 죽일지니라”고 하십니다. 이로써 우리 주님께서는 (이전에 하셨던 것처럼) 우리가 어떤 선의나 열심(any good will and zeal)을 구실로 삼아 경솔하게 행동을 서두르지 말고, 일들을 잘 파악할 수 있도록 신중함을 사용해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신 13:14). 그리고 그것은 충분히 주목할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무모한 열심이 얼마나 자주 사람들을 휩쓸고 가며 하나님께 범죄하게 만드는지 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이 행해지고 나면, 그들은 ‘나는 좋은 의도로 그것을 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가 이 일에 관하여 신중하게 행동해야 한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진실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그분의 이름을 그토록 거짓되게 남용하는 것을 뜻하지 않으십니다. 왜냐하면 내가 하나님을 섬긴다고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내 안에 아무런 공평이나 정직함도 가지지 않는다는 것, 이 얼마나 비열한 일입니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나의 어리석음과 사악한 상상과 그토록 뒤섞는 것은 더러운 모독이 아닙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이 구절을 통해, 사람들이 아무런 절제나 멈춤도 없이 (그들이 말하는) 자신들의 열심에 그토록 휩쓸려 가도록 방치할 때 가지는 바로 그 너무나 격렬한 열기를 정죄하셨음을 우리가 잘 헤아리도록 합시다. 그것을 첫 번째 논점으로 삼읍시다.
그리고 그분께서 말씀하시기를, “만일 그 일이 네게 고해지거든”이라고 하실 때, 그것은 한층 더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점에서 우리는 사람들의 죄과가 알려지지 않으면, 인간들 가운데서 처벌받을 수 없다는 것을 주목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수많은 범죄자들이 다른 이들보다 더 더럽게 범죄하였고 큰 책망을 받아 마당함에도 불구하고 세상 재판관들의 손을 벗어나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부정직한 행위들을 감추시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어떤 죄들은 그들의 정죄로 나아가기를 서둘러 하나님께서 앞으로 밀어내시는 것들이 있고, 또 어떤 죄들은 지체되어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마치 매장된 것처럼 은밀하게 유지하시는 것들이 있기 때문입니다(딤전 5:24). 그리고 이로써 땅의 재판관들은 일들을 찾아내는 데 있어 깨어 경계하도록 경고를 받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자신들의 직무상 알아야 할 의무가 있는 문제들을 가려내기 위해 아무리 많은 수고를 기울인 후일지라도, 여전히 아주 많은 종류의 일들이 보이지 않은 채 빠져나간다는 것을 깨닫는 만큼, 그들은 그만큼 더 부지런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모든 것을 알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한갓 사람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악한 행위들이 알려지는 즉시 그것들을 처벌하라고 명령하셨으므로, 우리는 그분의 뜻이 어떠한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곧 그분에게는 아무것도 숨겨질 수 없기 때문에, 비록 사람들이 여기 아래에서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고, 우리를 대적하여 법에 따른 어떠한 조사나 소송도 제기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언제나 기꺼이 그분 앞에 계산하러 나아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자는 처벌받을 것이라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그러한 자라는 것을 아심에 따라 그를 돌로 쳐 죽이라고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이제 어떤 사람이 순전한 종교에서 돌이켜 비밀리에 우상들을 숭배하는 경우를 가정해 봅시다. 참으로 그는 법의 절차에 의해 처벌받을 수 없을 것이며, 그것 때문에 재판을 받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러는 동안에도 하나님께서 자신의 눈이 흐려지도록 버려두지 않으실 것임을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본문을 통해, 우리 주님께서 이 세상의 통상적인 사법 정의에 의해 처벌받지 않는 그 모든 죄과들을 그분 자신의 심판을 위해 남겨두신다는 것을 추론할 수 있습니다. 이는 그분께서 참된 회개로 자신에게 돌아오는 자들을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뜻이 아니라, 나의 뜻은 자신들의 위선 속에서 스스로를 완고하게 하여 자신들의 악한 행위들에 대해 책망을 받지 않는다는 이유로 점점 더 악해지는 기회로 삼는 그러한 자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더 유리한 거래를 했다고 생각하지는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땅의 재판관들에게 부지런히 조사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반면, 그분 자신은 그렇게 하실 필요가 없기 때문이며, 그분은 우리에게 모든 죄과가 그분의 심판대 앞에 이를 것이고, 위선자들이 얼마 동안은 잘 숨을 수 있을지라도, 결국에는 그들이 뿌리 뽑힐 것임을 말씀하시기 때문인데, 이는 이유 없이 되는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내가 앞에서 언급했듯이)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귀를 팽개쳐 두실 것이라고 우리가 생각하겠습니까? 사람조차도 좋은 평판 속에 유지되고 모든 난폭한 행위들이 처벌받는 것이 그분의 뜻일진대, 하물며 그 사건이 그분 자신의 위엄에 관한 것이고 그분의 영광이 사람들의 악의에 의해 감소될 때 그분께서 무엇을 하시겠습니까? 그러한 처사가 처벌받지 않은 채 빠져나가야 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러한 방식으로 조롱당하도록 버려두시겠습니까? 우리 모두가 우상 숭배자들이었으므로 우리 모두가 죽어 마땅하다는 주장이 제기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말하는 것은 말하자면 모든 사람을 충동질하여 하나님을 대적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러한 반박을 하는 자들은 오직 사람들의 마음을 독으로 물들이려 할 뿐이며,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가볍게 여겨지게 하고, 우리가 스스로 징계를 받거나 고통을 당한다고 느낄 때 하나님과 다투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가장 먼저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여기에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질서가 확립된 곳에서의 우상 숭배자 처벌에 대해 말씀하고 계심을 주목해야 합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그 끝에서부터 시작하지 않으셨다면, 그분의 질서는 잘못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사람들이 어떻게 자신을 섬겨야 하는지 보여주셨고, 그것의 확실한 규칙을 주시며, 우리에게 그분이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가 순전하게 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므로, 그리고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가 어떤 하나님을 그들이 예배해야 하는지, 그리고 어느 것이 참된 종교인지 가르침을 받았으므로, 만일 어떤 남자나 여자가 그 후에 돌이켜 이방인들의 미신 속으로 걸어 들어감으로써 하나님께 위증하고 불충하게 된다면, 그 경우에 어떤 핑계가 인정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법은 하나님께서 이미 그분 자신의 말씀에 따라 인도되는 합법적인 정부를 확립하셨던 바로 그 때에 만들어졌음을 우리가 잘 주목합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우상 숭배자들이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바로 교황 체제 안에서 지금도 여전히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온 세상에 일어났던 그 끔찍한 황폐함으로 인해서입니다. 만일 이 법이 처음에 잘 준수되었더라면, 기독교 세계가 이토록 몹시 쇠퇴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최초의 우상 숭배자들이자 복음을 위조하고 그 당시에 있던 순전함을 부패시킨 자들이 처벌받았더라면, 확실히 하나님의 질서가 훨씬 더 잘 유지되고 보존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어찌 되었습니까?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거룩해 보이기를 원하는 위선자들이 한 번 침투해 들어왔을 때, 그들은 많은 부패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용납되면 될수록 그 해악은 사방으로 더 퍼져나가, 결국 모든 것을 망치는 독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교회가 그토록 황폐함에 이르게 된 원인은, 복음의 순전한 단순함이 유지되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에 따라 예배를 받으시도록 사람들이 경외함 속에 붙들려 있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리하여 사람들이 자신들의 뇌의 어떤 것도 스스로 고안해 내려 하지 못하고,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가 그들이 이미 하나님의 것인 줄 아는 교리에 복종하게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이 일이 행해졌더라면, 오늘날 우리가 여전히 보는 바와 같은 그러한 황폐함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말씀하시는 것은, 오직 그들 가운데 참된 종교가 확립되는 은혜를 입어 그곳에서 그분이 예배를 받으시고, 하나님에 의해 세워진 질서를 받아들이는 데 그들 모두가 동의한 그러한 나라들이나 도시들에 관한 것뿐임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러므로 만일 그들 중 누군가가 그 후에 돌이킨다면, 그는 목숨을 잃어 마땅합니다. 예컨대, 우리에게는 지금 복음의 빛이 있으니, 이로써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섬기고 그분의 친 백성이 되도록 우리를 자신에게 얽매어 두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종교가 우리에게 알려졌고 우리 가운데 규율이 세워졌음을 보니, 만일 우리 중 누군가가 이후에 그것으로부터 돌이켜 우상 숭배에 자신을 내맡기고 고의로 하나님을 모욕한다면, 그가 처벌받아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국가를 대적하여 어떤 일을 저질렀고, 행정관에게 그의 맹세를 한 후에 그것에 반하는 어떤 행위를 함으로써 그것을 다시 깨뜨렸다면, 확실히 그는 자신의 불신실함 때문에 처벌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물며 사람들이 하나님을 희롱하며 그분께 드린 믿음을 위조하여, 그분의 영광과 그분의 위엄과 그분의 모든 섬김을 훼손하는 일만 할 뿐인 우상들과 또한 그분의 치명적인 원수인 사탄과 자신들을 동맹하게 만든다면, 그때에는 어떤 일이 행해져야 하겠습니까? 그러므로 만일 우리 시대의 조롱하는 자들이 반박하기를, 만일 우상 숭배자들이 처벌받아야 한다면, 우리 모두가 죽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면, 대답은 쉽습니다. 즉, 만일 하나님의 법이 우리의 유익과 필요에 합당하게 집행되었더라면, 기독교는 지금처럼 부패하지 않았을 것이며, 종교가 우리가 보는 것처럼 이토록 비하되지도 않았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한 처방은 좋고 유익한 것이었으나, 사람들이 그것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모든 것을 완전히 혼란에 빠뜨리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이 법이 우리를 경외함 속에 붙들어 두지 않는다면,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섬김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철회할 위험에 처할 것이며, 그분께서 우리에게 자신의 말씀을 주시자마자 수많은 사람의 악의와 배은망덕으로 인해 그것이 이내 다시 사라져 버려, 오늘날 우리 가운데 확립된 체제를 곧 무너뜨리게 될 것임을 우리가 경고로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에게 한층 더 절실합니다. 그것을 하나의 특별한 논점으로 주목하십시오.
둘째로, 모든 우상 숭배자가 일반적으로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씀되지 않고, 오직 이미 질서가 세워져 있고 종교가 확실히 확립되어 있으며, 일들이 충분히 알려진 하나님의 어떤 교회 안에 살아가는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만 처벌받아야 한다고 말씀되어 있음을 우리가 주목합시다. 왜냐하면 그때에는, 만일 어떤 사람이 고의로 불량배 짓을 하고 하나님의 순전한 섬김을 저버리며 우상 숭배와 미신으로 자신을 더럽힌다면, 그 사람은 죽어 마땅하기 때문입니다. 이 외에도, (내가 이전에 말했듯이) 만일 우리가 사람들 앞에서 처벌받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조만간 하나님 앞에 회계하러 나아가야만 하며, 거기서 우리는 우리가 돌로 침을 맞을 뿐만 아니라, 영원한 구원으로부터 온전히 추방당해 마땅하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임을 잘 주목합시다. 왜냐하면 무엇 때문입니까? 우리가 아무것도 알지 못하기도 전에,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못 가르침을 받아왔다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우리의 불순종을 변명해 주지 못하며, 우리는 우리 자신의 힘이 닿는 한 최대로 우리 자신의 세례를 위조해 왔으니, 이는 우리가 우상 숭배로 부패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는 충분히 정당한 권리를 가지고 우리를 그분의 나라 밖으로 완전히 밀어내실 수 있었고, 그렇게 하시고도 남음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께서 어떻게 우리를 그분 자신에게로 다시 집으로 모으셨는지 봅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는 우리가 처해 있었던 상태를 숙고하고, 우리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하나님의 손에서 용서를 구합시다. 그리고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여 어떤 폭력도 사용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향해 그분의 엄격한 심판으로 들어가지 않으시도록, 우리 자신을 비참한 범죄자라고 고백하기를 부끄러워하지 맙시다. 그것이 바로 에스겔에 말씀되기를, “네가 네 행위를 기억하고 부끄러워할지라” 하신 이유입니다(겔 16:61). 왜냐하면 거기서 하나님께서는 한동안 우상 숭배에 속아 넘어갔던 자들의 회개에 대해 말씀하시며, 그들이 다시 구원의 바른길로 인도되었을 때, 그들이 범했던 악을 아주 잘 기억해야 하고, 참으로 부끄러움과 당혹감을 가지고 그것을 생각해야 함을 선언하시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마음에 새겨야 할 바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하나님께서 우리의 몸을 처벌하시기 위해 자신의 칼을 빼 들지 않으실지라도,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죄가 있고 정죄 받아 마땅하다는 사실에 변함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일 우리가 그분의 심판을 앞질러 우리 자신을 미리 정죄하고, 우리가 따랐던 우상 숭배와 미신 때문에 파멸해 마땅하나 오직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셔야 함을 인정한다면, 그분께서 언제나 우리를 불쌍히 여기실 것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고전 11:31). 그러나 (내가 말했듯이)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앞서 말한 방식으로 그분께 나아갈 때 그분께서 우리를 자비로 맞아 주실 준비가 되어 계심을 우리가 아는 까닭에, 우리에게는 위로를 삼을 만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그 일이 고해지거든 사람들이 그것을 조사해야 한다고 말씀된 곳에서 우리가 추가로 주목해야 할 바입니다.
이제 그가 덧붙이기를, “그 악행을 저지른 당사자는 성문 밖으로 호송되어야 할지니라” 하니,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왜냐하면,” (모세가 말하기를) 그가 남자이든 여자이든 간에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여호와 앞에 가증한 일을 행하였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여호와의 눈에 사악하고 중대한 죄이기 때문입니다. 이로써 그는 우리로 하여금, 그 행위가 죽어 마땅한지 아닌지를 우리 자신의 상상에 따라 재판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이해하게 하십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기어이 자신들의 의견에 따라 스스로 판결을 내리려 하는 것은, 수많은 사람을 속이고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대적하여 싸우며 그분의 법을 모독하게 만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우리 주님께서는 여기에서 우리를 그분의 뜻으로 다시 인도하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그것은 내 눈에 악하며, 나를 불쾌하게 하고, 내가 그것을 혐오하노라” 하십니다. 더욱이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내가 그것을 명령하였노라” 하시며,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의지해야 함을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로써 우리는 오늘날의 저 한량들이 하는 것처럼, 무모하게 그리고 마귀 같은 대담함을 가지고 재판하지 않도록 경고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은 신성모독이나 하나님의 존귀를 대적하여 저질러지는 그와 같은 다른 일들을 처벌하기 위해 종교가 재판에 회부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요약하자면, 그들은 행정관들이 첫 번째 돌판을 대적하여 저질러진 어떤 죄과에 대해서도 심판석에 앉아 재판하는 것을 원하지 않습니다. 만일 도둑질, 폭동, 살인, 또는 간음과 같이 사람들을 대적하여 어떤 죄과가 저질러진다면, 그들은 그것이 처벌받는 것에는 만족합니다. 그러나 만일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거나, 하나님의 모든 경외함을 몰아내는 어떤 가증한 일이 저질러지거나, 교회를 어지럽히고 모든 질서를 왜곡하는 이단들이 일어난다면, 그들은 그것이 묵인되고 변명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들을 그리로 인도하겠습니까? 오직 앞서 말한 지옥 같은 교만인데, 곧 어떤 일이 자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그들은 하나님께서 자신들의 기호에 굴복하셔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점에 있어서, 그들이 어떤 경우에든 그분의 위엄이 그토록 가볍게 여겨지는 것을 마음속으로 용납하는 만큼, 하나님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기는 불경건과 맞물린 그들의 자만이 나타납니다. 그럴지라도 우리 편에서는 여기에 기록된 바를 주목합시다. 즉, 만일 어떤 악이 우리 주님의 눈을 불쾌하게 한다면 그것은 용납되어서는 안 되며, 우리는 그 경우에 마치 “오, 내가 그것에 대한 나의 평결을 보여주겠노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우리 자신의 지혜에 기대어서도 안 된다는 점입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증한 것으로 여기시고, 그분께서 그와 같은 것을 도저히 용납하실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더욱이 그분은 명백하게 우리를 그분의 말씀으로 다시 보내시는데, 이는 그러한 우상 숭배자들이 변명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우리 눈앞에서 증명되는 것을 우리가 보게 하려 하심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반역의 죄가 경미한 죄입니까? 그것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척하면서 용서받을 수 있는 죄과입니까? 만일 어떤 사람이 고의적인 악의를 가지고 자신의 아버지나 어머니, 자신의 주인이나 상전을 대적하여 반역한다면, 그것은 철저하게 무게가 다루어질 것이며, 그 죄과를 두 배, 세 배로 계속해서 가중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이 하나님을 대적하여 그분을 거역하고 그분의 뜻과 의도에 온전히 반대되는 짓을 할 만큼 그토록 반역적일진대, 우리가 그렇게 중하게 범죄한 자들을 여전히 달래고 아첨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오직 이전에 그분의 뜻을 합당하게 가르침 받은 자들에게만 말씀하고 계심을 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이방인들이나 불신자들에게 “내가 너희에게 이것을 명령하였노라” 혹은 “내가 너희에게 저것을 금하였노라” 하고 말씀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아닙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이전에 종교를 받아들였고, 그들 가운데 어떤 확실한 규칙이 규정되고 확립된 백성에게 해당함이 마땅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께서 이미 한 가지를 명령하시고 다른 것을 금하셨으며 그분의 뜻이 그러하다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우리에게 그에 맞추어 우리 자신을 형성하는 것 외에 더 무엇이 남아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분의 멍에를 거부하는 자들에 관해서라면, 그들이 그것이 무지 때문이며 어떤 어리석은 열심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참으로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아래에는 또 다른 죄가 숨겨져 있으니, 곧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멸시입니다. 그렇습니다, 거기에는 은밀한 악의와 위선과 교만이 잠복해 있으며, (내가 말하건대) 이 모든 것들이 함께 뒤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핑계는 그쳐야 하며,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합당하게 훈련받은 모든 자가 무지한 자들보다 변명의 여지가 더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단지 세상의 사법 정의에만 적용될 것이 아닙니다.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니만큼, 우리가 그분의 교리 안에서 전진해 온 정도와 그분께서 자신의 뜻을 우리에게 보여주신 정도에 따라, 만일 우리가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는 것은 무엇이든지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의 죄가 더욱더 크다는 사실을 마땅히 주목합시다. 우리는 이 논점에 도달해야 합니다. 즉, 나에게 말씀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며, 그분은 내가 어떻게 행하기를 원하시는지 알 수 있는 은혜를 내게 베풀어 주셨고, 그러므로 그분께서 나를 비추어 주시는 것을 보니, 나는 실족해서는 안 되며, 눈을 깜빡거리는 자나 눈먼 말똥가리처럼 행동해서는 안 되고, 그분의 교리에 복종하는 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점입니다. 만일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앞서 말한 이 처벌이 우리에게 속한 것임을 봅니다. 그리하여 우리가 사람의 손에 의해 징벌을 받지 않을지라도, 그것은 위로부터 우리를 위해 예비되어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신의 뜻을 가르쳐 주기를 아끼지 않으심으로써 우리에게 보여주신 그 호의를 가지고 우리를 충분히 능숙하게 꾸짖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비록 저 가련하고 무지한 영혼들은 절반쯤 변명될 수 있을지라도, 우리가 우리에게 알려진 하나님의 뜻을 대적하여 그러한 방식으로 나아갈 때, 우리 편에서의 죄과는 모든 균형을 벗어난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하나님께서 그러한 것들을 명령하지 않으셨다고 명백하게 말씀된 이 구절에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봅니다. 또한 우리는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그분께서 우리를 가르치시는 바에 따라 분별하는 것을 배웁시다. 왜냐하면 종종 우리는 기어이 사람들의 죄과를 가볍게 만들거나 가중하려 하면서도, 그러는 동안 정작 우리에게 말씀된 바는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담겨 있으며, 그곳이 바로 우리가 그것을 찾아야 할 자리임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러저러하게 말씀하시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아무런 반박 없이 그것을 고수합시다.
이제 모세가 덧붙이기를, “첫 번째 증인의 손이 먼저 돌에 맞아 죽을 당사자를 대적하여 얹어질 것이요, 그다음으로 온 백성의 손이 얹어질지니라”고 합니다. 이로써 그는 증언이란 두려움을 가지고서만 행해져야 한다는 것을 보여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이 선고를 집행하는 일에 투입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이웃을 대적하여 무모하게 증언을 하는 데 그리 큰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 때문에 어떤 이는 가서 자신의 거짓된 혀로 겨우 절반쯤 죄가 있거나 어쩌면 완전히 무죄한 어떤 사람에게 상처를 입힙니다. 그리고 그는 부리로 한 번 쪼는 것(험담하는 것)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 스스로 생각하며, 그 인연으로 인해 온갖 진실에 반하여 말하는 것을 전혀 개의치 않습니다. 이처럼 여러분은 오늘날 그토록 많은 위증의 방종이 판치는 바로 그 원인이, 자신들의 이웃을 대적하여 증언을 하는 자들이 재판관의 선고를 집행하는 일에 투입되지 않기 때문임을 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는 또 다른 질서가 있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즉, 증언을 한 자가 그 당사자에게 첫 번째 돌을 던져야 마땅하니, 이는 말하자면 “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한 것은 바로 너다”라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이 수단으로 인해 사람들은 그 사건이 참되고 확실하지 않다면, 어떤 사람을 대적하여 증언하는 것으로부터 억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증언을 했던 자는 만일 자신이 진실을 진술하지 않았다면 무죄한 자를 살해함에 있어 혀와 손 모두에서 두 배로 죄가 있는 자신을 보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이 의식을 명령하신 것이 이유 없이 된 일이 아님을 봅니다. 즉, 재판관들에 의해 사형 선고를 받은 당사자들을 돌로 치는 데 있어 증인들이 첫 번째가 되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이로써 그들 모두는, 어떤 범죄자도 자신들의 고유한 지식에 의해 그의 죄과를 입증한 자들의 증언에 의해서가 아니고는 죽임을 당하지 않았음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또한 온 백성의 손이 그들과 함께하기를 원하셨으니, 이는 우리 모두가 그분의 섬김과 순전한 종교를 유지하는 일에 조력자가 되어야 함을 보여주려 하심입니다. 만일 사람과 사람 사이에 어떤 죄과가 저질러졌다면, 그것은 피해나 손실을 입은 자들이나 그 일과 관련이 있는 자들에 의해 추적될 것이며, 그렇지 않으면 어떤 공동의 소송 대리인이 그들 모두를 대신하여 그것을 기소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존귀가 훼손될 때에는 모든 사람이 나서서 분투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분의 위엄을 유지하는 일과 같이 그토록 존귀한 일에 우리를 대리인으로서 임명하여 사용하시는 것은, 그분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특별한 호의입니다. 우리가 대체 무엇이란 말입니까? 이제 만일 하나님께서 자신의 존귀가 우리에 의해, 그리고 우리의 손에 의해 유지되기를 원하신다고 우리에게 선언하심으로써 우리에게 존귀를 베푸신다면, 우리가 그 경우에 태만해야 하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상 숭배자들을 돌로 치는 일에 온 백성이 돕도록 명령하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는지 봅니다. 왜냐하면 이로써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섬김이 순전하게 유지되도록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며, (우리 안에 능력이 있는 한) 종교가 조롱을 받거나 왜곡되도록 내버려 두지 않기 위해 모든 사람이 이 일에 있어서 간절하고 열심을 내야 함을 우리에게 이해시키시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만일 모든 일이 잘 정돈되어 있을 때 우리가 공동체에 선의를 품고 우리 가운데 공평과 정직함이 있기를 사랑한다면, 하물며 우리가 하나님을 순전하게 예배하는 일을 매우 소중히 여겨 사람들이 그분의 말씀으로부터 돌이키지 않고 그분께서 확립하신 종교로부터 고의로 방황하여 떠나지 않도록 해야 할 훨씬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비록 오늘날 우리가 의식의 측면에 있어서는 이 법을 지켜야 할 어떠한 필연성에도 매여 있지 않을지라도, 그것의 본질은 여전히 우리와 함께 남아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각자가 우상 숭배자들을 돌로 쳐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안에 능력이 닿는 한) 그분의 이름이 조롱을 받고 그분의 종교가 짓밟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만큼 우리가 최소한 그분의 존귀를 그토록 크게 존중해야 하며, 우리 각자가 그것에 대항하여 서서 그 일에 있어서 스스로를 대적하는 편으로 만들어야 함을 우리에게 이해시키십니다. 그것이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법의 의식이 우리 가운데서 그와 같지 않을지라도, 그것의 본질은 여전히 효력을 발휘하고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준수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바로 동일한 원인 때문에,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서 악을 뿌리 뽑아야 한다”는 점이 명백하게 덧붙여졌습니다. 이로써 그가 우리로 하여금 알게 하시는 바는, 우상 숭배와 미신을 용납하는 것은 모든 것을 감염시키는 좀벌레이자 부패라는 점입니다.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만일 사람들이 처음에 잘 제어되었더라면 확실히 그들은 결코 그와 같은 배교에 이르지 않았을 것인데, 즉 그들이 결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하나님의 복종으로부터 자신들을 철회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교황 체제란 모든 사람을 하나님의 복종으로부터 끌어내어 모두가 배도자가 되고, 모두가 길을 잃고, 모두가 자신들의 세례의 약속을 깨뜨리게 만든 하나의 부패가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그리고 이것이 어디서 왔겠습니까? 오직 감염이 사방으로 퍼져나가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가 그것으로 오염될 때까지, 사람들이 그것을 눈감아주고 감추어 줌으로써 악을 키워왔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순전한 복종 안에 머물고자 한다면, 우리 가운데서 그 해악이 뿌리 뽑히도록 우리의 노력을 다합시다. 특히 그것은 그토록 큰 감염을 동반하는 해악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 가운데 머물러 있다면 우리가 감염을 피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로 동일한 원인 때문에, 사도는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악한 잡초들이 완전히 자라기 전에 그것들을 뽑아내라고 우리에게 권면합니다(히 12:15). 왜냐하면 그것들이 우리의 눈을 파먹을 때 우리는 당혹해할 것이며, 우리가 그것들을 오랜 시간 자라도록 버려둔다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어찌할 도리 없는 처방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떤 악이 싹트는 것을 보는 즉시 그것을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제거하여, 그것으로부터 아주 완전히 깨끗하게 벗어나야 마땅합니다. 그렇습니다, 비록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본보기로 인해 악행으로 유혹당하지 않을 수 있을지라도, 그 악이 그토록 처벌받지 않은 채 머물러 있을 때, 하나님의 진노는 여전히 우리 가운데서 타오르고 증폭됩니다. 그러므로 성 바울은 고린도인들 가운데 용납되었던 근친상간에 대해 말하면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 가운데서 악을 몰아내라”고 합니다(고전 5:13). 이는 마치 그가 “너희 비참한 자들아, 너희 가운데 있는 죄과를 이대로 용납한다면 그것이 너희 온 민족을 대적하여 하나님의 보응을 촉발할 것이니, 그러므로 만일 너희가 하나님의 진노로부터 면제되기를 뜻한다면, 그 악이 더 이상 용납되거나 키워지도록 버려두지 말라”고 말한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내가 언급했던 바에 대한 충분한 증거가 됩니다. 곧 하나님께서 온 백성에게 우상 숭배자들을 돌로 치는 일에 자신들의 손을 얹으라고 명령하심으로써, 그 일이 우리 모두에게 해당함을 우리에게 보여주신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우리를 자신의 대리인으로 삼으시는 만큼, 우리 각자가 자신의 의무를 다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마땅한 이치입니다. 그리고 그 일에 대하여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권면하시니, 이는 그분께서 그와 같은 악을 용납하는 것이 감염이자 치명적인 역병임을 우리에게 보여주시기 때문이며, 그분의 위엄에 온전히 반대되는 일들을 우리가 용납하는 것이 우리를 대적하여 그분의 진노를 촉발하는 일임을 보여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사형은 두세 증인의 입에 따라 처하여질 것이요, 단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는 죽이지 못할 것이라” 하신 이 법으로 나아가는 일이 남았습니다. 이 법은 정부의 질서를 위해 이바지합니다. 참으로 이방인들조차도 본성에 의해 이 질서를 따르도록 가르침을 받았으니, 그리하여 그들은 어떤 문제가 한 쌍의 증인에 의해 입증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충분히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들의 마음에 새겨진 것은, 인류를 어떤 종류의 정직함 속에 계속해서 붙들어 두시고, 신중함이 사용되게 하시는 것이 우리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분 자신의 입으로 친히 말씀하시며, 사형은 두세 증인의 입에 따라 처하여질 것이요, 한 사람의 보고만으로는 안 된다고 하심으로써, 우리는 이 교리를 한층 더 확실하게 확인받습니다. 그러므로 법적인 입증 없이는 일들이 무모하게 재판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로는 재판관 자신이 어떤 사건의 증인이 될 수도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신이 아는 바와 반대로 재판해야만 합니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그는 잘못하고 있다”고 한다면, 아닙니다, 그는 다르게 할 수 없으며 그는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내가 재판관인데 나 외에는 아무도 어떤 사람에게 죄가 있음을 알지 못하여 그의 행위에 대한 어떤 증인도 확보할 수 없다면, 나는 그것을 처치할 방법이 없으므로 그를 그대로 두어야 하며, 그는 나의 판결에 의해 무죄 방면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의 이러한 처사는 나의 양심에 아무런 해가 되지 않으니, 왜냐하면 나는 그가 마땅히 받아야 할 대로 하나님 앞에서 그를 정죄하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죄과를 들추어내시고 빛 가운데로 드러내실 때까지는 그것을 여전히 감추어진 채로 두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시민의 질서를 위하여, 우리가 좋은 입증에 의해서만 재판하여 그 사건이 알려지고 검증되도록 이 규칙을 언제나 준수해야 함을 주목합시다.
이 점에 대하여 두세 증인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때때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과와 악행을 덮기 위해 기어이 무한한 수의 입증을 요구하려 하는데, 이러한 일은 자신들이 하나님보다 더 지혜롭고자 하여 여기 제네바 시에서 매우 기이한 법을 고안해 냈던 저 혈기 넘치는 자들에게서 볼 수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두 명의 증인이 있더라도 소송 대리인(Proctor)이 별도로 있지 않으면 만족하려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처럼 그들은 하나님의 법과 본성의 모든 정직함, 그리고 지금까지 온 세상에 의해 유지되어 온 것을 좌지우지하려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원인이 무엇이었겠습니까? 오직 그들이 온갖 종류의 악행을 기꺼이 저지르고 하나님을 향해 자신들의 혀를 내밀어 비웃으면서도, 자신들의 죄를 확정할 만한 어떠한 충분한 증인도 결코 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기 때문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왜냐하면 두 명의 증인, 아니 세 명이나 네 명의 증인이 왔을지라도 사람들의 눈이 흐려졌을 것이며, 그 모든 것은 아무것도 아니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법은 우리가 두 극단 사이에서 중용을 지키도록 하기 위해 제정되었음을 주목합시다.
첫 번째 극단은 어떤 문제가 철저하게 입증되기도 전에 재판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는 것은 악하며, 그렇게 함에 있어 사람들은 너무 서두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에 대해 두세 명의 증인이 있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두세 명의 증인이 있을 때에는, 마치 대여섯 명의 증인을 더 찾아보아야 마땅하며 증인들과 함께 대변인이 있지 않으면, 그 문제가 결코 잘 입증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사람들이 반박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완전히 조롱하는 짓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주님께서 범죄자는 두세 증인의 입에 따라 죽을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 그 사건에 대한 지식이 우리에게 충분해야 마땅하며, 그것에 대항하여 어떠한 다툼도 있어서는 안 되고, 그 정의(justice)가 집행으로 나아가야 마땅하다고 여겨져야 함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리고 우리는 이 권면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지 봅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은 가능하다면 언제나 뒤로 물러서려 하기 때문이며, 자신들의 악행을 감출만한 어떤 명백한 구실이 있다면, 자신들의 손이 그것으로부터 깨끗이 씻겼다고 스스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를 소환하시며, 만일 두 명의 증인이 있다면, 재판관은 뒤로 물러서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만일 그가 물러선다면, 그가 그들의 악행을 바로잡는 일에 자신의 손을 얹지 않는 한, 그는 사악한 자들과 동맹을 맺은 자요 그들의 동료이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이제 우리는, 한 사람이 죽어 마땅하다는 것을 확정하는 데 두세 명의 증인이면 충분하다고 말씀하심으로써, 우리 주님께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악행을 가리기 위해 고안해 내는 모든 핑계의 기회를 잘라버리고자 하셨음을 봅니다.
이제 더 나아가, 이 교리를 우리 자신에게도 적용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현세의 정의(temporal justice) 안에 그러한 질서를 세워 두셨으니, 그분께서도 우리를 향하여 그 질서를 지키실 것임을 우리가 깨달아야.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소외되어 왔다는 사실이 이미 충분히 확정되지 않았습니까?
먼저 우리 각자는 자신을 책망할 자기 자신의 양심을 가지고 있으니, 이것이 얼마나 많은 수의 증인과 맞먹겠습니까? 이방인들은 그것이 천 명의 증인과 다름없다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만일 어떤 사람이 자신의 내면에서 정죄를 받는다면, 그의 죄가 그를 갉아먹고 그를 대적하여 끊임없이 고소장을 제출하는 것을 보니, 그가 자신을 의롭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왜냐하면 아무리 미련한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양심이 끊임없이 그를 찌르지 않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내면에서 우리를 충동질하시고 우리의 죄과를 보여주시는 것을 보니, 그분 앞에서 죄를 인정하는 것을 배웁시다. 이뿐만 아니라, 선지자들과 사도들, 그리고 하나님의 바로 그 아들까지도 그것에 대한 신실한 증인들이니, 선지자 이사야가 그를 그렇게 부른 바와 같습니다(사 55:4). 우리를 책망하고 유죄를 드러낼 이들이 있는데, 이제 우리가 무슨 핑계거리나 도피구를 찾겠습니까?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그리고 우리에게는 성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도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일컬은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 고난 받았던 모든 신실한 자들과 모든 거룩한 순교자들의 허다한 구름도 있습니다(히 12:11). 그러니 그 모든 자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를 정죄할 충분한 증인이 되지 않겠습니까?
이제 만일 우리가 그들이 우리에게 준 본보기로부터 유익을 얻으려 전혀 개의치 않고, 도리어 복음을 안 후에도 고의로 그 교리를 저버린다면, 우리는 어떤 정죄를 받아 마땅하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바로 성 바울이 고린도인들에게 심판은 두세 증인의 입에 달려있다는 이 본문을 인용한 바로 그 원인입니다(고후 13:1). 그리고 그는 거기서 무엇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까? 자신의 편지와 자신의 방문에 대해 말하고 있으니, 왜냐하면 그가 고린도인들에게 갈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이미 너희에게 충분히 쓰지 않았다거나, 이전에 너희에게 충분히 자주 경고하지 않았다는 것이 아니며, 그런데도 너희는 여전히 완고하고 마음이 굳어 있도다. 그러나 너희가 그렇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손에서 무언가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너희는 심판이 두세 증인의 입에서 취해질 것임을 알라”고 합니다. 사정이 그러하니 우리 자신을 되돌아봅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그토록 은혜로우셔서 그분 뒤로 수많은 선지자를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 그분 자신과 그분의 사도들이 복음의 진리를 우리에게 증언해 주셨음을 우리가 봅니다. 그들이 우리를 대적하여 우리의 정죄를 증언하는 증인이 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우리의 믿음의 증인이 되게 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성령의 은혜 안에서 우리가 그토록 견고해져서, 우리가 끊임없이 우리의 길을 계속 가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두시고 부르신 그 소명을 따를 수 있게 합시다.
이제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우리의 죄를 인정하며 엎드려, 우리로 하여금 죄를 더 잘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가 단지 의식의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우리의 온 삶을 그분의 복종에 바치고 그분께서 자신의 거룩한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건전함에 우리 자신을 온전히 드림으로써, 그분을 섬기고 예배하는 일에 더욱 불타오르게 하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다른 사람들을 그와 동일한 자리로 인도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미 바른길에 있는 자들이 방황하지 않도록 내버려 두지 않게 하십시오. 도리어 이미 양우리 안으로 들어온 자들을 하나 된 공동의 일치 속에서 함께 붙들어 두고, 우리의 선한 삶과 행실을 통해 다른 이들을 그곳으로 이끌어 들이며, 이로써 참된 종교가 왜곡될 수 있는 온갖 실족과 무질서의 원인들을 차단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이 은혜를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백성과 나라들에게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