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칼빈 신명기 설교

신 17:8-13

작성자doulosdei|작성시간26.06.22|조회수29 목록 댓글 0

104회 설교: 17장 세 번째 설교

15551119일 화요일

 

17:8-13 “네 성중에서 서로 피를 흘렸거나 다투었거나 구타하였거나 서로 간에 고소하여 네가 판결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거든 너는 일어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으로 올라가서 레위 사람 제사장과 당시 재판장에게 나아가서 물으라 그리하면 그들이 어떻게 판결할지를 네게 가르치리니 여호와께서 택하신 곳에서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의 뜻대로 네가 행하되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대로 삼가 행할 것이니 곧 그들이 네게 가르치는 율법의 뜻대로, 그들이 네게 말하는 판결대로 행할 것이요 그들이 네게 보이는 판결을 어겨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 것이니라 사람이 만일 무법하게 행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 서서 섬기는 제사장이나 재판장에게 듣지 아니하거든 그 사람을 죽여 이스라엘 중에서 악을 제하여 버리라 그리하면 온 백성이 듣고 두려워하여 다시는 무법하게 행하지 아니하리라

 

 

 

여기 소송에서 문제를 마무리 짓는 방법으로서 우리에게 제시된 질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논쟁을 벌일 때, 자신들의 선의로는 결코 결말에 도달하려 하지 않을 만큼 그들이 너무나 완고하고 마음이 굳어 있는 것을 우리가 보는 까닭에,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가운데 그 판결에 대항하여 더 이상 상소할 수 없는 어떤 최고 사법 재판소(some sovereign court of justice)가 있는 것이 자신의 뜻임을 선언하십니다. 모든 백성이 본성에 의해 그렇게 하도록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끊임없이 상소하는 것이 허용된다면,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사람들의 심술궂음이 워낙 심하여 그들의 논쟁이 결코 끝을 맺지 못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확실한 멈춤이 있는 것이 필요하며, 그것이 바로 우리 주님께서 이 본문에서 선언하신 바입니다. 또한, 세상의 정부와 관련하여 이 질서는 매우 유익하니, 왜냐하면 온 세상에 걸쳐 본성이 따르는 바가 하나님의 입에 의해 승인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잘 주목해야 할 바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시민 정부의 질서를 우리에게 보여주실 만큼 자신을 그토록 낮추신 것을 우리가 보니, 그분께서 그것을 인정하신다고 우리는 결론 내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그렇지 않다면 그분께서 그것에 관여하지 않으셨을 것이며, 그것은 그분의 위엄을 손상하는 일이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법속에서 우리가 우리 사이에서 준수해야 할 질서를 다루셨음을 우리가 봅니까? 이로써 그것이 그분께서 매우 기뻐하시는 일임을 우리 자신에게 확신시킵시다. 그것을 첫 번째 논점으로 주목하십시오.

또한, 그분께서 우리가 어떻게 행동하기를 원하시는지, 그 방식이 어떠한가를 우리가 보고 그것을 명확하게 규정해 두셨음을 보는데, 이는 한층 더 큰 확증이 됩니다. 그리고 권위와 탁월한 지위에 세워진 재판관들에 관해서라면, 그들은 자신들의 행위가 하나님께 받으실 만한 제물이 됨을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그분께서 자신의 법 안에서 그것을 증언하시며, 백성 역시 그로 인해 그 질서에 한층 더 기꺼이 순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왜곡하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하는 것이요, 그분을 멸시하는 것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이처럼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끊임없는 의심 속에 머물지 않도록 그들이 의지해야 할 하나의 최고 재판소(one chief court of Justice)가 있어야 한다고 우리 주님께서 선언하신 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교리이며, 우리의 덕을 세우는 데 얼마나 크게 이바지하는지 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우리 주님께서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모든 사건에 대해 무차별적으로 상소를 허용하려 하지 않으셨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만일 재판관들(, 각 성읍의 하급 재판관들)이 당혹해하여, 그 판결이 의심스럽고 쉽게 결정하기 어려운 어떤 어려운 사건이 발생하거든하시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그분께서 이것을 규정해 두십니까? 왜냐하면 단돈 6펜스나 그와 같은 사소한 모든 일 때문에 백성이 예루살렘으로 가야만 했다면, 그것은 백성에게 너무나 큰 노고가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어떤 탐욕스러운 사람들이 있어서, 그들은 다른 사람들을 데이게 할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불에 그슬려도 언제나 만족해하는 것을 봅니다.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떤 이들이 너무나 악독하여 비록 자신들의 손가락을 씹어 먹을지라도 기어이 법적 소송을 계속 진행하며, 자신들의 재산을 다 탕진하고 나면 자신들의 원수에게 괴로움을 주기 위해 심지어 자신들의 목숨까지도 위태롭게 하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러한 자들이 분노에 휩쓸려 있거나, 최소한 보복의 욕망에 사로잡혀 있음이 명백함을 보니, 그들을 제어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모든 사건이 예루살렘으로 오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 원인입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좋은 질서를 세우셨으니, 곧 모든 성읍에 정의가 있어야 하고, 참으로 자신들 앞에 심리를 위해 올라오는 그러한 문제들에 대해 판결을 내릴 지각 있는 사람들이 있어야 한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 사건이 어렵고 의심스럽지 않아야 한다는 조건 하에서 말입니다.

그러면 소송 당사자들을 너무 많이 괴롭히지 않고 논쟁이 신속하게 끝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분의 의도가 그러했던 것을 보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에 맞추어 우리 자신을 형성해야 마땅합니다. 그러므로 만일 사람들이 좋은 정부의 질서, 곧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그러한 질서를 확립하고자 한다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싸움이 유지되지 않고, 만일 어떤 논쟁이 있더라도 이내 다시 화합할 수 있도록 이 규칙을 따르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법적 소송이 오래 끌지 않게 하고, 사람들이 이 사람에게서 저 사람에게로 떠넘겨지지 않게 하며, 당사자들이 자신들의 무절제한 뜻을 계속 따르도록 방치되지 않게 일들이 정돈되도록 하십시오. 이러한 악덕이 완전히 교정될 수는 없어서 그것의 얼마간의 찌꺼기가 여전히 남아있을 것이라는 점은 사실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그리로 인도하시는 것을 보니, 우리는 우리가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그 푯대에 가까이 가야만 합니다.

또한, 만일 어떤 사람이 힘이 권리를 이기지 못하도록 사람들 사이의 싸움을 진정시키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고자 한다면, 통상적인 사법 정의가 생략될 수 없다는 것을 여러분은 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택하셨으니 만큼, 그분께서 그들을 평화와 화합 속에 유지하기 위해 고안될 수 있는 가장 좋은 수단을 마련해 주셨음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그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혈통에서 내려온 하나의 가문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들 가운데 그와 같은 형제애가 있었으니 만큼, 그들을 평온함 속에 계속 머물게 하기가 훨씬 더 쉬웠어야 마땅합니다. 다른 한편으로 그들은 자신들이 세상의 나머지 부분과 구별된 것을 보았고, 하나님의 이름 안에서 한 몸으로 그곳에 함께 모였으므로, 그 거룩한 결속을 존중하여 서로를 용납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더욱 보존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모든 성읍에 재판관들이 있어야 한다는 이 수단을 제정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인간들이 여기 아래에 사는 동안에는 자신들의 연약함 때문에 행정관들을 생략할 수 없다고 결론지읍시다. 모든 사람이 자신의 마음에 법을 지니고 다녀야 하며, 모든 사람이 스스로의 자발적인 동기로 모든 사람에게 권리를 행해야 한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눈이 멀어 있고 우리의 감정들이 우리를 휩쓸고 가며, 게다가 우리는 우리의 지각을 굴복시키지도 못하고 마땅히 해야 할 대로 우리의 정욕을 사로잡아 두지도 못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들을 위한 재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시민 정부의 상태를 사랑하고 그것을 존중해야 마땅하다고 내가 말하는 뜻이 바로 이것이니, 즉 그것이 이 세상에서 인류를 유지하기 위한 필연적인 수단이기 때문이며, 그것이 없다면 모든 일이 끔찍한 혼란으로 나아가 결국 우리는 개와 고양이처럼 될 뿐만 아니라, 야수보다 더 악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앞에서 보여주었듯이)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우리가 이성을 따르고 공평하게 행동하기 위해 우리의 자유를 사용할 수 없음을 보니, 우리의 상태를 크게 한탄해야 마땅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토록 몹시 부패했음을 보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방식으로 우리의 질병들을 치유해 주시는 것이 우리를 향한 그분의 특별한 선하심의 한 점임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건이 어떻게 서 있든 간에, 만일 사람들이 서로의 눈을 긁어내지 않고 서로를 집어삼키지 않기를 우리가 피하고자 한다면, 우리 주님께서 여기에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규칙을 따릅시다. , 모든 성읍과 다른 모든 곳에 정의가 있게 하고, 칼을 찬 자들이 깨어 경계하여 아무도 다른 사람을 억압하지 못하게 하고, 아무도 어떤 난폭한 행위나 상처를 입히지 못하게 하며, 아무도 허용된 것 이상으로 제멋대로 넘어서지 못하게 하라는 점입니다. 그것을 하나의 논점으로 주목하십시오.

이제 상소(Appeals)에 관하여 여기에 기록된 바에 이릅시다. “만일 사건과 사건 사이, 상처와 상처 사이, 혹은 피와 피 사이에 소송하기가 어렵고 의심스러운 일이 일어나거든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그가, 만일 남들이 그것에 대해 확정적인 선고를 내림으로써 결정할 수 없는, 의심이 일어나는 형사나 민사의 어떤 사건이 있거든 그들로 하여금 최고 재판소로 소송 제기(resort)를 하게 하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상소가 죄과에 관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생사와 관련된 문제들을 위해서도 제정되었음을 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사람들이 어디로 상소하기를 원하셨는지 봅시다. 예루살렘입니다. 그분께서 그 당시에는 그 장소가 지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 그 이름을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분은 말씀하시기를 너는 올라갈지니라하십니다. 그리고 모세가 그러한 방식으로 말한 것은 일종의 예언의 방법이었으니, 왜냐하면 예루살렘의 위치가 유대의 다른 모든 곳보다 더 높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언약궤가 그곳에 놓이기 전까지는, 그것이 있는 장소로 그들이 소송을 제기하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또한, 여기에는 왕에 대한 언급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 백성 가운데 왕국을 세우고자 하신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이며, 그것은 다윗의 인격 안에서 확립될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호수아가 모세를 계승한 것을 우리가 보는 바와 같이, 그리고 결과적으로 사무엘에 이르기까지 나머지 재판관들이 있었던 바와 같이, 언제나 재판관들이 있었으며, 그 시기에 백성은 기어이 자신들의 체제를 바꾸고자 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무엘의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들 가운데는 이 질서가 있었으니, 곧 왕국이 확립될 때까지 왕의 상태를 대변하는 어떤 재판관들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가운데 일으키셨다는 점입니다. 그것이 모세가 이 구절에서, 사람들이 그 당시에 이스라엘에 있을 재판관에게 소송을 제기해야 한다고 말했을 때 뜻했던 바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이 그의 동료 레위 제사장들과 더불어 판결을 내릴 권위를 가지는 것이 그분의 뜻이었습니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그가 덧붙이기를,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의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들의 그 판결에 사람들이 의지하기를 원하셨으니,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에 불복종한다면, 그는 죽음으로 처벌받아야 했고, 그 수단으로써 이스라엘 가운데서 교만이 교정되게 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상소에 관하여 하나님께서 무엇을 명령하고자 하셨는지 봅니다. 모든 성읍에 재판관들이 있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치 군주의 단계처럼 그들 모두의 위에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세습에 의해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서 그분의 성령으로 누구를 일으키시든지 간에, 그가 백성을 통치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나중에 일이 그렇게 진행된 것을 봅니다. 백성이 하나님으로부터 떨어져 나갈 때마다 그것은 그들 자신의 혼란이 되었으며, 그분께서 그들을 다시 불쌍히 여기시는 즉시, 거룩한 역사들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바와 같이 그분은 그들을 위해 다시 새로운 재판관들을 일으키셨습니다(2:17,18). 참으로 백성이 처벌받아 마땅했던 시기에는 얼마간의 중단이 있어서 모든 것이 황폐해졌고, 그들은 자신들의 원수인 이교도들의 종노릇과 폭정 아래 넘겨지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을 다시 집으로 모아들이기를 아끼지 않으시는 즉시, 새로운 재판관이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리고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우리 가운데 정의의 질서가 있어서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걸어가며, 자신들의 직무를 신실하게 집행하는 통치자들이 있다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임재의 징표임을 한층 더 잘 보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려오셔서 자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것과 같습니다. 반대로, 정부의 질서가 왜곡될 때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등을 돌리시는 것과 같습니다. 만일 행정관들이 타락하여 모든 권리와 공평을 왜곡하거나, 폭군들이 우리를 지배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우리로부터 자신을 철회하시며, 그러한 그분의 진노의 징표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부재를 느끼게 하려는 뜻임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에게는 애통해할 충분한 원인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법률들이 번창하고, 그것들이 집행되도록 만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을 본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우리에게 비추시고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선언하시며, 자신의 보호 아래 우리를 유지하고자 하시는 뜻임과 다름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세상 정부의 상태가 우리 하나님의 선하심과 우리를 향한 그분의 아버지 같은 사랑의 그토록 큰 징표임을 보는 만큼, 우리로 하여금 그 상태를 한층 더 잘 사랑하게 만드는 데 이바지합니다.

그러나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대제사장과 레위 지파는 모든 어려운 사건에서 재판관이 되도록 임명되었습니다. 얼핏 보기에는 하나님께서 제사장 직분으로 하여금 시민 정부에 관여하게 하려 하셨다는 사실이 기이하게 보일 수 있으니, 왜냐하면 그 둘은 서로 너무나 다른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아론이 대제사장으로 임명되었을 때, 모세가 백성의 통치권을 가졌음을 압니다. 이제 제사장 직분은 상속에 의해 이어졌으나, 세속의 통치권은 그렇지 않았습니다(28:1,43; 31:7; 1:2). 그리하여 모세는 자신의 자녀들을 어떠한 공적인 권위도 없는 사사로운 자들로 자신들의 집에 남겨두었으며, 그와 아무런 친척이나 인척 관계가 없던 여호수아가 그의 후계자가 되었습니다. 동일한 질서가 나중에도 계속되었으니,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좋게 여기시는 자를 이때에는 이 지파에서, 저때에는 저 지파에서 일으키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사장들은 교회의 영적인 통치에 만족하며 자신들을 지켜야 마땅했으며, 시민 정부의 통치권을 자신들이 떠맡아서는 안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어찌하여 하나님께서는 여기에서 그들을 재판을 내리는 가장 높은 단계에 두십니까? 의심할 여지없이, 그것은 최고 재판관(chief Judge)이 될 자를 위한 자문회(Council)를 제정하시고 백성을 더 좋은 경외심 속에 붙들어 두시기 위함이었으니, 이는 마치 모든 상소가 하나님 앞으로 와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과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앞에서 선언했듯이) 사람들은 자신들에게 불리한 선고에 복종하도록 자신들의 동의를 내어주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아무도 논쟁 속에 서 있겠다고 제멋대로 나서지 못하게 하려는 목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최고 재판관이 있을 것이라 말씀하시며, 최소한 어려운 사건들의 자문회와 재판의 형태로 주어지는 그러한 일들 속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일들이 나의 법에 따라 재판될 수 있도록 하려는 의도로, 대제사장과 레위인들의 반차가 그곳에 참석할 것이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해석하는 자들이었음을 압니다. 왜냐하면 제사장 직분은 선지자 말라기가 그들에 대해 말한 바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천사와 사자가 되어야 한다는 바로 그 조건으로 그들에게 주어졌기 때문입니다(2:7). 그러므로 사람들이 그들의 입에서 자문(counsel)을 구했을 때, 그것은 사람의 고안물인 어떤 어리석은 꿈을 얻기 위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법에 대한 확실한 이해를 얻기 위함이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재판의 최고 권위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재판관과 더불어 제사장들의 반차에 위임된 원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더 멀리 가기 전에, 이 본문을 구실로 삼아 교황이 자신의 뿔을 들어 올렸고,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가 행사하는 것을 보아왔던 그와 같은 폭정을 찬탈했음을 주목합시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논증하기 때문입니다. 재판의 최고 권위가 제사장들에게 주어졌음을 보니, 온 교회 위에 한 머리가 있어야 마땅하다고 결론지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대제사장의 선고는 아무런 반박 없이 지켜져야 했으니만큼, 그들이 사도좌라고 부르는 곳에 의해 결정된 일들 역시 마찬가지로 반박 없이 지켜져야 마땅하며, 교황이 선언한 것은 무엇이든지 거스르는 것은 치명적이고 용서받을 수 없는 죄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우리에게는 그와 같고 그토록 유치한 논증들을 모두 해결하기에 충분한 두 가지 고려할 점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첫째로, 한 사람에 의해 온 세상을 통치하는 것과 어떤 한 나라나 지방을 한 사람에 의해 통치하는 것은 둘 다 같은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기 유대 땅을 위해 하나의 시민법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당시에 오직 하나의 성전만 있었으며, 그들이 모든 성읍에서 하나님을 예배하거나 그분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음을 압니다(12:5; 16:2). 만일 어떤 사람이 어떤 제단을 쌓았더라면, 그것은 가증한 일이 되었을 것이며 그 성읍은 허물어져야 마땅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오직 백성을 믿음의 하나의 바른 일치 속에 붙들어 두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대 땅에 오직 하나의 성전이 있었던 바와 같이, 대제사장도 오직 한 명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이 온 세상으로 확장되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훨씬 더 많은 이들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어떤 죽을 수밖에 없는 인간이 혼자서 그토록 큰 직무를 감당할 수 있겠습니까? 또한, 온 세상의 한가운데에 하나의 성전이 건축되어 사람들이 하나님을 예배하기 위해 4, 5천 리 떨어진 곳에서부터 달려와야 한다면 그것이 마땅하겠습니까? 그리고 그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여러분은 보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온 유대에 오직 하나의 성전과 한 명의 대제사장만 있었으니, 고로 온 세상에 걸쳐서도 그와 같아야 마땅하다고 결론짓는 것은 너무나 가당치 않은 어리석음입니다. 왜냐하면 그렇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함께 모일 수 있도록 어떤 작은 길목이 만들어져야 해서, 그들이 집에서 사오일 길 이상을 갈 필요가 없어야 할 터인데, 우리는 그것이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더욱이 본성에도 반하는 일임을 보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첫 번째 논점으로 주목하십시오.

그리고 둘째로, 레위 지파의 제사장 직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끝이 났고 완전히 폐지되었음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딤전 3:16; 9:11). 더욱이 대제사장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모형이자 그림자였으므로, 만일 교황이 사람들로 하여금 믿게 만들려는 것처럼 교회의 보편적인 머리가 될 대제사장을 사람들이 두어야 한다면, 그것은 진리를 폐기하거나 밀어내 버리는 일이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에는 한 명의 대제사장과 한 명의 최고 재판관, 그리고 참으로 한 명의 왕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제 만일 어떤 사람이 이를 근거로 온 세상에 걸쳐 오직 한 명의 대제사장이 있어야 한다고 결론짓고자 한다면, 최고 왕 역시 오직 한 명만 있어야 할 터이니, 그리하여 모든 공동체는 무너져 내릴 것이며, 현재 왕국들과 공국들 그리고 자유 도시들 사이에 구별되어 세워진 질서는 하나님께 저주받은 혼란에 불과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어떠한 형편에 처하게 되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의 가장 주요한 논점으로 나아가야 하는데, 곧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권리를 강탈당하시게 된다는 점입니다(28:18; 2:9; 1:8,13). 왜냐하면 이제 그분께서 오셨으니만큼 왕국은 그분의 인격 안에서 영원토록 확립되었으며, 그분은 세상의 모든 제국과 왕국 위에 세워지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분은 교회의 모든 질서와 통치 위에 영원한 제사장 직분을 떠맡으셨습니다. 성경이 감독들과 목자들에 대해 말하는 바와 같이, 이제는 더 이상 그러한 자들이 존재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유일한 머리가 되시고, 그 나머지는 하급 지체들에 불과하게 되며, 몸이 이러저러한 방식으로 통치되어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고 말씀된 그분께 모든 것이 복종하게 하려 하심입니다(17:5). 이처럼 우리는 교황이 하나님의 교회 위에 스스로를 대제사장으로 삼음으로써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그분의 주권을 강탈하는 반역자임을 봅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만일 종교로 인해 일어날 수 있는 싸움과 논쟁을 끝내기 위한 어떤 수단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면, 그 답변은 이러합니다. , 그와 같은 질서가 세워진다 할지라도, 어떤 한 사람을 다른 모든 이들 위에 둘 필요는 없으며, 우리가 과거에 행해진 것을 보듯이 그들이 한마음 공동의 일치로 함께 모일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옛사람들이 큰 지방들을 위해 교회 안에 어떤 질서, 즉 특정한 총대주교들을 두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온 교회 위에 어떤 한 머리를 두는 일은, 복음의 순전함이나 용납할 만한 통치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결코 합의된 적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것이 야만적이고 차라리 짐승 같은 방식으로 혼란해지자마자, 그때 교황이 자신의 뿔을 들어 올렸습니다. 진실로 그는 오랫동안 콘스탄티노폴리스의 감독을 대적하여 투쟁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어떻게 서 있었든 간에, 그 직후에 모든 것이 부패하고 혼란해져 사람들은 교회의 통치가 무엇을 뜻하는지 더 이상 알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시민의 싸움을 진정시키고 형사 사건들을 결정하기 위해 어떤 멈춤이 필요한 바와 같이, 교리의 분쟁과 다툼을 가라앉히기 위해서도 어떤 특권적인 최고 재판소가 있는 것이 마땅한 이치라고 말할지라도, 오직 한 사람만이 온 세상 위에 주권을 가져야 한다는 결론은 도출되지 않음을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왜냐하면 (내가 앞에서 보여주었듯이) 그것은 본성에 완전히 반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남습니까? 사람들이 함께 모이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들 가운데서 가장 주요한 영향력을 행사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여기에 포함된 일들을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법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로써 보여주는 바는, 우리 주님께서 모든 제사장들이 함께 모인 곳이든 혹은 그 당시에 왕의 상태에 있던 재판관이든 간에, 그들 누구의 목에도 고삐를 느슨하게 풀어주지 않으셨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그들 모두가 법에 복종해야 마땅했으며, (내가 앞에서 선언했듯이) 하나님께서는 최고 권위를 자신에게 유보하고자 하셨으니, 그리하여 사람들은 마치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확정적인 선고를 받아들이고, 선고를 내릴 당사자들은 오직 그분의 성령의 도구이자 그분의 법을 해석하는 자들에 불과하게 하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여기에서 사람들이 자신들의 임의대로 무언가를 행하는 것을 원치 않으셨고, 특히 다른 어느 곳보다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법이 영향력을 행사하기를 원하셨음을 잘 주목합시다.

그러나 이제 교황이 행하는 바와, 그가 우리를 얽매려 하는 저 모든 서출 같은 공의회들이 행해온 바를 봅시다. 그들 가운데는 오직 성령께서 자신들을 통치하신다고 말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으니, 왜냐하면 거룩한 성경에 관해서라면 그들은 그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었기 때문입니다. 진실로 그들은 성경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존귀한 칭호를 부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들이 좋게 여기는 바를 결정하고자 했을 때, 그것이 하나님께서 선언하신 바에 따른 것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들은 또 다른 규칙을 취했으니, 곧 교회는 성령에 의해 통치되므로 오류를 범할 수 없다는 것이며, 거룩한 성경에 관해서라면 그것이 우리를 온전함으로 인도하지만 우리는 아직 더 높이 올라가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에게 성령의 계시들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만일 한 사람이 거룩한 성경에 포함된 바에만 자신을 붙들어 둔다면, 그것은 그들에게 단지 불완전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결정한 바에 관해서라면, 그것은 침해할 수 없는 것으로 지켜져야 하며 아무도 어떤 방식으로든 그것에 반박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이 말하기를, 거룩한 성경은 사람이 사방으로 비틀 수 있는 밀랍 코(nose of wax)와 같아서 그 안에는 어떠한 확실성도 없으나, 교회가 한 번 어떤 일을 선언하고 나면 그 안에는 더 이상 의심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한 방식으로 그들 무리 전체가 작업에 착수했으니, 그리하여 그들은 거룩한 성경을 발밑에 짓밟았습니다. 비록 그들이 말로는 그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나왔음을 인정할지라도, 그것을 단지 기초적인 학습서나 흔한 교리에 불과한 것으로 취급했으며, 자신들에게 주어진 계시들이 훨씬 더 높은 교리라고 확언했습니다. 그들은 이러한 신성모독을 내뱉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으며, 그들의 책들은 그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내가 앞서 선언했듯이 거룩한 성경이 유연한 것이라 말합니다. 그리하여 만일 우리가 그곳에 포함된 바에 매여 있다면 우리의 믿음은 결코 확실할 수 없을 것이라 합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모든 사람이 자기 자신의 환상을 따릅니다. 그들이 그와 같은 극단에 이른 것을 보니, 거룩한 성경이 그들 가운데서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했음을 사람이 잘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정반대로 기록된바, 대제사장은 교회의 영적인 통치에 관한 문제들뿐만 아니라 시민 사건들에 있어서도 재판관이 되어야 하며, 그 사건이 단지 세속의 관할권에 관한 것일지라도 법을 따라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사정이 그러하다면,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다루어야 할 때에는 무엇이 행해져야 하겠습니까? 그 사건이 사람의 영혼의 구원과 종교, 그리고 믿음에 관한 것일 때, 이것들은 온 세상을 뛰어넘는 일들인데, 사람들이 그 경우에 거룩한 성경을 저버려야 하겠습니까? 사람들이 그러한 사건들 속에서, 마치 이것이 내게 좋게 보이며, 이것이 성령께서 내게 계시하신 바다라고 말하려는 것처럼 자신들의 유쾌한 대로 일들을 지배해야 하겠습니까? 이 측면에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수치스럽게 조롱당하고 계시는지 여러분은 보지 못합니까?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 주님께서 제사장들에게나 재판관들에게나 무한한 권력을 주고자 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 법에 따라 재판할 수 있도록 그들을 자신의 법으로 보내고 참조하게 하셨음을 잘 주목합시다. 참으로 여기에서 어떤 사람이 반박하기를, 그 법에 대해 주어지는 해석이 자기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는 한 모든 사람이 그것은 하나님의 법에 따른 것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말입니다. 그리고 진실로 이단자들은 너무나 완고하여 결코 죄를 인정하려 하지 않습니다. 비록 거룩한 성경이 그들에게 인용되고 그 본문들이 더할 나위 없이 명확하고 확실하게 제시될지라도, 성 바울이 말하듯이 그들 자신의 양심이 그들을 정죄할 때조차 그들은 여전히 다투기를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3:11). 이 모든 것이 사실일지라도 권위를 가진 자들이, 마치 자신들이 이것이 법이니 이를 따르라고 말하는 것이 허용되는 것처럼 그것을 남용해서는 안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황과 그의 모든 성직자는 거룩한 성경을 떠났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 규칙으로 되돌아가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 하나님께서 세속의 관할권이 자신의 말씀에 의해 통치되기를 원하셨음을 우리가 봅니다. 교회가 거룩한 성경 외에 다른 것으로 통치되지 않아야 할 훨씬 더 큰 이유가 있다는 점입니다. 세속의 재판관들이 있는 곳은 어디든지 그들이 입법자들이며, 그들에게 교회의 영적인 통치를 위한 새로운 법들을 만들 자유는 없습니다. 요약하자면, 사람들은 침묵해야 하고 모든 입은 막혀야 하며, 사람들은 모세와 선지자들과 사도들에 의해 기록된 바에 만족해야 마땅하고, 그 위에서 사람들이 완전히 의지해야 마땅합니다. 하나님께서 교회의 영적인 통치의 측면에서 사람들에게 입법자가 될 권한을 부여하지 않으셨음이 그러하니, 우리가 법과 거룩한 성경으로부터 돌이키는 것이 우리에게 허용되지 않으며, 우리가 그것에 자신을 붙들어 두어야만 한다고 결론지읍시다. 이처럼 제사장들과 그 당시의 재판관이 하나님의 법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고 기록된 이 본문 위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바가 무엇인지 여러분은 봅니다.

그리고 진실로 내가 이미 조금 전에 선언했듯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재판관뿐만 아니라, 우리의 대제사장으로도 영접해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이중의 직무를 가지고 계시기 때문인데, 곧 그분은 우리가 우리의 모든 교리를 보존하고 모든 진리를 길어 와야 할 우리의 최고 선지자이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통치하시는 왕이시오, 대제사장이시기 때문입니다(7:14; 1:2,8; 2:17). 아무튼 그들이 그분의 인격을 대변하여 그분의 그림자와 모형 역할을 하고 있었으니만큼, 이 법을 따르는 것이 그들에게 마땅했습니다. 이제는 (내가 앞서 말했듯이)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오셨고, 옛 제사장 직분은 지나갔으며, 옛 왕국은 폐지되었기 때문에, 그와 같은 그림자와 모형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급의 질서를 두는 것에 만족합시다. , 하나님의 법이 언제나 가장 주요한 타격을 가하고, 그동안 모든 사람이 자신들에게 무엇이 허용되는가를 존중하는 방식으로 시민 정부가 유지되게 하는 것입니다. 왕들과 군주들 그리고 행정관들이 법률을 만들고자 할 때, 만일 자신들의 임의대로 그것들을 만든다면, 그것은 모든 것을 망치고 혼란하게 만드는 일임을 그들은 이해하도록 하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행정관들이 무엇이 선하고 유익한지를 분별하는 것은 나로 말미암는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8:15,16).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성령을 소환하여, 그분께서 자신들에게 선하고 편리한 법률들을 만들 지혜와 신중함을 주시도록 합시다. 그리고 공의의 자리(the seat of Justice)에 앉은 자들은 자신들을 하나님께 의탁하고 그분의 거룩한 성령에 의해 다스려지기를 구하도록 하십시오. 영적인 관할권을 가진 자들은,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파하는 것 외에 더 이상 관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으며, 마치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말하고 율법과 복음에 포함된 교리를 신실하게 전달해야 함을 알도록 하십시오. 그들은 그러한 한계 내에 자신들을 붙들어 두고 더 이상 제멋대로 떠맡지 않도록 하십시오. 이처럼 여러분은 이 교리를 어떻게 실행에 옮겨야 하는지 그 요지를 봅니다.

그리고 명백하게 기록된바, “사람들이 재판관들과 제사장들에 의해 내려진 선고에 복종해야 하며, 그것에 불복종하는 당사자는 그의 교만 때문에 죽음으로 죽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점에 대하여 교황은, 공의회들에 의해 결정된 일들에 대항하여 서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든 허용되지 않는다는 점을 기어이 근거로 삼고자 했습니다. 무엇이라고요? 보십시오, 교황이 공의회의 우두머리로 앉아 있고 감독들과 고위 성직자들이 그것에 동의했거늘, 사람이 와서 그것에 대항하여 서서 그것이 잘못 제정되었다고 말하겠습니까? , 그것은 참으로 용납할 수 없는 죄과이며,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 가운데서 그와 같은 교만이 묵인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것은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다음과 같이 쉽게 뒤엎어질 수 있으니, 곧 이 본문은 법의 문제들을 다루고 있지 교리를 다루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법을 전달하셨고, 사람들이 우편으로나 좌편으로나 돌이켜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훈계를 줄 때 그에게 이르기를, 너는 율법에 포함된 것은 무엇이든지 따르고 이쪽으로나 저쪽으로나 빗나가지 말라 하였습니다(31:18; 1:7). 보십시오, 여호수아는 백성을 좋은 질서 속에 붙들어 둘 최고 재판관으로 지정되었고, 그는 그들의 머리이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대변합니다. 그런데도 그분은 그에게 이르기를, 네 마음이 네게 하라고 주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고, 네 자신의 안목에 선하고 바른 것은 무엇이든지 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시고, 너는 교회를 인도하기 위해 네게 주어진 교리에 너 자신을 복종시키면서 가장 비천한 모든 백성처럼 행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섬김과 종교에 관해서라면 율법이 언제나 영향력을 행사해 왔음을 우리가 보며, 그곳에 제시된 것은 무엇이든지 영접할 수 있도록 모든 사람이 자신들의 귀를 열고 준비해야 마땅했고, 백성으로 하여금 원망하게 만들기 위해 어느 누구도 그것에 대항하여 서거나 그것을 좌지우지하려 들지 못해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여기에는 법의 문제, 즉 그것들이 어떻게 마무리되어야 하는가와, 그렇지 않으면 사람과 사람 사이에 끝이 없을 싸움을 진정시키는 것 외에 다른 것들에 관한 언급이 없음을 보니, 그 해답은 매우 쉽습니다. , 만일 어떤 사람이 확정적인 선고에 대항하여 선다면, 그의 의도는 모든 질서를 왜곡하려는 것이며, 그는 인류의 원수이자 도둑보다 더 악하다는 점입니다. 도둑질하거나 살인하는 자는 처벌받을 것이나, 그의 법 파괴는 단지 어떤 한 점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시민의 질서를 깨뜨리는 자에 관해서라면, 그는 도둑질과 살인 그리고 모든 혼란을 향해 틈새를 열어젖히는 것입니다. 그의 의도는 사람들 가운데 더 이상 겸손도 인류애도 없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모든 선함의 원수로 취급받아야 마당하며, 성 바울의 말에 따르면 사람들 가운데 그와 같은 무질서를 세우고자 하는 자들은 피조물들을 대적하여 서는 것이 아니라, 모든 주권이 그분으로부터 나오는 까닭에 살아 계신 하나님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입니다(13:2). 그러니 특권 재판소의 선고에 불복종한 당사자가 이스라엘인들 가운데서 끊어져야 한다고 기록된 것이 놀랄 일이 아님을 이제 압니다.

그리고 이 선고를 통해 우리는 이전에 말했던 바를 마음에 새기게 되니, 곧 우리 주님께서 이 땅의 통치 체제를 너무나 크게 여기시므로 사람들의 목숨을 바꿔서라도 그것이 유지되기를 원하신다는 점입니다. 사람의 피는 그분께 소중한데, 왜냐하면 사람들이 그분의 형상을 따라 빚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분은 사람을 마냥 봐주지 않으시며, 만일 그가 시민의 질서에 불복종한다면 그를 돌로 치고 죽음에 처하게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서 재판관들과 행정관들에게 주신 권위가 그분의 안목에 얼마나 귀중하고 거룩한 것인지를 그 어떤 비교로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만일 어떤 사람이 그것에 대항하여 발을 내딛는다면, 그는 그 일로 인해 죽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어찌하여 그러합니까? 사람의 목숨 가치가 고작 그 정도밖에 안 된단 말입니까?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주장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행정관들 안에서 한층 더 밝히 빛나는 하나님의 형상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깁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자신의 표지(mark)를 새겨 두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한 사람의 목숨이 십만 명의 목숨과 비교할 때 무엇이겠습니까? 왜냐하면 행정관들이 존재하고 사람들이 그들에게 복종하는 이 질서가 유지되지 않는 곳에서는 온 민족이 어찌할 도리 없이 파멸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다스림을 받기 원치 않는 사람들은, 만일 자신들의 상급자들에 의해 경외심 속에 붙들려 있을 정부의 질서가 없다면 마귀들이 될 터이며, 모든 것이 황폐함으로 나아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나님께서 법의 질서에 불복종하는 당사자는 죽어야 한다고 제정하신 것은 이유 없는 일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에 우리는 훨씬 더 순응해야 마땅하며, 그 측면에서 우리 자신을 낮추고, 정의의 칼을 찬 자들에게 우리의 목을 기꺼이 그리고 복종함으로 구부려야 마땅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께 그분께서 받으실 만한 제물을 드리는 것이며, 이 본문에서 우리가 보듯이 그분께서 그것을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일 우리가 그분께서 그 단계에 세워두신 사람들에게 불복종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원수가 되어 그분을 대적하여 전쟁을 벌이는 것이니 (내가 앞에서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가 이기기에는 너무나 강력한 대적을 마주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의도적으로 교만(pride)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이 교만과 마귀 같은 자만심에 휩쓸리지 않는 한, 공적인 행정관에게 거역하고 공동체의 질서를 무너뜨릴 만큼 완고해지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재판관들과 행정관들을 대적하는 이 반역함을 고치고자 합니까? 우리 각자가 자신을 선한 겸손함에 맞추어 형성합시다. 왜냐하면 만일 우리가 교만으로 부풀어 오르지 않는다면, 모든 사람이 자신의 길을 계속 갈 것이며, 우리 가운데 일들이 평온할 것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질서가 왜곡되는 원인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사람들이 법률들이 우리를 좌지우지하게 하자고 말할 만큼 이성에 기꺼이 순응하려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과적으로, 행정관들로 임명된 자들은 자신들의 상태를 유지하도록 살피고 그와 같은 교만을 꺾어 누르기 위해 자신들의 노력을 다해야 하며, 모든 사람은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질서에 온유하게 복종해야 마땅합니다.

그리고 모세가 의도적으로 이 점을 기록한 것은, 불복종하는 자들을 대적하여 그와 같은 엄격함과 가혹함을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행하심이 이유 없는 일이 아님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왜냐하면 그 경우에 우리는 단순히 그들의 불복종만을 보아서는 안 되며 한층 더 높이 나아가야 하니, 곧 그들이 자신들의 자만심에 이끌리고 있으며, 교만과 악독함으로 가득 차 있다는 점과, 만일 그들 안에 어떤 온유함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손에 자신들을 복종시킴으로써 분별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교만과 용납할 수 없는 오만함으로 가득 차 있어서 하나님께도 사람에게도 굴복하려 하지 않고 존재하는 모든 것을 거부하니, 하나님께서 그러한 자들을 죽음에 처하라고 명령하신다 한들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분은 명백하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스라엘 가운데서 악을 씻어내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어제 언급되었듯이) 사악함이 용납될 때 그것은 모든 것을 망치는 일이며 전반적인 감염이 그 뒤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죄를 용서해 줌으로써 찾아오는 해악의 거대함이 지각되지 않습니다. “, 이번 한 번만 넘어가 주지합니다. , 단지 한 번뿐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나중에 모든 것을 감염시키는 일로 바뀌니, 왜냐하면 그 수단으로써 악이 여전히 키워졌고 사람들이 제때에 그것을 바로잡는 일에 발을 내딛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게으름을 처벌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마음에 잘 새겨두어야 할 것은, 이 원인 때문에 모세가 여기에서 우리에게 경고하기를, 만일 우리가 사악함이 자리 잡도록 방치한다면 그것은 바로잡히기도 전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망치고 감염시킬 것이라는 점과, 감염이 우세를 점할 때까지 사람들이 지체하다가 그것에 착수하려 들면 너무 늦다는 점입니다.

또한 그분은 본보기에 대해 말씀하시며, “다른 이들이 그것을 듣고 두려워할 것이요, 그 수단으로써 교만이 교정될 것이라 하십니다. 무엇보다 먼저 이로써 우리가 보는바, 하나님께서 당사자가 자신의 목숨으로 그것에 책임을 지게 하실 만큼 그토록 격렬한 치료법을 사용하시는 것을 보니 교만은 그분 앞에 가증한 악덕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둘째로, 우리가 집행해야 마땅한 처벌들이 본보기에 속한다는 점을 또한 우리가 마음에 새기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범죄자의 죄과를 처벌하지 않은 채 내버려 둠으로써 그를 아끼는 자들은 온 민족을 파멸시킨 죄를 짓게 될 것이라고 말씀되는 원인이니, 왜냐하면 그 수단으로써 그 사람뿐만 아니라, 그 나머지 자들도 악행으로 떨어지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이 사악한 행위가 저질러진 것을 보고도 당사자가 그 일로 처벌받지 않는 것을 볼 때, 모든 사람이 그와 똑같이 행할 자유를 취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 본보기들을 통해 경고를 받아 그것들을 우리의 훈계에 적용할 수 있도록 합시다. 그리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이 처벌받는 것을 볼 때, 우리는 이로써 온유함 가운데 걸어가기를 배웁시다. 비록 다른 사람들의 처벌을 지켜봄으로써 배우는 것보다 모든 사람이 스스로 배우는 것이 더 나을지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들의 해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는 것은 그분의 크신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우리가 하나님의 권위에 의해 집행되는 처벌들을 보면서도 교정되지 않은 채 계속 머문다면, 내가 말하거니와 우리가 교정되지 않은 채 계속 머문다면, 우리의 죄는 그만큼 훨씬 더 늘어난다는 점을 주목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수많은 훈계로, 참으로 그분께서 집행하시는 징계들로도 우리에게 경고하시거늘 우리는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깁니다. 그러니 결국에 우리 주님께서 우리가 어디로 가야 할지 알지 못할 만큼 그토록 크고 과도한 무질서들을 보내신다 한들 그것이 무슨 놀랄 일이겠습니까?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사악한 자들을 처벌하시기 위해 자신의 손을 들어 올리실 때마다 이 학교에서 유익을 얻기를 배웁시다. 그리고 그분께서 그들의 본보기를 통해 우리를 가르치고 계심을 이해합시다. 그러므로 우리는 굴복하고, 우리 각자가 참된 온유함으로 그분께 복종하여 따르도록 합시다.

 

이제 우리의 선하신 하나님의 위엄 앞에 우리의 죄과를 인정하며 엎드려, 우리로 하여금 그것들을 더욱더 깨닫게 해 주시기를 간구합시다.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이 땅의 칼에 의한 강제력에 의해 그리로 이끌리기를 기대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의 칼이 우리의 마음속에서 그토록 큰 권능을 가져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제물로 바치게 하기를 구합시다. 또한 우리의 모든 육신적인 정욕을 죽이고 우리를 그와 같은 종류의 삶으로 새롭게 하사, 우리의 온전한 소망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치하시게 하는 것이 되게 하고, 그분의 거룩한 뜻에 따라 우리가 온전히 개혁되게 하십시오. 그리고 그와 더불어 우리가 그분 교회의 질서 있는 체제와 영적인 통치를 따르게 하시고, 그분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 지정해 두신 모든 일이 유지되고 준수되어 큰 자나 작은 자나 모두 그 질서 아래 복종하게 하십시오. 그리하여 이 은혜를 우리에게 뿐만 아니라, 땅 위의 모든 백성과 나라들에게도 베풀어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그리하여 저 가련하고 무지한 모든 백성을 그들이 붙잡혀 있는 오류와 어둠의 종노릇으로부터 건져내어 주십시오. 그리하여 그분께서 그들을 자신의 진리의 지식으로 인도하시게 하시고, 이 목적을 위해 그분의 말씀의 참되고 신실한 사역자들을 일으켜 주시기를 원하나이다. 아멘.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