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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년 성경묵상

히브리서 5:11~6:8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2.07.06|조회수24 목록 댓글 0

2022년 7월 7일 수요일 묵상
<5:11> 「멜기세덱에 관하여는 우리가 할 말이 많으나 너희가 듣는 것이 둔하므로 설명하기 어려우니라」
<5:12> 「때가 오래 되었으므로 너희가 마땅히 선생이 되었을 터인데 너희가 다시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대하여 누구에게서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이니 단단한 음식은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할 자가 되었도다」
<5:13> 「이는 젖을 먹는 자마다 어린 아이니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요」
<5:14> 「단단한 음식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그들은 지각을 사용함으로 연단을 받아 선악을 분별하는 자들이니라」
<6:1>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의 도의 초보를 버리고 죽은 행실을 회개함과 하나님께 대한 신앙과」
<6:2> 「세례들과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의 터를 다시 닦지 말고 완전한 데로 나아갈지니라」
<6:3>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우리가 이것을 하리라」
<6:4> 「한 번 빛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6:5>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도」
<6:6>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하게 할 수 없나니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드러내 놓고 욕되게 함이라」
<6:7> 「땅이 그 위에 자주 내리는 비를 흡수하여 밭 가는 자들이 쓰기에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고」
<6:8> 「만일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함에 가까워 그 마지막은 불사름이 되리라」

(본문 해석)
7월 7일 목요일 히브리서 5:11~6:8
11~14절
11절 멜기세덱 계통을 따른 대제사장 예수를 소개하다가 독자들이 이해하기 어려울까 봐 망설인다. 독자들이 듣기에 둔한 자가 되었다는 것은 핍박으로 인한 고난을 피하기 위해서 복음을 듣고도 등한시하면서 믿음으로 순종하지 않는 잘못된 태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만약 독자들이 이러한 태도를 계속해서 견지하고 있는 한 멜기세덱의 계통을 좇은 그리스도의 대제사장직에 관한 설명을 해도 그들이 잘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12절 그들이 시간이 오래되어 당연히 선생이 되어야 했음에도 하나님 말씀의 초보 원리를 배워야 할 처지다. 마치 단단한 음식을 못 먹고 젖이나 먹어야 하는 상태처럼 말이다. 13절 젖을 먹는다는 것은 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상태를 말한다. 여기서 ‘경험하지 못한’이란 말은 ‘숙련되지 못한’이란 뜻으로 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일에 잘 훈련되지 못한 상태를 가리킨다. 14절 단단한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가리킨다. 선악을 분별하는 능력은 지속적으로 지각을 사용하는 훈련을 통하여서 얻게 된다. 선악의 분별은 단순히 교리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 지적인 능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훈련을 통해서 의로운 것을 선택하고 행하는 능력을 말한다.
6:1~3절
1~2절 그리스도에 대한 말씀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로 나아가자고 권한다. 초보 진리를 배우느라 같은 자리에서 언제까지나 맴도는 일을 그만두라는 것이다. 그리스도 도의 초보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은 행실을 회개함, 하나님을 믿음, 세례와 안수와 죽은 자의 부활과 영원한 심판에 관한 교훈들이다. 그런데 이러한 교리들은 이미 유대교에서도 잘 알려진 가르침들이다. 만약 독자들이 이러한 가르침에서 머물러 있기만 한다면, 그들은 유대교와 기독교 양쪽에서 모두 편안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거기에 머물러 있지 말고 복음 안에서 성장해야 한다. 저자는 복음 안에서 성장하는 것을 가리켜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완전한 데로 나아가는 것은 유대교의 가르침과 차별화되는 복음의 진리 가운데로 더욱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영적인 성숙을 추구하는 일은 고난과 핍박을 각오하는 일이다. 3절 영적 성숙으로 우리를 이끄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면 이라는 말씀은 신앙의 성숙 과정이 은혜의 과정임을 넌지시 드러낸다. 하나님의 애쓰심에 우리가 이끌림으로써 가능하다.
4~6절
4절 한 번 빛을 받음과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그리고 성령을 함께 받음과 같은 것은 모두 회심 과정에서 일어나는 체험을 담아내는 표현들이다. 5절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다가오는 세상의 능력을 맛봄 또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공통 체험이다. 6절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심하고 말씀의 능력과 성령의 은혜를 받았던 자라도 타락할 수 있으며,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까지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한다. 이런 사람은 회개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공개적으로 그분을 욕되게 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단번에 드려진 십자가 희생 효력을 신뢰하지 않고 다시 유대교의 제사 제도를 받아들인 상황을 상정해 볼 수 있다. 한 번 구원받은 성도는 결코 타락할 수 없다는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적 입장에서 보면 이 구절은 이해할 수 없는 난해한 본문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러나 성도의 견인이라는 교리는 하나님께서 어떤 경우에도 우리를 배신하지 않고 지키신다는 뜻이지, 믿음을 가진 신자는 어떤 경우에도 타락하지 않음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교리적 권면이 아니라 목회적 권면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배교의 위기 상황에서 타락의 길을 선택하지 말라고 권면하고 있다.
7~8절
땅이 그 위에 내리는 비를 받아서 농부들이 원하는 합당한 채소를 내면 하나님께 복을 받지만,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마지막에는 불살라지게 될 것이다. 여기서 땅은 믿는 자들을 상징하고, 비는 복음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영적인 은혜를 가리킨다. 합당한 채소를 내는 것이 영적 성숙을 상징한다면, 가시와 엉겅퀴를 내는 것은 영적 미성숙과 더 나아가 배교를 상징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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