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7일 주일 묵상
<4:6> 「형제들아 내가 너희를 위하여 이 일에 나와 아볼로를 들어서 본을 보였으니 이는 너희로 하여금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한 것을 우리에게서 배워 서로 대적하여 교만한 마음을 가지지 말게 하려 함이라」
<4:7>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
<4:8> 「너희가 이미 배 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우리가 너희와 함께 왕 노릇 하기 위하여 참으로 너희가 왕이 되기를 원하노라」
<4:9> 「내가 생각하건대 하나님이 사도인 우리를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끄트머리에 두셨으매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4:10>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으나 너희는 그리스도 안에서 지혜롭고 우리는 약하나 너희는 강하고 너희는 존귀하나 우리는 비천하여」
<4:11> 「바로 이 시각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가 없고」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모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박해를 받은즉 참고」
<4:13> 「비방을 받은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도다」
<4:14>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
<4:15>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버지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
<4:16>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권하노니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4:17>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그가 너희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나의 행사 곧 내가 각처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4:18> 「어떤 이들은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지 아니할 것 같이 스스로 교만하여졌으나」
<4:19> 「주께서 허락하시면 내가 너희에게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오직 그 능력을 알아보겠으니」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4:21> 「너희가 무엇을 원하느냐 내가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본문 해석)
6월 7일 주일 고린도전서 4:6~21
6절
바울은 형제들아 라고 부르며 새로운 논증을 시작한다. ‘이 일’은 교회 분열 문제를 다루는 앞부분 전체를 가리킨다. 분열의 원인은, 바울과 아볼로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고린도 교인들의 교회 지도자들에 대한 과도한 충성심 때문이었다. 바울은 본을 보였다고 하면서 자신과 아볼로의 예를 적용한다.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 에서 기록된 말씀은, 바울이 앞에서 인용한 구약 성경을 전체적으로 가리키는 표현으로 이해한다. 앞선 바울의 인용은 인간의 지혜와 자랑을 제한하고, 오직 주 안에서만 자랑해야 함을 강조한다. 따라서 이 말은 인간 지도자들을 과도하게 높이고 그들을 중심으로 분파 만드는 것을 금지하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다.
7절
‘누가 너를 남달리 구별하였느냐’는, 고린도 교인들의 근거 없는 우월 의식을 폭로하고, 그들이 만약 구별된 존재라면 그것은 고린도 교인들 자신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비롯되었음을 강조한다. 또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는 고린도 교인들이 자기 소유로 여기는 모든 것이, 사실 받은 다 것이며 본질적으로 자기 것은 전혀 없음을 보여준다. 마지막 질문인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는 앞선 두 질문의 결론이다. 특정한 인간 지도자를 내세워 서로를 비교하는 교만한 태도는 모든 것을 주신 하나님을 부정하고 무시하는 행위다.
8~13절
8절 바울은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라는 말로 십자가의 고난을 생략한 채 부활의 영광만 누리려는 것을 비판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스스로를 지혜롭고 강하며 존귀한 존재로 여겼지만, 그들이 자랑하는 기준은 십자가의 도가 아닌 세상의 지혜와 사회적 명성, 수사학적 능력에 불과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상에서 높은 자가 되려 했지만, 바울은 그것이 헛되다고 폭로한다.
9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의 생각에 반대하면서, 자신과 사도들의 고난받는 현실을, 십자가의 참된 제자도의 모델로 제시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도들을 마치 개선 행렬의 마지막에 끌려오는,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와 싸우다 죽어야 하는, 죽이기로 작정 된 자 같이 세상의 구경거리로 두셨다고 한다.
10절 세상의 관점에서 사도들은 미련하고 약하며 비천한 패배자이다. 메시아 때문에 세상에서 어리석은 자 같지만, 메시아 안에서 지혜롭다고 한다. 우리는 약하지만, 그들은 강하고, 그들은 스스로를 존귀하게 여기고 명예를 추구하지만, 우리는 아니라고 한다.
11절 지금까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거주지가 없고
12절 손으로 수고하며 일하고, 또한 모욕을 당하지만 축복하고, 박해를 당하지만 참고,
13절 비방을 당하지만 권면한다.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처럼 여김을 받고 있다. 이것은 세상이 그들을 폐기물처럼 취급한다는 것이다. 그들에게는 십자가 예수는 보이지 않고, 단지 메시아 안에서 누리려는 것만 있을 뿐이다.
14~17절
14절 바울은 그들을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바울의 목적은 사랑하는 자녀를 권면하듯 독자들을 바른길로 인도하려는 것이다.
15절 바울은 자신을, 그들을 복음으로 낳은 아버지로 제시한다. 그는 자신과 고린도 교회 공동체 사이의 관계가 선생과 제자의 관계가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 관계임을 강조한다. 반면 ‘일만 스승’은 임시로 임명된 감독, 곧 규율과 통제를 담당하는 역할을 하는 로마의 직책을 가져와서 비유하는 표현이다.
16절 바울은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요청한다. 이는 십자가의 삶을 사는 자신을 닮으라는 요청이다. 바울이 요구하는 본받음은 낮아짐, 약함, 고난, 은혜를 의존하는 삶이다. 궁극적으로 이것은 그리스도를 닮는 삶이다.
17절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 고린도 교인들에게 자신의 길, 즉 행사를 떠올리게 한다. 이것은 복음이 만들어 내는 삶의 방식- 모든 교회에 동일하게 요청되는 공동체적 윤리-을 다시 보여주게 하기 위함이다.
18~21절
18절 그들 중에 어떤 이들은 바울이 고린도 교회에 오지 않을 것으로 알고 교만한 행동을 하고 있다.
19절 바울은 주께서 허락하시면 속히 나아가서,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닌 능력을 살피겠다고 말한다.
20절 고린도 교인들은 말이 풍성함을 자랑하지만, 바울은 그 말이 십자가의 말씀에 속한 것이 아니면 공동체를 바꾸는 능력을 낳지 못한다는 것을 강조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능력에 있다는 말은, 신학적인 구호와 분파, 고린도 교인들의 헛된 자랑이 아무것도 아님을 폭로한다.
21절 ‘매’는 고대 교육에서 엄격한 징계의 상징이었으나 바울의 방식은 이와 같은 엄격한 징계가 아니라 사랑과 온유한 마음이다. 이것이 십자가의 가르침이, 그것을 전하는 방식과도 관련이 있음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