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4년 성경묵상

고린도전서 6:12~20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6.06.09|조회수43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0일 수요일 묵상
<6:12>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
<6:13> 「음식은 배를 위하여 있고 배는 음식을 위하여 있으나 하나님은 이것 저것을 다 폐하시리라 몸은 음란을 위하여 있지 않고 오직 주를 위하여 있으며 주는 몸을 위하여 계시느니라」
<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내가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를 만들겠느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
<6:16> 「창녀와 합하는 자는 그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일렀으되 둘이 한 육체가 된다 하셨나니」
<6:17>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
<6:18> 「음행을 피하라 사람이 범하는 죄마다 몸 밖에 있거니와 음행하는 자는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느니라」
<6: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6: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본문 해석)
6월 10일 수요일 고린도전서 6:12~20
12절
바울은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문장을 두 번 반복해서 말한다. 이 표현은 고린도 교인들이 즐겨 사용하던 슬로건이었다. 그들은 바울이 전한, 율법으로부터의 자유라는 복음의 진리를,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왜곡했다. 이 논리를 방패 삼아 우상숭배의 제물을 먹거나 성적 부도덕을 저지르는 행위를 정당화하려 했다. 그러나 바울은 다 유익한 것이 아니라고 반박한다. ‘유익’이라는 말은 공동체를 세우는 것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바울은 자유의 기준을 나의 권리에서 공동체의 유익으로 전환한다. 또 바울은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한다. 너희는 모든 것에 대해 권한(자유)이 있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 어떤 것에도 내 권한을 빼앗기지(지배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언어유희다. 따라서 바울은 방종할 수 있는 자유가 아니라 죄에 종노릇하지 않을 자유를 가르치는 것이다.
13~14절
13절 그들은 식욕이 음식을 통해 해결되는 생리 현상이듯, 성욕도 생리적 현상으로 몸의 단순한 기능에 불과하다고 여겼다. 또한 배와 음식이 썩어 없어질 일시적인 것이듯, 몸의 성적인 행위도 영혼의 구원이나 영원한 사람에는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바울은 이런 헬라적 이원론을 배격한다. 배와 음식은 폐하여질 것이나 몸은 쾌락의 도구로 사용되어서는 안 된다. 몸은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섬기는 거룩한 성전으로 구별되었기 때문이다. 몸은 주를 위하고 주는 몸을 위한다는 원리를 제시한다. 주님은 성령을 통해 우리 몸 안에 거하시며, 십자가 대속을 통해 우리 몸을 죄와 사망의 권세에서 구속하셨다.
14절 고린도 교인들의 생각처럼 몸이 무가치하고 패하게 될 것이라면, 하나님께서 예수의 육체를 살리실 이유가 없었다. 바울은 주를 살리셨고 그 능력으로 우리를 살리실 것임을 선언하면서 현재의 몸과 장차 부활할 몸 사이의 연속성을 설명한다. 현재의 몸은 연약하나, 부활 때에 썩지 않을 영광스러운 형체로 변할 것이다. 그리고 음란이 치명적인 죄인 이유는, 그것이 단순한 윤리적 일탈을 넘어서서, 그리스도의 지체된 몸을 창녀의 지체로 만들고, 부활의 영광에 참여할 몸의 존귀함을 파괴하는 행위여서다.
15~17절
15절 바울은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라고 묻는다. 여기서 지체는 팔, 다리, 눈과 같은 신체 기관이다. 이것은 성도와 그리스도의 관계가 유기적이고 실제적인 생명의 연합 상태임을 보여준다. 이런 신학적 전제 위에, 그리스도의 지체를 가지고 창녀의 지체로 만들겠느냐고 묻는다. 가장 거룩한 그리스도의 일부를, 가장 부정한 창녀와 결합시킨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것이기에 ‘결코 그럴 수 없느니라’는 가장 강력한 부정어를 사용하여 반대한다.
16절 둘이 한 육체가 된다는 것은, 성적 결합이 단순한 육체적 접촉이 아님을 설명한다. 성관계는 두 존재를 묶어 한 몸으로 만드는 강력한 결속력을 가진다. 바울은 ‘합하는 자’라는 표현을 쓰는데, 이것은 한번 결합하면 떼 내기 힘든 밀착된 상태를 묘사한다. 따라서 성도가 창녀와 결합하는 것은, 일시적 쾌락을 즐기는 행위가 아니며,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거룩한 연합의 원리를 잘못 이용하여, 자신의 전 인격을 부정한 존재와 접착시키는 행위다. 이는 그리스도와 연합해야 할 거룩한 지체를, 죄악의 몸과 섞어버리는 것이다.
17절 ‘주와 합하는 자는 한 영이니라’고 한다. 바울은 창녀와의 한 몸 됨과 대조하여, 주님과 연합은 한 영 됨이라고 주장한다. 성도와 그리스도의 연합은 성령을 중재로 이루어지는 영적인 연합이다. 중요한 점은 이 영적 연합이 몸을 배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18절
바울은 ‘음행을 피하라’고 단호히 명령한다. 피하라는 지속적이고 습관적인 행동을 의미한다. 성도는 적군이나 맹수 앞에서 도망치듯 즉각적으로 벗어나야 한다. 도둑질이나 살인 같은 다른 죄들도 몸을 써서 저지르지만, 죄의 결과나 본질이 몸의 특징인 연합의 원리를 건드리지는 않는다. 그러나 음행은 자기 몸에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음행은 몸의 본래 기능과 목적을 정면으로 거스르고 파괴하는 행위다. 음행이 자기 몸에 짓는 죄가 되는 신학적 이유는, 하나님은 창조 때부터 성적 결합을 통해 두 존재가 한 몸이 되도록 창조하셨다. 성적 행위는 인격과 영혼을 강력하게 묶는다. 그런데 성도가 이것을 잘못 사용하여 음행을 저지르면, 그는 자신의 몸을 그리스도로부터 떼 내어 부정한 대상과 연합시키는 것이다.
19~20절
19절 성도 개개인의 몸을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한다. 구약 시대 성전이 하나님의 임재로 인해 구별되었듯이, 신약 시대 성도의 몸은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거룩하게 되었다. 따라서 창기와 결합하거나 몸을 음란하게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이 거하시는 성소를 더럽히는 행위가 된다. 바울은 성령이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을 상기시키며, 곧이어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성도는 다른 것이 아니라 참된 주인에게 주권을 드리는 자다.
20절 값으로 산 것이 되었다는 표현은, 고대 노예 시장에서 값을 치르고 소유권을 이전받는 속량 이미지를 빌려 온 것이다. 여기서 지불 된 값은 유월절 어린 양이신 그리스도의 피, 즉 십자가의 죽음이다. 과거에는 몸이 쾌락과 욕망을 위해 사용되었다면, 이제는 새 주인이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몸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주님의 핏값으로 산 존귀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음란의 유혹 앞에서, ‘나는 내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산 하나님의 소유’임을 분명히 드러내야 한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