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24년 성경묵상

고린도전서 7:1~24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6.06.11|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1일 목요일 묵상
<7:1> 「너희가 쓴 문제에 대하여 말하면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으나」
<7:2>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7:3>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7:4> 「아내는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남편이 하며 남편도 그와 같이 자기 몸을 주장하지 못하고 오직 그 아내가 하나니」
<7:5> 「서로 분방하지 말라 다만 기도할 틈을 얻기 위하여 합의상 얼마 동안은 하되 다시 합하라 이는 너희가 절제 못함으로 말미암아 사탄이 너희를 시험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7:6> 「그러나 내가 이 말을 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니라」
<7:7>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7:8>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 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7:9>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결혼하는 것이 나으니라」
<7:10> 「결혼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라서지 말고」
<7:11> 「(만일 갈라섰으면 그대로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7:12> 「그 나머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를 버리지 말며」
<7: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하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7: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애될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7:16> 「아내 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 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7: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7:18> 「할례자로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무할례자가 되지 말며 무할례자로 부르심을 받은 자가 있느냐 할례를 받지 말라」
<7:19> 「할례 받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 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7:20>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 그대로 지내라」
<7:21>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
<7:22> 「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인이요 또 그와 같이 자유인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7:23> 「너희는 값으로 사신 것이니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
<7:24> 「형제들아 너희는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



(본문 해석)
6월 11일 목요일 고린도전서 7:1~24
1~5절
1절 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는 말은, 고린도 교인들의 슬로건이다. 당시 고린도 교인 일부는 헬라적 이원론에 심취하여, 영적인 것은 선하고 육체적인 것은 무가치하다고 여겼다. 결혼생활에서도 금욕주의가 더 높은 차원의 영성을 보장한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성은 부정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창조 질서 안에서 바르게 사용해야 할 대상이다.
2절 성적 타락을 방지하고, 거룩함을 유지하기 위한 하나님의 적극적인 방편으로, 각자 배우자를 두라고 명령한다.
3절 결혼은 서로 책임을 져야 하는 언약이다. 의무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을 의미하며, 남편과 아내는 결혼을 통해 서로에게 성적 만족을 제공한 계약적 책임을 지게 된다.
4절 바울은 그 당시 가부장적 사회 통념을 완전히 뒤집고, 남편의 몸에 대한 권한이 아내에게 있으며, 아내의 몸에 대한 권한 또한 남편에게 있다는 상호성을 선언한다. 5절 바울은 분방하지 말라고 한다. 기도에 전념하기 위해, 합의 하에, 일시적으로 예외를 두지만, 이 예외조차 매우 조심스럽게 허용하고 있다. 사탄이 인간의 육체적 절제 못함을 틈타 시험하지 못하도록, 기도 기간이 끝나면 다시 합해야 한다고 경고한다.
6~9절
6절 이것을 말함은 허락이요 명령은 아니라고 하는데, 부부간 성관계를 중단하는 것이 성도에게 부과된 의무가 아니라 예외적 조치임을 분명히 하며, 이를 통해 금욕주의적 오해를 차단한다.
7절 자신처럼 독신으로 지내는 것의 유익을 인정하면서도,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독신이 하나님께 받은 은사라면, 결혼 또한 하나님이 주신 거룩한 은사며, 각자는 자신의 은사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제시한다.
8절 바울은 미혼자와 과부들에게 독신을 권하지만,
9절 만일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고 강력히 명령한다. 그러므로 독신의 은사가 없는 자가 억지로 독신을 고집하며, 내면의 정욕에 시달리는 것은 거룩이 아니다. 결혼 안에서 정당하게 욕구를 해소하고 배우자에게 헌신하는 것이, 합당한 절제를 실천하는 것이다.
10~11절
10절 바울은 명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주시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예수께서 사역 당시 이미 명확하게 가르치신 말씀(막 10:2~12)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고 말씀하셨기에, 바울은 이 절대적인 권위에 의존하여, 성도의 이혼을 엄격히 금지한다. 바울은 아내에게 갈라서지 말고, 남편에게도 버리지 말라고 한다. 당시에 고린도 교회의 일부 여자 성도들은, 왜곡된 금욕주의적 열심 때문에, 거룩해지기 위해 남편을 떠나는 일을 한 것 같다.
11절 성도에게는 양자택일의 선택이 주어진다. 첫째는 그대로 지내는 것이다. 독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의미하며, 또 다른 간음이 죄를 범하지 않도록 한다. 둘째는 남편과 화합하는 것이다. 여기서 화합한다는 것은 깨진 관계를 치유하고, 원래의 부부 관계로 돌아가기 위해 적극적으로 화해하는 것을 의미한다.
12~16절
12~13절 바울은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는 단서를 붙이지만, 말씀의 권위가 없다는 뜻이 아니라 예수님의 직접적인 가르침이 없는, 새로운 목회적 상황에 대한 사도적 적용이라는 뜻이다. 바울의 핵심 원칙은 불신 배우자가 계속 살기를 원한다면, 성도가 신앙적 거룩함을 핑계로 그들을 먼저 버려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고린도 성도들은 이방 문화에 젖은 배우자와의 결합이, 자신을 영적으로 오염시킬까 염려했다.
14절 믿지 않는 남편이 아내로 말미암아 거룩하게 됨을 말한다. 이것은 불신 배우자가 자동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이 아니다. 믿는 배우자가 하나님의 은혜가 흘러가도록 하여, 불신 가족이 하나님의 언약적 축복과 거룩한 영향력 아래 머물게 됨을 의미한다. 성도는 오염되는 자가 아니라 도리어 거룩함을 전염시키는 자다.
15절 바울은 예외를 둔다. 만약 불신 배우자가 신앙을 이유로 갈라서기를 원한다면, 억지로 붙들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툼이 아닌 화평 중에 부르셨기에, 신앙을 포기하거나 가정의 평화를 깨면서까지 결혼을 강요할 수는 없다.
16절 바울은 마지막으로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라며 소망을 제시한다. 힘겨운 결혼생활을 인내로 지켜 내는 것이, 결국 배우자를 영원한 생명으로 인도하는 구원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언약적 기대감을 심어 주며 권면을 마친다.
17~24절
17절 바울은 각 사람은 부르심을 받은 그 처지 그대로 지내라고 명령한다. 부르심은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으로 초대하신 회심 사건을 의미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사회적 신분이나 결혼 상태를 바꾸는 것이 더 나은 영적 지위를 보장한다고 착각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삶의 정황이 곧 하나님을 섬겨야 할 자리임을 가르친다.
18~19절 바울은 유대인의 정체성인 할례를 예로 들며, 할례는 아무것도 아니요 무할례도 아무것도 아니라고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민족적 종교적 표지가 효력을 상실했음을 의미한다. 대신 바울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데, 이것은 이제 새로운 언약 시대에 새로운 피조물로서 성령 안에서 사랑을 실천하는 새 언약의 윤리를 의미한다.
20~22절 노예들에게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염려하지 말라고 위로한다.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그것을 이용하라는 바울의 말은, 자유를 얻을 기회가 있다면 적극적으로 이용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핵심은 신분 자체가 아니다. 주 안에서 노예는 주께 속한 자유인이며, 자유인은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23절 성도는 값으로 산 것이 되었기에, 더는 세상의 명예나 신분 상승에 얽매여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아야 한다.
24절 바울은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고 명령한다. 어떤 형편에 있든지 그 자리에서 하나님 앞에서 행하는 것이, 성도가 누리는 참 자유와 평안의 비결이라는 것이다.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