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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성경묵상

고린도전서 7:25~40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6.06.11|조회수32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2일 금요일 묵상
<7:25> 「처녀에 대하여는 내가 주께 받은 계명이 없으되 주의 자비하심을 받아서 충성스러운 자가 된 내가 의견을 말하노니」
<7:26> 「내 생각에는 이것이 좋으니 곧 임박한 환난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7:27> 「네가 아내에게 매였느냐 놓이기를 구하지 말며 아내에게서 놓였느냐 아내를 구하지 말라」
<7:28> 「그러나 장가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 가도 죄 짓는 것이 아니로되 이런 이들은 육신에 고난이 있으리니 나는 너희를 아끼노라」
<7:29>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 이 후부터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7:30> 「우는 자들은 울지 않는 자 같이 하며 기쁜 자들은 기쁘지 않은 자 같이 하며 매매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며」
<7:31>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하라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감이니라」
<7:32> 「너희가 염려 없기를 원하노라 장가 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까 하되」
<7:33> 「장가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까 하여」
<7:34> 「마음이 갈라지며 시집 가지 않은 자와 처녀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몸과 영을 다 거룩하게 하려 하되 시집 간 자는 세상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남편을 기쁘게 할까 하느니라」
<7:35> 「내가 이것을 말함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너희에게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당하게 하여 흐트러짐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
<7:36> 「그러므로 만일 누가 자기의 약혼녀에 대한 행동이 합당하지 못한 줄로 생각할 때에 그 약혼녀의 혼기도 지나고 그같이 할 필요가 있거든 원하는 대로 하라 그것은 죄 짓는 것이 아니니 그들로 결혼하게 하라」
<7:37> 「그러나 그가 마음을 정하고 또 부득이한 일도 없고 자기 뜻대로 할 권리가 있어서 그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하여도 잘하는 것이니라」
<7:38> 「그러므로 결혼하는 자도 잘하거니와 결혼하지 아니하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니라」
<7: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로워 자기 뜻대로 시집 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7:40> 「그러나 내 뜻에는 그냥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으리로다 나도 또한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



(본문 해석)
6월 12일 금요일 고린도전서 7:25~40
25~28절
25절 바울은 미혼 처녀들의 결혼 문제에 대하여, 주님께 받은 직접적인 계명은 없으나, 주의 자비하심을 받은 충성스러운 사도로서, 신뢰할 만한 의견을 제시한다.
26절 바울이 결혼보다 독신을 권장하는 결정적인 배경은, 임박한 환난 때문이다. 단순히 개인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라, 종말론적 긴장이 고조되는 위기 상황과 당시 글라우디오 황제 치하의 기근과 사회적 배경이다. 세상 질서가 급격히 흔들리는 위기 속에서는 새로운 신분 변화를 꾀하기보다 현재의 부르심에 머무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지혜로운 선택이다.
27절 이미 결혼한 자는 거짓된 금욕주의나 종말의 긴박함을 핑계로 아내를 버리지 말며, 결혼하지 않은 자는 무리하게 결혼을 서두르지 말라고 한다. 이것은 삶이 급격하게 변하지 않도록 하여, 환난의 때를 잘 견디게 하려는 것이다.
28절 장가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요, 처녀가 시집가도 죄짓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밝힌다. 이는 바울 자신의 조언이 결혼제도 자체를 부정하거나 독신을 절대적인 선으로 여기는 금욕주의로 오해받지 않도록 균형을 잡고 있는 것이다. 결혼은 하나님이 제정하신 거룩한 제도다. 바울이 염려하는 것은 가중되는 현실적 고통이다. 환난이 때에 가정을 꾸리면 부양의 의무,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염려 등 육신의 고난이 일어난다. 바울의 독신 권면은 성도들을 아끼는 마음에서 나온 배려다.
29~31절
29절 ‘형제들아 내가 이 말을 하노니 그 때가 단축하여진 고로’라는 말은, 성도들이 자신의 삶을 종말론적 시각으로 바라보도록 한다. 단축된 때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제한된 시간이다. 이 시대는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 아니다. 성도는 일상의 삶을 영위하되, 다가올 하나님 나라를 대비하는, 긴박한 우선순위를 갖고 살아야 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바울은 세상의 활동에 대해 마치 ~없는 자 같이라는 새로운 태도를 제시한다. 첫째, 아내 있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라는 것은, 결혼 관계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결혼이 삶의 궁극적 목표나 전부가 되어서는 안 되며, 주님을 섬기는 일보다 우선될 수 없다는 뜻이다.
30절 우는 자들과 기쁜 자들은 그렇지 않은 자 같이 해야 한다. 성도는 슬픔과 기쁨을 느끼지만, 영원한 관점에서 볼 때, 현재의 감정은 지나가기에 너무 매몰되어서는 안 된다. 매매 하는 자들은 없는 자 같이 하라고 한다.
31절 세상 물건을 쓰는 자들은 다 쓰지 못하는 자 같이 해야 한다. 성도는 경제 활동을 하되 소유물에 집착하거나, 세상의 시스템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 이 세상의 외형은 지나가기 때문이다. 성도는 영원하지 않은 가치에 얽매이지 말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집중하는 종말론적 자세를 유지해야 한다.
32~35절
32절 바울은 성도들이 염려 없이 살기를 소망한다. 바울은 미혼자와 기혼자의 삶을 대조하며, 그들의 관심사가 어디로 향할 수밖에 없는지 설명한다. 미혼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몸과 영을 거룩하게 하는 데 집중할 수 있다.
33절 반면에 기혼자는 세상일 즉 배우자를 기쁘게 하고, 가정을 돌보는 현실적 의무에 마음을 써야 하기에 마음이 나뉘게 된다. 여기서 세상일은 죄가 아니라 결혼생활의 정당한 책임이지만, 이것이 주님을 향한 마음을 분산시킨다.
34절 시집가지 않은 일반 여자나 약혼녀는, 할 수 있으면 주의 일에 집중하려 하고 몸과 영을 더 순결하게 하려 한다. 그러나 결혼하면 남편의 경우처럼 세상일과 남편에게 충실하게 되어 마음이 나뉠 수 있다. 결혼이 마음을 나뉘게 하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결혼하지 않았다고 해서 자동적으로 주님께 마음이 집중되는 것은 아니다. 35절 바울은 이 권면이 성도에게 율법적 올무를 씌워 억압하려는 것이 아님을 강력히 변호한다. 오히려 그의 목적은 성도들의 영적 유익을 위한 것이며, 그들이 은사에 따라 이치에 합당하게 살아가고, 복잡한 세상일에 휘둘리지 않고, 흐트러짐 없는 헌신으로 주님을 섬기게 하려는 데 목적이 있다.
36~38절
36절 바울은 약혼자가 자신의 약혼녀에 대해 이치에 합당하지 않게 행동할 상황을 가정한다. 여기서 그의 정욕이 불같이 일어나(혼기도 지나고)라는 표현은, 성적 열망이 강하여 절제하기 힘든 상태를 말한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금욕주의적 분위기에서 일부 약혼자들은 결혼을 죄악시하여 망설였지만, 성적 욕구가 통제되지 않아 죄를 지을 위험이 있다면, 그가 원하는 대로 하여 결혼하게 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억지 금욕보다 결혼을 통해 거룩함을 지키는 것이 옳다고 가르친다.
37절 바울은 결혼하지 않고 약혼녀를 그대로 두기로 결정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엄격한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마음이 확정되어야 하고 둘째, 성적 욕구로 인한 불만 같은 부득이한 일이 없어야 하고 셋째, 자신의 욕망을 제어할 권리(통제력)가 있어야 하고, 넷째, 그 결과 약혼녀를 지키기로 결심해야 한다.
38절 바울은 결혼하는 자도 잘하는 것이지만, 결혼하지 않는 자는 더 잘하는 것이라고 평가한다. 결혼은 선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39~40절
39절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법적으로 그에게 매여 있다. 매여 있다는 표현은 성도의 언약적 신실함을 의미한다. 그러나 죽음은 이 법적 관계를 끝내 버린다. 바울은 죽음을 잔다라고 표현함으로써, 성도가 가지는 부활의 소망을 암시한다. 남편이 죽으면 아내는 비로소 자유롭게 되어, 자신이 원하는 사람과 결혼할 수 있는 권리를 얻는다. 여기서 단 하나의 조건이 있다. 바로 주 안에서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재혼이 성도의 신앙과 소명을 방해하지 않고, 주님을 섬기는데 합당한 선택이어야 하다는 것이다.
40절 바울은 자신의 목회적 판단으로, 과부가 그대로 지내는 것이 더 복되다고 결론 짓는다. 환난의 때에 재혼을 통해 새로운 세상일의 염려를 짊어지는 것보다, 독신으로 지내며 흐트러짐 없이 주님을 섬기는 것이 영적으로 훨씬 평안하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나도 하나님의 영을 받은 줄로 생각하노라고 한다. 이것은 고린도 교회의 자칭 영적 지도자들에 맞서, 자신의 이 권면이 개인 의견이 아니라 성령의 지혜와 인도하심에서 나온 신뢰할 만한 것임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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