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3일 토요일 묵상
<8:1> 「우상의 제물에 대하여는 우리가 다 지식이 있는 줄을 아나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8:2> 「만일 누구든지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면 아직도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것이요」
<8:3> 「또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 주시느니라」
<8:4> 「그러므로 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우리가 우상은 세상에 아무 것도 아니며 또한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는 줄 아노라」
<8:5>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불리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8:6>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8:7> 「그러나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므로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8:8> 「음식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않는다고 해서 더 못사는 것도 아니고 먹는다고 해서 더 잘사는 것도 아니니라」
<8:9> 「그런즉 너희의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8:10> 「지식 있는 네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누구든지 보면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8:12> 「이같이 너희가 형제에게 죄를 지어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니라」
<8:13>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
(본문 해석)
6월 13일 토요일 고린도전서 8:1~13
1~3절
1절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올바른 신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바울은 그들에 대해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운다고 지적한다. 교만하게 하다는, 지식만 있는 상태가 겉모습은 거대해 보여도, 속은 비어 있는 영적 허영과 자기 과시의 상태를 의미한다. 반면에 사랑은 세운다. 이는 집을 짓다. 세우다라는 뜻의 건축 용어다. 지식이 우리를 부풀려 홀로 서게 한다면, 사랑은 공동체라는 집을 견고하게 짓는다.
2절 바울은 참된 지식을 말한다. 참된 앎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형제와의 관계 속에서 어떻게 적용해야 하는지를 아는 것이다. 자신의 지식이 형제에게 걸림돌이 될 수 있음을 깨닫지 못하는 지식은, 불완전하며 영적 무지다.
3절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람은, 하나님도 알아주신다. 진정한 신앙의 목표는, 내가 하나님에 대해 얼마나 많이 아느냐에 있지 않고,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에서 그분께 알려지는 것에 있다. 하나님께 알려진 자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를 귀하게 여기며, 자신의 권리를 포기할 줄 아는 사람이다.
4~6절
4절 고린도 교회의 지식 있는 자들의 핵심 지식은,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는 것이다. 우상은 나무나 돌에 불과하며, 신적 존재가 아니라 생명을 가지지 못한 껍데기이기 때문이다.
5절 세상에는 신이라 불리는 자가, 하늘과 땅에 많고 수많은 주가 존재한다. 허상일지라도 종교적, 문화적 상황에서 우상은 사람들을 지배하는 강력한 실재로 기능하고 있다. 따라서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지식은, 객관적인 진리일지라도 형제에게는 강제적인 내용이 될 수 있다.
6절 바울은 유대교의 쉐마(신 6:4)를 기독론적으로 재해석한다. 첫째,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신다.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존재한다. 이것은 하나님이 만물의 기원이자 최종 목적임을 의미한다. 둘째,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다.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존재한다. 그리스도는 창조와 구원의 유일한 중보자이시다. 우리가 한 하나님과 한 주를 섬긴다면, 우리의 삶은 철저히 그를 위하여 존재해야 한다.
7~9절
7절 이 지식은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은 아니라며 목회적 현실을 말한다. 교회 안에는 우상숭배의 습관에 깊이 젖어 있던 성도들이 있었다. 그들은 제사에 바쳐진 고기를 먹는 것을,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우상과 교제하는 제의적 행위로 인식했다. 강한 자에게는 아무것도 아닌 이 고기 섭취가, 약한 자에게는 양심을 오염시키고 죄책감을 유발하는 치명적이 독이 될 수 있다.
8절 음식 자체가 가진 신학적 가치 중립성, 즉 아디아포라를 명확히 규정한다. 음식은 물리적 물질일 뿐, 그것을 먹는 문제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더 거룩하게 하거나 부족하게 만들지 않는다. 구원과 경건은 식탁 위의 음식에 달려 있지 않다.
9절 너희의 이 권리가 약한 자들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는 권면에서, 지식에 근거해서 선택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그러나 바울은 나의 권리가 형제를 넘어지게 한다면, 그 권리 행사를 즉시 멈춰야 한다고 한다. 성숙함의 척도는 내가 무엇을 알고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아니라, 나의 행동이 형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가를 아는 민감함에 있다.
10~11절
10절 고린도 교인 중 일부는 신학적 지식을 근거로, 우상의 신전에 앉아 거리낌 없이 음식을 먹었다. 그에게는 이것이 아무런 문제가 아니었다. 그러나 문제는 그 모습을 지켜보는 약한 자들이다. 아직 우상숭배의 관습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한 양심이 연약한 성도들에게, 이러한 행동은 충격적인 메시지가 된다. 그리고 약한 자의 양심이 지식 있는 자의 행동을 보고, 일종의 담력을 얻게 되는 것이다. 신앙 안에서의 세움은 형제를 거룩하고 온전하게 만드는 과정을 의미하지만, 정반대의 현상이 일어날 수 있다. 지식 있는 자가 고기를 먹는 행위는, 약한 자의 믿음을 견고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약한 자가 자기 양심을 거스르면서, 우상 제물을 먹게 만드는 거짓된 용기를 만들어 버린다. 이는 형제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죄를 짓게 만드는 것이다.
11절 바울은 지식으로 인해 믿음이 약한 자가 멸망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여기서 멸망은 영적 파탄을 의미한다. 한 사람이 자유를 행사하는 것이, 다른 한 사람에게는 영원한 생명을 위협하는 치명적인 걸림돌이 된다. 바울은 실족한 그 약한 형제가, 바로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임을 가르친다. 주님은 그를 위해 십자가를 지셨는데, 지식 있는 자는 약한 그를 위해 식사를 포기하지 못하는 상황이 대조된다.
12~13절
12절 바울은 형제에 대한 배려 없는 행동이, 형제에게 죄를 짓고 그 약한 양심을 상하게 함으로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 된다고 단언한다. 여기서 양심을 상하게 하다라는 표현은, 형제의 내면에 씻을 수 없는 해를 입히고, 폭력을 행하는 것과 같은 영적 폭력성을 의미한다.
13절 바울은 그러므로 만일 음식이 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하지 않게 하리라고 한다. 바울은 자신에게 고기를 먹을 권리가 있음을 잘 알고 있다. 신학적으로 음식은 하나님 앞에서 중립적이다. 그러나 그에게는 지식의 자유보다, 사랑의 의무가 훨씬 더 중요한 가치였다. 만약 나의 사소한 습관이나 누릴 수 있는 권리가, 단 한 명의 형제라도 넘어지게 만드는 걸림돌이 된다면, 바울은 주저 없이 그 권리를 영원히 포기하겠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