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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성경묵상

고린도전서 9:1~23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6.06.13|조회수25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4일 주일 묵상
<9:1>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9:2>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사도가 아닐지라도 너희에게는 사도이니 나의 사도 됨을 주 안에서 인친 것이 너희라」
<9:3>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
<9:4> 「우리가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
<9:5>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와 같이 믿음의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9:6> 「어찌 나와 바나바만 일하지 아니할 권리가 없겠느냐」
<9:7> 「누가 자기 비용으로 군 복무를 하겠느냐 누가 포도를 심고 그 열매를 먹지 않겠느냐 누가 양 떼를 기르고 그 양 떼의 젖을 먹지 않겠느냐」
<9:8> 「내가 사람의 예대로 이것을 말하느냐 율법도 이것을 말하지 아니하느냐」
<9:9> 「모세의 율법에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 기록하였으니 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9:10>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과연 우리를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밭 가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갈며 곡식 떠는 자는 함께 얻을 소망을 가지고 떠는 것이라」
<9:11> 「우리가 너희에게 신령한 것을 뿌렸은즉 너희의 육적인 것을 거두기로 과하다 하겠느냐」
<9:12>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일까보냐 그러나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로다」
<9:13> 「성전의 일을 하는 이들은 성전에서 나는 것을 먹으며 제단에서 섬기는 이들은 제단과 함께 나누는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9:14> 「이와 같이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명하셨느니라」
<9:15> 「그러나 내가 이것을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고 또 이 말을 쓰는 것은 내게 이같이 하여 달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차라리 죽을지언정 누구든지 내 자랑하는 것을 헛된 데로 돌리지 못하게 하리라」
<9:16>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9:17> 「내가 내 자의로 이것을 행하면 상을 얻으려니와 내가 자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사명을 받았노라」
<9:18> 「그런즉 내 상이 무엇이냐 내가 복음을 전할 때에 값없이 전하고 복음으로 말미암아 내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아니하는 이것이로다」
<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9:20> 「유대인들에게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는 내가 율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나 율법 아래에 있는 자 같이 된 것은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9:21> 「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께는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에 있는 자이나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율법 없는 자들을 얻고자 함이라」
<9:22> 「약한 자들에게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내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니」
<9:23> 「내가 복음을 위하여 모든 것을 행함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



(본문 해석)
6월 14일 주일 고린도전서 9:1~23
1~3절
1절 내가 자유인이 아니냐? 사도가 아니냐? 예수 우리 주를 보지 못하였느냐? 주 안에서 행한 나의 일이 너희가 아니냐? 이 네 개의 수사적 질문들은, 독자에게서 그렇다는 긍정의 대답을 이끈다.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유인인 동시에, 부활하신 주님을 직접 목격하고, 보냄을 받은 사도인 것을 강조한다.
2절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향해, 나의 사도 됨의 인(보증하는 확실한 표)이라고 강조한다. 바울에게 고린도 교회는 종이에 쓰인 추천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빚어진 살아 있는 추천서였다. 다른 이들은 바울의 외모나 수사적 능력, 혹은 육체 노동하는 모습을 보고, 그의 사도직을 의심할지라도, 고린도 성도들만큼은 그를 부인할 수 없다.
3절 나를 비판하는 자들에게 변명할 것이 이것이니라고 하는데, 여기서 변명과 비판은 모두 재판에서 사용되는 법률 용어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일부 교만하고 지식 있는 자들은, 바울이 사례를 받지 않고 직접 일하는 것을 두고, 사도의 자격이 없거나 권위가 부족한 증거라며 폄하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의 사도직을 방어하기 위해 다른 증거를 대지 않는다. 바로 변화된 너희(고린도 교회)가 그의 변호 내용이기 때문이었다.
4~14절
4절 바울은 세 개의 수사적 질문을 통해, 사도들의 보편적 권리를 나열한다. 먹고 마실 권리가 없겠느냐고 질문한다. 사도의 일을 통해 생계를 유지할 권리다.
5절 다른 사도들이나 주의 형제들, 게바 처럼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고 한다.
6절 육체노동을 하지 않을 권리가 없겠느냐고 한다. 당시 사도들은 교회의 후원을 받아서 사역했고, 그것이 사도권의 중요한 증거였다. 그러나 바울은 자발적으로 일하기를 선택하여, 교회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했다.
7절 군인은 자비로 복무하지 않으며, 농부는 포도나무 열매를 먹고, 목자는 양 떼의 젖을 먹는 예를 든다. 노동하는 자가 그 대가를 얻는 것이 자연스럽다.
8절 사람의 관례에도, 율법에도 이것을 말하고 있다.
9~10절 신명기 25:4의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를 인용하며, 하나님께서 소를 위하여 염려하심이 아니라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신 것이라고 해석한다. 밭 가는 자나 곡식 떠는 자는 소망을 가지고 일을 한다.
11절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의 교환 원리를 제시한다.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신령한 것, 즉 복음의 생명을 뿌렸다면, 그들로부터 육적인 것, 즉 물질적 후원을 거두는 것이 결코 과한 일이 아니었다.
12절 다른 이들도 너희에게 이런 권리를 가졌거든 하물며 우리에게 그럴 권리가 없겠느냐. 바울은 개척자로서 누구보다 큰 권리가 있었지만, 우리가 이 권리를 쓰지 아니하고 범사에 참는 것은 이라고 말한다.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 함이었다. 바울은 자신의 권리 행사가 누군가에게 복음을 받아들이는데 방해물이 될까 봐 굶주림과 고생을 택한 것이다.
13절 성전에서 일하는 자들이 제단 음식을 먹는 것처럼
14절 주께서도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명하셨다. 이것은 주님의 법이다. 바울은 철저하게 자신의 권리가 하나님의 명령에 근거한 정당한 것임을 증명했다. 그가 모든 권리를 포기하고 자비량으로 사역한 것이, 자격이 없어서가 아니라 오직 복음과 성도들을 향한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된 거룩한 포기였음을 강조한다.
15~18절
15절 바울은 이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다고 말한다. 쓰지 않았다는 것은, 바울의 권리 포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지속적이었음을 현재시제로 말해준다. 그는 이 원칙이 무너지는 것을 죽음에 빗대어 말한다. 차라리 죽을지언정이라는 표현을 볼 때, 그가 자신의 자랑을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지 보여준다. 이 자랑은 대가 없이 전함으로 복음의 순수성을 증명하는 것이다.
16절 바울이 가진 소명의 불가항력적 성격을 드러낸다. 그에게 복음 전파는 선택 사항이 아니라 부득불 할 일이었다. 그러므로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라고 고백한다.
17절 바울은 자신의 위치를 청지기로 규정한다. 주인의 위탁을 받은 노예는 그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따라서 복음을 전하는 행위 자체는, 바울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 없다.
18절 바울의 상급은 상급(보수)를 받지 않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값없이 전하는 특권 자체가 유일한 보상이다. 바울에게는 자신의 권리를 희생하여, 은혜의 선물 됨을 지켜 내는 것이 최고의 상급인 것이다.
19~23절
19절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인이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되었다고 한다. 바울은 누구에게도 얽매이지 않는 완전한 자유인이었으나,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스스로 노예의 위치로 내려갔다. 바울은 영혼을 얻기 위해 자신의 자유를 사용한 것이다. 그의 유일한 욕심은 바로 사람이다.
20절 유대인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되었다. 바울은 율법이 구원의 조건이 아님을 누구보다 잘 알았지만,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한 것처럼, 유대인들의 문화와 정서를 존중하여, 그들이 복음에 귀를 막지 않도록 배려했다.
21절 율법 없는 자(이방인)에게는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되었다. 그러나 바울은 오해를 막기 위해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율법 없는 자가 아니요, 도리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자임을 명확히 한다. 이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그리스도의 법안에서 이방인의 문화를 수용했다는 뜻이다.
22절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되었다고 한다. 바울은 강한 자로서 고기를 먹을 지식이 있었지만, 믿음이 약한 형제의 양심을 보호하기 위해, 기꺼이 자신의 지식을 감추고 약한 자의 위치로 내려왔다. 이 모든 낮아짐의 목적은 단 하나,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고자 함이다. 이것은 복음이라는 불변의 진리를 담기 위해, 자신의 그릇 모양을 상대방에 맞게, 끊임없이 깨뜨리고 변화시키는 치열한 자기 부인이다. 23절 바울은 이 모든 수고의 동기를 ‘복음을 위하여’라고 요약하며, 자신이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고 고백한다. 결국 바울에게 사도권 포기와 자발적 종 됨은 희생이 아니라, 복음의 영광스러운 승리에 동참하기 위한 가장 분명한 영광의 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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