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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년 성경묵상

고린도전서 10:14~11:1

작성자류신옥|작성시간26.06.15|조회수31 목록 댓글 0

2026년 6월 16일 화요일 묵상
<10:14>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10:15> 「나는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과 같이 하노니 너희는 내가 이르는 말을 스스로 판단하라」
<10:16> 「우리가 축복하는 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아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여함이라」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0: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냐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냐」
<10:20> 「무릇 이방인이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10: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하지 못하리라」
<10: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10: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니」
<10: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10:25> 「무릇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10:26> 「이는 땅과 거기 충만한 것이 주의 것임이라」
<10:27> 「불신자 중 누가 너희를 청할 때에 너희가 가고자 하거든 너희 앞에 차려 놓은 것은 무엇이든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
<10: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10: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10:30>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여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10:31>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10:32>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10:33> 「나와 같이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고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하라」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



(본문 해석)
6월 16일 화요일 고린도전서 10:14~11:1
14~22절
14절 바울은 내 사랑하는 자들아 라는 목회적 호칭으로 시작하며,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고 명령한다. 여기서 피하라는, 즉각적이고 실제적으로 그 현장에서 빠져나와야 하는 긴박한 상황을 전제한다.
15절 바울은 지혜 있는 자들에게 말함같이 할테니 자기 말을 스스로 판단해 보라고 한다.
16절 축복의 잔을 마시고 떡을 떼는 것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와 몸에 참여하는 신비적 연합이다.
17절 떡이 하나이기에 성도 전체가 한 몸이 되는 것처럼, 제물을 먹는 행위는 그 제사의 대상과 연합하게 만든다.
18절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이 제물을 먹음으로 제단(하나님)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듯이, 식탁 교제는 곧 예배의 대상과의 하나 됨을 의미한다.
19절 교인 중 일부는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고 하나님만 참 신이라고 여기고 함부로 살지만, 바울은 그들의 짧은 지식을 교정한다.
20절 이방인들이 제사하는 것은 그 뒤에 숨어 인간을 노략질하는 악한 영들에게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전에서 제물을 먹는 것은, 단순한 식사가 아니라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는 것이다.
21절 결론적으로 바울은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한다고 선언한다.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는, 동시에 귀신과 연합할 수 없다.
22절 성도가 이를 무시하고 다른 종교의 제사에 참여한다면, 그것은 주를 노여워하시게(질투하시게) 만드는 것이다. 이는 신명기 32장에서 언약을 배신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거룩한 질투를 상기시킨다.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할 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것을 알고, 겸손히 순종할 것을 촉구한다.
23~24절
23절 바울은 6:12에서 다루었던 고린도 교인들의 슬로건, ‘모든 것이 가하다’를 다시 언급한다. 당시 고린도 교회의 강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정죄로부터 해방되었다는 진리를, 자신들이 방종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사용했다. 그들은 나는 무엇이든지 먹을 자유가 있다고 말하며, 신전 제사에 참여하거나 믿음이 약한 자들을 무시했다. 이에 바울은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여기서 유익하다는, 개인의 이득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이익을 의미한다. 또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덕을 세우다라는 말은, 집을 짓다라는 건축 용어다. 성도의 모든 언행은 교회라는 하나님의 집을 튼튼하게 쌓아 올리는 벽돌이 되어야 한다.
24절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한다. 바울은 성도의 삶의 방향을, 나에게서 타인에게로 전환할 것을 요구한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주신 십자가의 길과 정확히 일치한다.
25~30절
25절 당시 고린도 시장에서 유통되는 고기들은, 대부분 이방 신전에서 제의에 드려지고 나온 것들이었다. 따라서 고린도 교회의 성도들 사이에서는, 시장에서 사온 고기를 먹는 행위가 간접적인 우상숭배에 동참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과 양심의 가책이 존재했다.
26절 바울은 창조 신학으로 시편 24:1의 말씀을 인용하여 답을 제시한다. 모든 피조물은 하나님의 것이며 본래 선한 것이기에, 우상에게 바쳐졌다는 의식만으로, 그 고기의 본질이 악하게 변하거나 오염되는 것은 아니다.
27절 불신자가 초대한 자리에서 먹는 고기 음식의 경우에, 바울은 양심을 위하여 묻지 말고 먹으라고 명령한다.
28절 만약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불신자 혹은 믿음이 약한 자가)가, 성도에게 이것은 제물이다라고 귀띔해 준다면, 그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그가 제물이라는 이방인의 종교적 용어를 사용했다는 것은, 그 고기를 여전히 우상숭배의 맥락에서 이해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때 바울은 알게 한 자와 그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고 한다. 고기 자체는 문제가 없으나, 그 상황에서 먹는 행위는, 상대방의 양심을 무너뜨리거나 복음의 증거를 방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호해야 할 대상은, 먹는 자의 양심이 아니라 그것을 지켜보는 타인의 양심이다. 이는 나의 정당한 자유보다 타인의 영적 유익과 보호가 훨씬 더 높은 가치라는 것을 보여준다.
29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라고 반문한다. 표면적으로는 왜 내가 남의 눈치를 봐야 하는가 라는 질문처럼 들리지만, 사실은 내가 아무리 하나님께 감사하고 먹을 권리가 있다 한들, 그 행위가 타인에게 시험거리가 되어 비방을 받는다면, 그것이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이 될 수 있겠는가 라는 가르침이다.
30절 내가 감사함으로 누린 자유가, 누군가를 실족하게 만들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다면, 그 감사는 온전한 감사가 될 수 없다. 결국 바울이 말하는 참된 자유란,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다. 도리어 복음의 영광과 형제의 구원을 위해서라면, 마땅히 누릴 수 있는 권리조차 기꺼이 포기할 수 있는, 자발적 절제의 능력이야 말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진짜 자유인 것이다.
10:31~11:1절
10:31절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 명령한다. 고린도의 강한 자들은 자신들의 지식과 권리를 과시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으나, 바울은 삶의 아주 사소한 일상(먹고 마시는 것)조차 하나님을 드러내는 도구가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32절 바울은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라고 한다. 유대인에게는 율법을 무시하는 방종한 자로 비쳐, 복음을 거부하게 해서는 안 되며, 헬라인에게는 우상숭배와 타협하는 자로 보여, 복음의 거룩성을 훼손해서는 안 된다. 또한 교회 내부적으로는 약한 형제를 시험에 들게 하여, 공동체를 파괴해서는 안 된다.
33절 바울 자신을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로 소개한다. 이것은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아부가 아니다. 그의 목표는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타인의 구원이다. 영혼을 실족하게 않는 일을 위해서는 먹고 싶은 고기도,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유도 기꺼이 양보할 수 있다는 것이 바울의 원칙이다. 사랑은 나의 권리보다 타인의 생명을 더 귀하게 여기는 것이다.
11:1절 바울은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한다. 여기서 그리스도를 본받는다는 것은,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입으신 그분의 십자가 정신을 따르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자기 부인과 희생을 본보기로 삼아 살았기 때문에, 고린도 교인들에게도 자신을 본보기로 삼아 그 길을 따르라고 말할 수 있었다. 결국 우상 제물 문제의 해답은 지식에 있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신 예수를 닮아 가는 삶, 즉 타인을 위해 나를 내주는 사랑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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